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books'는 2012년 신년호를 '내가 사랑하는 저자' 특집으로 꾸몄습니다. 열두 명의 필자가 사랑하는 저자와 만났던 순간을 이야기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사랑하는 저자와 만나는 기쁨을 누리길 기대합니다. |
'배병삼은 내 대학 선배다', 라고 하면 불편해 할 이들이 많을 터이다. 내가 사랑하는 저자로 대학 선배를 꼽는다면, 공정성이나 객관성에 어긋난다 여기리라. 그러나 염려 마시라. 알고 보면 선배일 뿐, 개인적인 인연이 깊지 않았으니까.
내가 그이를 안 것은 대학생 때다. 아깝게 세상을 일찍 떠난 선배 강철주와 술 마시다 만났다. 특이한 선배였다. 대학 주보 기자가 아닌데, 그 출신과 어울렸다. 나중에 들으니 그이는 대학 주보 동문에 포함되어 있단다. 대단한 이들이었다. 기성 신문 칼럼보다 훨씬 나은 글을 대학생 시절 썼던 이들이다. 서로 추켜세우는 데 예의도 있고 서로에 대한 존경심도 있었다. 부러웠다.
다시 그이를 만난 것은 역시 강철주 때문이었다. <출판저널>에서 한솥밥 먹고 있었는데, 외국 출판 동향 번역을 그이가 맡았다. 공부하는 이에게 예의가 아니지 않을까 했는데, 그이는 그 일을 좋다고 했다. 번역문에서도 문체를 느낄 수 있는 법이다. 정치철학 전공자의 글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것도 번역문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미려했다.
가끔 쓰는 서평도 날카로웠다. 핵심을 정확히 짚어냈다. 나중에 들으니 눈밝은 편집자들이 그이를 찾았단다. 번역이나 책을 맡기려고. 선배들 술자리에 끼어 오가는 이야기 들으며 그이의 공부가 어떤 식으로 궤도 수정되었는지 들었다. 흥미로웠다.
그러고는 직접 만나 본 적이 없는 듯하다. 풍문으로 그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도올 김용옥이 운영하는 연구소에 들어갔다는 말, <창작과비평>에 실린 만파식적 관련 글이 상당히 뛰어나다는 말, 한문 공부에 열심이라는 말을 순서 없이 귀동냥했다. 자랑스러웠다. 멀찌감치 지켜본 선배가 학인이 되어가는 모습이.
내 주변에는 실력 있는 선배들이 많았다. 강철주도 그랬다. 경주에 내려가 지역 운동하는 신경준도 그랬다. 공부하면 좋을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강소주 얻어먹으며 배운 것이 너무 많다. 근데 그들은 공부하지 않았다. 한 사람은 잡지쟁이가 되었고 한사람은 운동가가 되었다. 무엇이 그들을 그 길로 이끌었는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내가 대학생 시절 만났던 빼어난 선배 가운데 공부의 길로 든 이는 영문학과의 이명호와 정치외교학과의 배병삼뿐이었다. 이명호의 글은 <출판저널> 시절 한두 편 정도는 받은 듯하다. 원고를 들고 편집실로 왔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모교 교수가 되어 활동한다. '프레시안 books'에서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즐겁다.
각설하고, 내가 배병삼을 사랑하는 이유가 한낱 학연 때문은 아니다, 이런 말을 더 길게 늘어놓을 필요는 없을 터다. 내가 귀동냥한 그의 학문적 궤적은 이렇다. 78학번인 그이도 역시 변혁 운동의 열기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석사 시절 마르크스를 공부했다. 근데 그에게 권력론이 부재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를 탐구했다.
박사 시절, 서양 정치철학의 한계를 인지하고, 동양 정치철학에 심취했다. 박사 논문이 다산 정약용인 것은 이런 연유다. 얼마나 매력 있는가. 유행을 따라 공부의 방향을 바꾼 것이 아니다. 발 딛고 있는 이곳의 정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치열한 철학적 모색의 결과였다. 누군가 나에게 말해주었다. 그이, 대학 교수하기 어려울 거라고. 정치철학을 전공해도 자리 없는데, 동양 정치철학이라니? 라고. 그래서 더 믿음직스러웠는지 모른다. 자기 길을 가니. 설혹,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아니하며. 공부하는 이의 참된 태도 아닌가.
