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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진보'는 죽었다! '골목길 진보'여 부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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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진보'는 죽었다! '골목길 진보'여 부활하라!

[정치 몰입] 정경섭의 <민중의 집>

우리에게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그리고 <돈 까밀로와 뻬뽀네>라는 제목으로 기억되는 조반니오 과레스키의 연작 소설은 공산당 시장 뻬뽀네와 천주교 신부 돈 까밀로의 좌충우돌 힘겨루기 이야기였다. 1980년대 말 한국에서는 다분히 해방 신학적 분위기로 읽혔지만, 원 소설이 넌지시 암시하는 메시지는 아무리 싸워도 모두들 예수님의 사랑 아래 있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거슬러 생각해보니, 내가 '민중의 집'을 처음 접한 것은 이 소설에서였던 듯하다.

여기서 '민중의 집(Casa del Popolo)'은 '인민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뻬뽀네 시장의 가부장적 온정 정치가 작동하는 공간으로, 그에게는 무한한 자부심의 원천이기도 하다. 돈 까밀로의 교회와 인민의 집은 공산당의 전능과 예수님의 은혜를 보여주고자 틈만 나면 경쟁을 벌이고 두 무대 위에서 갖가지 에피소드가 전개된다. 인민의 집이 이 조그만 시골 소읍 사람들의 생활과 정치에서도 얼마나 중심적인 공간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하겠다.

자본주의가 전개되면서 노동자들이 크고 작은 도시로 모여들고, 이들이 만나서 놀고 토론하고 생활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물리적 공간이 생겼으니 이를 대략 '민중의 집'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게 초기 사회주의 대중운동과 민중 문화를 형성하는데 중요했었고,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쉬 흔들리지 않듯 뒷심 있는 생활 진보 정치를 담보할 수 있었던 게 아니냐는 것이 중심 가설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처음 만들어졌던 곳에서 지금은 어떻게 존재하고 운영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한국의 진보 정치가 처한 답보 상황 혹은 기초 체력의 부족을 해결하는 시사점으로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보조 가설쯤 되겠다. 이를 검증하러 정경섭 부부는 45일간의 유럽 탐험을 떠났고 이 책 <민중의 집>(레디앙 펴냄)은 그 결과물이다.

▲ <민중의 집>(정경섭 지음, 레디앙 펴냄). ⓒ레디앙
'마포 민중의 집'의 활동가가 돌아본 유럽 민중의 집은 한마디로 다양했다. 아마도 벨기에에서 시작되어 덴마크, 스웨덴, 스페인, 이탈리아 등으로 퍼져간 상황을 염두에 두면 초기의 형태는 유사했을 것이다. 사회주의 정치 지도자와 노동조합 조직이 함께 사람과 돈과 벽돌을 모으고 감동적인 창립 행사를 갖고, 여기서 글을 가르치고 영화와 연극을 상영하며, 노동일을 마치고 온 이들이 맥주로 목을 축이며 정치 토론을 함께 했을 것이다. 이러한 원형과 이후의 분화와 변화를 필자는 세 나라의 역사와 정치를 가로지르며 추적한다.

스페인에는 민중의 집이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노동조합 내셔널 센터 건물에 상징적으로 민중의 집(Casa del Pueblo)이라 이름을 붙여놓았을 뿐, 프랑코 독재는 노동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거점이던 민중의 집을 철저히 파괴했다. 하긴 1922년에 로마로 진군하여 권력을 탈취한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가장 먼저 했던 일도 각 지역의 노동 운동 결집소였던 노동회관(Camera del Lavoro)을 폐쇄하는 것이었다.

이탈리아는 지금도 활발히 민중의 집이 운영되고 있었지만 공산당과 노동총동맹이 이끌었던 과거의 위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정경섭은 민주당과 재건공산당, 좌파생태자유 등으로 분열한 좌파 정치의 전반적인 위축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실험들과 열정적인 시도들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 도시에 붉은 지대를 만들기 위한 콘텐츠와 아이디어, 열망을 담는 공간"이라는, 아스티 민중의 집을 소개하는 문구는 이탈리아에서 만난 젊은이들이 되찾고자 하는 '정치'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스웨덴은 사회민주당 정치와 복지 국가의 토대가 되었던 민중의 집이 규모를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노동자교육협회(ABF)가 제공하는 소프트웨어가 잘 밑받침하고 있다. 민중공원, 공동체 극장, 미디어 교육, 이주민 활동까지 모든 연대의 망이 민중의 집과 얽혀 있음을 확인했다.

