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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작은아씨들>·<오즈의마법사> 알고 보면 '빨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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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쉿! <작은아씨들>·<오즈의마법사> 알고 보면 '빨간책'?

['어린이날' 폭풍 수다] 조, 앤, 도로시 한 자리에 모이다!

<작은 아씨들>(1868년), <오즈의 마법사>(1900년), <빨강 머리 앤>(1908년)…. 나른한 봄날 문득 어린 시절에 읽었던 소설 속 주인공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꼬리를 무는 질문들.

"<작은 아씨들>의 네 자매(메그, 조, 베스, 에이미)는 자라서 어떻게 됐을까? 조는 소원대로 작가가 되었을까? 아니면 어린 시절의 꿈은 뒤로 하고 현실에 굴복했을까? 옆집 청년 로리와 사랑에 빠지는 사이가 될까? 또 앤과 길버트는 어떻고? 공상을 좋아하던 앤은 어떤 어른이 될까?"

"<오즈의 마법사>의 허수아비는 왕 노릇을 잘할까? 서쪽 마녀 대신에 윙키를 다스리게 되는 양철 나무꾼은? 캔자스로 돌아간 도로시는 영영 오즈의 나라와 이별인가? 남쪽 마녀와 서쪽 마녀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어쩌다 서쪽 마녀는 오즈의 나라 최고 악한이 되었을까? 혹시 우리가 모르는 뒷얘기가 있는 것은 아닐까?"

어렸을 때 한 번쯤은 이런 질문을 떠올려 봤을 겁니다. '프레시안 books'는 어린이날을 맞아서 100년 이상 전 세계에서 사랑받아온 고전 중의 고전 <작은 아씨들>, <빨강 머리 앤>, <오즈의 마법사>의 세 주인공 조, 앤, 도로시를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말발로는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이들의 폭풍 수다, 그 현장을 여러분에게 공개합니다. <편집자>

ⓒ프레시안(손문상)

오즈의 나라, 서쪽 마녀의 진짜 정체는?

프레시안 : 세 분 모두 반갑습니다. <제인 에어 납치 사건>(제스퍼 포드 지음, 송경아 옮김, 북하우스 펴냄), <카르데니오 납치 사건>(제스퍼 포드 지음, 송경아 옮김, 북하우스 펴냄) 등을 해결하면서 유명해진 특수 기관 '리테라텍'의 서즈데이 넥스트 요원의 도움으로 세 분을 한자리에 어렵게 모셨습니다.

조 : 사실 넥스트 요원이 부탁하지 않았다면 귀찮아서 이런 자리는 안 오려고 했어요. 넥스트 요원에게는 빚이 있거든요.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1678년)의 주인공 크리스천이 미인계에 넘어가서 납치를 당할 뻔했는데, 그걸 넥스트 요원이 가까스로 막았어요. 그가 아니었으면 <천로역정> 자체가 사라질 뻔했고, 그랬으면 <작은 아씨들>도….

프레시안 : <작은 아씨들>에서 남북 전쟁에 참여한 아버지 없이 어머니가 네 딸을 키우면서 끊임없이 삶의 지침으로 읽어주는 책이 바로 <천로역정>이잖아요.

조 : 맞아요. 심지어 나를 비롯한 네 자매가 여러 가지 시련을 극복하면서 성장하는 내용인 <작은 아씨들> 자체가 이 <천로역정>의 은유라고 보는 시각도 있어요. 크리스천이 '멸망의 도시'를 떠나서 온갖 고난을 겪으며 '하늘에 도시'에 도달하는 과정을 10대의 눈높이로 가공했다는 거예요. 그러니 <천로역정>이 사라지면, <작은 아씨들>도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요.

도로시 : 큰일 날 뻔했네요. 저야 어차피 한국에 올 일이 있었어요. <오즈의 마법사>를 패러디한 <위키드>(그레고리 머과이어 지음, 송은주 옮김, 민음사 펴냄)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고 있거든요. 뮤지컬 <위키드> 때문에 1995년에 나온 소설이 이제야 주목을 받는다는 게 좀 씁쓸하지만요. (<위키드(Wicked)> 원서는 1995년, 한국어 판은 2008년에 처음 나왔다.)

