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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김미화 캐기, '막걸리 장터'와 뭐가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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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김미화 캐기, '막걸리 장터'와 뭐가 다른가

[한만수의 '백 년 동안의 검열'] 감시당하는 자들의 자기 검열

정부가 민간인에 대해 전 방위적인 불법 사찰을 했다고 한다. 정권에 비판적인 사람들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그들을 갖가지로 괴롭혔는데, 김제동·김미화 등 널리 알려진 연예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인기인에 대한 사찰은 대중적 반발에 부딪쳐 중단하였다고 하니, 지명도가 낮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임기가 남아있는 공기업 임원 등에게 사퇴를 강요하고, 거부할 경우 사찰을 통해 찾아낸 약점으로 협박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시정잡배, 아니 야쿠자와 구별하기 어려운 공갈협박이 아닐 수 없다.

감시당하고 있다고 느낄 때 인간들은 자기검열을 수행하게 마련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가. 권력이 작심하고 털더라도 내게서는 먼지가 나지 않을 것인가." 먼지 한 톨 없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니, 비판을 삼갈 수밖에 없게 된다. 교통순경 노릇이라도 하기 위해서는, 아니 교통위반을 신고라도 하기 위해서는, 평생 단 한 번도 교통위반을 한 적이 없어야만 할 판이 아닌가. 감시 권력은 모든 인간의 자기검열을 강제한다. 내가 직접 감시당한 바 없다 하더라도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말과 행동을 삼가게 된다.

▲ 방송인 김제동 씨. ⓒ프레시안(최형락)
떳떳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도 무사할 수는 없었다. '먼지'는 전혀 뜻밖의 곳에서 발견되기도 하니까. 법원의 조정을 수용했음을 빌미로 한국방송(KBS) 정연주 사장을 몰아내지 않았던가. 아니나 다를까 감시당한 사람들 중에 상당수는 끝내 압박을 못 견디고 사표를 제출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 걸까.

어둠 속에서 일하는 자들은, 상대방을 어둠 속으로 몰아넣기를 즐긴다. 유신 정권은 유신 반대 운동에 나선 일부 기독교 세력을 파렴치범으로 몰기 위해 횡령 혐의를 씌우기도 했다. 수도권 특수지역 선교위원회는 독일의 선교회로부터 2700만원을 지원받았는데, 1975년 검찰은 "피고인들이 원조자금 중 400여만 원을 순수한 선교 목적을 떠나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된 사람들의 가족 생계비로 지출한 것은 배임행위"라며 김관석 NCC 총무, 박형규 목사, 권호경 목사, 조승혁 목사를 구속했다.

독일 선교회의 사무총장까지 나서서 공금 사용은 정당했다고 증언했음에도 이들은 결국 6개월에서 10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몇 가지 정보를 입맛에 맞도록 가공하면 민주화 인사가 졸지에 파렴치범으로 둔갑되어 버리는 것이다. 기시감.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일가에게 씌워진, '금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 운운의 '소설 쓰기.'

염상섭의 소설 <만세전>(1924)에서 주인공 이인화는 철저하게 감시당한다. 가는 곳마다 '도리우찌' 쓴 사내가 미행하고, 도처에서 헌병과 체포된 사람들을 만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왜 어딜 가느냐 묻고, 가방 속의 책은 도대체 무슨 책인지 끄집어내 보고, 집에서 멀리 떠날 때는 미리 신고하고 가라고 요구한다. 감시에 지친 그의 내면은 황폐화된다. 나는 '불령선인'이 아니요, 내 형님이 환도를 차고 다니는 친일파인데 그럴 리가 있겠소, 외치고 싶어진다. 열차 안에서 헌병이 위압적으로 돌아다닐 때, 바로 옆에 있던 조선 청년이 이유도 모른 채 잡혀갈 때, 그는 이렇게 느낀다. 혹시 내게 문제가 생기면, 저 미행자가 나를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미행자는 내 형님이 친일파임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 걸 모르는 헌병이 자신에게 혐의를 둔다면, 저 미행자가 내 결백을 입증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감시자를 '빽'으로 삼아 신원 보증을 받고 싶어하는 이인화의 내면은 거의 정신 착란적이다. 부당한 감시와 억압은 권력의 '빽'을 찾게 만든다. 합리성의 영역에서 자신을 구제할 길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비합법적 영역에서 살 길을 찾는다. 일제 이후로도 지속된 사찰 국가는 무수한 '빨갱이'와 '반국가사범'을 만들어냈고, 그 법망에 걸린 무고한 사람들은 '빽'을 찾아 구명의 길을 찾아오지 않았던가.

권력이 타락할 때 대중은 타락한 방식으로 대응하게 된다. '빽'이 지배하는, 연고주의 사회로 이행하게 된다. 오늘 대한민국 국민 중 누군가는 이렇게 외치고 싶어질 지도 모른다. 내가 이래봬도 지난 대선 때 1번을 찍은 사람이오. 나도, 사돈의 팔촌을 따지면, '여섯 단계'만 거치면, 이명박 대통령을 잘 아는 사람이오.

일제는 정보 위원회 또는 내각 정보부에서 모든 정보를 관장하였다. 3.1 운동 직후 항일 운동을 막기 위해 정보 위원회를 만들었고, 전쟁기로 들어가면서 전시 통제를 위해 내각 정보부를 만들었다. 모든 정보의 수집, 분류, 통제 기능을 일원화한 것이다. 헌병들은 장꾼으로 변장하고 막걸리를 함께 마시면서 장터에서 오가는 말들을 수집했으며, 고등계 형사들은 밀정을 고용해서 또 고문과 매수, 협박을 통해서 항일 세력 정보를 수집했다. 막걸리를 함께 마시던 장꾼이 밀정이었다니 기가 막히지 않은가. 겁이 나서 입을 닫아버릴 수밖에 없었다. "자나깨나 말조심,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수집된 정보는 모두 정보부로 모아 정권에 유리한 정보와 불리한 정보로 분류했다. 유리한 정보들은 각종 언론을 통해 적절히 가공하여 홍보했으며, 불리한 정보는 철저한 검열을 통해 차단했다. 감시는 선전과 검열로 이어진 것이다. 조선인들은 가공된 정보만을 토대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강요받았다.

정보를 모으는 자들은, 그 정보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사용하려는 유혹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래서 민주 국가에서는 아예 일정한 범위 이상의 정보 수집을 금지시킨다. 민주화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도 안기부가 국내 정보를, 기무사가 민간인 정보를 수집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 법들은 지금 안녕하신가?

특고(特高), 고등 경찰계 등을 통괄한 내각 정보부의 전 방위적 국민 감시 기능은 해방 이후도 특무대, 경찰 사찰계, 중앙정보부, 보안사령부 등으로 이어졌다. 이명박 정권에도 이런 식으로 정보를 종합 관리하는 조직이 있지 않을까.지지 기반이 취약한 권력은 정보 통제를 통해 자기를 보존하려는 속성을 지니게 마련이니 말이다. 일제의 내각 정보부에 상응하는 정보 조직은 이명박 정권에서는 어디일까, 정권이 가공한 정보의 나팔수 노릇을 하는 언론들은 어디일까, 그것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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