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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대신 컴퓨터? 환자는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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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대신 컴퓨터? 환자는 행복할까?

[프레시안 books] 에릭 토폴의 <청진기가 사라진다>

사례 1 : 뉴욕에서 같이 전공의를 한 내 친한 친구 중의 한 명은 최근에 정신과 개인 클리닉을 개업했다. 특히 난치성 우울증과 정신 분열증의 치료를 전문으로 표방하는 그의 웹사이트에 가보면, 치료에 도움을 주기 위한 방편으로 유전 검사를 외래에서 시행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혈액 검사 등의 침습적 방법이 아니고 입 안쪽의 표피로부터 체취한 상피 세포를 통해서 약물 대사와 약물 상호 작용, 그리고 정신 분열증 등에 중요한 신경 전달 물질 (특히 도파민과 세로토닌)의 뇌내 수용체와 대사 효소 등과 관련된 염색체를 검사해 주는데, 그가 이용하는 회사인 Genomind(☞바로 가기)는 의사에게 무료로 검사 키트를 제공해 주고, 환자의 의료 보험을 통해서 검사비를 받는다.

사례 2 : 최근에 친한 친구와 몇 차례 점심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점심을 먹고 후식으로 넘어갈 때쯤이면 항상 그의 스마트폰이 특이한 신호음을 울리고 있었다. 이 친구는 당뇨병으로 고생한 지가 꽤 오래되었는데, 약을 제 때에 먹도록 알려 주는 앱을 설치한 이후로는 약을 먹는 것을 잊어버리는 일이 거의 없게 되었고, 혈당의 조절도 훨씬 용이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례 3 : 올해 출간된 논문들 중에서 내가 가장 관심 있게 본 것 중의 하나는 자폐증의 유전적 소인에 대한 국제적인 연구였는데, 이 논문에 참여한 저자들만도 거의 100명 남짓 되고,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속한 20여개의 대학과 연구 기관들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유전과 정신과적 질환에 관련된 연구 중에서는 이러한 경향을 점점 더 자주 관찰할 수 있다.

▲ <청진기가 사라진다>(에릭 토폴 지음, 박재영·이은·박정탁 옮김, 청년의사 펴냄). ⓒ청년의사
이와 같은 사례들은 이 책, <청진기가 사라진다>(에릭 토폴 지음, 박재영 등 옮김, 청년의사 펴냄)에서 저자가 묘사하는 세계가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들이 아니라, 이미 현실 세계의 의료계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은 미래에 대한 예언서라기보다는 현재에 대한 가이드북이라고 하는 것이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환자들, 의사들을 비롯한 의료계 종사자들 뿐 아니라 건강한 삶을 원하고 의료 서비스를 올바른 방법으로 적절하게 이용하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은 중요한 지침이 되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실제로 의료, 특히 현재 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의료계의 빠르면서도 근본적인 변화는 최소한 미국에서는 사회적으로 가장 중요한 이슈이다. 올해 미국 대선과 관련해서 오바마 캐어, 즉 '환자 보호 및 적절 치료법(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 PPACA)'이 미국 연방 대법원으로부터 합헌 판정을 받았다는 최근의 결과가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만큼 의료 시스템의 변화가 불러일으킬 사회적인 영향이 엄청나고, 이에 대한 일반 대중의 관심도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증언해 준다.