앤 : 도로시! <위키드>에서 네 비중은 굉장히 적다던데…. 네가 물을 끼얹어서 녹아버렸던 서쪽 마녀가 주인공이라면서?

도로시 : 그러니까요. 이제야 익숙해졌지만 <위키드>가 처음에 나왔을 때만 해도 얼마나 당혹스러웠는지…. 서쪽 마녀가 악한이 된 게 그런 기막힌 사연이 있었다니…. 사실 남쪽 마녀 글린다한테 도움을 많이 받긴 했지만, 나 역시 그녀의 예쁜 척하는 '공주병'에는 살짝 진절머리가 나던 참이었거든. <위키드>를 보면서 내가 잘 못 본 게 아니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조 : 도로시, 난 네가 글린다한테 꼼짝도 못하는 줄 알았는데 속으로 그런 맹랑한 생각을 하고 있었네. (웃음) 나도 그 화장발 장난 아닌 글린다, 언젠가 한 번 골탕 먹여주려던 참이었는데, <위키드>를 읽고서 얼마나 통쾌했는지 몰라. 거의 100년 동안 오즈의 세계에서 군림하던 글린다의 허상을 통쾌하게 벗겨주었으니. 그리고 또….

<작은 아씨들>의 조, 결국 결혼한 이유는?

프레시안 : 아이고, 세 분 수다에 정신을 못 차리겠군요. <위키드> 얘기는 앞으로도 얘기할 기회가 있으니, 준비된 질문부터 차근차근 해결해 보면 어떨까요?

앤 : 그런데 미리 배포된 질문지를 보니까, 한숨부터 나오던데요. 여기까지 불렀다면 좀 특별한 얘기를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미 책에 다 나온 이야기를 다시 반복하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길버트와 내가 사랑에 빠지냐고요? 네, 길버트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까지 하잖아요. 차라리 길버트와 연애 중에 바람은 안 피웠는지, 이런 걸 물어보면 모를까….

프레시안 : 먼저 설명을 할게요. <작은 아씨들>, <빨강 머리 앤>, <오즈의 마법사> 그리고 다른 많은 소설도 그렇습니다만, 한국의 독자 대부분은 원작의 내용이 대폭 삭제된 축약 본으로 읽은 경우가 많아요. 그나마 더 많은 수는 책을 읽기보다는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그 줄거리를 파악하고 있고요.

그러다 보니, <작은 아씨들>은 아버지가 전쟁에서 무사히 귀환할 때까지, <빨강 머리 앤>은 길버트와 나란히 교사 양성 학교인 '퀸스 아카데미'에 입학할 때까지, <오즈의 마법사>는 도로시가 캔자스로 돌아올 때까지의 이야기만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랍니다. 그러니 독자들이 이런 뒷얘기를 궁금해 할 수밖에요.


▲ <작은 아씨들>(루이자 메이 올컷 지음, 유수아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펴냄). ⓒ펭귄클래식코리아
조 :
참 유감이군요. <작은 아씨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네요. 루이자 메이 올컷 할머니가 1868년 처음 <작은 아씨들>을 펴낼 때는 아버지가 귀환할 때까지만 다뤘거든요. 그런데 이 소설이 인기를 얻으면서 당시 여성 독자들이 마치 가의 딸들을 결혼시켜 달라고 난리법석을 떨었나 봐요.

결국 올컷 할머니가 독자들과 타협해서 내놓은 결과물이 바로 1869년에 나온 이름도 촌스러운 <좋은 아내들(Good Wives)>이예요. 이 소설은 <작은 아씨들>이 끝나는 시점에서 3년이 지난 후, 언니(메그)가 결혼하는 장면부터 시작해서 어머니(마치 부인)가 60세 생일에 딸과 손자의 축하를 받을 때까지 약 20년의 시간을 다룹니다.

