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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만만하게 보지 마!

[프레시안 books] <청춘의 고전 : 삐딱한 철학자들의 위험한 영화 보기>

영화를 해석하는 데 있어 각종 학문을 레퍼런스로 끌고 들어오는 건 이제 당연하다시피 정착된 조류다. 영화를 '본다'는 것보다 '읽는다'라는 표현이 아무렇지 않게 된 지도 오래됐다. 영화를 진지한 텍스트로 바라보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영화를 통해 비로소 철학이나 기타 인문학에 입문한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로 인해 영화 자체를 본격적으로 연구할 필요성을 느꼈을 수도, 혹은 거꾸로 레퍼런스였던 인문학을 더 깊이 파고들 필요성을 느꼈을 수도 있다.

2011년 3월부터 2012년 2월부터 <프레시안>과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상상마당이 함께 진행했던 월례 철학 강좌 '청춘의 고전'이 단행본 <청춘의 고전>(알렙 펴냄)으로 묶여 나왔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소속 철학자 김성우, 김세서리아, 김시천, 박영균, 박영미, 박영욱, 박종성, 이순웅, 이정은, 현남숙 등이 강사이자 필자로 참여했다.

<청춘의 고전>은 대중적인 인기를 모았던 영화들을 철학적으로 읽는 각각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철학을 통해 영화를 이야기하기보단 영화를 소재삼아 철학을 좀 더 쉽게 설명하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철학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골치 아픈 이들에게, 철학에 보다 쉽게 접근하고 싶은 이들에게 알맞은 책이다. 그러나 미리 말해두자면, 그리 만만한 책만은 아니다.

▲ <청춘의 고전>(이순웅·김성우 외 지음, 알렙 펴냄). ⓒ알렙
<청춘의 고전>은 그야말로 철학의 입문서로 자리매김하고 읽기 시작하는 게 맞다. 이 책을 읽고 여기 제시된 각 철학자들의 개념 몇 가지만으로 그 철학자를 이해했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건 시기상조다. 대중 강연, 특히 영화를 매개로 복잡한 철학 개념을 풀어 설명한다는 것에 각 강사들도 부담을 느낀 듯 수위 조절을 하느라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역설적으로 <청춘의 고전>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이야말로 <청춘의 고전>의 가장 큰 성취의 지점일 수 있다. 고백하자면 철학 공부를 하겠다는 작심으로 요한네스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강성위 옮김, 이문출판사 펴냄)를 사놓은 다음 지레 그 두께에 질려 완독하지 못한 나로서도, <청춘의 고전>을 읽고 난 다음 다시 한 번 <서양철학사>를 펼쳐볼 용기가 생겼다.

<청춘의 고전> 초반을 읽던 중 눈에 띈 표현은 고전이 '처음에는 이단이었거나 금서'였다는 구절이다. 발표되던 당시에 즉각적인 인기를 누리기보다 오히려 오해받고 무시당하고 불온하다며 경원시되던 사상이, 시간이 흐를수록 당대의 평가를 뒤집고 새롭게 재해석되며 기나긴 생명력을 지니게 되었다는 건 그만큼 철학자들에게 선구자적이며 예언자적인 시선이 필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다시 말해 철학 고전 작품을 읽는다는 행위에는 철학자의 치열한 고민과 선구안을 독자 자신도 체득해야 한다는 요구 사항이 깔려있다. 이 책이 쓰일 당시 저자가 몸담았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되 그것을 일대일로 현재 우리 시대에 대입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인정하고, 그것을 단초로 자꾸만 앞으로 더 나아가며 새로운 동시대적 해석이 가능한가를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고전이 단지 천재적인 철학자 한 명의 뇌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사상이 아니라는 것 역시 분명히 해둬야 한다. 그 철학자가 발원지로 삼았던 이전의 사상, 그리고 이후 철학자의 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또 다른 조류를 (반강제적으로) 읽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그 흐름 속에서 재해석과 반론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김성우 연구소장의 글 '촛불의 정치와 진정한 자유!-루소의 <사회계약론>과 영화 <브레이브 하트>'가 자유라는 거대한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루소뿐 아니라 푸코, 니체, 하이데거, 데카르트, 롤스 등을 끌어들이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철학 고전 한 편에 담긴 과거와 현재, 미래의 풍부한 의미를 파악하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하게 된다.

