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아테네의 알로페케 출신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석공으로 알려진 소프로니스코스였다. 그의 이름은 소크라테스. 70의 나이에 그는 아테네의 법정에 섰고, 재판정에서는 플라톤이 스승의 재판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날의 기억들은 평생 플라톤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그가 글로 옮긴 그 기억들은 <소크라테스의 변론(Apologia tou Sōkratikou)>(박종현 옮김, 서광사 펴냄)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다.
그는 무엇을 잘못했기에 아테네의 법정에 서게 되었을까? 또는 사람들은 그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했기에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일까? 기원후 3세기 경 쯤에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의 철학사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기원후 2세기에 활동한 파보리누스의 말을 통해 소크라테스 재판의 선서 진술서 내용을 전한다.
"피토스 구민(區民) 멜레토스의 아들 멜레토스가 알로페케 구민(區民) 소프로니스코스의 아들 소크라테스에 대해서 맹서와 함께 다음과 같은 논고를 내렸다. 소크라테스는 나라가 인정하는 신들을 인정하지 않고, 새로운 다른 신령들을 들여오는 죄를 범했다. 그리고 그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죄도 범했다. 형벌은 사형에 해당된다."
뭔가 이상하다. 우리가 아는 상식에 비추어 볼 때, 이게 죄라도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라고는 선뜻 생각되지 않는다. 나라가 인정하는 신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알기로 그리스의 종교는 다신교로서 다양한 신들을 인정하는 데 상당히 관용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서양 중세의 마녀 사냥도 아니고, 이건 뭔가? 마찬가지 이유에서 새로운 신령들을 들여오는 게 범죄인가? 신흥 종교를 들여왔다는 소리인가?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 타락이라는 말도 애매하지만, 누구를 어떻게 타락시켰는지 분명히 나와 있지 않다. 사람을 어떻게 타락시키면 사형을 받을 수 있는 걸까?
소크라테스 재판의 진실 : 진실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진실을 알기 위해 우리가 의지할 만한 자료는 많지 않다. 적어도 사실의 측면에서는 그렇다. 소크라테스라는 사람이 있었고, 그가 아테네 법정 앞에서 이야기한 죄목으로 재판을 받아 기원전 399년에 사형을 언도받고 얼마 후에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인정되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정확히 어떤 이유로 사형 선고를 받았고, 또 그가 그에게 주어진 독배를 마다하지 않고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있다. 소크라테스가 죽은 후 그의 제자를 자처하는 사람들과 그의 친구들이 그의 죽음에 대해서 많은 글을 남겼다. 그중 대부분은 역사 속에서 사라져갔지만 소크라테스의 제자로서 비슷한 연배의 플라톤과 크세노폰의 글은 남았다.
그들은 비슷한 시기에 소크라테스의 배움을 받았고 <소크라테스의 변론>이라는 같은 제목의 책을 쓰기도 했고, 소크라테스를 대화의 주인공으로 삼은 '소크라테스적 대화편'들을 다수 저술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정작 책에서 보여주는 소크라테스는 꽤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역사적 기록의 문제였을 소크라테스의 재판에 대해서도 두 사람은 상당 부분 다른 이야기를 전해준다.
물론 크세노폰은 재판 당시 아테네에 없었기 때문에 당시 재판을 참관했던 헤르모게네스가 전해준 말을 토대로 글을 재구성하였다고 하지만, 플라톤은 자신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이름을 거명하게 하여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음을 밝히고 있는데도 소크라테스가 재판정에서 했다고 헤르모게네스가 전하는 내용이 플라톤의 글에 없거나 다른 맥락에서 전달되고 있다. 따라서 완전히 일치하는 증언이 없다는 점으로 볼 때, 사실의 차원에서 소크라테스와 관련된 객관적 진실을 알 길은 원리적으로 차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이라는 사건의 진실을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접근한 사람의 기록을 갖고 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죽어가는 과정을 직접 목격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일곱째 편지>에 썼듯이 소크라테스의 죽음으로 인해 플라톤은 본격적으로 철학자의 길을 가게 된다.
