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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다! 부자들 때문에! 두렵다! 정치인 때문에!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해커·피어슨의 <승자독식의 정치학>

지난 4월 신문에선 한국의 소득 불평등에 관한 두 기사가 특히 눈에 크게 띄었다.

하나는 2006년 기준 한국 상위 1퍼센트 부유층의 소득 비중이 전체 소득의 16.6퍼센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미국(17.7퍼센트) 다음으로 높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하나는 한국에서 중간 소득의 절반 이하를 버는 빈곤층 비율이 1992년 7.7퍼센트에서 2010년 14.7퍼센트로 18년 새 두 배나 늘어났다는 기사였다. 이 역시 OECD 국가 중 매우 높은 축에 속하는 수치다.

불평등과 빈곤 심화가 저출산과 이혼, 자살과 범죄 등 각종 사회 해체 현상의 근원(根源)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도 왜 한국 민주주의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을까? 대한민국 최상층을 대변한다는 이명박 정부는 차치하더라도, 민주화운동 출신이 다수를 점하며 '민주 정부'임을 자처한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왜 점점 더 심화되던 경제적 불평등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을까?

10년 넘게 정치학을 공부하면서도 분명한 답을 찾지 못해 답답해하던 차에, 한국보다 더 심각하다는 미국의 불평등 문제를 다룬 두 중견 정치학자의 책 <부자들은 왜 우리를 힘들게 하는가 : 승자독식의 정치학>(제이콥 해커·폴 피어슨 지음, 조자현 옮김, 21세기북스 펴냄)을 만나게 되었다.

▲ <부자들은 왜 우리를 힘들게 하는가?>(제이콥 해커·폴 피어슨 지음, 조자현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21세기북스

복지 정책 분야의 대표적 연구자인 제이콥 해커와 폴 피어슨은 이 책에서 미국 경제 불평등의 핵심을 이루는 지표로 소득 상위 1퍼센트의 몫에 주목한다. 1979년부터 2009년까지 30년 동안, 미국 상위 1퍼센트 부유층은 전체 가구 소득 증가분의 36퍼센트를 가져갔다. 특히 2001~2006년 동안엔 그 몫이 더욱 크게 증가해 53퍼센트까지 치솟기도 했다. 그 결과 1970년대 중반만 해도 8퍼센트에 머물던 상위 1퍼센트의 소득 비중은 2007년 18퍼센트로 두 배 이상 증가했고, 여기에 자본 소득을 더하면 그 비중이 24퍼센트에 이른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이렇듯 경제적 부가 극소수에 집중되는 '승자독식의 경제'를 갖게 되었을까?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다수의 경제 전문가들은 지식 사회로의 전환, 정보 기술 발전, 무역과 금융 세계화 등이 그 원인이라고 답해 왔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그것만으론 미국의 승자독식 경제를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먼저 고학력, 고기술에 따른 임금 프리미엄이 불평등을 야기했다는 주장은 상위 1퍼센트의 소득에 초점을 둘 경우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상위 1퍼센트와 그 바로 밑 상위 9퍼센트 간에 그렇게 큰 소득 격차를 만들어낼 만큼 중요한 교육, 기술 수준의 차이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화도 마찬가지다. 무역 규모 확대와 자본 이동 자유화가 특별히 미국 경제에만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할 근거는 없다. 그럼에도 미국은 선진국 중 상위 1퍼센트의 소득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이렇게 기존 통념을 반박하면서 해커와 피어슨은 미국 정치와 정책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한다.

시장과 기술이 아닌 정치와 정책이 어떻게 극소수 최상층에게 부를 집중시켰을까?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경제 활동에 대한 정부 역할은 제한적이거나 사후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굳이 불평등을 문제 삼는다 해도 그건 효율성을 추구하는 시장 경제의 부산물이며, 정부는 복지 정책을 통해 부분적으로만 그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해커와 피어슨은 그런 지배적 견해를 단호히 거부한다. 지난 세기 위대한 정치경제학자 칼 폴라니가 주장했듯이, 매우 자유로워 보이는 시장조차도 국가 권력에 바탕을 둔 광범위한 규제 없이는 작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언제나 어디서나 다양한 방식으로 시장을 형성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왔다. 물론 그에 따라 분배 결과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해커와 피어슨에 따르면, 미국의 승자독식 경제는 특히 네 분야의 정책 결정 내지 정책 표류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여기서 정책 표류란 변화하는 경제 현실에 맞춰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정책 대안이 있음에도 무대응으로 일관한 경우를 말한다.

