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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따위 없어도 난 행복해!

[프레시안 books] 이브 파칼레의 <신은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

"황야를 가로지르면서 내 발이 돌에 걸린다고 가정해 보라. 어떻게 그 돌이 여기에 놓이게 되었는지 묻는다면 그 돌은 영원히 그 자리에 있었다고 대답할지 모른다. 그러나 땅 위에서 시계를 발견했다면 아마도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어떤 시계공에 의해서 만들어 졌을 것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윌리엄 페일리의 이 글은 지적 설계론을 대변하는 문구로 자주 인용된다. 물론 여기에는 잘 구성되고 거의 의심할 바 없는 반론들이 준비되어 있다. 사실 세간에 논의되는 창조론 대 진화론의 논쟁은 요점을 빗나간 면이 없지 않다. 진화론은 현존하는 생물의 종들이 어떻게 분화되어 나왔는가에 대한 이론이고 말 그대로의 창조론은 생명이 신적인 존재에 의해 탄생되었다는 것이니 그 논쟁은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질문으로 나뉘어 져야 한다.

첫째, 생명은 창조되었는가, 혹은 발생했는가? 둘째, 현생 생물종들은 그 '탄생'의 시점에 이미 지금과 같은 상태로 '세팅'되어 있었는가, 아니면 하나, 혹은 소수의 개체로부터 현재의 다양한 종으로 분화되어 왔는가?

아마 두 번째의 질문에 대한 것은 찰스 다윈 이래 가장 많이 탐구되어왔고 또한 증명되어왔던 이론, 즉 진화론이 가장 잘 설명할 것이다. 라플라스의 말처럼 여기에는 '신'이라는 가설은 필요하지 않다. 첫 번째의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아마도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가 생명이 탄생되었으리라고 생각되는 그 시점, 약 40억 년 전의 지구의 상황을 세세히 알지 못한다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 시기의 역사를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든 알았다 하더라도 또 여기에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왜 하필 그때 지구는 그랬을까, 어떻게 해서 지구는 태양이라는 항성 곁에 있었던 것일까, 우리의 은하계는 이 광대한 우주의 변경에 어찌하여 존재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 우주는 어떻게 탄생했던 것일까?

▲ <신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이브 파칼레 지음, 이세진 옮김, 해나무 펴냄). ⓒ해나무
이브 파칼레의 <신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이세진 옮김, 해나무 펴냄)는 이 질문들에 대한 상세하고도 장대한 보고서이다.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그 역시 라플라스처럼 '신'이라는 가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대신 그가 택한 것은 '과학'이다.

그가 (사실은 우리가) 과학을 신뢰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의 말처럼 과학은 절대적으로 자신이 말한 것을 확신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증 가능성'이야말로 과학의 가장 큰 무기이다. 실제로 '나도 틀릴 수 있다(I may be wrong)'는 것을 견지하는 일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바로 이것이 과학이 미신이나 사이비 과학과 구별되는 점이다. 과학은 진리, 혹은 진실을 말하는 학문이 아니라 진리에 이르는 역동적인 탐구의 과정이다. 그리고 그가 이야기하는 이 우주와 생명의 역사는 바로 이 탐구의 역사이다.

책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몇 개의 문장들은 파칼레의 자연관, 혹은 우주관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오, 루크레티우스여! 내가 '하느님은 사랑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효력도 없고 언젠가 검증될 가망도 없는 주문을 지겹게 되풀이 하는 꼴밖에 더 되겠는가."

"태초에는 말씀도 없었고 신도 없었다."

시종일관 그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것은 무신론, 혹은 유물론이다. 하지만 신과 영혼이 없는 이 세상이 풍요로울 수 있을까?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가는지, 우리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에 항변의 여지없이 단정적으로 답해주는 신앙의 힘이 없이 우리는 이 세상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 인간은 이 우주에서 계시를 받은 유일하고도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던가?

그는 아니라고 답한다. 신이 모든 것을 창조했다는 갈 곳 없는 결론에 항거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평범한 호모 사피엔스가 될지라도, 알고 싶다는 의지에 대한 유혹에 굴복하는 편이 물질과 생명의 신비를 꿰뚫고자 하는 욕망을 억누르고 부정해야 하는 굴종보다는 낫다고 말한다. 그리고 낙원에서 뛰쳐나온 우리들을 향하여 외친다.