정치적으로 전도유망한 명문가 출신이었던 젊은 플라톤이 정치의 길을 접고 철학을 통해서만 인류의 구원이 가능하다는 깨달음을 얻는 사건이 바로 소크라테스의 죽음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에게는 소크라테스가 그저 한 사람 아니라 문제적 인간이었고, 그의 삶 자체가 플라톤에게는 철학적 해석의 대상이 되는 철학적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평생에 걸친 플라톤의 소크라테스 해석의 출발점에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놓여 있는 것이다. 플라톤으로서는 소크라테스가 왜 죽었고,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해야만 자신이 구하고자 한 그리스와 이 세상의 현실이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해의 차원은 단지 어떤 말을 실제로 했는지 안 했는지 하는 사실적 기록의 차원이 아니라 사건의 철학적 의미를 드러내는 언어로 구성되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플라톤에게는 소크라테스가 실제로 했던 말이 아니라 했어야 했던, 또는 실제의 말이 실질적으로 의미하고자 했던 말을 그의 글로 옮기려 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그가 글로 옮긴 소크라테스의 재판은 해석을 거친 재판이고, 사법적 사건으로서의 재판이 아니라 철학적 사건으로서의 재판이었다는 말이다.
사건의 진실 : 소크라테스의 죄목과 플라톤의 해석
이제는 이미 많이 알려진 일이지만, 우리가 소크라테스의 말로 기억했던 "악법도 법이다"란 말은 플라톤의 책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그런 취지로 했을 법한 말은 플라톤의 <크리톤>에서 찾아볼 수 있다. 탈옥을 권유하는 자신의 친구 크리톤을 설득하면서 소크라테스가 했던 말을 그렇게 해석해 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법을 의인화시켜서 말을 하게 하면서 국법의 혜택을 받으며 살아온 자가 이제 와서 국법을 어기고 탈옥을 하는 것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결론에 이르는 대목이 그렇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는 이와 반대되는 취지의 말을 소크라테스가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만약에 재판관들이 철학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자신을 풀어주더라도 자신은 이에 응하지 않겠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이 그것이다. 학자들은 <크리톤>에서 한 말과 여기서 한 말이 맞지 않아 일관된 해석을 하기 위해 논란을 벌인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보다는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철학을 계속하겠다는 소크라테스의 이 말을 통해 플라톤이 소크라테스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찾는 실마리로 이해해보고자 한다.
소크라테스가 철학을 계속 고집하는 이유는 그것이 신이 자신에게 준 사명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지혜와 덕에 대한 주제를 놓고 서로 대화를 나눠 무지를 일깨우고 자신의 혼을 돌보게 하는 것, 그것이 철학이고 그 철학을 통해 아테네인들을 오만의 미몽으로부터 깨어나게 하라는 것이 신이 자신에게 준 사명이라고 소크라테스는 믿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들의 법정보다 우선한다. 이런 소크라테스의 신념은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소크라테스의 신앙심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논의들이 가능하지만 적어도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 그는 두 가지 형태의 종교적 믿음을 갖고 있는 것으로 해서된다. 하나는 자신이 어릴 적부터 들어온 신령스런 목소리 또는 징후, 또 하나는 델피에 있는 아폴론 신전의 신탁이다.
플라톤이 해석한 신령스런 목소리는 소크라테스에게 가끔 나타나 그가 막 하려고 하는 어떤 일을 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그는 재판 당일 재판을 받으러 오는 길 내내 그 신령스런 징후가 나타나지 않아, 그것이 곧 자신이 재판에서 하게 될 말 전부에 대한 신령스런 존재의 허가라고 이해한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친구 카이레폰이 아폴론 신전의 무녀에게서 받아온 신탁이다.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
그는 이 말의 진실 여부를 자타공인 지혜롭다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확인해본 결과, 자신은 무지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무지하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점에서 자신이 지혜로운 것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플라톤이 이런 이야기들을 이 책에서 하는 이유는 우선 소크라테스가 신앙심이 없어 아테네가 인정한 신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죄목에 대해 반대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반론이 성공적이었다면 소크라테스는 죽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반론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아니,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에게 주어진 죄목에 대해 직접적인 반론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건 그들이 제시한, 또는 재판정이 인정한 죄목이 진정한 죄목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크세노폰의 반론은 이와 달랐다. 소크라테스를 다룬 또 다른 크세노폰의 책인 <소크라테스 회상>에서 그는 소크라테스가 전통적인 믿음의 관례들을 고수하며, 사람들이 잘 아는 그의 신령스런 존재도 아테네의 다른 신앙과 마찬가지로 길흉화복을 점쳐주고 소크라테스도 그것을 믿었으므로 그는 무죄라고 말한다.
