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에서 부당하게 해임되어 '한 지붕 두 위원장' 출근 시위를 벌이기도 했던 예술인 김정헌도 그 중 하나다. 그는 1980년대 한국 민중 미술의 시초라 불리는 '현실과 발언' 동인 시절부터 작품을 통해 도시적 삶에 대한 비판과 마을에 대한 애착을 나타내 왔다.
그런 그가 3년 전 마을 연구소인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예마네)'를 만드는 한편 마을을 직접 답사하기도 하면서 현장형 마을 활동가로 거듭났다. <김정헌, 예술가가 사는 마을을 가다>(검둥소 펴냄)는 바로 그 활동의 역사와 마을에 대한 고민들을 정리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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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헌, 예술가가 사는 마을을 가다>(김정헌 지음, 검둥소 펴냄). ⓒ검둥소 |
책의 1부에서는 현재 마을에 뿌리내리고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예술가들을 방문하여 어떻게 마을에서 자리 잡고, 예술가로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아봤다. 더불어 지역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예술가들이 마을에 오면서 생긴 변화에 대해서도 돋보기를 가져갔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임실 장암 마을에 온 뒤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판화가 이철수는 왜 제천 백운면 평동리에 가게 되었을까? 1부는 '마을 작업실'을 꿈꾸는 예술가들에게 좀 더 현실적인 조언과 방법을 제시해 줄 것이다.
책의 2부에서는 그의 꿈인 '마을 공화국'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예술가들이 일찌감치 그 가치를 깨닫고 주민들과 힘을 합쳐 지역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 곳들이다. 마을 조사 사업 등으로 잘 알려진 진안 백운면, 동네 밴드로 유명한 하동군 악양면, 농부 시인 서정홍과 귀농촌이 있는 합천 가회면, 창녕 우포늪 사람들, 제주도의 신 문화공간 조성 사업, 충남 교육 연구소 등, 자리를 잡은 지역의 사례들이 소개된다.
답사와 수많은 대화를 통해, 김정헌은 마을의 가장 큰 가치가 '이야기'라고 강조한다. 마을에는 선조들과 주민들이 살아온 내력들이 무수하게 남아 있지만, 과거 농한기 때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기능은 현재 거의 파괴되었다. 김정헌은 "자기의 정체성은 살아온 내력을 자기와 다른 사람들이 같이 공유할 때 생기는 것"이라며 마을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첫째로 "자기의 삶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말한다. 예술가들은 바로 이 다양한 마을 이야기들을 글로 적고 그림으로 그리고 영상으로 찍으면서 표현하고 기록한다. 그래서 예술가가 마을에 가면 활기가 돌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을과 예술가의 만남에 대해 저자는 "뛰어난 예술가라 하더라도 주민들과 거리가 있으면 마을에 사는 의미가 없다"며 "주민들 속으로 들어가라"고 충고한다. 무엇보다 이 책에선 마을 공동체를 다시 세우는 일에 가장 필요한 '돈(정부의 지원)'에 대한 고민도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해 작고한 건축가 정기용은 이 책에 실린 대담에서 "우선 계획만 세워라. 마을 사람들에게 해법이 있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하겠다고 하면 그때 가서 돈을 지원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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