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기 국회 정보위원장 주도로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열람해보니 '노무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한 것이 사실'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특히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은 대화록 일부 내용을 보수 언론에 흘리고 보수 언론도 이에 맞장구를 쳐주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정원이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에게 대화록 열람을 허용하고 이 내용을 언론에 유출한 것이 불법인가의 여부, 청와대의 관여 여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실제로 'NLL 포기' 발언을 한 것인가의 여부,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대화록을 공개해야 하느냐의 여부, 공개한다면 어느 수준까지 해야 할지의 문제 등이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앞서 반드시 규명되어야 할 사안이 있다. 바로 NLL을 영토선으로 볼 수 있느냐의 여부이다. 우리에게는 불편한 진실일 수 있지만, NLL의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은 정의와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 국가안보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다.
▲ 서상기 정보위원장(가운데)을 비롯한 새누리당 정보위원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을 확인했다"며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발췌본을 열람한 사실을 밝혔다. ⓒ연합뉴스 |
주장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주장이 사실에 기초하지 않고 허구에 의존해 상대방을 공격할 경우 그것은 폭력이 되고 합리적인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한다. NLL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NLL 문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대책과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NLL의 근원부터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미국의 비밀 해제 문서를 추적해본 결과 NLL은 시작부터가 의문투성이다. 'NLL이 영토선이 아니다'는 것은 이 선을 그은 당사자인 미국의 비밀 해제 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미국이 NLL 문제 해법으로 중간선을 검토했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이 글은 1970년대 미국 비밀 문서를 중심으로 NLL의 역사적 진실을 추적한 것이다.
시작부터 모호한 북방한계선
NLL 문제의 근원은 정전협정에서 육상에 군사분계선 및 비무장지대(DMZ)가 합의된 것과는 달리 해상분계선 설정에는 실패한 데에 있다. 정전협정 당시 유엔사령부는 해상분계선으로 3마일을 주장한 반면에 북한은 12마일을 주장해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다만 서해 5도는 유엔사령관의 통제 하에 둔다는 점에는 합의했고, "비무장지대에 인접한 수역을 존중한다(shall respect the water contiguous to the Demilitarized Zone)"고도 합의했다.
정전 협상에서 해상분계선 합의에 실패하자 1953년 8월 30일 당시 유엔군 사령관인 마크 클라크가 일방적으로 선포한 것이 NLL의 근원이라는 인식이 통념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그런데 이러한 통념을 뒷받침하는 어떠한 문서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1973년 12월 22일 작성된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비밀 문서에서는 정확한 시점을 명시하지 않은 채 "NLL은 유엔사가 1950년대 중반 일방적으로 선포했다"고만 기술했다.
그런데 10일 후에 작성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조사 보고서에는 다른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1974년 1월 1일 자 문서가 바로 그것이다. 이 문서에는 NLL의 성격과 근원을 다시 따져봐야 할 세 가지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다.
첫째는 "1960년 이전에 NLL이 설치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어떠한 문서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남한은 1953년 정전 이후 북한이 NLL을 인정해왔다고 주장"하지만, "북한이 공식적으로 NLL을 인정했다고 볼 수 있는 어떠한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CIA의 결론이었다.
이러한 당시 미국 정부의 입장은 "우리는 북한에 NLL을 공식적으로 설명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1973년 12월 23일 자 미국 국무부/국방부의 외교전문에서도 거듭 확인된다. 이와 관련해 미국 문서를 추적해 NLL을 심층적으로 연구해온 미국 해전대학(U.S. Naval War College)의 테렌스 로우릭(Terence Roehrig)은 클라크가 선포한 선은 "당시에는 NLL로 불리지 않았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NLL은 대개 한국과 유엔사 함정에 적용되기 때문에 NLL이 북한에 공식 통보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둘째는 "NLL은 1965년 1월 14일 한국의 해군사령관(COMNAVFORKOREA, 당시 한국 해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보유한 유엔사령부의 해군구성군사령관을 의미함)에 의해 설치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NLL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12년 늦게 그어졌다는 것이어서 주목을 끄는 부분이다. 다만 CIA는 NLL과는 다른 이름의 선이 "1961년 해군사령관에 의해 설치되었다"고 적었는데, 이는 헨리 키신저가 말한 "북방정찰한계선(Northern Patrol Limit line)"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키로 한다.