나중에는 이 두 소설이 합쳐져서 현대 독자들이 읽는 <작은 아씨들>의 1부, 2부가 되었지요. 사실 나는 올컷 할머니가 2부는 차라리 안 썼다면 더 좋았다고 생각해요. 왜냐 하면, <좋은 아내들>은 19세기 후반 급속한 산업화를 겪던 미국 사회를 지키려면 '좋은 아내'가 이끄는 '좋은 가정'이 있어야 한다는 당시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소설이거든요.

앤 : 언니, 그렇게 말하면 올컷 할머니가 섭섭하겠어요. 그 성질머리에 독신으로 안 늙고 멋진 남자와 결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올컷 할머니가 <좋은 아내들>을 썼기 때문인잖아요. 사실 올컷 할머니 아니었으면 언니가 요즘도 드라마에서 끊임없이 반복 되는 전형적인 자매 삼각관계의 원형이 어떻게 될 수 있었겠어요? (웃음)

도로시 : 맞아요. 질문지에 나온 질문 한 가지를 해결하자면, 그 옆집 청년 로리는 <좋은 아내들>에서 조 언니가 아닌 넷째 에이미와 결혼을 한답니다. 로리는 끊임없이 조 언니에게 구애를 하지만, 언니는 그가 아닌 다른 남자에게 끌리지요. 그리고 그 남자가 바로 언니의 짝이 되고요.

▲ <좋은 아내들(Good Wives)>(루이자 메이 올컷 지음, 펭귄클래식 펴냄). ⓒ펭귄클래식
조 :
놀리지 마! 난 그 결혼을 하느라고 작가의 꿈을 포기해야 했다고! 올컷 할머니 역시 <좋은 아내들>을 쓰면서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너희들이 몰라서 그래. 올컷 할머니는 요즘의 기준으로 봐도 상당히 진취적인 의식의 소유자였어. <작은 아씨들>만 해도 당대의 규범적 요구에 순응하는 듯하지만 그 안에는 전복적인 요소가 곳곳에 녹아 있어.

예를 들어서, 19세기만 하더라도 <작은 아씨들>처럼 어머니가 소설을 이끌어가는 중심인물로 등장하는 경우가 드물었어. 하지만 소설 전체에서 어머니 마치 부인이 차지하는 위상을 살펴 봐. 심지어 <좋은 아내들>에서는 아버지가 집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소설에서 등장하지 않지.

더구나 <작은 아씨들>뿐만 아니라 <좋은 아내들>까지 전체에 걸쳐서 이 소설을 지탱하는 핵심은 어머니와 딸 또 자매 사이의 유대 관계야. 겉으로는 남자들에 의해서 사랑받는 것이 여성 최고의 행복이라고 얘기하지만, 사실 그들이 가장 의지하는 이들은 결국 어머니, 딸, 자매였어. 여성의 연대를 이토록 찬미한 소설은 처음이었을 걸.

1995년에 네덜란드에서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Antonia's Line)>이 나온 건 다 알고 있지? 4대에 걸친 모계 가족의 삶을 그린 페미니즘 영화로 호평을 받았지. 하지만 <작은 아씨들>이야말로 한 꺼풀 벗겨보면 마치 부인을 중심으로 한 모계 가족의 삶을 그린 원조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앤 : 하긴 <작은 아씨들>이 다음 세대 페미니스트에게 미친 영향은 공공연한 사실이니까. 버지니아 울프(1882~1941년)도 <작은 아씨들>의 영향을 받았고, 시몬 보부아르도 <작은 아씨들>을 수천 번 읽으면서, 정확히 말하자면, 조 언니를 보면서 작가로서의 꿈을 키웠다고 하니까. 그리고 알다시피 페미니스트의 대모가 되었고.

그런데 그런 올컷 할머니가 왜 언니를 결혼시킨 거야?