승자독식 경제의 첫 번째 정책 영역은 조세 정책이다. 1970년대 후반 이래 미국 정치는 누진율이 높은 소득세와 법인세 인하, 과세 대상이 상위 계층에 집중되는 상속세 폐지 등을 통해 최상위 부유층에 막대한 혜택을 안겨주었다. 게다가 이와 같은 조세 정책 변화는 세수 감소를 낳고 그렇게 줄어든 세수는 복지 재정 축소로 이어지는 효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두 번째는 노동 정책 표류다. 노동조합 조직률 하락이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임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강력한 노동조합은 산업 현장에서 임금과 복지 혜택이 보다 많이, 보다 공평하게 지급되도록 하는 압력을 행사한다. 그 뿐만 아니라 노조는 정치, 사회 영역에서도 상층 집단의 과도한 영향력 확대를 견제할 만한 유인과 자원을 가진 대표적인 조직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한 노동조합 조직률이 미국에선 다른 나라와 달리 급격히 하락해 이제는 한국과 비슷한 10퍼센트 수준까지 내려앉았다. 그럼에도 미국 정부는 노동조합의 권한을 강화하고 그 조직률을 끌어올릴 만한 어떤 정책도 도입하지 않았다.

세 번째 정책 영역은 경영자 보수 관련 규정이다. 1965년만 해도 미국 대기업 CEO의 평균 임금은 일반 노동자의 스물네 배 정도였다. 그랬던 것이 2007년엔 300배까지 치솟았다. CEO들은 그 엄청난 보수에 대해 자신들의 기여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라지만, 진실은 정부 정책으로 왜곡된 기업 지배 구조 하에서 그들의 보수가 결정된다는데 있다. 대표적인 예는 CEO 보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단기 스톡옵션이다. 물론 스톡옵션은 다른 나라에도 있다. 그러나 유럽에서 스톡옵션은 대개 장기 성과와 연계되며, 동종 업계 실적 기준으로 견실한 성과를 거둔 경우에 행사된다. 반면 미국에선 스톡옵션이 일자리 삭감이나 구조 조정, 회계 조작과 같은 방법으로 획득되는 단기 수익과 연계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도 미국의 기업 지배 구조 정책은 변화된 CEO 보수 지급 관행을 교정할 만한 효과적인 규제 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다.

네 번째는 금융 정책이다. 미국의 금융 체제 또한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광범위한 규제에 의존해왔다. 부당 내부 거래나 이해 상충의 구성 요건은 무엇인지, 복잡한 금융 거래에 대해선 얼마만큼의 투명성과 관리 감독이 필요한지, 차입금 이용과 그에 따른 위험은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 등을 결정하는 것은 금융 관련 법률이다. 그런데 미국에선 이런 금융 규제가 일반 투자자나 예금주 보호가 아닌 대규모 금융 기업의 수익 보장에 유리한 방향으로 일관되게 진행돼왔다. 은행 지점망 규제 철폐,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분리 해제, 예금 금리 상한선 폐지, 은행·보험 업무 결합 허용 등이 모두 그런 종류의 정책들이다. 이런 규제 완화 조처로 벌어들인 천문학적 규모의 수익과 보수가 미국 소득분배 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는 쉽게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승자독식 경제의 본질이 이런 것이라면, 미국 정치는 왜 그와 같은 정책 결정 내지 표류를 실천하게 되었을까? 책의 저자들을 포함해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이 질문은 매우 당혹스런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은 정치적 평등의 원리에 기반을 두고 전체 유권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중산층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다수의 지지로 선출된 대표들은 중산층과 하층의 경제적 이익에 반하는 정책들을 결정하거나 용인했을까?

