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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을 닮은 신, 우주를 창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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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을 닮은 신, 우주를 창조하다

[프레시안 books] 앨런 라이트먼의 <Mr. G>

지금처럼 <스타크래프트>가 컴퓨터 게임의 대명사로 불리기 전, <심시티>라는 컴퓨터 게임이 있었다. 게임 디자이너 윌 라이트에 의해 1989년에 등장한 도시 건설을 소재로 한 이 게임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한 도시의 운명이 내 손에 있다! 도시의 자원을 마음대로 배분하고 세율을 임의로 정할 수 있는가 하면, 도박을 합법화할 수도 있다.

심지어 그 이후의 버전에서는 도시의 지형도 변화시킬 수 있다. 이쯤 되면 가히 이 가상의 세계에 거주하는 시민들에게 게임 플레이어는 '신'이다. 이 심시티의 성공에 힘입어 소위 '심 시리즈'가 뒤를 이어 발표되었다. <심팜(SimFarm)>, <심사파리(SimSafari)> 등에 이어 지구의 운명으로 게임을 하는 <심어스(SimEarth)>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이 재미있는 게임이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주어진 예산은 제한되어 있고 운영을 잘못하면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고 때때로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도 발생한다. 최악의 경우 도시가 멸망할 수도 있다. 심어스의 경우는 지구과학, 생물학, 문화 등에 관한 광범위한 지식을 잘 활용해야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자, 이제 이 <심시티>의 우주 확장판, 이른바 <심코스모스(SimCosmos)>가 있다고 하자. 아무것도 없는 것('Nothingness' 빈 '공간'이 아니다! 공간도 만들어 내야 하니까!)에서부터 적절한 기하를 가진 시공간을 만들고 적당한 에너지를 부여하고 물질들은 어떻게 구성될지, 그리고 그 물질 간의 상호 작용의 종류와 세기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등의 세부 사항을 결정해야 한다. 이들 매개 변수에 따라 각자가 만든 것, 즉 우주(universe)는 명맥을 이어나갈 수도 있고 곧바로 소멸할 수도 있다. 또 소멸되지 않는다 해도 매우 무덤덤한 우주가 되거나, 아니면 아주 역동적인 역사를 겪게 될 수도 있고, 혹은 생명체가 존재하는 우주가 될 수도 있다.

(앨런 라이트먼 지음, 이은정 옮김, 다산책방 펴냄). ⓒ다산책방
이 가상의 게임에서의 플레이어의 이름은 'Mr. G'이고 곧 그것은 앨런 라이트만의 최근작인 과학 소설의 제목((이은정 옮김, 다산책방 펴냄))이다. 'G'는 아마도 신(God)을 의미한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소설 어디에도 'Mr. G'가 신이라는 말은 없다. 심지어 'Mr. G'라는 말조차 나오지 않는다.)

그가 창조한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 혹은 신화의 대부분의 신들이 만물의 거의 모든 디테일을 창조한 것에 반해, Mr. G는 시간과 공간, 음악과 양자 물리학, 그리고 몇 가지 작동 원칙들, 대칭, 상대성, 인과율 등등의 손으로 꼽을 수 있는 몇 가지들을 창조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자기 조직화하여 나타난다. 물질은 시공간의 에너지로부터 나타나고 그로부터 각종 원소들이 생겨나고 중력의 작용에 의해 항성과 은하가 탄생한다. 그리고 드디어 '생명'이 '스스로' 탄생한다. 이 지점이 통상의 창조 신화에 옷을 입혀 만든 여타의 과학 소설(SF)-예컨대 제임스 건의 1970년 작인 짧은 단편(불과 두어 쪽에 불과하다), '유치원(Kindergarten)'-과 다른 점이다.

