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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보다 '정○용'이 익숙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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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보다 '정○용'이 익숙한 이유?

[한만수의 '백 년 동안의 검열'] '만리 방화벽' 넘어서기

'만리 방화벽'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의 인터넷 검열 시스템을 만리장성에 빗대어 부르는 말이다. 한 중국인 친구에 따르면, QQ(한국의 '네이트온'과 비슷한 중국의 메신저 프로그램)를 통해 친구와 티베트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며칠 뒤에 경찰이 집으로 찾아온 적도 있었다 한다. 검열 당국은 원하면 언제든지 개인의 메일을 검열할 수 있다. 비밀번호 같은 것은 물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일은 주로 인터넷 사업자들이 중국의 압력에 굴복해서 개인의 통신을 걸러 내거나 각종 정보를 넘겨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야후는 중국의 언론 검열 비밀 자료를 이메일로 서방에 폭로했던 중국 기자 시타오(師濤)의 아이피(IP) 주소를 넘겨주어 그가 체포당하도록 한 바 있다. 그는 '국가 일급 비밀 누설' 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야후는 실로 그 이름에 부합하는 행위를 한 셈이다. <걸리버 여행기>에서 '야후' 족은 저열하고 탐욕스러운 인간을 상징하는 이름이니까.)

톈안먼, 파룬궁(法輪功), 달라이 라마가 중국의 금지어 '삼대천왕'이라고 하거니와, 꼭 이 중국에서뿐만 아니라 검열을 하고자 하는 자들은 금지어 목록을 지니고 있게 마련이다. 검열이 목표하는 바를 기계적으로 걸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행정 효율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처럼 정보의 양이 매우 많고 기계 장치에 결정적으로 기대는 정보 유통 방식에서는 금지어 시스템은 매우 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만일 금지어 시스템에만 의존한다면 필요한 정보까지도 차단당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톈안먼을 가는 길 찾기 기능도 제대로 작동될 수 없을 것이며, 달라이 라마를 비판하는 글쓰기 역시 차단될 것이다. 이렇게 기계적으로 금지할 수 없는 것들을 보완하기 위해 문맥적 검열이 병행된다. 톈안먼 길 찾기나, 달라이 라마를 비판하는 글은 선별적으로 허용한다.

문맥적 검열은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한다. 세계 최고의 인터넷 감시 기술을 과시한다는 중국에서는 3~4만 명 정도의 숙련된 인터넷 검열관이 상시 감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검열 강화뿐만 아니라 '일자리' 확대까지, '꿩 먹고 알 먹기'인 셈이다. 당국에서 알게 되면 당장 청년 일자리를 위해 이 제도를 수입하겠노라 나설 듯하니 우리끼리만 알고 넘어가기로 하자.

그러나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에서 사람 손으로 그 '바닷물'을 일일이 헤아리는 일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금지하고자 해도 빠져나갈 구멍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리 4만 명이라는 매머드급 검열 기구(조선 총독부의 검열관은 대개 20~30명 규모였다)를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바닷물처럼 넘쳐나는 정보 모두를 검열할 수는 없다.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상시적 감시를 하더라도, 나머지는 금지어 검색 시스템을 통해 검색된 대상에 대해서만 문맥적 검열을 보완적으로 시행할 수밖에 없다(물론 부정기적으로 무작위 표본 추출을 통해 점검하긴 하겠지만).

여기에서 문제가 생긴다. 금지어 우회의 경로가 무제한적으로 열려있으니까. '톈안먼'을 모두 검색해서 들여다본다면 '톈?먼'은 어떻게 할 것인가. '톈&*%안*^$먼'은? 이런 단순한 차원의 우회 말고도 빠져나갈 구멍은 무제한적이다. 중국어는 피차 잘 모르는 처지이니 우리말로 예를 들어보자. 예컨대 '성기'를 가리키는 단어를 피해야 한다면 어떤 우회가 가능할까. 그것, 물건, 거기, 고놈, 그놈 등등이 나온다. 어디 그뿐인가. '거시기'는 어떤가. 사투리와 각종 변이태도 있다. 거석, 거식…. 금지어 목록은 끝없이 길어질 수밖에 없지만, 아무리 길어진다고 하더라도 완벽해질 수는 없다. 언어 자원이란 무한한 것이니까. 발언하고자 하는 자의 내면이 지속되는 한, 금지는 완벽할 수 없는 것이다.

