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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 "빈부격차 없다면 성매매도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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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마이클 샌델 "빈부격차 없다면 성매매도 괜찮은가?"

[샌델 독자와의 만남] "돈으로 사면 가치 변질되는 재화"는 무엇일까?

미국으로 이민하는 권리 50만 달러, 인도인 여성의 대리모 서비스 6250달러, 제약회사의 약물 안전성 실험 대상 7500달러… 그리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무료 강연의 암표 3만 원.

2010년 '정의' 열풍을 불러일으킨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 대학 교수가 신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안기순 옮김, 와이즈베리 펴냄)로 돌아왔다. 위는 그가 이 책의 서론에서 밝힌, "과거엔 돈으로 살 수 없었지만 이제는 거래 대상이 된 것들"의 목록과 그 가격이다. 거기엔 지난 6월 1일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열린 그의 '무료' 강연이 거래 대상이 된 절묘한 상황을 덧붙였다.

'시장의 분배 능력이 모두를 이롭게 한다'는 믿음을 과신한 나머지 시민권도, 아이도, 성도 사고팔 수 있게 된 세상에서 샌델은, 이 사회에는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것과 구매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고 반박한다. 돈으로 구매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정말 있는가? 돈이 개입되면 재화의 어떤 가치가 변화하는가? 그 가치는 어째서 지켜져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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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와이즈베리 펴냄);. ⓒ와이즈베리
마이클 샌델과 함께 이 책이 던져놓은 질문을 이야기해 보고 싶은 여덟 명의 독자들(허상수·이헌종·정대진·정순용·김규리·목현정·조성희·박석주 씨)이 지난 2일 <프레시안>과 출판사 와이즈베리가 주최한 '샌델과의 만남' 행사에 모였다. 사전 질문을 통해 행사에 응모한 이들 독자는 샌델 교수와 둘러 앉아 성(性), 장기, 시민권 등을 사고팔 수 있게 된 상황과 그 매매가 과연 허용되어야 하는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1일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을 꽉 채운 무료 강연으로 포털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한 그는 3일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대한문 앞에 차려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의 분향소를 찾아 세간을 주목을 받았다. "내 책과 강연의 목적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독자와 청자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라 강조하는 그가 지난 4박5일간 네 번째 방한 일정을 소화하며 보인 모습은 한국 독자에게 어떤 고민을 던질까?

다음은 2일 정오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열린 독자와의 만남 행사를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 마이클 샌델. ⓒ프레시안(최형락)

정순용 : 샌델 교수님 반갑습니다. 제가 먼저 말씀드릴게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시장 지상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신 데엔 공감을 합니다. 하지만 그 책에서는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셨어요. 제가 보기엔 한국 사회는, 경제가 성장하는 도중에 더 가난의 나락으로 빠지는 사람들을 보호할 장치가 없다는 데서 문제가 더 커지는 것 같아요.

샌델 : 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느 부분에서는 시장 가치가 우리의 공리에 도움이 되고, 어느 부분에서는 시장 가치가 비시장 가치들을 훼손하는지를 먼저 살펴보고 결정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 다음 단계에서는, 필요하다면 시장을 억제할 수 있는 정책을 도입해야겠죠. 예를 들어볼까요. 책과 이번 강연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대학의 기여 입학제 문제가 그렇습니다. 두 가지 단계로 나누어서 고민해봐야 합니다. 첫째로 기여 입학제가 그 대학의 당초 목적을 훼손하지 않는지에 대해서입니다. 다음으로 그게 옳은지 아닌지 판단이 서면, 대학들이 어떤 기준으로 기여 입학을 하게 할건지 정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정순용 : 돈이 돈을 만드는 게 자본의 특성이잖아요.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기여 입학제 문제도 생기는 것 아닐까요? 만일 사람들이 공평하게 돈을 가지고 있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샌델 :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하지는 않아요. 책에서 우리가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걱정하는 이유를 놓고 두 가지를 논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방금 당신이 말한 불공정, 불평등 문제입니다. 두 번째는 이와 또 다른 이슈인데요, 가치의 훼손 문제입니다. 가령 돈을 내고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되면 대학이 원래 갖고 있던 목적과 가치 자체를 훼손시킬 수 있다는 것이죠.