"조금 덜 행복할지는 모르지만 더 자유로워졌다. 어쩌면 더 행복해졌다고 말해도 좋을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파칼레는 인간주의자이고 자유주의자이다.

이 책은 건강한 욕망의 역사이다. 어쩌면 여기에 쓰인 이야기들은 불변의 진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 거의 99퍼센트의 확률로 상당 부분이 바뀌어 질 것이다. 앞으로 LHC(Large Hadron Collider, 대형 강입자 충돌기)의 실험 결과가 축적되면 물리학의 '표준 모형'은 더 세밀하게 다듬어지거나 혹은 수정될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 상대성 이론과 양자론의 성공적인 결합이 이루어지게 되면 우주의 시작, 바로 그 순간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이루어질 것이다. 분자 생물학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언젠가는 생명의 탄생에 대한 의문의 해결에 한 걸음 더 다가갈 것이다. 그리고 그때 제2의 파칼레가 또 새로운 책을 쓸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과학의 속성이다.

솔직히 책의 내용 자체는 새롭지 않다. 사실 우주의 역사나, 생명의 탄생에 대한 이론이나, 진화론에 관한 괜찮은 책들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137억 년에 달하는 우주의 역사를 꿰뚫어 현재의 인류에 이르는 여정을 종횡무진 누벼가며 이렇게 유려한 문체로 풀어낸 책은 흔치 않다. 게다가 문학과 신화와 철학과 과학을 넘나드는 그의 박식함이 혀를 내두르게 한다. 예를 들자면 다음은 어떤가? '히드로, 아쿠아, 아구아, 에가, 에그, 두르, 워터, 바서, 엘마, 아브, 슈에이, 파니, 미즈, 보다, 아만지…' 이 생소한 단어들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전공이나 관심의 정도에 따라서 아마 한 두 단어 정도는 알 수도 있겠다.

이 단어들이 의미하는 것의 분자식은 H2O, 즉 물이다. 사실 이 정도야 각 나라의 언어에 능통한 사람들을 만나 물어보는 약간의 수고를 거치면 어렵지 않게 나열할 수 있다. 하지만 물에 관한 신화로부터 시작하여 물의 물리, 화학적 탐구와 생명의 어머니로서의 물을 이어가는 그의 시적인 문체는 독자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그야말로 이 책은 우주와 생명의 역사에 관한 사려 깊은 백과전서이다. 600여 쪽에 달하는 이브 파칼레의 이 책은 마치 장편 시리즈의 교양 다큐멘터리를 염두에 두고 쓰인 것 같다. 아마 어떤 프로듀서라도 이보다 더 풍부한 내용으로 우주의 기원에서부터 생명의 탄생과 현생 인류에 이르는 여정을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한편, 어떤 면에서 저자의 이 책은 좀 의외이다. 오랜 시간 그 유명한 자크 쿠스토 선장과 함께 바다를 여행하고 꽃과 바다에 관한 책들을 써냈던 그는 이름하야 '생태철학자'이다. 환경과 생태에 관해 천착해 왔던 그의 이번 저작은 그야말로 '근본에로의 회귀'이다. 저자가 밝혔듯이 이 책은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에 본성에 관하여'에 대한 오마주이다.

이제 좀 억지일지도 모르지만 이 책의 단점을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사실 중간 중간의 하이쿠를 닮은 삼행시(하이쿠라고 말할 수 있는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다)가 가끔씩 독서의 흐름을 방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켈트족의 신화에서부터, 일본의 고지키(古事記)를 비롯해 볼테르와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이르기까지 거침없이 휘저어대면서 생명의 역사를 풀어내는 그의 글 솜씨는 이런 소소한 훼방을 잊어버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또 종종 등장하는 저자의 재치와 유머가 빛나는 비유는 자칫 독자를 오류에 빠뜨리게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유쾌하게 읽어버리면 큰 방해가 되지 않는다.

이제 파칼레 풍으로(a la Paccalet) 마지막 한마디!

오, 루크레티우스여! 우주의 비밀을 벗기려는 희원(希願)으로 낙원을 떠나간 파칼레를 위하여 축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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