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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고 99%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철학자의 서재] 미셀 옹프레의 <사회적 행복주의>

'행복'에 말 걸기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 사회에서는 소위 '웰빙', '삶의 질' 또는 '행복'이라는 말마디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그리고 눈을 뜨면 쉴 틈 없이 전해지는 '웰빙' 또는 '행복 담론' 때문에 우리는 행복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다 보니 혹시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행복에 대한 이해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행복'이라는 단어에 말을 건네 본다. 우선 한국인들이 생각해왔던 '복(福)'이라는 말과 서구에서 전해진 '행복'이라는 말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짝 행복에게 말을 걸어보기에 앞서 제대로 행복이란 말을 이해하기 위해 국어사전을 뒤적거려본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행복'을 우선 "복된 좋은 운수"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라고 설명한다. 사전을 뒤적거릴수록 뭔가 확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이제 행복이란 말을 같이 살아가면서 이야기하기 위해 이 땅에서 우리보다 앞서 살아간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했던 복이라는 말과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

한국인들의 복(福) 이야기를 '오복론(五福論)'이라고 한다. 이 오복은 동양의 고전인 <서경(書經)> '周書' 홍범(洪範)에 나온다. 여기 나오는 오복, 즉 다섯 가지 복은 오래 사는 것을 뜻하는 수(壽), 재화의 풍족함을 나타내는 부(富),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평안함을 뜻하는 강녕(康寧), 또한 덕스러운 행동을 좋아하는 것을 의미하는 유호덕(攸好德), 수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 것을 뜻하는 고종명(考終命)이다. 이것은 한국인들이 오랫동안 간절히 염원한 것들이다. 이런 복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한국인들의 몸속에서 꿈틀거린다. 그런데 우리 역사 속에서 '행복'이 오복이나 운(運)으로만 생각되었을까? 이런 물음은 19세기 이후 강요된 근대화의 과정을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 역사에서 영어 '행복(happiness)'에 대한 이해는 인간의 일상생활과 욕망의 변천 과정을 보여주고 그 시대의 물질적 배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행복을 감성 또는 정신적인 것이라 할 수 있지만 바로 그 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그 시대의 물질 조건이다. 식민지 시대에 나타난 의식 변화는 서구 사상의 왕성한 수용과 함께 일어난 것이기도 하다. 행복 담론 역시 예외일 수는 없었다. 1920년대 초반 식민지 조선인은 '니체', '톨스토이', '크로포트킨', '마르크스'와 같은 이들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서구의 다양한 생각이 넘쳐나던 이 시기의 각종 매체에는 행복 담론도 넘쳐났다.

왜 그러면 이 시기의 조선 사회에서 행복 담론이 넘쳐났을까? 1910년대까지만 해도 현실적 비애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지만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논의의 패러다임이 변하기 시작했다. '개인'의 자유, 자아에 대한 논의가 늘어났다. 특히 1919년에 있었던 3·1 운동 이후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임경석은 "개인의 지위 향상, 가족의 안전과 행복을 추구하는 심리 상태가 지배적이었다"("3·1 운동 전후 한국 민족주의의 변화", <역사문제연구> 4호, 93쪽)고 지적한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개인의 욕망이 행복 담론을 쏟아내게 하였고, 행복 담론의 장이 여기저기서 펼쳐졌다. 그리고 이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행복의 문제가 단지 사적 영역의 것이 아니라 공적 영역(사회 제도적 요소)의 문제라는 인식이 나타났다. 하지만 행복 담론은 더 이상의 진전을 보이지 않고 긴 잠에 빠져든다.

이런 긴 잠을 깨운 것은 1980년 광주의 아픔 속에서 피어난 공적 행복의 경험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99퍼센트에게 크나큰 고통을 안겨준 1980년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세력이 만든 헌법에서 "행복 추구권"을 선언한 것이다. 이로써 행복 담론은 다시 부상할 준비를 하게 된다.