하지만 플라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신령스런 존재가 아테네인들의 신들과 달리 적극적인 예언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고, 아폴론의 신탁은 다른 경우에 주어지는 신탁처럼 전쟁에서 이길지 질지, 언제 큰돈을 벌지를 일러주지 않았다. 소크라테스의 신들은 그에게 옳지 않은 일을 하지 말라고 했고, 옳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반성하여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라고 명했다. 이 점에서 그는 아테네가 인정한 기복의 종교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는 유죄판결을 받았다.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것에 대해서도 그렇다. 사실 이 재판이 성립되게 된 배경에는 소크라테스를 따라다니던 인물들 중 일부가 30인 과두정의 폭압 정치에 가담했거나 아테네를 배신했었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30인 과두정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민주파 정권은 시민들이 30인 과두정에 부역했던 과거의 행적을 묻지 않는다는 대사면령을 내렸고, 이에 따라 과두정 관련 혐의는 기소 사항이 될 수 없었다.
그렇지만, 크세노폰은 이것을 재판 배후의 중요한 사안이라고 보고 이에 대해서 변론한다.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은 소크라테스에게 가르침을 받아 아테네를 배신한 것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의 곁을 떠남으로써 그렇게 된 것이라고. 그러나 플라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는 먼저 소크라테스가 누구를 가르친 적이 없고, 따라서 제자들도 없다고 말하게 한다. 무지자를 자처하는 소크라테스가 누군들 가르칠 수 있었겠느냐고 말한다.
다만 소크라테스는 자타공인 지혜로운 자들을 찾아다녔고, 그들의 지혜로움과 자신의 무지를 확인하고자 하는 마음에 그들에게 질문을 한 적은 있다. 하지만 그들은 번번이 제대로 답하지 못했고, 끝내 자신들의 무지를 고백하게 되었다. 그 과정을 지켜보던 젊은이들이 소크라테스의 문답하는 법을 흉내 내 다른 어른들에게 해봄으로써 어른들을 불쾌하게 했으며, 그들은 이것을 곧 소크라테스의 소행이라 여겨 소크라테스를 괘씸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무지는 지혜에 대한 무지를 말한다. 무지자를 자처했던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에서 가장 지혜롭다는 말은 누구도 지혜에 대해서 자신할 수 없고 가르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철학은 지식으로서 누구에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철학을 함으로써 깨닫는 것이고, 그것은 대화를 통해 자신의 무지를 깨우치는 것을 전제할 것이다. 하지만 버릇없는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의 권위에 소크라테스의 무기를 들고 저항했으며, 그 결과는 뭣도 모르고 나대는 젊은 애들을 버릇없게 만든 소크라테스라는 판단이었다.
개인과 사회의 대립 : 옳고 그름과 다수의 문제
▲ 소크라테스. ⓒgodsdirectcontact.or.kr |
그것은 정치적인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인 신념이었다. 하지만 그의 신념은 다른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불편하게 했다. 개인이 개인으로서 자신의 행위에 신념과 책임을 갖지 않고, 패거리가 되어 개인에 대한 비판이 집단에 대한 비판이 되고, 집단에 대한 비판이 개인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여지는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의 시대에서 소크라테스는 개인으로서 사형을 언도받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내세우려는 오만한 개인이었을까?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읽다보면 그런 불편한 감정이 감지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사람은 도대체 뭐가 그렇게 잘나서 재판관들을 무시하고 사람들을 깔보는 걸까? 하지만 책을 디시 읽어가다 보면 나의 불편한 감정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사회적 예의 속에서 살고 있다. 심지어 철학적 논쟁에서도 우리는 너무 모난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도덕적 기준이 탁월하며 명민한 정신을 갖고 있는데, 다만 그는 말을 삼갈 생각이 없고 겸손을 떨 생각도 없으며 자신과 타인의 삶을 따져 묻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반응은 어떨까? 혼자 잘났어. 지는 얼마나 잘났다고. 어디 얼마나 잘났는지 두고 보자.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이 어디 있어. 아직 세상 무서운 걸 모르는군. 등등….
집단의 힘은 큰일을 이루어낸다. 소박하게 보면 세상의 혁명들은 이름 모를 사람들이 집단으로 실체를 드러냈을 때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 자각이 전제되지 않는 집단의 힘은 무섭다. 큰일을 이루어내지만 그것이 좋은 일인지는 알 수 없다. 한편에서는 자유를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 자유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자체로 누려야 할 지상 최대의 가치인가?
집단 지성을 이야기했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비판할 때가 아니라 뭉칠 때라는 이야기들도 끊임없이 나돈다. 하지만 집단의 똘똘 뭉친 틈서리에 소크라테스와 같은 꼬장꼬장하게 옳고 그름을 따지고,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인물 한 둘을 포용할 수 없다면, 21세기 최첨단 정보와 개성의 시대에도 집단의 광기로부터 우리는 여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큰일을 앞두고 큰일을 낼 것 같은 사람들을 보면서 요즘 드는 생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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