조 : 올컷 할머니가 왜 나랑 로리를 안 맺어준 줄 알아? 결혼이 여성의 유일한 삶의 목표라고 여기는 당대 여성 독자들이 요구하는 로맨스를 비웃어주기 위해서 내가 로리의 구애를 거절하도록 한 거야. 애초에 나는 멋진 독신 작가로 남을 운명이었다고! 생각해 보면, 나랑 베스는 올컷 할머니의 심술궂은 성미의 희생양이 된 거야.

프레시안 : 희생양이라고요?

조 : 그래요. <작은 아씨들> 전체에서 당대가 요구하는 규범적인 여성에 가장 가까운 게 누구에요? 바로 천사 베스잖아요. 끊임없이 희생하는 전형적인 여성상이죠. 그런데 올컷 할머니는 <좋은 아내들>에서 그런 베스를 죽여 버려요. 그는 이렇게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면서 희생하는 여성은 살아 있어도 '죽은' 것이라고 베스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좋은 아내들>에서 내가 결혼과 동시에 글쓰기를 포기하는 걸로 나오는 설정도 바로 이런 효과를 노린 거예요. 결혼과 한 여성의 가장 소중한 꿈을 바꾸는 설정을 통해서, 당대의 결혼이 갖는 문제를 우회적으로 폭로한 겁니다. 사실 <작은 아씨들>, <좋은 아내들> 곳곳에는 이렇게 억압 받는 여성의 처지를 고발하는 내용이 상당히 많아요.

앤 : 그래도 올컷 할머니 역시 언니를 제일 좋아했음은 틀림없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올컷 할머니가 언니가 남편과 함께 가난한 소년을 무료로 교육하는 학교를 꾸리는 이야기인 <조의 소년들>이라는 후편을 쓸 리가 없었겠지요. 그 소설에서 조 언니는 결국 '낭만적 사랑' 대신에 '대안 공동체'를 선택하는 행복한 여성이잖아요.

'빨강 머리 앤'은 캐나다의 '서희'!

도로시 : 그런 점에서 보자면, 앤 언니야말로 부러울 게 없는 사람이에요. 올컷 할머니와 달리 루시 몽고메리 할머니는 평생에 걸쳐서 앤 언니에게만 애정을 쏟았잖아요. 더구나 언니의 고향인 캐나다에서 '빨강 머리 앤'이 누리는 위상은 나나 조 언니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잖아요. 거의 국가적 상징으로 통하니까.

프레시안 : 맞아요. 한국에는 그냥 동화 속 매력적인 주인공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앤은 사슴, 비버, 단풍나무 등과 함께 캐나다를 대표하는 "국가적 아이콘"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걸로 알고 있어요. 2008년에는 출간 100주년을 맞아서 캐나다에서 많은 이벤트가 열리기도 했고, 한국에서도 100주년 공식 기념 판 <빨강 머리 앤>(강주헌 옮김, 세종서적 펴냄)이 나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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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강 머리 앤>(루시 몽고메리 지음, 강주헌 옮김, 세종서적 펴냄). ⓒ세종서적
조 :
그나저나 이건 확실히 짚고 넘어가요. <빨강 머리 앤>의 원래 제목은 <녹색 지붕의 앤(Anne of Green Gables)>이잖아요. 몽고메리 할머니는 무려 <녹색 지붕의 앤> 외에도 책으로만 열 권이 넘는 앤 연대기를 썼어요. 그 안에는 앤과 길버트뿐만 아니라 그 아이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20세기 초반의 캐나다 역사와 함께 녹아 있어요.

한국에 <토지>의 '서희'가 있다면 캐나다에는 몽고메리 할머니의 '앤'이 있는 셈이지요. <빨강 머리 앤>이라는 제목은, 사랑스럽기는 하지만 이런 앤의 위상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제목이에요. 더구나 앤 연대기의 상당수는 1981년 동서문화사에서 박순녀의 번역으로 열두 책의 전집이 나오기도 했어요. 그런데 아직도 '빨강 머리 앤'이라니….

