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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가 당 만들면, 혹시 '해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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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가 당 만들면, 혹시 '해적당'!?

[프레시안 books] 마르틴 호이즐러의 <해적당>

2012년 한국 대선 정국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안철수'다. 작년 9월 서울시장 출마를 결심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그에 대한 사람들의 지지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리고 1년이 지난 2012년 9월, 그는 마침내 대선 출마를 결심했다. 제3후보에 대한 이토록 열광적이고 지속적인 지지는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세계적 석학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미국에서도 그렇지만 한국에서도 양대 정당이 아닌 제3의 후보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야당인 민주통합당에게 별 기대하기 어렵다, 독재자의 딸이 집권하는 것은 싫다, 그렇다면 제3의 선택을 해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자연스럽다. 그리고 실제로 여론 조사에서도 안철수의 지지도는 높게 나오고 있다."

월러스틴의 말처럼 안철수를 지지하는 대부분은 이쪽도, 저쪽도 싫은 '무당파'인 경우가 많다. 일각에서는 새로운 정치를 염원하는 유권자들의 바람이 담겨 있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무당파든,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이든 한국에서는 이것이 '안철수'라는 개인에게 집중됐다. 그런데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정치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바로 '해적당'이다.

해적당은 2006년 1월 스웨덴에서 몇몇 젊은 사람들이 모여 시작한 정당이다. 창당 3년 뒤인 2009년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7.4퍼센트라는 지지율을 획득하며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이후 2011년 9월 독일 베를린 의회 선거에서 8.9퍼센트의 지지를 얻어 총 149석 중 15석을 차지하며 의회에 진출했다. 베를린 의회를 시작으로 올해 3월 자를란트 주 의회 선거에서 7.4퍼센트, 5월 슐레스비히-홀슈타인(Schleswig-Holstein) 선거에서 8.2퍼센트를 기록하는 등 독일 전역에서 10퍼센트 가까운 지지율을 얻고 있다.

마르틴 호이즐러는 <해적당>(장혜경 옮김, 로도스 펴냄)에서 해적당의 성격과 지향점을 상세히 설명한다. 그는 '편집자의 말'에서 독일의 시사 주간지 <슈피겔>의 보도 내용을 인용해 해적당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해적당은 공통된 이념이 아닌 공통된 방법론으로 뭉친 최초의 정당이다. 그들의 방법은 함께 이야기하고, 인터넷에서 함께 행동하는 것이다."

▲ <해적당>(마르틴 호이즐러 지음, 장혜경 옮김, 로도스 펴냄). ⓒ로도스
해적당은 정부의 저작권 및 인터넷 규제에 대한 반발로부터 시작됐다. 이들의 이름이 '해적'인 이유도 소위 불법 복제판을 지칭하는 '해적판'에서 유래했을 정도로 인터넷상에서 개인이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

해적당의 시작점을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해적당은 인터넷의 특성과 자신들의 정체성을 연결 짓는다. 인터넷은 위계 질서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인터넷은 연결만 되어 있다면 양 방향 소통이 가능하고 모든 방향으로의 교류가 가능하다. 해적당은 이러한 점을 착안, '흐르는 민주주의(Liquid Democracy)'를 지향한다. 해적당이 이러한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것은 현재의 인터넷 기술이 직접 투표가 가능했던 고대 광장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적당은 '리퀴드 피드백'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흐르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다. 2011년 10월 초 해적당 베를린 지부에서는 리퀴드 피드백을 이용하여 총 열네 개의 현안을, 연방 차원에서는 열일곱 개의 현안을 논의했다. 이들이 토론한 주제인 '아동, 청소년, 가족, 교육'의 예를 들어 보면, 2011년 9월 23일 17시 06분 한 당원이 '보육권은 3세부터가 아니라 출생 시점부터'라는 제목으로 해적당의 요구 사항을 변경할 것을 요청했다. 이 의견에 대해 지지하는 사람이 많으면 다음 단계인 토론 단계로 넘어가고, 그렇지 않으면 안은 그대로 유지된다.

물론 해적당이 방법론적인 측면만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강령을 보면 정책적 측면에서 녹색당과 유사한 부분이 많고 그 내용을 정책에 반영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하지만 녹색당, 사회민주당을 비롯한 기존 독일의 정당과 해적당의 가장 큰 차이점은 기존 정치에 대한 접근 방식이다. 해적당은 정치의 방법, 즉 정당 제도와 그것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정치 제도를 혁신하려 한다.

해적당 베를린 의회 의원인 지몬 코발레프스키는 해적당의 핵심이 무엇이냐는 저자의 질문에 "정치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곳에서 내용적으로 무언가를 바꾸려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자체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정치가 수행되고 인식되며 결정되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지금의 형식 자체를 바꾸는 일이 해적당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정치 전면에 등장한 해적당은 과연 '롱런'할 수 있을까? 기존 독일의 여야 정치인들은 해적당 현상이 "정치의 영토를 한 차례 지나쳐가는 태풍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정치학자 오스카 니더마이어의 생각은 이와 좀 다르다. 그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해적당은 투명성을 핵심으로 내세우며 현 정치 상황의 정곡을 찔렀다고 말했다. 그래서 해적당은 미래가 있는 정당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베를린 <타게스슈피겔>의 기자 말테 레밍은 베를린 의회 선거가 끝난 후 해적당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1979년 녹색당이 처음으로 브레멘 주 의회로 진출했을 때 모두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했지만 결국 녹색당은 외무장관까지 배출했다. 이렇게 녹색당이 브레멘의 성공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성숙한 비판적 여론이 그들을 끈기 있게 길들였기 때문이다. 해적당 역시 유권자에게 해적당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유권자에게 보여줘야 한다."

말테 레밍의 논평은 해적당에게 중요한 질문 한 가지를 던지고 있다. 기존 정치 시스템에 대한 해적당의 비판 능력은 그렇다 치더라도 실제 해적당의 문제 해결 능력은 어느 정도인가 하는 질문이다. 사람들이 직면해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정당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해적당은 참여와 투명성이 해적당이 가져갈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라고 말한다. 투명한 공개를 통해 정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키고, 그 관심을 곧 정치에 대한 참여로 이끌어내는 것이다. 당장 10년도 내다보기 힘든 급변하는 사회 환경이지만 해적당의 원래 창당 정신을 잃지 않고 이어가겠다는 뜻이다.

기존 독일 정치인들의 말처럼 급변하는 사회에서 해적당은 그저 스쳐 가는 '태풍'일수도 있다. 하지만 설사 태풍이 그저 휩쓸고 지나가 버린다고 할지라도 그 태풍의 진원지는 어디이며, 이 태풍이 왜 발생했는지는 알아봐야 할 가치가 있다. 이 태풍은 기존 정치 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며, 독일뿐만 아닌 우리의 정치 환경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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