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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병'보다 더 무서웠던 '플라톤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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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병'보다 더 무서웠던 '플라톤병'!

[서가 속 허무] 플라톤의 <국가·정체>

그 책을 왜 샀나요? 사놓고 내버려 둔 이유는요? '프레시안 books'는 '사놓고 읽지 않은(못한) 책'이란 주제로 열두 명의 필자에게 글을 청했습니다. 책등만 닳도록 봐 온 책에 대한 필자들의 추억과 항변은 각각의 '자서전'이나 '독서론'이 되었습니다. 읽은 책에 대한 서평보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하여 말하는 법'이 더 흥미로운 까닭입니다.

흔히들 '중2병'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하지만 대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그저 모든 것을 억누를 뿐인 한국 현실에서, '중2병'이 꽃피는 시절은 어쩌면 대학교 2학년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한국어로 써 있다면 내가 읽어서 이해하지 못할 책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3학년, 4학년이 되어서도 '대2병'은 치유되지 않았다. 자신보다 더 센 '고수'(高手)를 찾아서 시비를 거는 무사라도 된 양, 남들이 어렵고 못 읽겠다고 말하는 책들을 일부러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그 끝은 당연히 철학으로 이어진다. 요한네스 힐쉬베르거가 쓴 <서양철학사>(강성위 옮김, 이문출판사)를 읽었다. 이해가 되건 안 되건 페이지를 끝까지 넘기기는 했다. 이런 저런 철학자들의 책을 계통 없이 읽어나갔다. 그러다보면 당연히 철학자 중의 철학자인 플라톤에 도달하게 되어있다. 2004년 초 무렵만 해도 플라톤의 책 중 그리스어 원전을 옮긴 것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한국어로 되어 있어도 이해가 쉽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그리스어 원전을 직접 읽을 수는 없으므로, 플라톤의 <국가>를 영어 번역본과 한국어 번역본을 동시에 놓고 읽어나가기로 한 것이다. 대체 왜 그런 어려운 길을 일부러 택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나에게는 그 책을 그렇게 읽어야 할 어떠한 이유도 없었다. 당시 나는 철학과가 아니라 법학과에 다니는 학생이었고, 당연히 사법시험의 수험생이기도 했다. 하지만 해야 할 공부 대신에,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저기 산이 있으므로 올라가는 등산인의 자세 비슷한 것이었다고, 굳이 이유를 만들어 회고해보지만, 역시 정확한 설명이 되지는 못한다.

당시 나는 한 달에 13만 원짜리 고시원에 살고 있었다. 정문을 나와 지하도를 건너가면 낙후된 동네가 있었고, 주유소 옆 골목으로 들어갔더니 저렴한 고시원이 나왔다. 내 한 몸을 눕히면 머리 끝이 한쪽 벽에, 발 끝이 문에 닿았다. 침대도 없었고 책상은 벽에 못으로 박힌 판자 조각 하나였다. 스탠드는 직접 들고 와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고시원에서 고시공부를 한 적은 없다. 학교 도서관에서 프린트해온 벤자민 조웻(Benjamin Jowett)의 번역본과, 서광사에서 나온 박종현 번역본 <국가>를 같이 놓고, 한 줄 혹은 한 문단씩 읽어나갔다. 부질없이 충만한 시간이었다.

▲ <국가·정체>(플라톤 지음, 박종현 역주, 서광사 펴냄). ⓒ서광사
누구에게 배운 적도 없는 내용을 혼자 이렇게 맨땅에 헤딩하듯 파고들 수 있었던 것은 비교적 초반부에 '어떤 문장'과 만났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대목에서 개인적 가능성과 집단적 불가능성을 동시에 보았다. 더 알고 싶고 읽고 싶다는 욕망과, 더 알지 못한 채 철학에 대한 낭만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는 이성의 속삭임이 공존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The makers of fortunes have a second love of money as a creation of their own, resembling the affection of authors for their own poems, or of parents for their children, besides that natural love of it for the sake of use and profit which is common to them and all men. - 330c, Benjamin Jowett의 번역

그러나 그것을 몸소 취득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도 그것에 대해 곱절이나 집착을 갖지요. 그건, 마치 시인들이 자기들의 시에 대해서 그리고 아버지들이 자식들에 대해서 애착을 가지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재물을 모은 사람들도 그것에 대해서 자신들의 작품처럼 열성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야 다른 사람들이 그러듯이 그들 또한 재물의 효용성과 관련해서도 같은 심정이겠죠. - 330c, 박종현의 번역


자기 손으로 재물을 벌어들인 사람이 그것에 대해 집착하게 되는 심리에 대한 묘사다. 그런데 여기서 모종의 그리스어를, 벤자민 조웻은 "second love", 즉 '2차적인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는 반면, 박종현은 '곱절의 집착'이라고 옮기고 있다.

둘 중에서 의미가 더 잘 통하는 쪽을 꼽자면 당연히 "second love"일 것이다. 돈을 그 돈이 주는 구매력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창조물 따위로 바라보고 사랑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당연히 '2차적'인 것일테니 말이다. 벤자민 조웻의 번역은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를 제외한 모든 번역자들은, 적어도 당시의 내가, 그리고 지금 다시 한 번 확인해본 바에 따르면, 그것을 '부차적인 사랑'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 로마 고전을 인터넷에서 읽을 수 있게 해주는 Perseus Project 홈페이지에서 해당 부분을 검색해보면 "διπλῇ ἢ οἱ ἄλλοι. The meaning is simply 'twice as much as the others'" 라는 그리스어 단어 해석을 발견할 수 있다(고대 그리스어를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전공자들을 위해 링크 (☞바로가기)를 첨부해둔다).