해커와 피어슨은 그 답이 민주주의 정치의 기반을 구성하는 '조직'과 '제도'에 있다고 주장한다. 흔히 민주주의는 상호 경쟁하는 정당들이 선거에서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유권자는 자신의 선호에 부합하는 정책을 제시한 정당에 투표하며, 그렇게 다수 지지를 획득한 정당이 정부를 구성해 위임받은 정책을 실행하는 정치 체제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런 이해만으론 실제 현실에서 작동하는 민주주의 정치의 중요한 메커니즘을 포착해낼 수 없다. 또한 다른 나라에선 정부가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는데 반해, 왜 미국 정부는 불평등을 더욱 더 부추겼는지 설명할 수도 없다.

해커와 피어슨에 따르면, 민주주의에서 선거와 정책은 다른 무엇보다도 조직의 힘을 통해 결정된다. 일반 유권자들의 서로 다른 선호가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려면 그 선호를 뒷받침하는 조직 역량이 필수적이다. 조직은 정치 활동에서 개인이 감당키 어려운 정보와 재원을 효과적으로 집적하고 동원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공동체의 중대한 목표 실현을 위해 개인들의 다양한 재능을 결합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면서도 여러 분야에 걸쳐 동시에 활동을 펼치는 것도 조직을 고려치 않고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현대 사회에서 나타난 거대 조직의 발전 과정과 그 영향력을 떠올려보면, 이와 같은 조직의 효능이 정치 영역에선 다를 것이라고 가정할 근거는 없다. 그런 까닭에 중산층과 하층의 대다수 유권자들이 누진세 확대, 복지 증대, 금융 규제 강화를 선호한다 해도, 그들과 갈등 관계에 있는 상층 및 기업계의 조직 역량이 더 강하다면 그들의 선호는 실현되기 어려운 것이다.

정치 제도 또한 다수의 선호가 정부 정책으로 연결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많은 정치 연구자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미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정부 권력이 분산된 제도적 특징을 안고 있다. 연방제, 삼권분립, 양원제는 그러한 성격의 대표적 제도들이며, 상원의 의사 진행 방해(filibuster) 또한 의원 개개인의 영향력을 높이는 제도로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널리 분산된 정책 결정 지점들로 인해 소수파를 대표하는 정치인이나 이익집단이 그 각각의 지점에서 다수가 선호하는 정책을 쉽게 저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제도 양상에 대해 미국 건국 당시 헌법 입안자들이 다수 전제를 막기 위해 마련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200여 년 후인 지난 30여 년 동안 그런 제도들은 부와 소득이 보다 더 공정하게 분배되도록 하는 경제 정책 결정의 표류에 기여하며 사실상 '소수의 전제'를 용인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책의 본문을 구성하는 2부 '정치는 어떻게 부자들의 수단이 되었나'와 3부 '끝나지 않은 진흙탕 싸움'은 위와 같은 조직과 제도 효과가 미국의 주요 경제 정책 결정과 비결정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설명한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 내용을 요약한다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뉴딜 정책 이래 1960년대까지 광범위한 기업 규제와 복지 프로그램으로 수세에 몰린 기업계는 1970년대부터 본격적인 조직화 작업에 나섰다. 이때부터 기업 관련 단체의 회원 수와 예산은 크게 늘어났고, 기업계는 그렇게 불어난 자금과 인력으로 정치권과 시민 사회 여론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해 나갔다. 같은 시기 노동계는 변화된 경제, 기술 환경과 경영진의 공격적 노동 정책으로 조직률과 정치 자금의 급격한 하락을 경험했다. 그나마 활력을 유지하던 중산층 조직들은 대개 환경, 여성, 인권 등 비물질적 이슈 홍보와 정책 개발에 주력했다.

