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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민폐남'이 일깨운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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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민폐남'이 일깨운 불편한 진실

[프레시안 books] 몬테 릴의 <아마존 최후의 부족>

M 방송사의 '눈물' 시리즈는 한국 자연 다큐멘터리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렸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눈에 띄는 수작이다.

최근에 방영된 <남극의 눈물> 황제펭귄의 부성애가 남긴 감동도 상당하지만, 시청자들에게 가장 재미있게 남아있는 것은 두 번째 시리즈였던 <아마존의 눈물>이 아니었을까? 다큐멘터리로 시청률 20퍼센트를 넘나들던 <아마존의 눈물>의 인기는 아마도 조에족이라는 아마존 원시 부족의 생활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방송으로 소개된 조에족은 턱에 구멍을 내는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자랑스럽게 착용하는 '뽀뚜루'의 존재와 잘생긴 국내 영화배우를 닮은 "나쁜 남자" 모난 덕에 흥미를 끌게 되었지만, 더 크게는 제작진들이 밝혔듯 "행복이라는 기준으로 보자면 이들이야 말로 최고의 문명인들"이라는 그들의 삶의 태도가 시청자들의 마음에 와 닿았을 것이다.

조에족은 1970년대에 존재가 확인되고 2001년부터 브라질 정부에 의해 원주민 보호 구역의 권리자들로 인정된 채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지속할 수 있었다. 외부와의 접촉 이후에도 그들의 문화를 지키는 조에족은 이역만리 대한민국의 시청자들한테까지 자신들의 행복을 나눠주었다.

▲ <아마존 최후의 부족>(몬테 릴 지음, 정회성 옮김, 아카이브 펴냄). ⓒ아카이브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아마존 부족들의 삶은 조에족과 다르다. 오늘 소개하는 책 몬테 릴의 <아마존 최후의 부족>(정회성 옮김, 아카이브 펴냄)에 따르면, 아마존에 남아 있는 부족들의 외부와의 접촉은 500~600여 년 전 서구인들과 아메리카 선주민들의 만남만큼이나 피비린내 나고 잔인하기까지 하다. 그 당시에는 바다 건너에서부터 총과 칼로 무장하고 황금을 찾던 유럽인들이었다면, 현재는 거대한 트럭과 전기톱으로 무장하고 브라질 전역에서 몰려든 자국의 개발 업자들로 바뀌었을 뿐.

물론 시대가 달라졌으니 개발의 전쟁터에서 원주민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브라질 정부의 "공식" 입장은 '정글에 살고 있는 원주민 부족의 존재가 확인된다면 이 땅은 그들의 소유이기 때문에 외부인은 절대 간섭할 수 없다'고 법으로서 보장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브라질의 방대한 아마존에 얼마나 많은 부족이 살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이 때문에 개발 업자들은 자신들이 점찍은 개발 지역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원주민 부족이 있다면 정부가 그 존재를 입증하기 전에 그들을 내쫓거나 죽이는 길을 택한다. 원주민 보호를 위한 명문화된 법 조항이 오히려 정부보다 앞서 원주민을 제거할 동기를 개발 업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아마존의 개발 전쟁터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원주민과 이들을 제거하려는 개발 업자만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미접촉·미발견된 원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움직이는 브라질의 공무원들도 있다. 브라질의 공식 원주민 인권 보호 단체인 '푸나이' 소속의 세르타니스타들이 바로 그들이다. 탐험가이자 인류학자이기도 한 세르타니스타들은 주기적인 탐사 활동을 통해 원주민의 존재를 증명하고 그들의 삶의 터전을 외부인 접근 불가의 보호 지역으로 지정하기 위해 아마존을 누비는 것이다.

이 책은 아마존 북서부의 혼도니아 주를 무대로 푸나이 소속의 '과포레 연락대'를 이끄는 마르셀로 팀장이 '구덩이 인디언'으로 알려진 미발견 부족의 마지막 생존자를 좇는 10여 년의 과정을 담고 있다. 물론 이 홀로 남은 인디언을 좇는 자들은 마르셀로 무리만은 아니다. 광산 업자와 개발 업자들 역시 '과포레 연락대'보다 먼저 홀로 남은 인디언을 찾아내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개발 업자들에게 인디언은 진보의 장애물이고, 마르셀로와 같은 인물은 마치 '네스 호의 괴물'을 좇는 헛된 망상가이자 녹색 마피아이다. 브라질 개발 업자들의 분노는 종종 훨씬 이전에 자기 땅의 선주민들을 수도 없이 죽였으면서 이제는 성가시게 남의 나라의 개발에 개입하려는 국외자들(특히 미국인들)을 향하기도 한다.

'과포레 연락대'와 개발 업자들의 '구덩이 인디언' 추격의 결론은 어떻게 나왔을까? 결론을 이야기하면 김새겠지만 '과포레 연락대'는 (평화롭지는 않았다. 결코) 홀로 남은 인디언의 존재를 카메라에 담아 그의 존재를 입증했다. 이로써 이 마지막 부족민은 생명을 구했을 뿐 아니라 그의 서식지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는 표지판이 설치된 '타나로 토착민 보호 구역'으로 보호되게 된다.