성매매를 예로 들어볼까요? 만약 불평등을 근거로 성매매에 반대한다면, 그것은 빈부 격차 때문에 사실상 가난한 여성들만이 성매매에 내몰리고 성적으로 착취당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되겠지요. 그런데 빈부 격차가 없는 사회라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성매매가 괜찮을까요? 그러니까 불평등 문제를 제거하더라도 여전히 성매매에 반대할 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정순용 :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성매매가 '성'이라는 가치 자체를 훼손할 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죠.

샌델 : 이런 성매매 사례는 빈부 격차가 없더라도 일부 재화는 결코 돈으로 사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정순용 :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사회적 동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지, 점진적으로는 그 생각이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요?

샌델 :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매매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정순용 : 아뇨. 저는 그런 (성매매가 전적으로 괜찮다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에서 교육받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과거 중국에선 피지배 계층이 사람 취급을 못 받았지만 지금은 아니듯, (성매매는 전적으로 나쁘다는) 사회적 합의도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샌델 :
여기서 관건은 시간이 흐르면 사회적 합의가 변화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아닙니다. 역사가 진행되면 당연히 변하지요. 문제는 어떤 변화가 바람직하며, 어떤 변화에는 반대를 해야 하는가입니다. 윤리적 이슈이지 사회적, 역사적 이슈는 아닙니다.

조성희 : 그 변화의 방향과 무관하게, 성을 사고파는 일은 개인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내 성을 팔고 싶은데 사회는 어째서 그것을 강압적으로 막을까?' 하고 반론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샌델 : 맞습니다. '개인의 선택'은 이 사안에서 매우 강한 논거 중 하나이지요. 하지만 만일 개인의 선택이라는 논거로 이 문제를 반박하게 된다면, 어떤 재화를 매매할 경우 존엄성에 위배되고 위배되지 않는지에 대한 질문은 빠져버립니다. 그럼 토론이 형성되지 못하고 거기서 끝나버리죠. 자유 의지와 상관없이 여성의 임신, 장기와 같은 것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가 핵심입니다. 그럼, 장기 매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조성희 : 그것도 개인 선택의 영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몸이고 자기 스스로 선택한다면 괜찮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걸 개인의 선택에 맡긴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팔고 싶어할 것 같지도 않고요. 우리가 '그러면 나쁘다' 하고 교육을 받았던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석주 : 말씀하신 그러한 자유주의적인 입장이 굉장히 강한 반론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자유가 주어졌을 때 뭔가 꺼림칙한 느낌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책에도 쓰여 있어요.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다고 하면 분명히 그럴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어쩐지 올바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잖아요.

샌델 : 좋습니다. 그럼 왜 꺼림칙함을 느끼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을까요?

박석주 : 아무리 내 몸이라고 해도, 그것은 완전히 내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요. 내 신체도 부모도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 우연적으로 받은 거잖아요. 노력 여하에 따른 결과물이 아니라는 거죠.

샌델 : 아무리 자기 몸이라고 해도 자유롭게 매매할 수 있는 재산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는 거죠? 좋습니다. 그럼 다른 질문을 던져봅시다. 성희 씨가 한국 주권을 갖고 있는 시민인데, 말레이시아라든지 어딘가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 한국 시민권을 갖고 싶어 한다고 해 봅시다. 그는 당신에게 시민권에 대한 값을 지불할 의사도 있습니다. 자신에게 한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그것을 팔 의사가 있다면, 매매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조성희 : 내가 원한다면 팔 수 있지 않을까요? 파느냐 안 파느냐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선택권이 '나'한테 있다는 게 중요한 거죠.

정순용 : 저는 선택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목현정 : 저도 선택권이 존중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인이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해서만 긍정적이에요. 힘을 가진 자들이, 자신이 원하고 원치 않고를 판단할 수 없는 자들의 권리마저 쉽게 빼앗을 수 있는 사회가 될 위험이 있다는 게 민감한 딜레마가 아닌가 싶어요. 본인 스스로 원하는 걸 정확하게 알고 선택할 수 있다면 그것을 존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샌델 : 중요한 지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공적 담론에서 좋은 삶에 대한 개념을 추방하려는 시도를 아주 비판적으로 바라봅니다.

