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의 2009년도 저작 <정의란 무엇인가>(이창신 옮김, 김영사 펴냄)가 2010년 한국에 번역되어 인문학 서적으로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해 화제가 되었고, 2011년 4월에는 마침내 판매량 100만 부를 돌파했다. 교육방송(EBS)에서 하버드 대학의 강의가 방송됐고 이 강의 내용이 따로 <마이클 샌델의 하버드 명강의>(이목 옮김, 김영사 펴냄)로 출간되었다. 2012년 4월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안기순 옮김, 와이즈베리 펴냄)이 발간됐고 6월 초에 샌델이 방한하여 대중적 인기를 실감하고 돌아갔다.
한국 사회에 나타난 이러한 현상의 배후에는 하버드 대학의 명강의를 앞세운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도 유효했겠지만, 이는 동시에 오늘날 한국 사회의 부정의한 상황을 드러내는 것이며 많은 시민들이 '정의'에 대한 갈망을 갖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가진 자들의 부패와 부도덕에 대한 분노와 약육강식과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적 세계관에 지친 시민들은 한국 사회의 존재 방식에 막연한 의문을 갖고 있다가 이 책들의 출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고민하고 탐색하게 된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도덕적, 철학적 사고를 여행"하면서 "독자들이 정의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고민하게 하는 것"(47쪽)을 목표로 한다.
그는 도덕적, 철학적 사고가 무엇인가를 제시하기 위해 다음의 예를 든다. 2004년에 미국 플로리다를 휩쓸고 간 허리케인 때문에 22명이 목숨을 잃고 110억 달러에 이르는 손실이 발생했다. 이 때 가격 폭리를 통해 이득을 보는 장사꾼들이 있었고 이들에 대해 플로리다 주민들은 분노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정부는 이미 있는 '가격 폭리 처벌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이 법의 찬성과 반대에 대한 여론에 부딪혔다. 따라서 법의 정당성에 대한 논쟁, 즉 옳은 법이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이 생겨났다.
"가격 폭리 논쟁은 도덕과 법에 관한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재화와 용역을 판매하는 사람이 자연재해를 이용해, 시장이 견디기만 한다면 어떤 가격을 불러도 상관없는가? 이 때 법이 조금이라도 힘을 쓸 수 있다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가격 폭리 금지가 구매자와 판매자의 자유로운 거래를 방해할지라도 주정부는 가격 폭리를 금지해야 하는가?" (16쪽)
그런데 "가격 폭리에 반응하는 우리의 모습은 이중적이다. 다들 자격없는 사람이 무언가를 얻을 때 분노하며, 인간의 불행을 이용하는 탐욕은 포상이 아닌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법을 만들어 미덕(virtue)을 심판하려 할 때는 우려를 표한다"(20쪽) 이러한 딜레마는 "정의로운 사회라면 시민의 미덕을 장려해야 하는가? 아니면 법은 미덕에 관한 서로 다른 개념들 사이에 중립을 지키면서 시민 스스로 최선의 삶을 선택하도록 해야 하는가?"(20쪽)라는 정치철학의 중대한 문제 하나를 드러낸다.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것들을 올바르게 분배한다. 다시 말해, 각 개인에게 합당한 몫을 나누어 준다. 이 때 누가, 왜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묻다보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33쪽)
서구에는 가격 폭리 논쟁에서 나타나듯이 사회적 재화 분배를 규정하는 세 가지 기준이 있는데 행복, 자유, 미덕이 그것이다.
첫째,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추구, 즉 행복의 극대화를 정의로 보는 18세기의 벤담, 밀의 공리주의가 있다.
둘째, 18세기의 칸트부터 20세기의 롤스까지(자유 지상주의자 포함) 이어지는 정의론으로 우리의 권리를 규정하는 정의의 원칙은 미덕과 최선의 삶에 관한 주관적 견해에 좌우되지 말아야 하며 "정의로운 사회라면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 각자 좋은 삶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21쪽)는 입장이다. 이러한 개인주의는 자율적이면서 평등한 독립적 개인(무연고적 자아)으로 구성된 사회에서, 개인이 집단이나 공동체보다 더욱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고 보는 입장이다. 물론 롤스는 자유주의를 우선으로 하되 평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평등주의적 입장을 제시한다.
셋째, 가장 바람직한 삶(좋은 삶, good life)의 방식, 우리 삶의 목적과 가치부터 숙고해야만 무엇이 정의인지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이다. 정의는 미덕, 좋은 삶과 밀접히 연관되며 개인은 공동체적 존재(연고적 자아)로서 공동체 내에서 공동선(善)과 미덕(美德)을 추구하는 것이 정의라고 본다.
