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민주주의를 믿는다. 그러나 민주주의로 여겨지는 것이 나라 안팎에서 덜 고상한 것을 감추는 명분이었음이 종종 드러난다. 국내에서 우리는 인종주의와 경제적 착취, 돌봄의 실패 등으로 인해 개인의 자유를 박탈당해왔다. 우리는 자기 나라를 점령하기를 원치 않는 이들에게 자유를 부과하다는 명분으로 군사적인 힘을 아무 부끄럼 없이 행사했다. 민주주의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사실 그들 목숨을 대가로 우리의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것이다."
인상적인 저 대목을 읽으면서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미국 여행기 <아메리칸 버티고>(김병욱 옮김, 황금부엉이 펴냄)에서부터 이 글을 시작하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앙리 레비는 미국 한 언론 매체에서 기획한 여행 글쓰기를 수락한 후 미국을 방문하여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1830년대에 여행한 궤적을 따라간다. 민주주의에 대한 입문서처럼 읽히는 토크빌의 저서 <미국의 민주주의>와 현재 미국 사회 현상을 비교 진단해나간다. 여행기는 두텁고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 가끔씩 읽기를 멈추고 내용을 소화시키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파커 파머 지음, 김찬호 옮김, 글항아리 펴냄). ⓒ글항아리 |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과 <아메리칸 버티고>는 그럼에도 한 가지 일관된 시각을 가지고 있다. 미국인들이 자기네 민주주의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얼마나 특별한 대상으로 여기며 상찬하는지가 책의 행간에서 넘실거린다. 흑인 노예를 해방시켜 시민으로 편입시킨 사실에 대해 가지는, 묘한 뉘앙스의 자긍심과 비슷해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두 책은 국가적 보물처럼 여기는 민주주의를 잘 보존하기 위해 똑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1830년대 토크빌이 남긴 유명한 말,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마음의 습관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그 대목에 이르렀을 때는 이 책이 정치나 민주주의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개인의 심리에 대한 책이구나 싶었다. 현대인들은 모든 현상이 마음의 작용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경제도 심리 작용이고, 스포츠도 심리전이고, 정치 역시 별로 다를 바가 없다. 한 나라의 민주주의의 성숙도는 국민 개인들의 마음이 얼마나 성숙한가에 달려 있다는 사실로 별로 놀라운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의 마음은 민주주의의 첫 번째 집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묻는다. 우리는 공정할 수 있는가. 우리는 너그러울 수 있는가. 우리는 단지 생각만이 아니라 전존재로 경청할 수 있는가. 의견보다 관심을 줄 수 있는가. 살아 있는 민주주의를 추구하기 위해 용기 있게, 끊임없이,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동료 시민을 신뢰하겠다고 결심할 수 있는가?"
저자는 테리 템페스트 윌리엄스의 질문을 인용해 놓고 스스로 '어렵다'고 답한다. 현대인은 이미 충분히 가지고도 타인의 소유를 시기하고, 상처 받을까봐 두려워 대화를 회피하고, 신용 사회를 만들어 놓고 타인을 신뢰하기 어려워한다. 민주주의의 첫 번째 집은 취약하기 짝이 없다.
늘 느끼는 거지만, 한 개인이 성숙한 인간이 되지 못하게 하는 두 가지 문제적 감정은 나르시시즘과 의존성인 것 같다. 케네디 대통령의 유명한 연설 "국가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줄까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십시오"는 의존성이 가장 큰 대상을 향해 투사되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부모에게 의존했던 성장기 경험과, 연인에게 사랑을 구걸하는 성향을 고스란히 공동체와 국가를 향해 돌린 행위를 정치적 참여라고 말하는 경우가 없지 않아 보인다. 유아적 의존성은 유아적 전능감을 강화시켜 타인과 소통이 불가능하게 만들고, 그 태도는 다시 낯선 대상에 대한 불안감으로 전환된다. 타인을 두려워하면 공감, 화합, 공생은 불가능해진다.