이정은 연구원의 글 '나의 정체성을 찾는 문, 인정인가!-헤겔의 <법철학>과 영화 <본 아이덴티티>' 역시 헤겔만큼이나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을 중요하게 다룬다. 현남숙 교수의 '문화가 산업이 되어 야만적 대중을 생산한다!-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과 영화 <캐스트 어웨이>'는 대중을 현혹하는 주범으로 지목받았던 대중문화에 대해 <계몽의 변증법>보다 훨씬 더 현실에 밀착한 영국 버밍엄 학파를 소개하며 새로운 층위를 한 결 더 깔아놓았다.

박영균 교수의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세상을 바꾸는가?-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의 <다중>과 영화 <소셜 네트워크>'는 노동과 이윤창출의 시스템이 어떤 식으로 점점 거대하게, 하지만 비가시적으로 바뀌어가고 있는지 맑시즘의 통사를 훑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던져준다.

한편 우리가 어떤 고전의 핵심 개념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쉬운 속단이거나 오해인지 일깨우는 글들도 있다. 김세서리아 연구원의 '성 정체성과 음양남녀-<주역>과 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는 음양의 구분과 남존여비 사상을 정당화한다고 오해받은 <주역>이 실제로는 차이와 끝없는 생성과 변화를 인정하는 텍스트임을 꼼꼼하게 설명한다.

박영욱 교수의 '생각을 훔치는 사회!-프로이트의 <꿈의 사회>와 영화 <인셉션>'은 지나치게 남용되고 오용되는 정신분석 이론의 각 단계들을 차근차근 짚어준다. 이순웅 박사의 '현대 언론은 헤게모니 전쟁 중-안토니오 그람시의 <옥중수고>와 영화 <트루먼 쇼>'는 그람시라는 인물 자체에 소개부터 시작하여 대중문화를 통한 대항 헤게모니를 마련한 진지전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박영미 교수의 '현실이 진짜일까?-<장자>와 영화 <쿵푸 팬더>'는 <장자>의 형식과 주제 양쪽이 유쾌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과 어떻게 만나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즉 우언(寓言)이라는 형식과 성심(成心)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주제 말이다.

박종성 교수의 '냉철한 시선으로 보는 정치권력-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영화 <브이 포 벤데타>'도 사악한 절대 권력주의자의 아이콘처럼 여겨지던 마키아벨리에 대한 오해를 푸는 데 집중한다. 마키아벨리가 역량(virtú)와 운명(fortuna)의 상호작용을 통해 궁극적으로 자유를 획득하는 목표에 집중했다는 건 문외한에게는 전혀 새로운 정보일 것이다.

철학 책을 한 권 읽는다는 것은 나를 둘러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하나 더 덧붙인다는 걸 의미한다. 김시천 교수의 글 '고전, 어떻게 읽을 것인가-<노자도덕경>과 영화 <황후화>'에 나오는 구절, "고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객관성, 정확성, 삶의 원리라고 하는 것, 이것을 버리고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출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의 삶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가치, 그 가치를 고전에 새겨 넣는 작업, 그것이 바로 고전을 읽는 방법일 것 같습니다"라는 말은 우리의 철학 독서 방법에도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영화 내용과 팩트를 기재하는데 사소한 실수가 눈에 띄는 건 옥의 티다. 예를 들어 <캐스트 어웨이>에서 톰 행크스의 여자 친구로 출연한 배우 헬렌 헌트를 헨리 헌트라고 표기한 것. 심지어 그녀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유명 배우인데도 이런 오기가 보인다는 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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