셋째는 "NLL의 유일한 목적은 유엔사령부 함정이 특별한 허가 없이는 NLL의 북쪽을 항해하는 것을 금지함으로써, 사고를 피하는데 있었다"고 명시한 것이다. 그러면서 NLL을 사실상의 해상 경계선으로 간주하는 남한의 입장은 "국제법적으로도 어떠한 근거가 없고 NLL 길이의 일부는 영해에 관한 최소한의 조항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NLL은 해군구성군사령관의 명령과 작전통제하에 있는 군사력에만 구속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NLL이 북한이 넘어와서는 안 되는 선으로 설정된 것이 아니라 남한이나 유엔군이 넘어가서는 안 되는 선으로 설정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거듭 확인해준다. "북한이 NLL을 넘어와도 정전협정과는 무관하다"는 김영삼 정부 시절 이양호 국방장관의 발언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더구나 CIA는 "북방한계선이 적어도 두 군데에서 북한 주권하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수역을 가로지른다"고 지적했다.
CIA가 말한 두 군데란 백령도 동북쪽과 연평도 북쪽을 의미한다. 남한은 이들 섬 이북으로 3마일의 영해선을 주장했지만, "이는(3마일의 영해선은) (북한의 주권이 완전한-원문 그대로 인용) 북한의 내해(內海) 안에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해주항에 자유로운 접근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이 지역(백령도와 연평도 이북)은 특히 민감한 지역"이라며 "확실히 잠재적인 충돌 지역"이라고 덧붙였다.
1970년대 중반 NLL을 둘러싼 남북한 갈등에 대한 미국의 입장
미국의 비밀 해제 문서들에 따르면 남-북-미 간 서해 해상경계선을 둘러싼 갈등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시점은 1973년 하반기부터였다. 북한은 그해 10월 하순부터 서해 5도 인근 수역에 함정을 보내기 시작했고, 12월 1일 열린 군사정전위원회(MAC)에서는 "서해 5도 인근 수역은 자신의 영해에 해당된다고 주장"하면서 "이들 섬을 지나거나 들어가기 위해서는 북한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유엔사령부는 "서해 5도에 대한 (남한의) 자유로운 접근권"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북한에 전달했다. 그러나 이것도 곧 NLL이 영해선이라는 주장은 아니라고 CIA 문서는 기록했다.
북한이 서해 5도 인접수역에 대한 영해권을 주장하고 나선 시점과 배경도 주목된다. 이와 관련해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리처드 솔로몬이 헨리 키신저에 보낸 1973년 12월 3일 자 극비 문서에는 주목할 내용이 담겨 있다. 당시 데탕트에 접어든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유엔 총회 결의안을 상정·채택을 주도하면서 "유엔사와 주한미군의 미래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미국 NSC는 "한국에 매우 우호적인 내용"이라며 이러한 내용 채택에 동의한 중국의 태도에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미국 NSC는 "서해 5도에 대한 북한의 도발적 행동"의 원인을 바로 여기에서 찾았다. "북한 정부는 미해결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중국 정부와 다소 독립적인 행동을 취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는데, 여기서 미해결 문제란 바로 서해 해상분계선 설정이었다. 같은 날 작성된 NSC의 다른 문서에서도 "이 상황에서 북한의 제1목표는 유엔사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서 다루도록 강제하는 데 있을 것"이라도 분석했다.
그러자 박정희 정권은 NLL의 실효성을 주장했고 이는 미국과의 마찰로 이어졌다. 주한미국 대사관이 미국 행정부에게 보낸 1973년 12월 18일 자 외교 전문에 따르면 미국 대사관은 한국 외교부에 서해 5도 인근 수역에 대한 한국의 접근권과 통제권을 지지하지만 NLL은 정전협정에 명시되지도 않았고 국제법적으로도 불분명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그러면서 "만약 이 지역(NLL)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면, 한국과 미국은 잘못된 행동을 한 것으로 다른 많은 나라들에게 비춰지게 될 것"이라는 우려했다.
