그런 승협에게 강변에 새로이 개장하는 '동양 최대의 테마파크' 원더랜드는 그야말로 환상의 세계다. "남이 싼 똥 구린내를 맡으며 라면을 먹어야 하는 지옥 같은 단칸방"에서 최대한 멀리 떠나고 싶었던 소년의 욕망은, 부반장네 집에서 응모권을 훔치게 하고 초대권이라는 행운을 쥐게 만든다. 그렇게 원더랜드 '진입'에 성공한 승협 앞에는 미지의 상품을 미끼로 어른들이 마련한 '무한 경쟁'이 펼쳐진다.
비룡소 블루픽션상 6회 수상작 <원더랜드 대모험>(비룡소 펴냄)의 초반 줄거리는 '변화무쌍'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변하지 않은' 서울의 모습을 동시에 암시한다. 이 소설은 80년대 서울의 개발 풍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성장 소설로 화려한 테마파크와 비루한 벌집 촌, 노동 운동을 하면서도 권력에 구원을 읍소하는 어른 등 콘트라스트가 만들어내는 서울 상(像)이 인상적이다.
현실적이면서도 기괴한 서울의 모습은 이력이 독특한 신인 작가 이진(30)의 취재와 상상의 산물이다. 주인공 승협은 1974년생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배경인 80년대 말은 82년생 작가의 유년 시절과도 겹친다. 그 어렴풋한 이미지들을 토대로 도서관을 누볐다. 일간지와 잡지 기사, 수기는 물론 노동 운동 관련 논문과 놀이공원 지면 광고·사보를 섭렵했고 '74년생' 서울 키드들과 인터뷰도 했다. 그 결과 최루탄이 터지는 과격 시위 현장 등 지금은 경험하기 어려운 서울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됐다.
▲ <원더랜드 대모험>(이진 지음, 비룡소 펴냄). ⓒ비룡소 |
이 씨는 학창시절 만화에 열의를 보이다 대학에선 디자인을 전공했고, 다시 영상이론과에 들어갔다가 온라인 게임 회사에서 일하는 등 기존 문단의 신인들과는 상당히 다른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중학교 때부터 단편 습작을, 스무 살 넘어서부터는 장편 습작을 꾸준히 하면서 나름의 작가 수업을 해 왔다. 그는 "다양한 일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이야기를 만들겠다는 일관성은 계속 지켜왔다"고 설명했다.
성인을 주인공·대상으로 한 소설도 써 왔지만 워낙 청소년 소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스스로 어른답지 못한 면이 많다고 생각해선지 주변 환경과 계속 맞부딪치며 살아가는 10대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는 것. 특히 좋아하는 성장 소설은 배척받는 아르메니아계 이주민 출신 주인공과 왈패 10대들의 이야기인 윌리엄 사로얀의 <내 이름은 에이럼>(설순봉 옮김, 민음사 펴냄)이다. 이 외에도 김유정·이상·황순원 등 "현대 소설보다 더 거침없고 시대 묘사가 디테일한" 한국 근대 소설을 즐겨 읽는다.
작가는 <원더랜드 대모험>을 통해 90년대 이후 태어난 청소년들을, 우리에겐 익숙하지만 그들에겐 "까마득한" 과거로 연결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멀지 않은 과거로 보내는 소설 타임머신인 셈이다. 그러나 진짜 전하고 싶은 것은 '재미'다. "재미있다고 느낀 뒤 곁다리로나마 시대를 읽거나 소통 창구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것. 그는 10대들에게 "아직 겪어보지 못해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환상이 사실 대단치 않을 수 있다. 너무 두려움을 가질 필요 없다"는 메시지도 덧붙였다.
이 씨는 '74년생' 승협과 자신이 속한 소위 '2030 세대'에 대해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는 걱정이 더 많은, 두려움 많고 보이지 않는 허상에 집착하는 세대"라 진단했다. "앞으로도 10대 청소년들, 특히 '평균'에서 비껴나 있는 아이들에 대해 쓰고 싶다"는 작가의,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세대의 이야기는 어떨지도 궁금해진다.
▲ <원더랜드 대모험> 작가 이진. ⓒ비룡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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