배병삼을 사랑하는 이 가운데 시인 이문재가 있다. 이 이도 내 대학 선배다. 몇 달 전, 술자리에서 졸업도 못할 뻔한 양반이 교수가 되었네, 라고 놀렸는데 주위 사람들 반응이 별로 였다. 한참 후배라 그런 말을 듣고 웃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 우리가 이제는 늙다리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문재가 한 시사 잡지의 기자일 적에 한 출판사에 그이의 논어 완역본을 계약하도록 했다는 전언을 들었다. 논어? 의외였지만, 모두가 다 기대할 만한 작품이 나오리라 여길 만하다. 단, 여기서 모두는 그이를 이미 알고 있던 이로 제한한다. 누가 배병삼의 가치를 그 시절 알아보았겠는가. 학벌 보고 이름값 보는 사회에서 그는 절대 눈에 띌 이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그이는 행복한 사람이다. 인정하고 아껴주는 벗들이 늘 있었으니 말이다.
▲ <한글 세대가 본 논어 1>(배병삼 지음,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
동양 철학 전공자도 아니다. 대학원 스승 가운데 동양 정치철학을 전공한 이도 없다. 한문을 새로 배워야 했을 터다.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그 고비를 이겨내고 마침내 해낸 놀라운 성과였다. 읽으며 탄성을 질렀다. 제대로 된 논어 번역본이 나왔다. 세상의 평가가 궁금했다. 그런데 웬걸, 책이 나왔다는 소식조차 찾아보지 못했다. 분노가 치솟았다.
이 말이 그이에게 누가 되지 않는다면, 나는 그때 결심했다, 라는 말을 털어놓는다. 내가 반드시 그이를 세상에 알리고 말겠다고. 선배여서가 아니다. 그러기에는 인연이 너무 실낱같다. 그것은 분명히 공분이었다. 한 학인이 거둔 놀라운 성과를 냉대하는 데에 대한. 주변 사람들이 비웃는 듯했다. 네가 어찌 그럴 수 있겠냐고?
기회가 왔을 때 나는 그이와 함께 작업했다. 청소년을 위한 논어 해설서 <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사계절 펴냄)가 바로 그것이다. 함께 하며 무척 즐거웠다. 기획자와 저자로 만나 남들이 쉽게 도전하지 않은 일을 함께 하는 것이. 그 책 덕에 그이가 좀 더 알려졌다고 말하면 천박한 표현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정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마음이 편해졌다. 할 수 있는 만큼 했으니.
무엇이 나를 사로잡았을까. 배병삼이라는 저자가. 두 가지만 꼽아보면 이렇다. 일단은 그의 문장력이다. 어느 자리에선가 그이는 국문과 사람들과 사귀었던 것은 글을 잘 쓰고 싶어서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시절 대학가뿐만 아니라 문단을 휘젓고 다닌 이들과 친분을 쌓으며 글에 대한 감각을 키웠던 모양이다.
그의 글은 잘 읽힌다. 소리 내 읽으면 리듬감마저 있다. 그러니 그가 번역한 논어는 잘 이해된다. 인문학자한테 이런 미덕이 있다는 것은, 독자 대중과 타협하지 않고도 자기 세계를 펼칠 수 있는 강점이 된다.
다음으로는 치열한 문제의식이다. 그이의 글을 읽다보면 그가 정치학자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지금 이곳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으로 고전을 읽어나간다. 학문의 성채에 갇힌 고전은 아무 의미 없다. 이곳으로 와 자신의 존재 가치를 과시해야 한다. 배고픈 이의 양식이 되지 않는 고전이란, 이미 고전이 아니다. 그러나 이 일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뛰어난 학자만이 해낼 수 있다. 배병삼이 바로 그런 이다.
배병삼은 과작의 저자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공부해서 체득한 바를 삶으로 옮겨야 한다고 여기는 이니 말이다. 알게 되었다고 서둘러 내뱉지 않고 오랫동안 공 굴리며 다듬는 이다. 단독 저서로 두 권의 논어 번역 및 해설서와 한 권의 칼럼집 <풀숲을 쳐 뱀을 놀라게 하다>만 있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그는 큰 저수지라고. <신동아>에 연재한 글이 곧 책으로 나올 터이고, <녹색평론>에 연재하는 글도 때가되면 세상에 선을 보이리라. 퇴계 이황에 대한 책도 구상은 이미 끝난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책은 그의 맹자 완역 및 해설서다.
그이는 한문을 공짜로 배웠단다. 그래서 그 빚을 갚느라 공짜 강의도 한다. 부산 지역의 교사들을 대상으로 맹자를 강의해왔다. 이제 쓸 때가 되지 않았을까. 양혜왕이 나라의 이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냐고 물었을 때 맹자는 화를 내며 인의를 먼저 따져야 한다고 했다. 오늘 우리가 이익만을 좇다가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이런 시대에 배병삼의 맹자는 큰 울림을 줄 터.
왜 그는 아직 쓰지 않을까. 안달하는 독자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 이제 저수지의 둑이 터졌으면 좋겠다. 글에 대한 지나친 염결주의도 좋은 것만은 아닌 법. 교양과 지식의 논이 타들어가는 시기에 그의 글이 어느 한쪽이라도 촉촉하게 적셔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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