1990년대 후반 이후에 폭풍처럼 몰아친 이른바 '웰빙' 신드롬으로 한국은 온통 '웰빙'으로 둘러싸인다. 각종 매체는 앞 다투며 '웰빙' 이름을 달고 많은 담론들을 생산했다. 이제 어느 누구나 '웰빙'이라는 말을 편안하게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웰빙과 행복은 같은 말인지 아니면 가족 유사성이 있는 말인지 묻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며, 행복은 윤리학과 정치학에서 다루어야 할 중요한 주제라고 강조한다. 그는 '행복'을 그리스어로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라고 하였다. 이 말은 흔히 영어 'happiness'로 이해되지만 현대 윤리학자 버나드 윌리엄스(Bernard Willaims)는 '에우다이모니아'에 대한 영어로 'happiness'보다 'well-being'이 더 적합하다고 말한다. 이 'well-being'이라는 말을 우리말로 바꾼다면 '참살이', 또는 '좋은 삶' 정도로 할 수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을 사는 것이고, 참살이를 하는 것일까? 행복 또는 웰빙은 우리에게 삶의 방식을 반성하라고 한다. 하지만 어느새 한국인들은 먹고 마시고 몸을 치장하는 상업적 웰빙과 개인의 행복만이 참된 행복이라고 이야기하는 행복론에 푹 빠져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 다양한 행복론과 행복한 삶에 대한 지침서들이 서로 모순적인 주장을 담기도 하고 독자들에게 극단적인 생각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행복'은 단지 사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팽배해지게 되었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행복을 가장 중요한 이론의 근거로 삼고 있는 공리주의에 대해 다룰 필요가 있다.

잘 살아 보세! 99퍼센트인 우리도!

▲ <사회적 행복주의>(미셀 옹프레 지음, 남수인 옮김, 인간사랑 펴냄). ⓒ인간사랑
만일 행복을 "well-living", "welfare"로 해석할 수 있다면 모두가 똑같이 잘 살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모두가 행복한 사회란 어떤 사회인지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잘살기' 또는 '잘살아 보세'라는 말을 들으면 괜히 박정희 시대의 '잘살아 보세, 잘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살아 보세'라는 노랫말이 무의식적으로 떠오른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이 노래를 "박정희 정권 시절 경제 발전을 희망하며 만든 노래"라고 설명한다. 잘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총체적으로 검토하기보다는 눈앞에 있는 먹을거리라도 충분하다면 그것이 잘사는 것이라고 선전하고 강요하였다.

어느새 많은 이들은 경제 개발만이 절대적 선이라고 무의식적으로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또한 1퍼센트의 사람들은 경제가 산다면 무엇이든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최면적 신념을 99퍼센트에게 강요하였다. 어떤 이들은 강력하게 반발하였지만 많은 사람들은 강요된 희생을 당연히 받아들였다. 이것 때문에 아직도 자신이 희생당하고 있으면서도 그래야만 국가가 경제적으로 이익을 거둘 수 있다는 신념에 갇혀 사는 이들이 양산되고 있다. 우리를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은 이 향수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이들이 다음 세대에게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정치권력의 세습을 강요하고, 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특히 2008년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등장한 이후 꾸준히 복지 논쟁(보편적 복지 vs 맞춤형 복지)을 이어왔고 앞으로도 더 확산시킬 것 같다.

행복, 복지가 좋은 것이라면 이것은 내 친척, 내 이웃뿐만 아니라 내가 속해있는 공동체 전체, 나아가 모든 인류가 누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은 하나로 계산되며 어느 누구도 하나 이상으로 계산되지 않는다'는 것이 모든 결정에 선행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99퍼센트가 1퍼센트를 왕따시키는 이론(다수가 행복하다면 왕따를 인정하는 이론)이라고 비난받기도하는 공리주의에서 외치는 소리이다. 하지만 1퍼센트의 쾌락의 총합이 99퍼센트의 쾌락의 총합보다 클 수 있을까? 1퍼센트의 쾌락의 크기가 99퍼센트의 쾌락의 총합보다 큰 것이 2011년의 현실이다.