프레시안 : <녹색 지붕의 앤>은 1952년에 일본에서 <빨강 머리 앤>이라는 제목으로 처음으로 번역되었어요. 그리고 그 영향으로 한국에서도 <빨강 머리 앤>으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미 익숙해진 '빨강 머리 앤'을 지금 바꾸기는 쉽지 않지요. 그래도 박순녀의 번역에 이어서 2002년에도 앤 연대기가 역시 동서문화사에서 김유경의 번역으로 총 열 책의 전집 다시 나왔습니다.

이 새로운 전집은 도서관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앤을 제대로 접할 수 있는 길이 한국 독자에게도 열린 셈입니다.


▲ <앤(Anne)>(전 10권, 루시 몽고메리 지음, 김유경 옮김, 동서문화사 펴냄). ⓒ동서문화사
앤 :
2004년에는 아예 동서문화사에서 몽고메리 할머니의 다른 소설까지도 따로 열 책으로 묶어서 냈더군요. 반가운 일이에요. 방금 조 언니가 '빨강 머리 앤'이라는 제목에 딴죽을 걸었지만, 저는 그 제목이 좋아요. 아마 몽고메리 할머니도 '녹색 지붕의 앤'보다 '빨강 머리 앤'이라는 제목을 더 좋아했을지도 모르겠어요.

내 빨강 머리는 소설의 무대가 되는 애번리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스코틀랜드 혈통을 상징하거든요. 나를 입양한 매슈 아저씨와 마릴라 아주머니가 스코틀랜드 인의 '실용적인' 모습을 상징한다면 빨강 머리의 나는 그들의 또 다른 모습인 '자유로운' 영혼을 상징하는 인물이니까요.

도로시 : 그런데 애번리 사람들이 처음에는 왜 그리 앤 언니를 받아들이는 걸 꺼려했는지 몰라. 빨강 머리의 같은 스코틀랜드 혈통인데도 거의 프랑스 인 취급하듯이 했잖아요?

앤 : 그건 몽고메리 할머니가 애초에 <빨강 머리 앤>을 캐나다 동부의 역사 속에 뿌리를 내린 소설로 쓰고자 했기 때문이야. 사실 애번리는 몽고메리 할머니가 자랐던 캐나다 대서양 연안의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가상적인 공간이야. 18세기 중반에 프랑스 군을 몰아내고 나서부터 이 섬에서는 스코틀랜드 인 다수가 동질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어.

그러니 이들이 외부의 이방인에게 경직된 태도를 가지는 게 당연하지. 처음에 애번리 마을 사람, 더 나아가 마릴라 아주머니조차도 나를 입양하는 걸 꺼려한 것은 이런 맥락을 알고서 읽어야 해. 당연히 소설 속 곳곳에서 나타나는 프랑스 인에 대한 혐오도 같은 맥락 속에서 이해를 해야 하고.

어린이를 위한 소설이라고 해서 무조건 세상을 예쁘게만 그려야 한다는 강박증을 가진 작가들이나 독자들은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해. 소설에서 세상을 예쁘게 그린다고 세상이 예뻐지니? 오히려 어린이의 눈높이로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보여주는 게 더 필요한 일 아닐까?

조 : 그런 점에서 봐도, <빨강 머리 앤>은 훌륭한 소설이지. 왜냐하면, 앤이 애번리 마을에 적응하는 방식은 그냥 순응하는 게 아니었잖아. 끊임없이 온갖 사고를 치면서 애번리 마을 사람이 당연하다고 여겼던 가치관에 도전하고 저항하잖아. 이방인에 대해서, 특히 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린드 부인과의 갈등은 그 상징적인 예이고.

