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자'라는 개념은 원래 미디어 연구나 문화 연구에서 많이 애용되어 왔지만, 최근에는 철학에서도 수용자를 강하게 의식하는 듯하다.
"철학자들은 연필과 책만큼 운동화를 필요로 하는 여행자가 아닌가?"
어느 철학자의 책에 나온 이 산뜻한(?) 문구는 철학과 생활, 더 나아가 철학과 현대적 라이프스타일의 친밀한 교배를 통해 나타날 지식의 한 경향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철학은 무엇보다 (사유를 통한) 활동성이 강한 학문, 더 생활 친화적인 학문이라는 인식이 여러 결과물을 통해 주장되고 있으며, 권장되고 있다.
(굳이 이름을 붙여보자면) 이 '캐주얼 철학'의 시대를 못 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주장 또한 하나의 경향으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이들은 아카데미의 안팎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인문학에 관한 담론 투쟁에 관심이 많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에 복속된 정보화된 학문의 언어를 개탄하면서, 깊이와 전문성이 실종된 팬시 상품으로서의 철학을 적대시한다.
일례로 최고 경영자(CEO)를 위한 인문학을 비롯한 온갖 관공서나 문화 센터에서 행해지는 시민 교양 강좌 등을 놓고 "인문학이 라이프스타일에 필수인 교양 상품으로 전락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익히 들어봤을 것이다. (철학은 여기서 인문학을 대변하는 주자가 된다.)
2
▲ <철학자의 서재2>(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 알렙 펴냄). ⓒ알렙 |
이 책에는 '철학자'로서 현대 사회가 쉽게 폐기해 버린 철학적 가치를 지키겠다는 다짐이 묻어나 있으면서도, '~선언' '~의 종언' 같은 철학자들이 가져왔던 그 엄중하고 진중한 전통적인 톤은 옅어졌다. 또 요즘 대세가 된 '명랑'의 기조에 맞게 부담되지 않는 신변잡기에서 철학적 사유를 나누어보려는 태도도 힐끗 보인다.
다만 우리가 누군가의 서재를 구경한다는 행위는 양의 방대함 혹은 희귀한 컬렉션, 그 사이에서 나오는 제3의 지점인 수집 기준의 '분별 없음'도 포함될 텐데, 그런 점에서 <철학자의 서재 2>는 일장일단이 있다. 그럼에도 이 다채로운 컬렉션 속에서 두드러지는 시선을 꼽자면 '정치'와 '권력'이다.
사유의 신선도에 목을 매는 소비자들에겐 한 번쯤은 들어봄직한 의견도 포함되어 있으나, 사회 문제를 짚어내는 맥으로서의 언급은 제법 간결하다.
인상적인 글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소개한 '군주의 정치와 인민의 심판'(박종성)이었다. 저자는 <군주론>을 통해 현실에서 드러나는 '외양의 정치' '위선의 정치학'을 폭로한다. 으레 '외양의 정치'라는 시선 속에 논의되는 것은 쉬운 예로 보수가 '진보적인 척' 제스처를 취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기의의 진정성을 묻지는 않더라도 기표가 대중에게 일종의 성의로 다가오면서 나타나는 이 '착한 정치'는 경계해야 할 지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전술을 '교묘히' 사용하는 자의 존재를 폭로하는 것에 머물며 일종의 정치적 적대를 하나 추가하는 데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정치적 풍경이 역설적으로 "여전히 정상적인 정치, 인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 선의 윤리가 우월하다"(96쪽)는 점의 필요함을 보여준다고 강변한다.
생명과 권력 혹은 생명과 정치 또한 이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테마이다. 1990년대 한국 사회에서 불었던 소위 '몸'에 대한 문화 비평의 열풍이 욕망의 해석과 이론의 잡종 교배였다면, 이제 '몸'은 의료, 보건, 보험, 복지 등 사회 시스템과 접속하는 인간의 삶과 죽음, 그 생존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열쇳말이 되었다.
정치철학의 가장 최근 화두인 만큼 이 책도 그 지점을 놓치지 않는다. 생명 권력을 둘러싼 중요한 철학자인 미셸 푸코 혹은 조르조 아감벤 등의 핵심 주장이 무엇이었는지 놓쳤던 이들에게는 '예외 없는 생명을 사유하기'(한상원)나 '누가 괴담을 만들어내는가'(양정진) 등은 괜찮은 '요약 모음' 구실을 한다.
3
그러나 이 책을 일상생활의 쉬운 사례가 잘 가미된 '이론 요약 모음'으로만 보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다.
각 장에서 저자들은 자신이 소개하는 책을 통해 '실천'과 '개입'의 장을 마련하고자 애쓴다. 그 장 속에서 철학은 (거친 예지만) 어려운 논술 문제로 제시·소구되는 아이템인지 혹은 우리 시대가 회피할 수 없는 지점을 진단하는 사유의 청진기인지 그 양자택일의 선택지로 제시된다.
단, 이러한 선택지가 철학의 외연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철학의 인상만을 훑고 지나가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나는 전자처럼 철학의 실용성을 강조하는 이들을 자본주의 체제에 타협한 지식인으로 볼 생각도 없으며, 그렇다고 후자처럼 철학이 가져야 할 고유의 가치를 역설하는 자들을 고매한 이로 볼 이유도 못 느낀다.
오히려 우려하는 것은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왜 철학을 하는 걸까?' 하는 단순한 질문의 실종이다. 고로 나는 이 책의 서문에서 "건강과 젊음, 장수, 출세를 부추기는 책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이들은 그런 데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그게 바로 철학자의 길이며 그들의 삶이 비현실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라는 견해를 반쯤 동의하고 반쯤 거부한다.
여기서 나는 철학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