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한 관심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갔고, 역사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의 편린들' 로, 역사 해석은 '그 일상의 편린들을 직조하는 다양한 힘들에 대한 이야기' 가 되었다. 이 다양한 힘들 중 가장 큰 힘은 식민지로서 근대화를 겪은 과정 즉 '식민지 근대성' 이라고 논의되었고, 독재를 마감한 이후 과제는 '탈근대' 라고들 이야기했다.
이 와중에서야 페미니즘은 역사 해석의 한 가지 방식으로 승인받았지만, '근대가 구성한 존재로서의 여성' 에 대한 관심은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여성' 에 대한 관심과 어떻게 다른지 그다지 토론되지 않은 채 이마저마한 연구들을 양산하기에 이른다. 일제 시대 사회주의 운동가에 대한 연구로 학문적 이력을 시작한 저자가 그간의 관심사와는 조금 동떨어진 듯 보이는 2004년에 내놓은 저서 <여성의 근대, 근대의 여성>(푸른역사)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근대가 구성한 '여성'의 모습들을 추적했다.
▲ <근대의 가족, 근대의 결혼>(김경일 지음, 푸른역사 펴냄). ⓒ푸른역사 |
딴에는 그렇다. 이즈음에 와서는 우리들이 겪는 모든 문제들을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의 새로운 자본주의를 통해 보려는 학계의 관심이 대세이지 않은가? 이해 못할 대세는 아니다. 나 또한 1990년대에 '문화와 일상' 에 대한 관심으로 공부라는 걸 시작한 사람으로서 그간 자본주의의 힘을 간과해버린 죗값(?)을 치르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기에 저자의 현재적 문제의식에는 동감하는 편이다.
또한 역사란 언제나 당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도 오늘날 가족과 결혼을 둘러싼 시끌벅적한 잡음들이야말로 근대의 가족과 결혼을 새롭게 보게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오늘날의 잡음들 중 과연 어떤 소리로 과거를 불러낼 것인가가 될 것이다. 저자는 현재의 결혼과 가족이 자본주의의 산물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그것들을 둘러싼 담론은 근대의 여명기 새로운 사회에의 기대와 이상, 사상이 투영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저자는 그의 말을 빌자면 1930년대 이전 '결혼이 통속화' 되기 전 연애와 결혼, 가족에 대한 담론의 각축에서 어떠한 가능성을 찾아보려고 애쓴다. 말미에 이르러 저자는 당시의 소설에서 묘사된 사회주의적인 대안 가족 공동체를 과거에서 불러낸 오늘날의 비전으로 위치짓는다.
이러한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서 저자는 보통 사람들의 생애주기를 상정하여 결혼, 가족, 이혼, 대안의 순으로 목차를 구성했는데 이 또한 몹시 흥미롭다. '결혼과 가족' 은 자본주의의 산물이며, 많은 경우 공동체와의 경계가 불분명하다고 밝히면서도 어쨌든 저자가 중요하게 듣는 잡음은 이성간의 결혼과 가족 구성에 관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계급이 섞여 평화롭게 살아가는' 대안적인 공동체도 그다지 급진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 '가족' 이 근대 자본주의의 산물이라는 말은 그것이 자본주의를 굴러가게 하기 위한 노동력 재생산 단위로서 구성되었다는 의미다. 이러한 가족은 생계부양자로서의 남성, 피부양자로서의 여성이라는 성역할, 미래의 노동력으로서의 '아동' 의 탄생, 그 아동을 재생산하는 기계로서의 '여성' 섹슈얼리티 구성, 즉 이성애를 중심으로 한 섹슈얼리티 체계의 위계가 확립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근대 조선 사회에서 결혼과 가족을 둘러싼 담론의 각축이란 이 모든 것들이 틀지어지기 전,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틀을 확립하기 위한 다양한 세력들 간의 치열한 다툼이다. 물론 식민지로서 근대를 경험하는 사회에 더 특별하게 작동하는 힘이 있다.
'여성이라는 범주의 생산' 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식민지 국가들에서 '여성' 은 제국주의 통치 국가로서는 '문명개화해야 할 존재' , 식민지 국가의 지식인 남성에 대해서는 '(문명개화와 더불어)전통을 체화한 존재' 로 만들어짐으로써 제국-식민지 사이의 갈등과 긴장의 표상이 된다. 이 때 바람직한 아내, 어머니가 된다는 것을 둘러싸고 만들어지는 온갖 이야기들이 이 표상의 구체적인 예들일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 담론들의 각축을 오늘날 확립된 사상적 조류에 따라 나누어 그리는 저자의 방식은 조금 맥이 빠진다고나 할까. 이 각축들을 결론이 이미 나와 있는 사상 속에 가두기보다는,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해석할 수는 없을까.
그러니까 예컨대 사회주의 운동가인 여성들은 왜/어떻게 전통적 정조 관념에 반발하며 '자유로운 성을 구가' (291~299쪽)한 것일까? 사회주의의 성 관념이 그렇다고 설명하는 것은 동어 반복이다. 이는 그녀들이 당시 봉건제의 구습이 남아있는 식민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주의를 받아들이고 운동가로서 살겠다고 한 것이 어떤 의미인지와 함께 해석되어야 한다.
또한 결혼, 이혼, 가족, 대안 모두에서 '급진주의' 로 명명되며 광범위하게 인용되고 있는 나혜석의 글과 실천 또한 1900년대 초반 지식인으로 성장해 식민지의 굴곡을 겪은 그녀의 인생사와 관련해 해석한 여러 앞선 여성학적 연구들을 더 참조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왜 여성들의 언어와 실천은 시대와 사상과 유리된 채 그것들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으로만 제시될까? 그녀들의 언어와 실천이 그 시대의 사상을 형성하는 가능성으로 제시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흔히 하는 말로 여성 지식인/예술가의 비참한 말로는 '행려병자의 죽음' 으로, 남성 지식인/예술가의 그것은 '불타는 지식혼, 예술혼의 결과' 로 해석된다.
그것은 인간적인 동정이 아니라 여성에게서는 아무 것도 배울 것이 없다는 뿌리 깊은 남성 중심적 지식 형성의 방식이다. 대안과 비전은 어떤 주의에 따라 매뉴얼화된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그녀들 삶의 구체적인 계기들에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더 나아가 오늘날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도 그 힘이 모두를 힘들고 불행하게 만든다는 차원에서 그친다면 곤란할 것이다. 자본주의가 필요로 하는 가족의 모습이 바뀌고 있다면, 바뀐 모습을 동어반복적으로 통탄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가족을 통해 생산하는 성별과 섹슈얼리티 체제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이것이 현실을 살아가는 개개인들을 어떻게 강제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탈주의 선이 가능할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이 와중에 불러내어야 할 과거는 어떤 모습일까. <근대의 가족, 근대의 결혼>은 광범위한 자료, 다양한 쟁점들, 최신의 해석을 소개함으로써 그러한 질문과 이후의 분투를 가능하게 하고, 그런 점에서 제 몫을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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