벤자민 조웻은 영어권 최초로, 그가 살던 19세기까지 확인됐던 모든 플라톤의 저서를 영어로 옮긴 사람이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플라톤의 영역본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그의 텍스트가 나온다. '중2병'이 아닌 '대2병'에서 그때까지도 허우적거리고 있던 2004년 무렵의 나는, 바로 그런 대가의 '오역'을 발견한 것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 누가 알아줄 것도 아니지만, 쾌감과 자신감이 솟아올랐다.

동시에 그것은 거대한 절망을 선사하기도 했다. 명백한 번역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해당 그리스어 원문 하나에 적어도 2개 이상의 해석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한국에서 취미삼아 철학 책을 뒤적거리는 내가, 진정한 '의미'에 도달하는 일이 얼마나 지난한 것인지를, 벤자민 조웻의 오역을 발견하면서 나는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었다. 영어 공부도 하는 셈 치고 마음 편하게 할 짓이 아닌 것이다.

'야, 나는 플라톤의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있다'를 넘어서, '야, 나는 심지어 번역본의 차이도 지적해낼 수 있다'고 대2병에 걸린 나의 자아의 일부가 소리를 쳤지만, 내 자아의 다른 일부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지구 어딘가의 누군가는 이미 발견했고, 논문도 썼고, 그래서 현재 '정설'이 된 번역이 따로 있는 것이라고. 내 것이 아니지만 내 눈에 보이게 된, 거대한 해석의 역사. 내가 만난 '인문학'은 이런 것이었다. 부여받은 맥락도, 형성해나갈 맥락도 없이, 표류하는 책읽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멈출 수 없게 되었다. 거대한 막막함과 부질없음. 정작 내가 해야 할 공부를 하고 있지 않다는 죄책감을 잊게 해줄만한 그 어마어마한 텍스트와 해석의 역사. 내 눈에는 다 보이지도 않는, 그 숭고하고도 귀족적인 해석의 유희들. 계절이 바뀌고 페이지가 넘어갔다. 나는 벤자민 조웻의 번역본을 버리고, 콘포드(F. M. Cornford)가 새롭게 옮긴 를 대본으로 삼았다. 그는 나뿐 아니라 당대의 그리스 고전 해석자들이 못 보던 것들을 잘도 보고 캐내는 사람이었다. 다시 한 번, 경탄과 절망의 시간이 이어졌다.

그리스어를 공부하고 고대 철학을 공부하는 그 길을 본격적으로 걸을 생각은 없었다.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설령 내 뜻이 확고하다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설령 제대로 들고 판다 한들, 서양 고전을 국내에서 연구하는 것은 대단히 막막한 일이다. 2차 문헌의 대다수, 3차 문헌의 거의 대부분이 국내에 없기 때문이다. 선대의 연구자들이 읽고 해석한 맥락과 역사를 우리는 알 수 없다. 문헌이 있다 한들 그것은 '우리'가 해석한 역사가 아니기 때문에, 그 흐름에 내가 탑승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실 지금도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지 못했다. 아마 영원히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인문학이라는 것이 서양의 고전에 대한 해석학을 주로 한다면, 그것이 고도화될수록 내 삶의 구체적인 맥락과는 멀어진다. 하지만 논어 맹자 공자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니체 데려다놓고 아무 소리나 마구 지껄이는, '인문학'이 아니라 '인문삶'이니 뭐니 하는 그런 소리들 역시, 나를 내 삶에서 소외시키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텍스트를 읽는 것이 내 삶을 조금이라도 삶답게 만들어준다고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나는 그런 식으로 나 스스로를 속일 수가 없다.

텍스트를 읽어낼 때의 쾌감과, 그 쾌감의 크기에 거의 비례하는 이 허무함. 그것들은 동전의 양면처럼 딱 붙어있으며, 바로 그렇기에, <국가>를 한 페이지씩 읽어나가는 것은 500원짜리 동전을 하나씩 삼키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쾌락을 선사했다. 언젠가 끝나야 할 책읽기였지만, 그것이 언제가 될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 플라톤은 정의(正義)의 정의(定義)를 확인하고, 올바른 공동체가 무엇인지 고민하며, 동굴의 비유와 선분의 비유를 논하다가, 국가의 수호자가 될 어린이들을 어떻게 교육시킬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17에서 18세가 될 때까지는 문학과 음악을 가르치고, 스무 살까지는 공부 대신 육체 단련과 군사적 훈련을 시킨다. 20세에서 30세까지 고차원적인 수학을, 30세부터 35세까지 변증론적 대화법을 통해 철학을 배운다. 그리고 35세부터 50세까지는 실질적인 일을 하며 공동체에 봉사하다가, 50세가 되면서부터 이론과 실천을 겸비하며 진정한 철학적 탐구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 지점에서 총 10권으로 된 <국가>의 7권이 끝난다.

그리고 나도 더 이상 <국가>를 읽지 않기로 했다. 당시 남겨놓은 기록을 들춰보니, 나는 '플라톤이 짜놓은 인생 시간표를 실천해보자'는, 대2병을 넘어서는 대2병적 사고를 했던 것 같다. 그래놓고서 학부를 졸업한 후 대학원을 철학과로 택했다. 플라톤이 아니라 칸트를 전공했는데,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한국적 맥락'에서 그것 역시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아무튼 나는 공부했고, 절망했고, 읽고 썼다. 지금도 그러고 있다. 그것이 두 번째 사랑 때문인지 두 배의 사랑 때문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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