또 이 소설이 단순히 창조 신화의 우화적 버전이 아님을 드러내는 증거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신으로 보이는 그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매우 인간적이다. 그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다. 예를 들자면, 상호 작용들의 세기를 조화로운 정수비로 정했다가 낭패를 본다. 사실 이것은 현대 물리학의 계층 문제(hierarchy problem : 가령 전자기력의 세기에 비해 중력의 세기는 왜 지나칠 정도로 작은가 하는 의문)를 시사한 것이다. 또 여러 가지 물리학적 매개 변수들이 다른 수많은 우주들을 만들어 낸다. 이 점 역시 끈 이론(string theory)의 한 갈래인 '풍경 이론(landscape theory)'의 냄새를 짙게 풍긴다. 그러나 그가 가장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는 우주는 '알람-104729'(아마도 우리의 우주)이다.

또 그는 고뇌한다. 그가 만약 인격신이라면 그는 햄릿을 닮았다. 그가 만든 우주에서 생겨난 생명체의 운명에 슬퍼하고 기뻐하며 그와 대척점에 서 있는 '벨호르'라는 존재와 창조의 책임이나, 선과 악, 혹은 미와 추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벌인다. 이러한 것들은 이 소설이 단순히 최신 우주론의 SF적 우화이거나 혹은 그 반대로 SF의 옷을 입은 '지적 설계론'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말미의 한 장면, 그가 창조한 우주에서 생겨난 한 생명이 다시 물질로 회귀하고 순환하는 과정은 아서 클라크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혹은 스탠리 큐브릭이 제작한 동명의 영화의 결말을 떠올린다. 이 소설이 우화라면, 그것은 정교한 현대 과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 지적으로 성숙한 전능하지만 감성적인 한 신의 20대 청년기의 꿈같은 유희의 한 장면이다.

물론 아쉬운 점들은 있다. 알게 모르게 곳곳에 자기모순을 포함하고 있다. 그가 우주를 창조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어느 날 낮잠에서 깨어난 '후'이지만, 실상 그는 '시간'을 우주를 창조하면서 만들었다. 그의 '시간'과 우주의 '시간'은 다른 것일까? 또 엄밀히 말하자면 이 소설은 SF와 철학적 우화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장대한 스토리가 펼쳐지는 거대 서사로 갈 수 있는 길목에서 작가는 우화로 방향을 틀었다.

디테일이 살아있는 창조의 장면은 현대 우주론을 잘 알고 있는 과학도의 관점에서 보자면 숨어 있는 최신 이론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겠지만 문외한에게는 그저 정교하게 구성된 생생한 이야기일 뿐이다. 반대로 현대 우주론의 소설적 비유를 기대하고 책을 펼쳐본 독자에게는 자신의 우주에 있는 생명체의 운명을 고뇌하거나 벨호르와 진지한 토론을 하는 장면은 뜬금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점들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책임이 없는 과학은 죄악일 수 있다. 창조라는 이름이 붙여진 과학 행위이거나 혹은 과학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창조 행위이든 간에 그 과정과 결과 모두 진지하게 성찰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라이트만은 그런 점을 짚어준다.

Mr. G의 행위가 서두에서 말한 것과 같은 그저 유희를 위한 게임이라면 책임을 면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나 우리의 삶과 그것들이 펼쳐지는 이 우주가 한낮 시뮬라크르(simulacre)라고 말하기에는 그 게임 속의 피조물인 우리 스스로에게 운명은 너무나도 생생하고 때로는 가혹하다.

게임 밖의 타자의 눈에 보이는 우리들은 전원을 꺼버리면 데이터로밖에 남지 않는 보이드(void)와 같은 존재일지 몰라도 우리들 자신에게 이 모든 것은 실재이다. 그리고 무심하게 누르는 프로그램 종료 버튼은 플레이어에게는 새로운 게임을 할 기회를 제공하겠지만 피조물에게는 소멸이고 멸종이다.

하지만 무엇이 시뮬라크르이고 무엇이 실재인가? 우리는 창조자의 장난감일 뿐인가, 아니면 어떤 영성(靈性)을 부여받은 신성한 존재인가?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 라이트만은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그러나 질문은 중요하다. 질문할 수 있는 자만이 사고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최대의 미덕은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 소설에 붙여진 철학적 우화라는 찬사는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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