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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 떨어진 좌파, 세상으로 나올 주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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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 떨어진 좌파, 세상으로 나올 주문은?

[2011 올해의 책] 장석준의 <신자유주의의 탄생>

'프레시안 books' 송년호(71호)는 '2011 올해의 책' 특집으로 꾸몄습니다. '프레시안 books'가 따로 '올해의 책'을 선정하는 대신, 1년간 필자 독자 기획위원으로 참여한 12명이 각자의 '올해의 책'을 선정해 그 이유를 밝혔습니다. 다양한 분야, 다양한 장르의 이 책들을 2011년과 함께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고백하자면, 올해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북 리뷰 섹션 담당이라고 하면, 책을 한 주에도 수십 권은 읽을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매주 쏟아지는 수백 권의 책을 수박 겉핥기로 검토하고, 서평을 청탁하고, 원고를 받아내면 한 주가 훌쩍 간다. 그리고 또 수백 권의 책이 검토를 기다린다.

이렇게 책에 일상을 저당 잡히고 나면, 정작 책 읽기의 고유한 흐름이 깨진다. 애초에도 책 읽기가 생계유지와 떼려야 뗄 수 없었는데, 그런 현상만 더욱더 심해졌다. 실제로 올해는 읽고 싶은 책이 아니라 읽어야 할 책만 잔뜩 머릿속에 담은 느낌이다. 그래서 '올해의 책'을 꼽을 때도 심드렁했다.

그럼에도 가만히 돌이켜보니, 읽는 내내 '아!' 하고 몇 번이나 무릎을 치면서 탄복한 책이 있었다. 심지어 만원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안 하던 메모를 하겠다고 수첩을 꺼내기도 했다. (가끔 책에다 절대로 밑줄 하나 안 긋는 기벽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내가 바로 그렇다.) 그리고 나중에는 저자에게 문자 메시지까지 보내는 만행을. "자극이 되는 좋은 책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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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자유주의의 탄생>(장석준 지음, 책세상 펴냄). ⓒ책세상
이 정도면 장석준의 <신자유주의의 탄생>(책세상 펴냄)을 '올해의 책'으로 꼽은 변이 되려나?

사실 이 책의 제목을 들었을 때는, 다른 이들처럼 고개를 갸우뚱했다. 신자유주의의 탄생? 데이비드 하비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통찰력 넘치는 책(<신자유주의>(최병두 옮김, 한울 펴냄))이나 금융 권력의 득세를 세밀히 추적한 피터 고완의 <세계 없는 세계화>(홍수원 옮김, 시유시 펴냄) 같은 책이 있는데 왜?,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탄생>은 이런 편견으로 미리 예단할 책이 아니었다. 저자는 묻는다. 1980년대부터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기 전에 과연 무슨 일이 있었는가? 맞아! 항상 궁금했었다. 무슨 역사 법칙처럼 갑자기 '케인스의 시대'가 가고 '하이에크의 시대' 즉 자유 시장 자본주의가 부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인가 큰 일이 있었으리라. 더구나 당시는 노동당(영국)/사회당(프랑스)이 권력을 잡고, 공산당(!)이 득세하고, 높은 조직률의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이른바 '복지 동맹'이 굳건할 때가 아닌가? 아무리 월스트리트와 시티의 금융 자본과 그 '하수인'인 대처와 레이건이 무섭다 한들, 한 줌도 안 된 그들이 무슨 흑마술사처럼 주문이라도 외웠단 말인가?

그런데 이런 의문에 제대로 답하는 책을 나는 보지 못했다. 장석준은 이 책에서 1970년대의 칠레로, 영국으로, 1980년대의 프랑스로, 스웨덴으로 독자를 데리고 가서 그 때 그곳에서 세계의 미래를 둘러싸고 좌파와 우파 간에 어떤 치열한 전투가 있었는지 보여준다. 그 전투는 때로는 피 튀기는 비극으로(칠레) 때로는 웃음을 참을 수 없는 희극으로(영국) 계속되었다.

어쭙잖은 지식으로 '신자유주의'를 되뇌는 이들이 비웃는 소리가 들린다. '좌파가 패배하고, 우파가 승리했다? 그건 다 아는 일이잖아!' 이 책은 그런 이들이야말로 꼭 읽어야 할 책이다. 그 때는 인류 역사상 좌파가 가장 큰 힘을 쥐고 있었던 때였다.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우파에게 당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위기를 돌파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그래서 이 책은 좌파가 패배한 과정에서 머무르지 않고 동시에 그들이 패배하지 않고자 어떤 무기를 준비하고 또 벼렸는지 꼼꼼하게 기록한다. 그 무기의 대다수는 당시에는 전투에 쓰이지도 못한 채 폐기되었다. 그러나 복지 국가의 문제점을 극복하면서 자유 시장 자본주의에 맞서고자 만들어진 그 무기는 지금이야말로 긴요하게 쓰일 시점이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바로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면서도, 온갖 문제를 낳았던 1970년대 이전의 그 복지 국가가 아닌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에 몸담아온 저자가 이런 책을 쓴 진짜 이유도 바로 그 무기를 낡은 창고에서 꺼내어 새로운 환경에 맞게 개량하고자 하는 의도 때문이 아닐까?

가끔씩 터무니없이 수준이 낮은 외국의 조잡한 책들이 국내에 소개되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질 때가 있다. 국내 저자의 책을 놓고 '짜깁기'라고 폄훼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주고 싶다. 단언하건대, 당장 미국, 유럽, 일본의 독자에게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마치 극본처럼 적재적소에 등장인물을 배치하고, 사건과 설명을 요령 있게 엮는 솜씨는 이 책을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만들어 놓았다. 군데군데 튀어나오는 익숙한 등장인물이 주는 씁쓸한 웃음은 이 책의 덤이다. 예를 들어서, 1997년 외환 위기의 주인공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미셸 캉드쉬는 20년 전에 무얼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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