정치권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공화당은 장기간에 걸친 의회 내 소수파 지위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계의 후원을 받으며 조직 강화에 주력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중산층 경제 문제 해결에 호의적이었던 공화당내 중도파들은 몰락해갔고 친기업 상층 편향적 경제 정책으로 무장한 강경 보수파 세력이 공화당 내 다수를 점하게 되었다. 민주당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편으로 1930년대 이래 '뉴딜 연합'이 만들어낸 다수파 지위에 안주하고 다른 한편으로 노동조합 영향력 약화로 자금과 조직에서 난관에 직면하게 된 민주당에서는 점점 더 많은 의원들이 현직 지위를 이용해 기업 측 지원을 수용하거나 친기업적 태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지난 30여 년 동안 공화당은 의회 다수나 행정부를 장악한 경우엔 적극적으로 규제 완화, 감세 확대 정책 등을 펼쳤고, 클린턴, 오바마 행정부 하에서처럼 수적 열세에 몰린 경우엔 민주당 내 보수파 의원들과 협력해 상원의 의사 진행 방해 등을 활용하며 전향적인 경제 개혁 정책들을 무력화시키곤 했다. 결국 기업계와 공화당의 강화된 조직 역량과 분산화된 정치 제도가 오늘날 미국의 승자독식 경제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의 경험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민주주의와 불평등의 관계에서 한국과 미국은 얼마나 같고 다를까? 미국 민주당 및 그 지지 세력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민주화 운동 세력과 그들이 지지한 정당들 역시 조직(화)을 등한시하고 비물질적 이슈에 주목하면서 점점 더 기업 의존적인 정책을 취했던 것은 아닐까? 다른 나라의 경험을 곧바로 한국에 적용하는 데는 늘 주의가 요구되지만, 이 책의 중심 주장과 관련된 두 가지 문제만큼은 분명히 짚고 넘어갈 수 있겠다.

첫 번째는 지난 4월 총선을 둘러싼 문제이다. 지난 선거 운동 기간 동안 이른바 야권 연대를 대변한 대표적 신문 가운데 하나인 <한겨레>가 1면에서 다룬 기사들의 표제는 대개 이런 것들이었다.

"MB 정부 불법 사찰…대한민국이 감시당했다"(3월 30일), "참여 정부, 경찰의 통상적 감찰·정보 수집 / MB 정부, 총리실의 정치 목적 불법 사찰"(4월 2일), "김제동, '국정원 직원 두 번 찾아왔다'"(4월 3일), "장진수 입 막으려 건넨…5000만 원 출처 추적할 단서 나왔다"(4월 5일), "세대 전쟁, 4·11 총선 최대 변수"(4월 7일), "청와대, 인권위 '진보 인사 축출'에 개입"(4월 10일), "지난 4년, 행복하셨나요?"(4월 11일), "인물·비전 빠진 심판론, 국민 가슴 뚫지 못했다"(4월 13일).

신문 기사, 그 중에서도 특히 1면 기사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방식으로 구성된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위의 기사들이 한 신문만의 독특한 논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 1면 기사에서는 중산층과 하층에 속한 집단들의 요구나 관심사, 선거 활동은 고사하고 복지 국가나 경제 민주화 이슈에 대한 언급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야권 연대를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지난 선거 결과는 당혹스럽고도 의아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현 정부와 여당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어느 때보다 깊었던 선거에서 왜 야당은 기대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했을까? 많은 사람들은 박근혜에 대항할 만한 리더십 부재, 보수 언론의 도덕성 프레임, 야권 연대 그 중에서도 특히 민주통합당의 좌편향에서 그 답을 찾곤 했다. 그러나 그 많은 논의들 속에서도 중산층과 하층 다수가 직면한 경제적 어려움과 그들이 자신의 이익과 요구를 실현하는데 있어 정당과 단체의 조직(화)가 갖는 효용을 언급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위 <한겨레>의 기사 중 마지막 4월 13일자 표제는 지난 선거에서 비단 야권 연대뿐 아니라 자신의 논조 선택에도 오류가 있었음을 자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거기서도 인물과 비전의 기반이 되는 조직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4월 총선의 과정과 결과가 조직의 가치를 입증해주는 사례라면, 지난 주 의회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은 제도와 관련해서도 한국 민주주의가 미국과 유사한 장애에 부딪힐 수 있음을 시사한다. 흔히 '국회선진화법', '몸싸움방지법'으로 불리는 이 법의 취지는 민주화 이후 특히 이명박 정부에서 빈번했던 법안 통과를 둘러싼 의회 폭력을 근절하고 법안에 대한 의회 심의와 타협을 장려하는데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국회의장 직권 상정을 사실상 폐지하고, 미국과 같은 의사 진행 방해를 허용하며(재적의원 3분의 1 동의시), 의사 진행 방해 종결이나 법안 긴급 처리를 위해서는 재적 의원 혹은 상임위원회 의원 5분의 3 동의를 요구하고, 5분의 3 표결에 대해서는 무기명 투표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았다.