앤 : 맞아요. 사실 내가 린드 부인에게 말대꾸를 했다가 그녀의 집을 방문해서 사과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나는 짐짓 과장된 말투로 "저는 정말 나쁘고 은혜를 모르는 아이이니, 처벌을 받고 경건한 사람들에 의해서 영원히 추방되어야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바보 같은 린드 부인은 놀라서 내 사과를 받아들이지만, 사실 그건 일종의 반어법이었거든요. (웃음)

'꽉 막힌 사람들(stuffy people)'이라고 말해주고 싶은 걸 '경건한 사람들(respectable people)'이라고 바꿔서 말했을 뿐이에요. 마릴라 아주머니가 그런 사실을 알아채고는 웃음을 참느라 고생했지요. 아마 <빨강 머리 앤>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그런 사실을 알고 웃음을 터뜨렸을 거예요.

프레시안 : 아까 캐나다의 '앤'을 <토지>의 '서희'에 비유했는데, 사실 몽고메리 할머니가 뒤에 비중 있게 다룬 아이들 얘기까지 염두에 두면 그 얘기가 더욱더 실감이 나는 것 같아요.

앤 : 맞아요. 몽고메리 할머니는 제1차 세계 대전의 충격에 캐나다가 어떻게 휩쓸리는지를 앤 연대기의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보여줍니다. 슬픈 일이지만, 내 둘째 아이 '월터'는 그 전쟁에 참전해서 목숨을 잃어요. 다이애나의 아이도 큰 부상을 당하고, 막내딸 '릴라'의 연인 포드도 전쟁에 참여합니다. 앤의 삶은 이처럼 캐나다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예요.

보통 미국의 문학 평론가들에 의해서 <빨강 머리 앤>은 올컷 할머니의 <작은 아씨들>을 잇는 지극히 '미국적인' 성장 소설로 평가되곤 합니다. 나는 조 언니의 또 다른 분신이라는 얘기인데요. 하지만 몽고메리 할머니의 앤 연대기 전체를 염두에 둔다면 아니 <빨강 머리 앤>만 보더라도 이런 평가는 너무나 '미국적인' 서운한 평가일 뿐이에요.

<오즈의 마법사>, 혁명을 선동하다!

조 : 앤, 나 좀 닮았다는 평가가 그렇게 서운하니? 그럼, <위키드>에서 졸지에 남쪽 마녀 글린다에게 놀아난 철없는 소녀가 되어 버린 도로시는 어떻겠니?


▲ <위대한 마법사 오즈>(오즈의 마법사 시리즈 1, 라이먼 프랭크 바움 지음, 윌리엄 월리스 덴슬로우 그림, 최인자 옮김, 문학세계사 펴냄). ⓒ문학세계사
도로시 :
괜찮아요. 사실 <위키드> 같은 소설이 더 일찍 나왔어야 했어요. 지난 100년간 <오즈의 마법사>는 미국을 대표하는 환상 소설처럼 인식되었고, 또 영화,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으로 만들어지면서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어요. 하지만 언론인이었던 프랭크 바움 할아버지가 이 소설을 쓸 때는 당대의 미국 사회를 비판하는 요소가 곳곳에 있었거든요.

<오즈의 마법사>가 나온 1900년이 어떤 시점인가요? 마크 트웨인이 <도금 시대(The Gilded Age)>(1873년)라고 불렀던 시대(1865~1901년)의 끝물이었어요. 이 시대에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가 모든 사람을 탐욕의 화신으로 만들었고, 미국이 바로 그 무대였습니다. 그 시대의 가장 성공한 탐욕가들이 바로 우리가 자본주의 정신의 원형이라고 묘사하는 카네기, 록펠러, 모건 같은 이들이고요.

<오즈의 마법사>를 보면, 바로 이런 미친 시대를 꼬집는 상징으로 가득해요. 예를 들자면, 허수아비는 급속한 산업화로 그 입지가 좁아진 농민을, 양철 나무꾼은 노동자를 상징합니다. 겁쟁이 사자는 미국-스페인 전쟁(1895~1898년), 미국-필리핀 전쟁(1899~1902년)에 반대한 평화주의자 혹은 백인과는 다른 모습의 아프리카, 아시아계 이민자들을 뜻하지요.

