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중 누가 사왔는지, 아니면 선물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건 <쥐>는 어느 날부터 우리 집 서가에 꽂혀 있었다. 심심하던 유년기의 나는 책이라면 가리지 않고 읽었다. <쥐>를 읽게 된 것에도 별 계기가 없다. 아무 책이나 집어 들었던 것이다. 기분 나쁜 표지였다. 처음 책장을 넘길 때의 감상은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판화 작업을 연상시키는 거친 펜-스트로크와 유대인을 쥐로, 독일인을 고양이로, 폴란드인을 돼지로 의인화한 왠지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에 나는 사로잡혔다. 먼저 스타일에 반했다면 다음엔 밀도 높은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나 무거운 테마를, 진지한 필치로 다룬 작품을 그 어린 나이에 끝까지 읽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그때 나는 '르포'라는 용어도 들어본 적 없던 꼬마였다. 몇 번의 이사 중 많은 책을 버렸음에도 <쥐>는 아직도 우리 집 서가 한가운데 꽂혀있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청년이 되었다. 그 동안 지나간 시간 중 작지 않은 부분을 나는 '만화'라는 장르의 열독자로 살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내가 르포 만화를 다시 접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특히 한국에서 나온 작품들을 만날 기회는 더욱 흔치 않았다. 간단하게도, 실제로 한국의 작가가 그린 르포 만화 자체가 거의 없던 까닭에서였다.
한국엔 (민중 미술의 영향을 받기도 한) 만화가들이 다수 존재했으나, 그들의 작업은 대부분 '시사만화'라는 형식으로 수렴되는 풍자적인 1컷 만화 혹은 4컷 만화가 주를 이루었다. 물론 풍자만화의 전통은 아주 오래되었고 또 그 나름의 감흥이 있었으나 스토리텔링과 드라마가 중요한 르포 만화의 감흥과는 전혀 다른 것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온 시사만화의 전통에 대한 존중과는 별개로 나는 한국의 소위 '사회파' 만화들에 대해 '아티스틱'하다는 인상을 받기는 힘들었다. 최호철의 <을지로 순환선>(거북이북스 펴냄) 정도를 빼면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리출판사의 '평화 발자국 시리즈' 두 번째 책으로 나온 용산 참사에 관한 젊은 작가들의 단편을 모은 <내가 살던 용산>은 반가운 작품이었다. 김수박, 유승하, 신성식, 김성희, 앙꼬, 김홍모가 그린 단편들은 저마다의 스타일이 잘 살아있음은 물론 훌륭한 작화와 잘 조율된 드라마가 더해져 단편이라는 제한이 있음에도 하나하나가 '작품'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 <사람 냄새 :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김수박 지음, 보리 펴냄). ⓒ보리 |
미리 단언하자면, 이 두 권의 만화책이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는 각별하다. 실제로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던 노동자 중 백혈병 등 각종 직업병에 걸렸거나 그로 인해 목숨을 잃기까지 한 노동자들이 적지 않으나 공공연한 비밀처럼 여겨지고 있다. 2012년 3월 기준으로 반도체 노동자들의 노동 건강권을 확대하기 위한 네트워크 '반올림'에 제보된 전체 전자 산업에서 직업병에 걸린 노동자는 155명이다. 사망 제보는 62명이 들어왔다. 그런데 그 중 삼성은 각각 138명, 52명을 차지하고 있다. 대략 80~90퍼센트의 제보가 삼성과 관련되어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제보된 것만 기록된 결과이다. <사람 냄새>에서도 잘 나와 있듯 삼성은 억지, 협박, 회유, 심지어 금품 제공까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노동자들의 산업재해가 있다는 사실이 퍼져나가지 않도록 조치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제보되거나 알려지지 않은 산업재해가 얼마나 더 있을지는 짐작조차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삼성의 이런 행태를 고발하는 책이나 기사들은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 그 이유는 막대한 경제 권력을 가지고 있는 탓에 삼성을 함부로 비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소위 '진보 언론'을 포함한 수많은 매체들은 삼성의 광고를 받지 못하면 경영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실제로 자신들에게 부정적인 기사를 내보냈을 때 광고 수주를 중단한 경우가 있다.). 출판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유명한 예로는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펴냄)를 출간했을 때 중앙 일간지는 물론 대부분의 언론에서 광고를 원천봉쇄당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외부적 상황은 두 권의 만화책의 주요한 내용 중 한 파트인, 사기업이 아니라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준 행정 기관 중 한 곳인 근로복지공단과 산업재해 노동자들의 싸움과 맞물려 더욱 흥미로워진다. 공적인 절차에 의해 산업재해를 당한 '민원인'을 도와야할 공단이 오히려 삼성 대신 노동자들을 고소한 것이다. 이쯤 되면 국가와 시민 사회의 공공성이란 것이 과연 존재하긴 존재하는지를 먼저 물어야할 판이다.