2011년 이후 세계는 1퍼센트가 99퍼센트를 지배하는 세상을 바꿔보자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고 행동하기도 한다.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99퍼센트의 우리가 잘살아야 하고, 행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삶의 틀을 다시 생각해보자!

19세기는 피히테, 헤겔, 셸링이라는 사상가들로 시작해서 베르그송과 후설로 끝난다. 산업 혁명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더 이상 그 이전의 가치와 삶의 방식을 수용할 수 없었고, 또한 삶의 자리에 따라 이전과는 다른 방식, 다른 내용의 사상이 생겼다.

미셀 옹프레는 '반철학사'라는 작업을 통해 지난 시대의 사상가들을 불러낸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온 삶과 사상을 개인적 삶의 이야기와 함께 그 시대의 사정 그리고 시대의 문제를 안고 풀어내려 고민하고 실천하는 모습으로 기술한다. <사회적 행복주의>는 그의 다섯 번째 작업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19세기 사상가는 윌리엄 고드윈(William Godwin),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로버트 오언(Robert Owen), 샤를 푸리에(Charles Fourier), 미하일 바쿠닌(Michel Bakounine) 등이다.

19세기에는 산업화로 인해 삶이 피폐지면서 이상적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들의 관심은 빈곤, 성 평등, 동물해방, 자유(사상과 표현,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행복, 공동체 등이었다. 이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각기 독특한 방식으로 사상을 전개하고 실천해 나간다. 하지만 이들에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사회적 행복주의'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회적 행복,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국가의 번영이 개인의 행복에 대한 보장과 함께 성취되기를 바라고, 공동체를 통해서 사회적 행복주의를 성취하려고 시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옹프레는 사회주의가 빈곤에 빠지게 된 것을 마르크스주의가 아닌 다른 사회주의 사상을 망각한 탓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사회주의는 다양한 형태들을 취하여 우파의 날개에서 좌파 날개까지, 중도적 형태를 거쳐 극좌까지 펼쳐지기"(27쪽)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페미니스트적 사회주의를 외친 플로라 트리스탕,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와 개량적 사회주의를 대변한 존 스튜어트 밀, 영국 뉴라나크에서 직접 공장을 운영하면서 '사회의 행복'을 선언하고, 그 공장을 경영하여 모은 재산을 토대로 미국으로 건너가 새로운 정치적 모험, 즉 공산주의적 "만인의 공화국"을 시도한 오언, 서정적인 사회주의를 전개한 푸리에, 그리고 절대 자유주의적 사회주의를 이론화한 바쿠닌, 사회주의적 사회주의를 주창한 생시몽, 기독교 사회주의를 외친 라므네, 인도주의적 사회주의에 주목한 피에르 르루, 그리고 공제 조합 사회주의를 이야기하는 프루동의 사상에 주목하라고 한다. 그는 또한 이러한 다양하고 풍부한 사회주의의 심연 속에서 아직도 개척하고 세워갈 좌파의 미개척지는 무궁하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그동안 공공의 행복, 사회적 행복을 위해서라면 좌편의 길을 걷기보다는 중도(타협)의 길을 이야기하고 그 길을 마다하지 않고 걸었다. 또한 한걸음 나아가 지금까지 걷고 있던 좌편의 길에서조차 기꺼이 가던 길을 멈추고 반대편의 길에 들어서기도 했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무엇을 얻었는가? 또 도대체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이제 우리는 중립이라는 땅이 아닌 좌편과 우편의 길에서 양자택일해야 한다. 그 선택을 잘하기 위해 자신이 속해 있는 진영의 미개척지에서 삶의 틀을 찾아내고 거기서 답을 찾는 노력을 경주하고, 그 답처럼 살아야 할 것이다.

잘살아 보세, 자~알살아 보세, 우리 99퍼센트도 잘 살아 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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