왜냐하면, 좋은 삶에 관한 논의를 정치 영역에서 받아들이기를 주저한다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시장지상주의로 향하는 동시에 시장 논리를 계속 유지하는 길을 닦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어떨까요? 시장은 어떤 선택이 더 가치가 있는지를 따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시장의 매력이지요. 우리는 그렇게 시장이 강요하는 것을 선택의 자유라고 생각하면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추종하지요.

ⓒ프레시안(최형락)

김규리 : 저는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장기에 가격이 매겨져 매매된다고 하면, 기존에 장기 이식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보람'이라는 고급 감정에 의존해 장기를 기증하려던 사람들의 선택을 막는 영향을 가져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장기를 기증하려고 했던 고급 감정에 돈이 개입하면서 오는 무기력감 같은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샌델 : 바로 그 점을 지적한 사례를 책에서도 보셨을 겁니다. 혈액을 매매하는 시장이 형성되면서 이타주의적인 의도에서 헌혈을 하던 사람들의 헌혈은 저해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죠.

김규리 : 책에서 스위스 핵폐기물 처리장 사례도 그와 비슷했어요. 후보지 가운데 인구 2100명의 볼펜쉬셴이라는 작은 마을이 거론되었는데, 처음엔 근소한 차이로 거주민의 과반수인 51퍼센트가 받아들이겠다고 답했죠. 위험성에 대한 우려보다 시민적 의무감이 컸던 것이죠. 그러나 의회가 보상금이라는 재정적 유인책을 추가했더니, 핵폐기물 처리장 건립에 찬성하는 비율은 오히려 절반가량 떨어졌어요. 공공 이슈와 시민적 의무감으로 이 문제를 바라봤던 시민들의 인식을 금전적 이슈로 돌리면서 오히려 인센티브가 역효과를 냈다고 했죠.

조성희 : 저는 그런 논의가 이미 '돈은 나쁘다'라는 생각에 기반하고 있는 것 같다는 데 문제의식이 있어요.

샌델 :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경우에 따라서 달라요. 방금 규리 씨가 말씀하신 사례에서는 돈에 의해 원래의 가치가 훼손되지만, 우리가 커피나 자동차를 구입하는 데 있어서는 돈이 나쁘다고 생각하거나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재화는 돈으로 사면 훼손되고, 어떤 재화는 아닐까요?

김규리 : 생명이 부여된 것 아닐까요? 예를 들자면, 저는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만, 한국에서는 육아 문제가 정말 커다란 공공 이슈거든요. 국가에서 0세부터 만 2세까지는 무상으로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게 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지금은 정작 보육 보조가 필요한 맞벌이 가정 부부들은 거기에서 소외되고 있어요. 수요는 많은데 어린이집이 얼마 없으니까, 원장들도 가르칠 아이를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을 갖게 되는 거죠. 과연 이런 나라에서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들어요.

샌델 : 매우 좋은 예입니다. 또 다른 이야기를 해 볼까요?

ⓒ프레시안(최형락)

허상수 : 아시겠지만 한국은 아주 극단적인 시장 사회입니다. 시장 권력을 가장 잘 이해하고 행사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된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제가 궁금한 것은 사회가 이렇게 될수록 성매매나 장기 매매를 강요하는 사회적 힘이 커질 텐데, 거기서 개인이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저는 책을 읽으면서 제도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시장 사회에 개입하고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할지가 여전히 의문점으로 남았습니다.

샌델 : 다른 시민들을 설득해 그들과 어떤 합의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사람들을 조직해 변화를 유도해야겠지요.

허상수 : 한국이 굉장히 극단화된 사회거든요. 나와 생각이 다르면 '빨갱이'로 낙인찍는 사회죠. 사회적 차원에서 논쟁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따라서 토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샌델 교수의 책이 한국에서 많이 팔리는 게 참 놀랍고, 역설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제가 주문하고 싶은 것은, <정의란 무엇인가>도 그렇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도 그렇고 맨 마지막 장을 좀 부연해서, 더 많은 대안을 논의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에는 개인적 차원의 선택으로 해결될 수 없는 국가적, 사회적인 문제가 많고, 거기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샌델 : 그게 민주주의죠. (웃음) 민주주의는 원래 어려운 겁니다.