2. <정의란 무엇인가>의 전체 줄거리
▲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김영사 펴냄). ⓒ김영사 |
샌델은 1장에서 문제 제기를 한 후 세 가지 입장들을 검토해 나간다. 2장에서는 공리주의적 입장을 다루면서 '효용' 중심의 사고가 갖는 한계인 소수자 인권의 무시와 모든 것을 물질절 효용가치로 환원하는 입장을 비판한다. 3장에서는 공리주의에서 문제된 인권과 자유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자유 지상주의'(libertarianism)의 시장 만능주의를 검토한다. 시장 만능주의는 모든 것을 자유로운 합의와 선택에 의한 교환에 맡긴다. 이 입장에서는 자유로운 선택이 모든 가치 중의 최고 가치가 된다. 곧이어 4장에서는 시장과 도덕의 문제를 다루면서 "자유 시장에서 우리의 선택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세상에는 시장이 존중하지 않는, 그리고 돈으로 살 수 없는 미덕과 고귀한 재화가 과연 존재할까?"(143쪽)라고 묻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들'을 옹호하면서 칸트로 넘어간다.
5장에서 샌델은 공리주의를 비판하는, 즉 인간은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물건)이 되어서는 안 되며,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칸트의 입장을 다룬다. 칸트에서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자 자율적 존재이며 자유롭게 행동하고 선택할 능력이 있다. 그리고 어떤 행동의 도덕적 가치는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기에 있다. 중요한 것은 옳은 일을 하는 것이며 그 이유는 옳기 때문이라야지 다른 이유가 있다면 도덕적 행위가 아니다.
그리고 6장에서는 칸트의 이러한 입장을 토대로, 평등을 중시하는 사회 정의론으로 발전시킨 롤스의 <정의론>(황경식 옮김, 이학사 펴냄)을 소개한다. 롤스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사회가 어떻게 평등하게 보장해 줄 것인가라는 문제를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그는 자유와 평등은 마치 수레의 양쪽 바퀴처럼 서로 같은 방향으로 굴러가야 사회적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일종의 사고 실험을 통하여 자율성을 인정하는 개인들이 서로 간의 합의를 바탕으로 사회 체제의 기본 원리를 구성하게 함으로써 '공정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Fairness)'를 실현하려고 한다.
롤스는 미국 사회에 만연한 능력주의를 비판하면서 "우연히 주어진 선천적이거나 사회적인 환경을 자신을 위해 이용하려면 그 행위가 반드시 공동의 이익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샌델은 "롤스의 정의론이 궁극적으로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이론은 미국 정치철학이 아직 내놓지 못한, 좀 더 평등한 사회를 옹호하는 가장 설득력있는 주장임에 분명하다"(231쪽)고 평가하면서도 롤스 이론이 갖는 문제점을 제시하기 위해 7장에서 소수 집단 우대 정책을 다룬다.
샌델에 의하면 소수자에 대한 대학 입학 특혜는 정당한데 그 이유는 소수자가 입학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대학이 규정하는 사회적 목적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의를 논의할 때, 칸트나 롤스와 같은 자유주의자처럼 좋음 또는 목적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대학의 기여금 입학제에 대해 샌델은 반대한다, 왜냐하면 대학의 목적은 수입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연구로 공동선에 기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돈벌이가 입학 정책을 좌우한다면 대학은 가장 중요한 이유인 학문 추구와 시민의 기대 부응에서 멀어지고 만다(255쪽).
샌델은 8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입장을 검토한다. 근대 이후 과학에서 목적론적 사고를 거부하면서 정치와 도덕도 그러한 사고를 거부했는데, 사회 조직과 정치 행위를 생각할 때 목적론적 추론을 버리기는 쉽지 않다(267쪽).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 정치는 인간으로서 좋은 삶을 사는 데에 필수적이다. 정치의 목적은 사람들이 고유의 능력과 미덕을 개발하게 만드는 것, 즉 공동선을 고민하고, 판단력을 기르며, 시민 자치에 참여하고 공동체 전체의 운명을 걱정하게 하는 것이다. 시민의 자질이 가장 뛰어난 사람, 즉 공동선을 숙고하는데 가장 뛰어난 사람이 정치적으로 인정받고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최고 공직과 영광이 이들에게 돌아가야 한다(273쪽).
