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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가 <조선>처럼 두꺼워졌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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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가 <조선>처럼 두꺼워졌으면 좋겠다고?

[한만수의 '백 년 동안의 검열'] 신문의 증면과 국가-자본 검열

요즘 신문들은 잡지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두껍다. 전단지까지 끼워져 있어 중량감을 더한다. 분리수거를 할 때마다 신문의 무게만큼 마음이 무겁다. 지구는 점점 푸름을 잃어간다는데, 그 때문에 기상이변이 반복된다는데 이렇게 종이를 낭비해도 되나 싶다. 그러니 쓸데없는 기사들이 넘쳐난다.

한국 신문이 이렇게 두꺼워진 중요한 계기는 1930년대, 그리고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손꼽을 수 있다.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갑자기 증면을 하려니 손쉽게 지면을 채우는 방법은 사진 크기를 늘리는 등 편집의 장식성을 증대하는 방식이었다. 소위 비주얼 편집이라는 것이다. 물론 경비 절감도 주된 목적이었다. 사회면 정치면 경제면 등을 증면하기 위해서는 취재기자들을 훨씬 더 많이 채용했어야 하지만, 디자인이나 사진 담당 기자는 조금만 더 늘리면 되었다.

그런데 왜 이 시기에 신문은 증면되었을까. 두 경우 모두 광고 및 뉴스 수요의 급증 때문이었다. 1930년대 만주 침공을 계기로 일본 경제는 소위 '전쟁 고원경기'에 진입했는데, 그에 따라 상품광고 역시 크게 늘어났다(☞관련 연재글 : 총후검열과 총후미담). 그때 조선 일간신문의 주된 광고는 일본 상품이었으니, 소위 민족지라는 <조선일보> <동아일보>에는 일본상품 광고가 넘쳐났다. 하지만 신문이란, 자본은 그렇게 하고 싶겠지만, 광고만을 실을 수는 없지 않은가. 광고를 싣기 위해서는 기사도 어느 정도는 늘려야 했고 증면이 필요했다. 검열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문예면이 집중적으로 늘어났으며, 사진이 커지고 디자인도 강화되었다.

전쟁에 대한 기사들은 일본 신문보다는 훨씬 적은 편이었다. 신문 열독률이나 라디오 청취율도 크게 증대되지 않았다. 조선 사람들에게는 '만주 침공은 남(일본)의 전쟁'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만주 침공이라는 대사건을 외면할 수는 없었으니 주로 통신사를 거쳐 들어오는 기사들을 번역해 싣곤 했다. 일본의 전쟁 보도는, 이미 말했듯이, '총후미담'으로 일관했으며 전쟁 기사의 소설화가 두드러졌다. 우리 편 이겨라, 적군 박살내라, 모두 단결하자…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 누구의 피가 누구에게는 돈벌이가 되는지 별 관심이 없었다. 일본 언론에서 전쟁은 마치 스포츠처럼 중계되었는데 그 일부는 조선 신문으로 옮겨왔다.

만주 침공이라는 침략 전쟁에 힘입은 경기 활성화의 피 묻은 이윤의 일부가 조선으로 흘러들었다지만 그 이윤은 언론 자본을 비롯한 극소수의 자본가들 몫이었을 뿐이다. 나머지 대중들은 더 힘겨운 삶을 견뎌내야 했다. 1930년대 농민운동과 노동운동이 격화되고 처참하게 진압되었던 것은 그 증거이다. 물론 제대로 보도될 수는 없었지만.

1988년을 즈음한 증면 경쟁도, 길게 말할 겨를은 없지만, 대체로 비슷하다. 올림픽 특수는 광고 수요를 급증시켰고, 올림픽이라는 대사건은 뉴스 수요를 급증시켰다. 전쟁을 스포츠처럼 중계했던 것이 1930년대였다면, 1988년에는 올림픽 그 자체를 국가 간의 전쟁인 것처럼 중계했다는 점에서는 물론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전쟁의 스포츠화이건 스포츠의 전쟁화이건, 대중들의 피와 눈물이 신문에서 실종되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였다. 화려한 장식적 편집과 소설인지 기사인지 헷갈리는 보도들의 급증이라는 점도 물론 공통적이다.

88년 올림픽에서 한국은 종합 4위라는 '전무'하고 아마도 '후무'할 성적을 올렸다. 일본도 물리치고 우리가 세계4위다. 국민들은 환호했고 전두환의 졸개로 위태하게 권력을 유지하던 노태우는 정권 안정을 기할 수 있었다. 언론 자본도 두둑해진 주머니에 흐뭇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중들의 삶은 과연 세계 4위로 올라섰던가. 대중들의 주머니도, 한국의 인권과 민주주의도 세계 4위를 만끽했던가. 아니 다 그만두고, 대중들의 육체적 건강상태만이라도 세계 4위가 되었던가. 선수들을 운동 벌레로 만드는 엘리트 체육에 투자하느라 사회 체육은 돌볼 겨를이 없어지지 않았던가. 한국 선수의 승승장구를 중계하는 TV 앞에 모여 맥주를 마시고 축배를 드시느라 우리들의 배는 더 불뚝해지지 않았을까.

올림픽을 위해서 행해진 여러 가지 국가폭력들은 한 구석에 1단짜리로 취급되거나 아예 잊혀졌다. 외국손님의 눈에 볼썽사납다는 이유로 판잣집을 철거했다거나, 노동자들의 항의집회가 군홧발에 짓밟혔다든가 하는 사건들은 보도되지도 기록되지 않았다. 국가의 정보통제와 검열, 그리고 언론자본의 내부적 통제 및 이윤 극대화 노력. 이 둘이 결합하면 이처럼 끔찍한 언론 상황이 만들어진다. 국가와 언론자본이 합작한 소위 '국가-자본 검열'이다.

88년의 '전국민적 환호'로 가득 찬 신문 지면을 오랜만에 훑어보면서 문득 궁금해진다. 올림픽 때문에 판잣집에서 쫓겨난 철거민들은, 항의집회를 열다가 군홧발에 짓밟힌 노동자들은 어땠을까. 종합 4위라는 그 보도를 보면서 그들도 '대한민국 만세'를 불렀을까. 그들의 내면에서도 역시 국가정체성이 계급정체성을 압도하였을까. 왜 그들의 표정은 기록되지 않았을까.

▲ 서울 올림픽 보도로 가득 찬 국내외 신문들. 이 속에는 군홧발에 짓밟히는 민중의 목소리는 없었다. ⓒehistory.korea.kr

기록되지 않고 마침내 우리의 기억에서조차 지워져버린 그들의 고통. 그것을 되살려내지 않는다면 그 고통은 지속적으로 반복될 것이 뻔하다. '80대 20사회'를 넘어 '99대 1'사회로 이행해버린 오늘의 현실은, 오늘 우리 아들딸 세대가 점점 악화된 상태로 견뎌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삶은, 역사에 대한 우리의 집단적 망각증 때문이기도 하지 않을까.

1930년대와 1988년에 있었던 우리 신문의 기형적 증면의 결과로 오늘날 신문은 이렇게 두꺼운 쓰레기를 양산한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에 대해서도 더 두꺼워지라고, 왜 비슷한 값을 받으면서 이렇게 얄팍하냐고 불만을 토로한다. 먼저 그런 불만부터 거두는 것이 작지만 중요한 첫 발걸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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