저자는 토크빌의 제안을 구체화하여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마음의 습관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우리가 한 세계 안에 함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서로 다름의 가치를 인정하기, 생명을 북돋는 방식으로 긴장을 끌어안는 능력 계발하기, 개인적 견해와 주체성을 갖기, 공동체를 창조하는 능력 강화하기. 제안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것은 민주주의를 살리고 보존하기 위한 덕목일 뿐 아니라 한 개인이 자기를 성장시켜 자기실현에 이르는 길과 같아 보인다.
책을 절반 정도 읽었을 때, 이 책이 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정치인들의 공약이나 선거 유세에 무관심하고 투표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멀찌감치 떨어진 태도로 정치 쪽을 대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는 그런 사람을 "비통한, 혹은 마음이 부서진"이라는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마음이 부서질 때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설명한다.
첫 번째는 마음이 수천 개의 사금파리로 폭발하는 이미지이다. 그 사금파리 조각들은 자신과 타인에게 폭력의 씨앗이 된다. 두 번째는 깨어진 마음이 우리 자신과 세상의 고통을 끌어안는 더 커다란 능력으로 '깨어져 열리는' 방법이다. 자신의 아픔을 끌어안아 보다 많은 자비심으로 마음을 열어갈 때 공동체의 소통과 화합을 이룰 수 있다고 제안한다.
저 대목에서 이즈음 내가 품고 있던 의문 한 가지에 대한 답을 얻었다. 그것은 개인적인 경험에 속하는, 주변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품은 의문이었다. 이를테면 대학 방송국 아나운서였던 동기 이야기 같은 것. 그녀는 대학 방송국 아나운서였다. 오전과 오후, 교정에 울려 퍼지는 그녀의 청아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등하교했다. 교정을 가로질러 방송국으로 향하는 그녀의 단정한 모습을 목격할 때면 걸음걸이와 목소리의 리듬감의 연관성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그녀는 방송국 아나운서가 되었고, 그 삶은 자연스러워 보였다.
언제부터인가 그녀의 행적은 경이로운 자취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국회의원이 되어 큰 목소리로 자기 의견을 펼치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볼 때면 오래 전 대학 교정에 울려 퍼지던 고즈넉한 목소리와 비교해보게 되었다. 선거 유세장에서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볼 때면 교정을 가로질러가던 단아한 걸음과 비교해보게 되었다. 그녀는 내면에서 얼마만한 용기를 내어, 어떤 심리적 변혁을 이루어, 어떤 소명을 찾아낸 걸까 궁금했다.
이 책은 나와 그녀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정치에 환멸을 느껴 찢긴 마음, 비통한 심경으로 세상에 대한 관심을 거두어들이는 일이 가장 쉬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가장 비겁한 일이기도 했다. 정치에 무관심한 만큼 정치인들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않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했는데 그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았던 듯하다.
"세 종류의 애국자가 있는데 (…) 나쁜 애국자는 비판 없이 사랑만 하는 자들과 사랑 없이 비판만 하는 자들이다. 좋은 애국자는 자기 나라와 끊임없이 사랑싸움을 한다."
민주주의는 원래 갈등을 에너지로 굴러간다고 한다. 민주주의는 긴장에서 유발되는 에너지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러일으키도록 고안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공동체나 개인들은 갈등과 긴장을 끌어안고 견디지 못한 채 그것을 억압하거나 외부로 내던진다. 편을 갈라 같은 부류끼리 어울리고, 상대를 주변화하거나 악마화한다. 때로는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갈등 자체를 먼 곳으로 추방하거나 창고에 처박아버린다.
이 책은 우리에게, 갈등에서 발생되는 긴장을 끌어안을 수 있는 사회적 용기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에너지를 풀어주고, 뛰놀게 하고, 지그시 끌어안을 힘을 기르면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속시키는 힘이 된다.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가지고 용기 있게, 지속적으로 동료 시민을 신뢰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뒤늦게 나를 수식하는 단어 중 '시민'이 있었음을 기억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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