샌델은 9장, 10장에서 자유주의의 성과를 중시하되 공동체의 목적도 중시하는 새로운 입장을 토대로 자신의 정의론을 전개한다.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으레 생기게 마련인 이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가꾸어야 한다"(361쪽)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를 이어받은 샌델의 이러한 주장은 자유주의, 개인주의에 익숙한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자율적이면서 평등한 독립적 개인(무연고적 자아)으로 구성된 자유주의 사회에 개인들은 자유로운 선택권을 지닌 독립적 존재이다. 따라서 우리 권리를 규정하는 정의의 원칙을 설정할 때 특정한 도덕적·종교적 사고에 좌우되지 말아야 하며, 좋은 삶을 규정하는 서로 다른 시각들 사이에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 이러한 자유주의적 중립의 틀이 갖는 매력은 무엇이 좋은 삶인지 단정하지 않으므로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사고에 기초한 도덕적 개인주의의 입장에는 집단적, 공동체적(연대적) 책임의식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따라서 현대 일본의 젊은이들은 과거 일본의 행위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없고 현재 미국의 백인이 과거 흑인 노예 소유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없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
칸트와 롤스의 자유주의적 독립적 인간관에 동의하지 않는 샌델에 의하면 우리는 공동체적 존재이다. 나는 내 가족, 내 도시, 내 나라의 과거에서 다양한 빚, 유산, 적절한 기대와 의무를 물려받는다. 이는 내게 주어진 기정 사실이자 도덕의 출발점이며 또한 내 삶에 도덕적 특수성을 부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 개인들은 모두 가족, 사회, 국가 등의 공동체에 대한 연대 의무와 소속의 의무를 갖는다. 인간은 완전히 독립적, 자율적, 개인적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태어나 그 관계 속에서 자신의 삶의 이야기와 역사를 갖는 서사적 존재(연고적 자아)이며, 도덕적 분노나 자부심, 수치심 등은 정체성을 공유한다는 전제에서 나오는 도덕 감정이다.
그러나 샌델은 공동체의 가치를 맹목적으로 강조하는 보수적 공동체주의자가 아니라 자유주의적 전통을 존중하고, 롤스의 평등주의적 문제의식을 계승하면서도 자유주의자들과는 다르게 공동체에 대한 시민의 정치 참여를 중시하는 시민적 공화주의적 입장을 견지한다.
3. 의견 불일치와 공공선의 정치
샌델에 의하면 정의에 대한 논의에는 어쩔 수 없이 '좋은 삶이 무엇인가'라는 도덕적(가치론적) 판단이 끼어들며 따라서 정의는 영광과 미덕, 자부심과 사회적 인정에 관한 대립하는 여러 개념과 밀접히 연관된다. 샌델은 정의는 롤스가 주장하는 올바른 분배만의 문제가 아니라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강조는 현대 미국 사회의 자유주의, 개인주의가 가져온 개인의 소외, 인간성의 몰락, 물질적 이익 중심의 삶, 공동체의 해체 등이 갖는 한계에서 새롭게 요구되는 삶의 가치와 의미, 목적 등에 대한 요구와 갈망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샌델은 도덕과 종교에 대한 자유주의적 중립이 갖는 한계를 지적하면서 "서로 다른 윤리적, 도덕적 가치가 경쟁할 수 있는 사회, 의견 불일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첫 번째 단계"(<왜 도덕인가?>(안진환·이수경 옮김, 한국경제신문 펴냄), 43쪽)라고 주장하면서 공동선(공공선)을 추구하는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정치는 첫째,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 위해 시민들이 사회 전체를 걱정하고 공동선에 헌신하는 태도를 키울 방법을 찾아야 하며 따라서 시민의식, 희생, 봉사의 정신을 키울 수 있도록 도덕적 논의를 활성화하는 정치이다.
둘째, 사회적 행위를 시장에 맡기면 그 행위를 규정하는 규범이 타락하거나 질이 떨어질 수 있기에 시장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보호하고 싶은 비시장 규범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는 정치, 즉 시장의 도덕적 한계를 잘 판단해서 제한하는 정치이다.
셋째, 빈부 격차가 지나치면 민주 시민 사이에 요구되는 연대 의식이 약화되고 시민의 미덕을 좀먹는다. 그러므로 불평등을 완화하는 분배 정의와 공동선의 연관성을 추구해야 한다.
넷째, 도덕에 기초한 정치, 즉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정부가 시민의 삶에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상호 존중의 토대를 더 강화시켜야 한다. 도덕에 기초한 정치는 도덕과 가치를 회피하는 정치보다 시민의 사기 진작에 더 도움이 되고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더 희망찬 기반을 제공한다. "윤리적 기반을 잃은 정치야말로 국가와 국민의 공공선에 해악을 끼치는 가장 무서운 적이다. 따라서 공직자와 정치인의 도덕성은 일반인보다 높아야 한다. 미국 정치 역사를 보더라도 대통령 후보의 윤리와 도덕성은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왜 도덕인가?>, 121쪽)
얼마 전 우리 사회에서도 차기 대통령의 자질에 대한 여론 조사에서 도덕성을 가장 중요하게 꼽는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안철수는 '복지, 정의, 평화'를 이 시대가 실현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로 제시했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잃어버렸던 도덕성과 공정성을 회복하여 '복지'가 실현되고 남북간의 '평화'가 보장되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필요하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