전직 기자에 의해 쓰인 책인 만큼 곳곳에서 독자들은 아마존의 피눈물을 확인할 수 있는 개발의 전쟁터를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열대우림의 나무들을 쓰러뜨리는 전기톱의 고성과 흙먼지를 날리는 트럭들이 등장한다. 목축 업자들이 비행기를 이용해 사용 금지된 고엽제를 살포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개발의 욕구로 불타고 있는 혼도니아의 모습은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이 보여준 것 이상이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이 책이 탐욕스러운 개발 업자와 쫓겨 다니는 원주민 혹은 원주민 보호의 사명감과 정의감에 불타는 괜찮은 공무원의 구도만으로 읽혀지지는 않았으면 한다. 아마존 열대우림이 멀리 있는 우리에겐 절대적인 보호의 가치를 지닌 것이지만 브라질의 도시 빈민들에게는 그나마 잘 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도시 빈민의 삶을 벗어나기 위해 2년간 전가족의 수입을 모아 장남을 대표로 혼도니아에 땅을 장만하러 보내는 가족의 이야기는 개발 업자들 모두가 한 덩어리는 아님을 보여준다. '과포레 연락대'와 '푸나이' 안에서도 미발견 원주민들과 어떻게 조우할지를 두고 언제나 논쟁 중이다. 한 때 푸나이의 일원이었지만 지금은 목축 업자를 위해 자신의 지식을 활용하는 이들의 존재도 저자는 감추지 않는다.

무엇보다 홀로 남았지만 다른 부족과 구별되는 문화의 유일한 생존자이기에 하나의 '부족'으로 인정받은 구덩이 인디언에 대해서 조금은 더 풍부하게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한 부족에 홀로 남은 남성 원주민(이로써 재생산은 불가능하다)이 자신의 존재로 인해 부여받은 보호 지역의 면적은 80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

저자도 지적하지만 우리 땅 서울엔 그 면적에 통상 100만 명이 살아간다. 책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마르셀로는 "그는 혼자 살고 스스로 죽은 권리를 택한 것"이라 말하지만, 개발 업자들은 여전히 구덩이 인디언의 존재를 의심하며 보호 지역을 개발할 방법을 무수히 모색 중에 있다.

지구인의 보고라지만 논리적으로는 주권이 보장된 한 국가에게 귀속되는 아마존. 재생산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문명과의 접촉을 스스로 거부하며 살아가고 있는 마지막 1인 부족. 아마존의 개발에 대해 저자가 보여주는 다양한 층위만큼 우리의 시점들도 복잡함을 함께 고려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사족

이 책을 읽던 중에 겪었던 조금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덧붙여보련다. 지난 3월의 첫 토요일 지하철을 타고 종로로 이동 중이었다. 오후의 지하철은 시내를 향하는 사람들로 제법 복잡했지만 노약자석 앞이 좀 여유로워 보이기에 그 쪽으로 옮겨가 자리 잡고 이 책 <아마존 최후의 부족>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뿔싸. 복잡한 지하철에 유독 한 곳만 여유로운 이유가 있었다. 다름 아닌 불콰하게 술이 오른 한 아저씨의 존재. 그 아저씨는 대꾸 없이 자기 스마트폰에 코 박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실없이 말 걸고 혼내기를 반복했고, 지하철 서고 출발할 땐 목청껏 안내방송 따라하며 웃어재끼는데다, 창 밖에 "세빚둥둥섬"을 보고선 싸잡아 정치인들에게 욕을 날리기도 했다. 그래도 그 수준이 '지하철 민폐남'에 미칠 수준은 아니었기에 대부분은 술 취한 외로운 중년의 진상으로 치부하고 무시로 일관하고 있던 듯 했다.

나 역시 방관자 모드로 일관하고 있었는데, 아저씨가 노약자석의 꼬마에게 사탕을 강요하면서 사단이 났다. 괜찮다는 엄마와 술 냄새를 피해 엄마 등 뒤로 몸을 돌려버린 꼬마에게 아저씨가 "떼끼!"하며 손이 올라가는 모습에, 나는 그만 상황에 끼어들게 되었다. "아저씨!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그건 민폐고, 자꾸 이러시면 지하철에 신고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이후 일고여덟 역을 지나는 동안 나는 아저씨의 나지막하지만 계속된 시비의 유일한 타깃이 되었다. 주변에서 "그냥 참으세요~!"라는 조언들도 있고 해서 나는 이어폰 낀 채 일부는 대꾸하고 대부분은 무시했는데, 막판에 이르자 아저씨의 시비는 내가 읽고 있던 책을 향했다. "뭐, 아마존.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아마존은 불쌍하고 나는 안 불쌍하냐? 대한민국에 불쌍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큰 충돌 없이 아저씨는 곧 내렸지만 '배불러서 아마존 걱정하는 사람'으로 찍힌 나는 억울한 감정이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지난주에는 구럼비 파괴와 고리 핵발전소 사고 은폐까지 겹치니 서평을 위해 이 책을 들고 있는 내 자신이 진짜로 '한가하고 배부른 사람은 아닌지' 자기 검열까지 하기도 했다.

우리네 삶이 지속적으로 팍팍해져 가니 아마존을 걱정하고 지구인의 윤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정말이지 눈치 보이는 일이 되어 버렸다. 나는, 다른 정치인보다 더 해로운 "어떤 정치인들의 존재"가 이런 상황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명히 믿는다. 덜 해로운 정치인들의 등장한다고 곧 술 취한 지하철 민폐남이 사라지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구럼비를 걱정하는 마음과 아마존을 염려하는 마음이 공존할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자기 검열 없이 아마존의 앞날과 구덩이 인디언의 무사를 기원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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