저자가 책 중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의료에 대한 접근도, 사회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비용으로 적절한 수준에서 제공되어야 하는 의료 서비스 등의 문제에 있어서 이번 결정은 중요한 전환점 중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한국에서도 최근 사회가 급격하게 노령화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삶의 질이 향상됨에 따라 복지의 문제가 첨예한 화두로 등장한지가 꽤 되었다. 거기서 의료계의 개혁과 변화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저자도 올바르게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마셜 맥루언이 이미 그의 여러 저서들에서 예언한 바 있는 '미디어와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일어난 사회적 변화'야말로 의료계의 변화에 가장 중요한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점은 확실하다. 하버드 대학 의과 대학의 강의실에 들어가 보면, 모든 학생들에게 랩탑이 하나씩 지급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온라인에 이미 등재되어 있는 강의 자료들을 랩탑으로 로딩해서 보면서 강의를 진행하기 때문에, 이전처럼 노트를 가지고 바쁘게 필기를 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특히 구세대의 교수들로서는 한동안 적응하기 쉽지 않은 모습이기도 했다. 더구나 학생들의 랩탑 화면이 어떤지를 강의자들이 일일이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멀티태스킹에 익숙한 학생들이 여러 화면들–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포함해서–을 동시에 열어 놓고 강의를 듣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따라서 여전히 교수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란이 진행 중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러한 기술적인 변화가 의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여러 가지 사례들을 들어가면서 친절하면서도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아마도 특히 건강 정보의 개인화, 유전 지도의 치료에 대한 적용 등에 대한 부분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상당한 기대를 불러일으키게 했을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복잡하고도 만성적으로 정체되어 있는 의료 정보 시스템의 지옥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저자가 제시하는 최근의 기술적 발전을 이용한 병원들 간의 정보 교환, 개인의 자신의 의료 기록의 휴대 등이 너무나도 반가운 해결책으로 생각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반드시 지적하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이러한 모든 변화는 결국 다시 한 번 인간 자신의 한계 문제로 환원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도 지적한 것처럼 최근의 기술적 발전을 완전한 수준에서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인구 집단 중에서도 극히 소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소위 '얼리 어답터'들은 더 드물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에서 저자는 의료 제공자, 특히 의사들에 대해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고 또 그러한 변화가 느린 것에 대해서 의료계의 타성과 보수적인 성향을 비판하고 있지만, 실은 사회에서도 가장 총명하고 영리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 집단에서조차 새로운 기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는 방증일지도 모르지 않은가?

또 한 가지 지적해야 할 점은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세세한 실시간적인 정보의 제공이 반드시 더 나은 질의 의료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심근 경색증의 대한 사례나 약물 반응에 대한 유전적 검사 등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 없이 이러한 정보들이 더 나은 치료의 방향을 제공해 줄 것이 분명하지만, 안 그래도 이미 너무나 많은 정보를 소화하느라 허덕이고 있는 의사들에게 기하급수적인 정보 제공의 증가는 오히려 올바른 판단에 장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올바른 판단을 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것은 현실 상황에 대한 극히 단순한 몇 가지 기본 정보들과 오랜 경험에서 온 '직관과 판단력'의 결합이라는 말콤 글래드웰의 세련된 설명(<블링크>(이무열 옮김, 21세기북스 펴냄))을 읽다 보면, 의료계가 단순히 타성에 젖어 있는 고리타분하고 보수적인 집단이라고 비판하기만은 쉽지 않을 것이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저자가 책에서 너무나도 짧게 언급하고 지나간, '이러한 기술의 발달이 의사-환자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에 대한 점이다. 저자는 기술과 정보의 발달이 단순히 스크린만을 쳐다보고 환자와의 접촉과 관계를 회피하는 의사를 생산해서는 안 된다는 일반론적인 언급만으로 이 부분을 지나치고 있는데, 실제 의료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는 아쉬운 부분이다. 이미 컴퓨터 스크린을 들여다보면서 검사 결과와 바이탈 사인을 체크하고, 그 결과에 따라서 다른 과에 협진 의뢰를 내거나 오더를 입력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동료들을 너무나 많이 봐 왔다는 점에서 나는 이에 대한 우려를 간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가 고통을 겪고 있을 때 그 자리에 같이 있어준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얼마나 큰 치료 효과가 있는지를 잘 이해하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최근의 신경 과학의 발전은 그러한 부분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에 들어가고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새로운 증거들이 매일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타과의 의사들이 이러한 새로운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이러한 점들을 등한시하고, 심지어는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에 대해서는 저자와 같은 사람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균형점을 찾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제약 회사의 신약 개발과 관련한 최근의 변화 추이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서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10장이 가장 흥미진진했다. 아마도 최근 파이자, 릴리, GSK 등의 대형 제약 회사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피부로 느낄 수밖에 없는 현장 의사로서의 경험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새로운 기술의 도입과 적용에 가장 유연하리라 생각되는 제약 회사들이 정체된 신약 개발과 재정적 경제적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서라도 선봉에 나서지 않을까 추측하게 되고, 그러한 변화가 실제 의학 현장에서 어떻게 벌어지게 될 것인가를 앞으로 관찰하는 것은 흥미진진한 과제가 되리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드는 생각. 인터넷 시대의 기술적 발전에 있어서는 미국보다 훨씬 앞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한국의 경우, 인터넷과 그 관련 기기의 사용도와 접근도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시민들이 이미 저자가 묘사하고 있는 변화를 받아들이기에 가장 잘 준비되어 있는 '표본 집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파국으로 가지 않고, 전체 국민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의료 서비스 이용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갖추어야 할 제도적인 장치들이 산재해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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