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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공이 용꿈 꾸는 정치인에게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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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공이 용꿈 꾸는 정치인에게 고함

[철학자의 서재] 강태공의 <육도삼략(六韜三略)>

세월을 낚던 강태공

현실주의적 정치사상사에 있어서, 서양에는 마키아벨리(1469~1527년)가 있다면 동양에는 바로 강태공이 있다. 그러나 나이로 따지자면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 후기 태생이므로 기껏해야 600살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강태공은 전설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그리고 <육도삼략(六韜三略)>을 강태공의 사상이라고 믿는다면, 중국 주(周)나라의 건국 공신임을 감안하면, 나이가 거의 3000살이 넘는다.

보통 중국의 병법서를 꼽는다면 모두들 <손자병법(孫子兵法)>만을 떠올리고 <육도삼략>도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육도삼략>은 책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군무(軍務)를 전략(前略)과 전술(戰術)을 나눈다면, <손자병법>에 비해서 전략의 성격이 더 크다. 그런 점에서 <육도삼략>은 <손자병법>보다도 국가대사(國家大事)에 있어서 중요도 면에서 보나 스케일 면에서 보나 한 급 더 우위에 있다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첫사랑의 만남

▲ <육도삼략>(강태공 지음, 이기석 풀어 씀, 홍신문화사 펴냄). ⓒ홍신문화사
이 <육도삼략>은 강가에 앉아 세월을 낚고 있던 강태공과 그의 명망(名望)을 듣고 찾아간 주나라 문왕(文王)의 정치적-군사적 전략에 관한 문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어쩌면 가장 중요한 구절일지도 모르는 바로 이 만남을 묘사한 한 구절을 살펴보자.

문왕이 사냥을 나가려 하자, 사편(史編)이 점을 쳐보고 나서 말했다. "위양(渭陽)에서 사냥을 하시면 크게 얻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 장차 공작과 후작이 될 인재를 얻을 징조입니다. 하늘이 당신에게 스승을 보내 당신을 보좌하여 나라를 빛내게 하고, 이어 3대를 도울 것입니다." 문왕이 말하기를, "조짐이 그와 같은가?" …… 이에 문왕은 3일 동안 재계하고 전거(田車)에 전마(田馬)를 매어 타고 위양으로 사냥을 나갔다. 마침내 그곳에서 태공이 잔디 위에 앉아 낚시질하는 것을 보았다. …… 태공이 대답했다. "군자는 그 뜻을 얻는 것을 즐기고 소인은 그 일을 얻는 것을 즐긴다고 합니다. 이는 지금 제가 낚시질하는 것과 흡사합니다." (13쪽)

여기서 등장하는 점, 하늘, 스승, 조짐, 3일 동안의 재계 그리고 즐거움에 주목해 보자. 여기 도입부에는 강태공의 정치·군사 철학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다. 하지만 주나라 문왕과 강태공의 첫 만남을 서술한 이 대목만큼 동양 고유의 정치철학적 특색을 뚜렷하게 드러낸 곳은 없을 것이다. 마치 운명적인 첫사랑을 만난 그때 그 순간의 기억처럼 말이다.

문왕은 점(占)이라는 우연 혹은 계시, 운명에 이끌려 강태공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하늘의 명령이자 선물이며, 강태공은 비록 신하이지만 왕의 스승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이러한 큰 스승을 만나기 위하여 주문왕(周文王)은 일국의 왕이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3일 동안 몸을 깨끗하게 하여 온 정성을 다 기울인다.

이것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매우 뚜렷하게 대조된다. <군주론>에서는 이러한 만남의 '과정'에 의미부여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인 내용만을 다루며, 또한 반대로 도입부에서는 왕의 정성이 아니라 마키아벨리의 신하로서의 정성만이 묘사될 뿐이다.

여기에는 철학적으로 말한다면 가장 중요한 본질인 실존과 존재의 대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존재자로서의 정치·군사적 내용 이전에 이미 만남의 과정으로서, 하나의 운명과 정성으로서, 예식(禮式)으로서, 분위기로서, '실존'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것은 고정된 내용으로 포착할 수 없으며, 일종의 동사형으로서, 가능성으로서, 기대로서 드러나는 것이다.

이 강태공과 주문왕의 첫 만남에는 실존적 결의와 진지함, 정성, 기대와 가능성이 분위기 잡혀 있다. 그것은 또한 왕과 신하라는 개개인의 대면이 아니라 하늘의 계시와 감응(感應)이라는 온 우주적 계기가 함께 둘러싸고 있다. 그러므로 이 만남은 하늘(天)과 땅(地)과 사람(人)이 함께 어우러진 만남이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 하나 더. 바로 이 만남에는 즐거움이 있다.

사랑

문왕이 태공에게 물었다. "원컨대 나라를 다스리는데 가장 중요한 일을 들려주십시오. 군주를 존엄케 하고, 백성으로 하여금 편안케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태공이 말했다. "오직 백성을 사랑하면 됩니다." (30쪽)

여기서도, 결코 빠질 수 없는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 사랑이 등장한다.

"대명(大明)이 발동하면 만물이 모두 비치고, 대의(大義)가 발동하면 만물이 모두 이로우며, 대병(大兵)이 발동하면 만물이 모두 복종합니다. 성인의 덕은 참으로 위대하여 홀로 듣고 홀로 보니, 이 어찌 즐겁지 않습니까." (81쪽)

그런데 바로 이 사랑은 만물을 비치고, 만물이 이로우며, 만물이 복종하는 것이기에 너무나도 즐거운 것이다.