오즈를 지배하는 '오즈의 마법사'는 기득권을 가진 이들의 편에 선 당대의 대통령들이었습니다. '도금 시대'의 미국을 상징하는 에메랄드 성은 어떤가요? 사실은 초록색 안경을 벗으면 환상이 깨지는 곳에 불과했잖아요. 바움 할아버지는 평범한 미국인을 상징하는 도로시가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사자와 '더불어 함께' 온갖 역경을 이겨내며 이 허상을 깨는 과정을 그린 거예요.

조 : 그 역시 당대 미국인의 미덕으로 여겨졌던 '경쟁' 대신에 '연대'를 강조한 것이니 이단적이었지. 실제로 바움 할아버지가 사회주의적인 유토피아를 동경하였고,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시어도어 루스벨트 같은 진보적 정치인을 지지했던 사실을 염두에 두면 그런 해석이 무리한 것도 아니고.

그러고 보면, 지난 100년간 미국을 대표하는 <작은 아씨들>이나 <오즈의 마법사>가 당대의 반골들에 의해서 창조된 것도 참 아이러니한 일이네. 사실 여성 해방, 노동 해방, 농민 해방을 역설한 '빨간책'이었는데 말이야! 하하하. 이 수다가 기사로 나가면 <작은 아씨들>이나 <오즈의 마법사>가 한국에서 금서가 되는 거 아니야? (웃음)

도로시 : 바움 할아버지는 <오즈의 마법사> 후편을 쓸 생각이 없었는데, 역시 독자의 요청으로 계속해서 오즈 연대기를 쓸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총 열네 권의 방대한 오즈 연대기가 탄생했지요. 도로시,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사자의 뒷얘기가 궁금한 독자 입장에서야 즐거운 일이었겠지만, 그 뒤편은 애초 <오즈의 마법사>에 담긴 이런 전복적인 상징이 많이 약해졌죠.

조 : 당연하지. 바움 할아버지도 돈맛을 안 거지. (웃음)

프레시안 : 한국에서도 오즈 연대기 전 권이 최인자 번역으로 문학세계사에서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로 번역이 되었어요. 거기다 최근에는 <위키드>가 소개되고 있지요. <위키드>는 그레고리 머과이어가 1995년부터 펴내는 새로운 오즈 연대기입니다. <엘파바와 글린다(The Life and Times of the Wicked Witch)>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다섯 책이 나왔어요.


▲ <위키드>(그레고리 머과이어 지음, 송은주 옮김, 민음사 펴냄). ⓒ민음사
도로시 :
그 중 현재 한국에서는 두 번째(<리르 이야기(Son of a Witch)>), 세 번째(<겁쟁이 사자 이야기(A Lion Among Men)>) 책까지 소개가 되었습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서쪽 마녀 엘파바에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몰라요. 만약에 엘파바가 오즈의 마법사의 독재에 저항하는 지하 운동에 나섰다가 악한의 이미지를 뒤집어썼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정말로 물을 끼얹어 그 존재가 사라지도록 하는 그런 일을 떠맡지는 않았을 텐데…. 내가 오즈의 나라에 떨어지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친구였던 글린다와 엘팔바가 어떻게 남쪽 마녀와 서쪽 마녀로 대립하게 되었는지, 또 겁쟁이 사자의 숨겨진 이야기를 알려면 <위키드>를 꼭 읽어야 해요.

나는 <위키드>야말로 애초에 바움 할아버지가 쓴 <오즈의 마법사>의 진짜 속편이라고 생각해요.

조 : 역시 도로시는 마음이 넓다니까.

그러고 보면, 나도 <작은 아씨들>의 진짜 속편이라고 생각하는 소설이 하나 있지. 바로 칠레 작가 마르셀라 세라노의 <작은 아씨들이여, 영원히 안녕>(권미선 옮김, 문학동네 펴냄)이야. 이 소설은 <작은 아씨들>의 네 자매(메그, 조, 베스, 에이미)와 비교되는 칠레의 네 사촌자매 니에베스, 아다, 루스, 롤라를 내세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어.