표면적으론 '자유 시장'의 레토릭을 내세우고 있으나 실은 자본과 국가 및 행정 기관의 적극적인 협업으로서만 유지되며, 필요한 경우엔 공단이건 매체건 시민 사회의 공적인 기능마저 경제 권력의 뜻대로 마비시키고 도리어 전유하는 2000년대 한국형 신자유주의의 역겨운 기만이 보는 사람 민망할 정도로, 너무나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 <먼지 없는 방>(김성희 지음, 보리 펴냄). ⓒ보리 |
덕분에 독자는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한 노동자의 비극적인 인생에 몰입하면서도 상황에 대한 지식을 함께 자연스레 습득할 수 있다. "사회적 사안을 소재화하는 저널리즘적 전통, 논픽션 사연을 다루는 방식, 사안을 설명하는 기술"(김낙호, '르포 만화에 퓰리처상을 주는 이유', <시사IN> 제131호)이 조화를 이룬, 두 권의 훌륭한 르포 만화가 탄생한 것이다.
그간 르포 만화가 뜸했던 한국 만화계의 입장에선 두 권의 본격적인 장편 르포 만화가 출간된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권의 만화는 (모두 완성되어 출간된) 지금의 이 시점에서 더욱 의미 있다. 앞서 언급한 <삼성을 생각한다>와 같은 이유에서 <사람 냄새>와 <먼지 없는 방>은 현재 언론사 지면 광고를 거부당하고 있다. "광고 카피에서 삼성이라는 단어를 뺐으면 좋겠다" "삼성 광고가 이번에 들어가는데 이 같은 책 광고가 같이 들어가면 아무래도 광고 내용이 상충되고 광고주를 비판하는 내용이 될 수 있다"(<미디어오늘>)는 등의 이유로 돈을 내도 광고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당연히 소개도 제한되어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10대 중앙 일간지 중에선 <경향신문>을 제외하곤 어떤 언론사에서도 이 책의 출간에 대한 코멘트를 하지 않고 있다. 역시 <미디어오늘>을 참고하자면 이에 대해 삼성전자 홍보팀 관계자는 "사실무근이다. 들은 바도 없다"고 밝혔다 한다. 그러나 정말 무서운 것은 '강제하는 것'보다 '알아서 기게 만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즉, 이 두 권의 만화책은 그 자체가 삼성과 산재노동자들의 투쟁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동시에 그 자체로도 삼성이란 거대한 경제 권력과 싸움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나의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그리고 '시대정신'이 담겨져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역시 작품을 평하는데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두 권의 만화책은 '시대정신'을 담고 있음은 물론 지금의 시대와 불화하고 그에 맞서 저항하고 있기도 하다. 이 투쟁을 지지할 이유는 충분하다. 또한 그 자체로 완성도 높은 만화책이기도 하다. 모든 측면에서, <사람 냄새>와 <먼지 없는 방>은 '작품다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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