언뜻 바람직한 의회 폭력 해소책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 법은 민주주의 원리와 미국의 경험에 비춰보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앞으로 주요 쟁점 법안은 의회 다수가 아닌 60퍼센트의 지지를 받아야만 통과된다는데 있다. 혹자는 다수의 횡포를 우려하며 법안 처리에서 가능한 많은 의원들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제도를 왜 문제 삼는지 의아해할지 모른다. 물론 민주주의에서도 소수의 견해는 존중받아야 하고, 어떤 법이든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경우가 더 좋을 것이다.

그러나 수없이 많은 상충하는 이익과 요구가 존재하는 현실 정치에서 쟁점 법안이 압도적 다수의 지지를 받는 경우는 드물고, 그럴 때 정치적 평등을 원리로 하는 민주주의에선 다수 선택에 따라 법이 결정되어야 한다. 소수파에 대한 존중 또한 마찬가지다. 쟁점 법안이 소수파의 민주적 권리를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그래서 다음 선거에서 다수파를 구성할 기회조차 제공치 않는 경우가 아니라면 다수결을 부정할 근거는 없다. 그럼에도 주요 법안 처리에서 60퍼센트 지지에 무기명 투표까지 허용한다면, 한국 역시 미국과 같이 소수파의 거부로 다수의 이익과 요구가 번번이 좌절되는 경험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 문제는 이 법률 개정 과정을 지배한 논리가 중요한 인과 고리를 빠뜨렸다는데 있다. 쟁점 법안에 대해 정당 간 견해가 갈리고 타협안을 모색하고 여의치 않을 땐 최종적으로 다수당 대안이 법률로 가결되는 것은 미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민주주의 국가의 일반적인 정책 결정 방식이다. 그런데 왜 한국은 다른 선진 민주주의 나라들과 달리 의회 폭력이 번번하게 나타날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중요한 원인은 정당과 유권자 간 연계가 약하다는데서 찾을 수 있다. 체계적인 증거를 제시할 순 없지만, 다양한 쟁점 이슈에서 한국 유권자들이 다른 나라와 달리 극단적인 견해차로 양극화되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럴 때 정당들이 가능한 한 다수 유권자들의 견해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상호 경쟁한다면 현재와 같은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이 나타나기는 어렵다. 따라서 문제의 근원(根源)이 이렇다면, 제도 개혁의 방향은 의사 진행 방해나 5분의 3 가결, 무기명 투표가 아니라 정치·선거 활동에서 정당-유권자 간 연계를 차단하고 그럼으로써 정당으로 하여금 단기적 이익이나 일시적 운동, 소수의 이익 집단과 언론 매체에 의존토록 하는 현행 선거법, 정치자금법, 정당법을 개정하는 데서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지난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이끌고 지지했던 사람들과 그들이 지지하는 정당 정치인들은 이명박 정부 들어 민주주의가 크게 후퇴했다고 말한다. 또 독재자의 딸이 어떻게 그렇게 높은 지지를 얻는지 당황스러워하며 다가올 대선에선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반드시 정권 교체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승자독식 경제의 주범인 지난 30여 년간의 미국 정치, 그리고 그와 유사한 양상으로 전개돼온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를 돌아보면, 민주주의에 가장 큰 위험은 대다수 시민들이 민주주의 정치를 통해 자신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는 확신이 점점 더 줄어든다는데 있다.

해커와 피어슨은 이 책 <승자독식의 정치학>을 "다음 세대는 지금보다 더 강건해진 미국에 살기를 바라며" 자신들의 자식에게 바쳤다. 예전에는 그런 헌사가 뭘 의미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이제 겨우 다섯 달을 보낸 아들을 갖고 난 후엔 그 말이 얼마나 간절한지 깨닫게 되었다.

ⓒ박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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