▲ 중국의 인터넷 검열에 항의하여 시위 중인 국제앰네스티 활동가. ⓒAFP

식민지 시기에도 금지어 목록은 있었지만 오히려 문맥주의적 검열이 더 강한 편이었다. 종이 출판이어서 인터넷에 비해 발화자가 적은 편이며, 출판물만 치더라도 그 양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적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 시기의 금지어는 예컨대 이런 것들이었다. '일본'이라고 쓰지 말고 '내지(內地)'라고 쓰라고 했다. 즉 자기네 땅은 '문명의 안쪽'이고, 조선은 '외지(外地)', 즉 문명의 변방이라는 뜻이었다. '내선일체', 내지와 조선이 하나라는 단어도 그래서 나온 말이었다. 그러자 조선인들은 '일본내지'라는 말을 만들어서 썼다. 금지어와 장려어를 결합시킨 것이어서 어정쩡하게 통용되었다. 나중에는 '조선내지', '몽골내지' 등의 복합어들이 무수히 태어났다. 내지라는 문명의 안팎을 차별하는 용법이 무화된 셈이다. 그러자 나중에는 '조선내지'는 금지어로 바뀌었다. 끝없이 길어지는 금지어 목록.

'일로(日露)' 전쟁('러일 전쟁')이라는 단어까지 '내로(內露)' 전쟁으로 바꿔 부르기도 했다. 이미 굳어진 지 오래된 말까지 바꿔버리는 방식의 야유였다. 게다가 권장어를 쓰는 듯하지만, 그 전쟁은 당신들의 전쟁일 뿐(즉 '내지'와 러시아의 전쟁일 뿐) 조선의 전쟁은 아니라는 뜻까지를 함축하고 있었다.

연호(年號)는 서기나 불기 단기 등을 쓰지 말고 쇼와(昭和)나 다이쇼(大正) 등 일본 연호를 쓸 것. 고민하던 조선인들은 '갑자을축'하는 육십갑자 연호를 사용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우가키 총독이 공동묘지를 순시하다가 일본 연호를 쓴 비석이 하나도 없음을 발견하고 분노해서 하마터면 "저 비석들을 모두 때려 부숴라"라고 명령할 뻔 했다는 일화까지 전해진다(<윤치호 일기>).

그렇지만 명문화된 금지어는 아니니 육십갑자는 당분간은 통용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출판된 책들의 간기(刊記)는 대부분 쇼와, 다이쇼를 사용했지만 저자 서문이나 글 말미에 글을 쓴 날짜를 표기할 때는 육십갑자를 사용한 경우가 많다. 출판사의 공식 연호와 작가의 비공식적 연호가 서로 달리 표기된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당신들의 금지어 규정을 따르지만, 비공식성이 강한 저자들의 연호 표기까지 그렇게 요구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식의 항변이 있었을 터이며, 검열 당국과 이런 정도의 선에서 절충이 이뤄진 결과일 터이다.

문맥주의를 우회하는 수법도 생겨났다. 일제가 남긴 <편집에 관한 희망 및 그 지시 사항>(1939년)의 다음 규정은 그런 문맥주의를 우회하려는 시도를 차단하기 위해서 생겨난 것이었다. "결론이 좋으면 문장의 중간에는 불온당한 자구의 사용이 별로 지장 없음과 같이 생각되나 잘못하면 독자의 대부분은 그 불온 부분에 흥미를 가질 경향이 있으므로 주의할 것(일례를 들면, 공산주의 사상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중간에 쓰고 나중에 가서 이런 사상은 나쁜 것이라고 한다면 이미 그 주의가 어떤 것임을 알 것이므로 이런 예의 글은 쓰지 말 것)."

금지란 위반을 전제로 성립된다. 금지 규정이 있다함은, 이미 이런 사례가 적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그러니 식민지 시기 문헌들을 읽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결론에서는 특정 대상에 대해 비판하면서 본론에서는 이에 대해 길게 소개하는 글의 경우, 필자의 의도를 검열 상황 속에서 읽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감안치 않고 그 텍스트를 문자 그대로만 읽을 경우, 필자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독서를 할 가능성까지 없지 않은 것이다.

냉전 시기에 월북 문인들의 이름도 금지어였다. 대중들에게는 아예 금지였지만, 학자들이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으니 정○용(정지용), 이태○(이태준) 하는 식으로 표기하는 것으로 절충했다. "네가 지금 연구하고 있는 것은 금지 대상이라는 사실을 꿈에라도 잊지 않는다면"이라는 조건절을 붙여야만 연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87년 해금 조치 이전까지는 그랬다. 지금도 나는, 시각적 인상에서는 '정지용'이라는 풀 네임보다는 '정○용'이라는 이름이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읽기는 정지용이라 읽고, 쓰기는 '정○용'이라고 쓰는 방식에 너무도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는 해금되었지만, 그 영향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한번 자행된 검열은 한 인간의 기억까지 지속적으로 검열하는 것이다.

식민지 시기부터 인터넷 시대까지, 말하려는 자와 틀어막으려는 자 사이의 숨바꼭질은 지속되어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고비마다 승리는 결국 입을 틀어막으려는 자가 아니라 말하려는 자에게 돌아가곤 했다. 언어적 변주와 탈주란 끝 간 데 모르는 것이므로, 검열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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