▲ <작은 아씨들이여, 영원히 안녕>(마르셀라 세라노 지음, 권미선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앤 :
아다는 조 언니를 꼭 닮았던데요. (웃음) 이 소설은 <작은 아씨들>의 단순한 패러디를 넘어서는 작품이에요. 1973년 9월 11일 남미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인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를 전복한 피노체트의 쿠데타부터 2001년 9월 11일 테러까지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칠레 현대사가 네 자매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잖아요.

아다가 그토록 원하는 글쓰기도 단순히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을 넘어서 칠레가 안고 있는 상처를 치유하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고요. 좀 거창하게 이야기하자면 '여성 해방'에 방점을 찍었던 페미니즘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보편 해방')을 제시하는 소설이라고나 할까요?

도로시 : 그러고 보면, <빨강 머리 앤>도 언젠가는 다시 쓰여야 해요. 하긴 앤의 캐릭터는 이미 수많은 영화, 소설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변주되고 있지만요.

앤 : 사실 <빨강 머리 앤>의 리라이팅도 찾아보면 많아. 예를 들어서, 한국 작가 임수현의 <이빨을 뽑으면 결혼하겠다고 말하세요>(문학과지성사 펴냄)에 실린 '앤의 미래'도 그 한 예지. 이 소설은 만약 지금 한국 사회에서 앤과 같은 처지의 소녀가 실제로 어떤 상황에 처할지 묻고 있지. (침묵) 끔찍하지 않을까?

조 : 자, 그런 끔찍한 얘기는 그만! 수다가 애초 기획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긴 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이 자리는 '프레시안 books'의 어린이 책 특집호 머리기사로 기획된 거라고. 그나저나 해리 포터 같은 인기 스타를 두고서 우리를 불러내다니. 이 낡은 감각을 어떻게 할 거야? '프레시안 books' 걱정된다, 걱정돼!

프레시안 : 오늘 얘기를 들어보니, 전혀 낡지 않아요. 오히려 <작은 아씨들>, <빨강 머리 앤>, <오즈의 마법사>는 여전히 새롭게 읽히고 심지어 새롭게 쓰이고 있잖아요. 과연 100년 후에 <해리 포터>가 그 정도의 대접을 받을까요? 너도 나도 이야기를 강조하는 시대에 '진짜' 이야기가 어때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영원한 고전이라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했습니다.

앤 : 우리들 들으라고 괜히 하는 얘기인 줄 다 알아요! 뒤돌아서는 나이만 많이 먹은 수다쟁이들이라고 욕할 거면서. (웃음) 그나저나 앨리스는 왜 안 불렀어요? 앨리스가 없으니 꼭 한 자리가 빈 것 같잖아요. 혹시 도로시 너! 아직도 앨리스랑 화해 안 한 거야? 왜 너희 둘은 그렇게 만날 티격태격 싸워.

도로시 : 언니는 그 '4차원'이 어디가 좋다고. 앨리스가 있었으면, 오늘 얘기는 하나도 안 되었을 거야. 저번에 앨리스를 만났을 때…….

프레시안 : 그럼, 오늘 수다는 이 정도로 끝내겠습니다.

도로시 : 제 얘기는 마저 들으셔야죠. 저번에 앨리스를 만났을 때….

조 : 도로시, 그만. 앨리스는….

참고 문헌

강석진, '<오즈의 마법사>의 생산과 소비', <동화와 번역> 제11집(2006년), 11~36쪽.
강석진, '캐나다의 국가적 아이콘 <빨강 머리 앤>의 미국화, 영어영문학 제54권4호(2008년), 561~577쪽.
민경택, '<작은 아씨들> : 여성 성장 소설에 나타난 여성 억압의 문제', <미국 소설> 제14권 제2호(2007년), 51~73쪽.
이승은, '가정성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중 서술 :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 <19세기 영어권 문학> 제12권 1호(2008년), 55~76쪽.
이정희, '프랑크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 : 신화적 상상력의 상실과 회복의 미학', <영어영문학> 제46권 제3호(2000년), 847~8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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