정경섭의 발걸음과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애초의 가설들은 충분히 검증된 듯싶다. 의회 정치를 중심으로 한 단기간의 선거 공학에 매달리면서 한국의 진보 정치는 조로했고, 지역과 현장에서 노동조합원과 지역 주민, 정치 활동가들이 교류하고 만날 근거지도 만들지 못했다. 강박화된 장시간 노동과 다른 선택지가 불가능한 문화 재생산 그물망 속에서 우리는 자본주의와 다른 삶을 도모하는데 갈수록 주저하게 되었다. 앙드레 고르가 이야기한 '아뜰리에'가 의미가 있다면 그 가장 가까운 현실태가 지금의 민중의 집일 것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자. 이 자연스러운 지역 사회 좌파 거점 공간이 유독 한국에는 왜 부재했을까? 한국 전쟁 이후 너무도 급격히 변하는 사회 속에서 무언가 안정적인 것을 만드는 시도 자체가 심지어 노동 운동과 진보 정당 운동 속에서도 생각하기 어려웠던 점이 있을 게다. 눈앞의 독재 정권과 맞서야 했던 재야 운동, 식칼 테러에 맞서야 했던 노동 운동, 2년 또는 4년 뒤의 선거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던 진보 정당 운동이 지역에 뿌리내리는 긴 호흡의 무엇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았을 게다. 그리하여 이 풍파와 자기 성숙 혹은 소진을 겪고 난 운동은 다시 거울 앞에 서서, 다시 십수 년을 일구어갈 거점과 콘텐츠를 고민할 여유 혹은 새로운 강제를 경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문제의식에 대한 큰 공감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대해 느끼는 아쉬움이 있다면 그것은 책에 포함된 사례와 여정의 제한성보다는, 정경섭만의 몫은 아니겠지만, 한국 사회에 대한 돌아봄과 내다봄에 관한 것이다. 예컨대, 정말 한국에는 민중의 집 같은 게 없었던 것일까? 영등포 산업선교회를 위시한 지역 노동 운동의 사랑방들이 있었다. 불온한 서적을 매개로 사람들을 만나게 했던 공단과 대학가의 서점들이 있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한글과 컴퓨터 교실을 열며 지역 주민 사이에 뿌리내리려 했던 민중 정당 운동 조직들이 있었음을 기억한다.

이러한 것들이 규모나 지속성 부족으로 무시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고민해야 할 것은 이러한 시도들이 왜 확산되지 못했고, 사회적 의미를 인정받을 만큼 성장하지 못했던가, 이런 질문이 아닐까? 또한 이는 지금 민중의 집을 운동의 대안 모색 중 일부로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스웨덴의 민중의 집이 변화해왔고 지금 다른 사정들에 처해 있는 이유와 맥락이 다양함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마창노련(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과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을 만들었던 경제적, 사회적 조건과 단일화된 노동조합 운동의 한계를 공공연히 이야기하는 지금의 상황은 어떻게 다를 것인가? 좌파 정당이 하나의 깃발을 갖기 어려워진 조건임이 분명하다면 민중의 집은 어떤 의미로 어떻게 존재해나가야 하는가?

민중의 집이 반드시 홍세화와 정경섭의 맨파워가 있어야 시도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지 못한 지역이나 단위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진보신당 당원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만든 '영등포 정다방'과 '종점 수다방'이 보다 일반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모델은 아닐까?

각 정치 활동가에게는 각자의 경험과 지반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이 던져주는 읽을거리와 토론거리는 충분히 값지다. 민중의 집이 유럽 사대주의 또는 마포의 모델을 넘어 비범하면서도 평범한 수많은 민중의 집 혹은 그 유사품으로 퍼져나가려면 더 리얼한 진단과 더 많은 과감한 이야기가 필요하겠다.

ⓒ프레시안(손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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