문왕이 말했다. "공의 말은 내 생각과 일치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이를 생각해서 잊지 않고 천하를 다스리는 상도(常道)로 삼겠습니다." (87쪽)

사랑은 또한 믿고 따르는 것이다. 서로의 신뢰 가운데 그 이야기는 쇠를 자를 만큼 단단하고, 난초와 같은 향기가 짙게 풍겨온다.

태공이 말했다. "무릇 병사를 일으키려면 장수로서 명(命)을 삼습니다. 명은 두루 통해야 하며 하나의 술책만을 지키지는 않습니다." (105쪽)

'군자불기(君子不器 : 군자는 그릇에 국한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사랑할 수 있는 자는 군자이며, '군자불기(君子不器)'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신비

무왕이 태공에게 물었다. "율음으로써 삼군의 동정과 승부의 결과를 알 수 있습니까?" 태공이 대답했다. "깊도다, 군주의 물음이여, 대저 율관(律管)에는 열둘이 있고, 그것을 요약하면 5음(五音)이 되는데, 궁(宮)·상(商)·각(角)·치(徵)·우(羽) 5음이 진정한 소리입니다. 만대에 걸쳐 변함이 없으며, 5행(行)의 신비로서 불변의 도(道)입니다. 금(金)·목(木)·수(水)·화(火)·토(土)는 각각 그 이기는 것으로써 공격하는 것입니다. 옛날 삼황(三皇)의 시대에는 허무(虛無)의 정(情)이 강강(剛强)을 제어했으며, 문자는 없었으나 모두 5행에 의하여 천하를 다스렸던 것입니다. 5행의 도는 천지자연의 법칙이며, 육갑(六甲)의 나뉘어짐이며, 미묘한 원리입니다." (155~156쪽)

<육도삼략>에 또한 빠짐없이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이 등장한다. 무엇보다도 <손자병법>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신비주의인데, 음향의 다양한 색조로서 군사적 형세를 파악하고, 공격을 할지 말지, 퇴각 여부 등까지도 알 수 있다.

"무릇 성을 치고 읍을 포위함에 있어 성 안의 기색(氣色)이 불 꺼진 재와 같다면 성을 무찌를 수 있습니다. 성의 기(氣)가 나와 북을 향한다면 성을 점령할 수 있습니다. 성의 기가 나와 서쪽을 향한다면 성을 항복시킬 수 있습니다. 성의 기가 나와 남쪽을 향한다면 성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성의 기가 나와 동쪽을 향한다면 성을 칠 수 없습니다. 성의 기가 나왔다가 다시 들어간다면 성주가 도망하는 것입니다. 성의 기가 나와 아군의 위를 덮는다면 아군은 병들게 됩니다. 성의 기가 나와 높이 올라가서 그칠 줄 모른다면 싸움이 오래 계속될 것입니다. 무릇 성을 치고 읍을 포위한 지 열흘이 지나도록 천둥이 울리지 않고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반드시 빨리 떠나야 합니다. 이럴 때는 서에 반드시 큰 도움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칠 수 있음을 알고 치며, 칠 수 없음을 알고 그치는 것입니다." 무왕이 말했다. "좋습니다." (164~165쪽)

여기서는 기(氣)의 차원까지 등장한다. 기운이 드나드는 방위에 따라 동쪽과 남쪽은 양(陽)에 해당하기 때문에 함락시킬 수 없고, 서쪽과 북쪽은 음(陰)에 해당하기 때문에 함락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동쪽은 소양(小陽)이기에 칠 수 없는 것이며, 남쪽은 태양(太陽)이기에 빼앗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마찬가지로 서쪽은 소음(少陰)이기에 항복시킬 수 있고, 북쪽은 태음(太陰)이기에 점령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운(氣運)의 형세까지 파악하는 장수가 있다면 과연 얼마나 무시무시할 것인가! 또 이러한 정치가가 있다면 그 얼마나 위대할 것인가!

아름다운 자세, 태도

대저 삼황(三皇)은 아무 말이 없어도 덕화가 사해에 넘쳐흘렀다. 그러므로 천하 사람들은 공을 돌리 곳을 알 수 없었다. 제(帝)는 하늘의 도(道)를 따르고 땅의 법칙을 따르며, 말이 있고 명령이 있어 천하가 태평했었다. 군신(君臣)이 서로 공을 사양하여 사해에 덕화가 널리 행하여지니, 백성은 천하가 그와 같이 잘 다스려지는 까닭을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신하로 하여금 예(禮)와 상(賞)을 기다리지 않고 공을 세우게 한다면 아름다우면서도 해로움은 없다. (348쪽)

억지로 다스리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다스려지는 '무위지치(無爲之治)'는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현대 시대에는 과연 '무위지치(無爲之治)'를 요구하는가? 요임금 시대의 태평성대를 칭송하는 다음의 유명한 시도 하나 감상해 보자. "해가 뜨면 일어나 일터로 나가고, 해가 지면 들어와서 쉬네. 밭을 갈아 먹고, 우물 파서 물 마시니, 임금의 힘이 무엇이 있으랴." 비록 과정과 수단으로서는 너무나 이상적이나, 적어도 목적으로서는 지향해야 할 바가 아닐까 한다.

강태공과 주문왕의 만남은 이렇게 첫사랑처럼 다가왔고, 첫사랑처럼 신비하고 아름답게 그들의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신비하고 아름답게 만들어갈 것인가? 우리가 무엇을 지향하고, 무엇을 생각하느냐보다,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함께 하는가에 더욱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바로 우리의 실존적 터전을 말이다.

이념보다 현실적 삶, 앎보다 행동을, 본질보다 실존에 주목해야 한다. 기억을 그리워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마치 사랑처럼 말이다.

필자 이메일 주소 : plotin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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