박석주 : 최재천 이화여자대학교 교수가 이 책 추천사에서 "샌델 교수는 답은 가르쳐주지 않으면서 우리로 하여금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각별한 재주를 갖고 있다"고 썼어요. 이분 말대로 교수님의 책은 어떤 해결책을 주지는 않지만 사람들은 그에 열광하죠. 어차피 명확한 답을 주시진 않을 것 같으니 (웃음) 이렇게 질문해 볼 수 있겠네요. 당신이 만약 한국의 '철학 최고 책임자(Chief Philosophical Officer)'가 된다면 이 극단화된 시장 국가의 대통령에게 어떤 조언을 하시겠습니까?

샌델 : 그렇다고 해도 여러분들이 원하는 구체적인 답을 제시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책에서도 그랬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문제들을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철학적 틀을 제시하겠습니다. 만약 제가 '이 문제는 이렇게, 저 문제는 저렇게 해결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명확한 답을 가지고 이 책을 썼다면 좀 더 재밌었을까요? 아니면 재미가 덜했을까요.

박석주 : 지루했겠죠.

샌델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흥미로운 책이 될 수 없었겠죠. 왜냐하면 독자들을 스스로 고민할 수 있는 자리에 초대하지 못하거든요. 책을 읽고 다른 의견을 가진 다른 독자들과 토론하도록 영감을 주고 장려하는 게,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서 더 좋은 길 아닐까요? 어제(6월 1일) 연세대에서 열린 강연에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그곳에서 1만4000여 명의 관중들과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 토론의 장을 각 도시에서 열 수 있다면, 국가적인 이슈를 논하는 것도 가능해지리라고 봅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조성희 : 한국 사람들은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 있어서 토론 자체를 두려워해요. 그래서 다들 샌델 교수님 책을 보고 "그래서 결론이 뭐야?" 하고 묻죠. (웃음) 전 오히려 그런 면이 좋긴 하지만, 지역색도 강하고 세대차도 큰 한국의 독자 입장에서 한 가지 부탁을 드리자면, 토론만 하면 싸움으로 이어지는 우리들을 위해 다음번에는 '어떻게 토론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샌델 : 토론을 가르치는 최선의 방법은 직접 토론하는 것입니다. 어제 강연에서도 제가 일방적인 강의를 한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1만4000여 명의 관중들이 직접 이야기하고 그들끼리 토론할 수 있도록 독려했거든요. 실제로 다양한 논쟁이 이어졌죠. 결국 토론은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 직접 경험함으로써 배울 수 있는 거라고 봅니다.

목현정 : 얼마 전 모성애에 관한 어떤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요. 모든 엄마들에게 아이가 행복하고 무조건적인 애정을 갖게 하는 존재는 아니라는 이야기였어요. 어떤 엄마에겐 아이가 힘들고 귀찮은 존재일 수 있는데, '엄마는 본능적인 모성애를 가지고 아이를 사랑하는 존재'로 보는 사회적 눈 때문에 '아이가 귀찮다'는 말은 바깥으로 절대 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토론을 하는 방법론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결국 각자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알고 그것을 터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도 느낀 거지만, 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결정하는 기준이 윤리적인 차원에 굉장히 강박적으로 매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에서 제대로 된 토론이 안 되는 원인 중 하나가, 사람들이 남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보이기 위해 진정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터놓지 못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개인주의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을 반사회적, 이기주의적이라며 공격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래서 토론 결과는 이상적으로 나오지만, 그것이 사회에서 진짜 실현되지는 않죠. 그래서 저는 토론을 하는 연습도 연습이지만 자기가 원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토대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샌델 : 매우 중요한 점을 짚어주셨고, 세심한 관찰을 하신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이 시간은 정말 즐거웠습니다. 두 가지 면에서 특히 그랬는데, 하나는 여러분이 책을 완전히 숙지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주셨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또 하나는, 독자로서 확답이라는 유혹에 빠지기 쉽지만 그런 답을 제시하게 되면 중요한 것을 놓친다는 인식을 해 주셔서입니다. 질문에 스스로 고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지 못할 수도 있는데, 여러분은 깨달아 주셨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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