주한미국 대사관으로부터 전문을 받은 워싱턴은 5일 후인 12월 23일 NLL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과 지침을 주한미국 대사관에 보냈다. 핵심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우리는 NLL을 '정전체제'에서 '존중된' 요소로써 유효성을 부여하려는 한국 외교부의 입장에 유보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우리는 북한에 NLL을 공식적으로 설명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북한이 수용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은 선을 부과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극도로 취약한 입장에 서게 될 것이다. 북한에 NLL을 부과하려는 시도에 우리가 동참할 것이라고 한국 정부가 가정한다면 잘못된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입장은 오로지 NLL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은 정전협정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는 점을 한국 정부는 이해해야 할 것"라고 강조했다.
헨리 키신저 "NLL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불포함"
NLL에 대한 더욱 충격적인(!) 성격 규정은 헨리 키신저가 미 국무장관 시절인 1975년 2월 28일 작성한 외교 전문에 나와 있다. 주한미국 대사관과 주한미군 사령부 및 유엔군 사령부에 발송된 이 문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미국이 이전부터 말해왔듯이, 북방정찰한계선(Northern Patrol Limit line)은 국제법적 지위를 갖고 있지 않다. 북방정찰한계선은 일방적으로 선포된 것으로 북한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더구나 그 선은 일방적으로 국제수역을 분리한 것이기 때문에, 명백히 국제법과 미국 정부의 해양법에 반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 내용은 북한이 주장해온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더구나 키신저는 '정찰(Patrol)'이라는 표현을 북방한계선 사이에 넣었는데, 이는 "NLL은 우리 해군이 더 이상 북상을 하지 못하도록 한 작전 금지선에 불과했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과 정확히 맥을 같이 한다.
더구나 키신저는 "한국 국방부가 영해라는 잘못된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며, "미국 정부는 물론이고 유엔사령부도 이 사건(북한 함정의 NLL 월선-필자 주)이 한국 영해나 한국의 배타적 어업수역에서 발생했다는 한국의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가장 주목을 끄는 부분은 NLL 사수가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밝힌 것이다. 그는 "어떠한 경우에도 한국 국방부가 이 문제를 한국의 어업수역의 보호 문제로 다루는 것은 이 사안을 정당화하기 이미 어려운 처지에 있는 유엔사와 미국 정부의 입장을 더욱 악화시킨다"며, "우리는 정전협정과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의거한 유엔사의 합법적인 기능, 혹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른 미국 정부의 합법적인 기능에 한국의 어업권 주장을 위한 무력 강제집행(armed enforcement)이 포함된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특히 미국이 정전 지역을 벗어난 국제 수역으로 간주하는 지역에서는 그러하다"고 강조했다.
키신저는 "주한미국대사관과 주한미군 및 유엔사령부는 이러한 점들을 한국 정부에 분명히 해둬야 한다"고 지침을 하달하면서, "우리는 이 사건을 국제법과 미국의 기존 입장과 불일치하는 용어로 공개적으로 규정하고 정당화하는 것이 한국과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믿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가 말한 "불일치하는 용어"란 NLL을 영토선이나 해상분계선과 같은 표현으로 일컫는 것을 말한다.
미국, 중간선도 검토했다
미국이 서해상의 남북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중간선"을 검토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1973년 12월 22일 작성된 미국 NSC의 문서에는 "서해 5도와 북한 영토에서 '인접 수역(contiguous waters)'이 중첩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국제법의 관례적인 해법인 중간선을 이용하고자 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CIA가 검토한 중간선은 더욱 구체적이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중간선은) 사실상의 주권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국제법 및 관습에 부합하고, 북한의 해안과 유엔의 군사적 통제하에 있는 서해 도서들 사이의 등거리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면서 CIA는 "중간선을 사용해 영해 분쟁을 해결하면 남한의 서해 5도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고 공해로부터 북한의 해주항의 접근도 증대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그 의의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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