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애만 낳았을 뿐인데…"'연봉 1억'이 빈민으로!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애만 낳았을 뿐인데…"'연봉 1억'이 빈민으로!

[프레시안 books] 샤론 러너의 <육아 전쟁>

아이를 낳고 직장을 다니면서 여러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한 번은 아이가 만 세 돌이 좀 지나서 찾아왔다. 발단은 사소했다.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가 똥을 가리지 못해서였다. 걸음마를 처음 뗄 때도, 말이 처음 터질 때도, 아이는 조금씩 늦었다. 그런데 똥을 가리는 문제는 유독 늦었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이라고 느긋이 생각하다가도 어린이집에서 '실수'를 하고 오면 마음이 달라졌다.

육아 책을 보면, 주변의 조언을 들어보면, 결국 모든 게 '엄마 탓'으로 귀결된다. "그래, 에미가 죄인이다"라는 고해성사와 함께 직장을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 일주일에도 몇 번씩 찾아온다. '일하는' 엄마의 고충은 돈과 시간의 문제가 가장 크지만 '이상적인 엄마'와 '현실의 나'와의 거리감, 그로 인한 죄책감 역시 무시 못 할 요인이다. 누구도 아버지를 탓하진 않는다.

그래서 우울하지만 냉철한 전망을 해본다. 현재 가부장적 자본주의(Patriarchal Capitalism) 체제에서 '일하는' 여성의 육아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불가능에 가깝다.

왜?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신, 출산, 육아를 포함한 재생산 노동 그리고 그 산물인 아동이 어떻게 여겨져 왔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재생산 노동은 (미래의) 노동자를 가장 싼값으로 생산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자본주의가 처음 발현한 영국에서 아동 노동은 자본가들이 인건비를 절약하는데 매우 유용한 수단 중 하나였다.

<로빈슨 크루소> 저자 대니얼 디포가 1724년에 쓴 <영국 여행기>에 보면 당시 매뉴팩처 작업장에서는 "네 살이 넘지도 않은 어린 것들이 숨 쉴 틈 없이 실을 뽑고 베를 짜는 등 일을 했다"고 한다. (21세기에도 아동 노동은 아프리카 등 제3세계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선진국이라 하더라도 빈민층 아이들은 노동을 해야만 한다. 국제 노동 기구(ILO)에 따르면 2010년 현재 전 세계적으로 노동 착취 환경에서 일하는 5∼17세 아동 및 청소년이 약 2억50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상당수 국가는 미성년이 임노동에 참여하는 야만적 자본주의에서는 벗어났지만, 21세기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에서 육아는 또 다른 착취의 영역이 됐다. 아동 한 명이 노동자가 되기까지 길어진 보호 기간과 높아진 교육의 질을 담보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은 여전히 여성에게 일차적으로 돌아간다. 그러다 보니 여성은 노동 시장과 가족 안에서 이중의 부담과 이중의 착취를 경험한다. 엄마이자 노동자가 직면한 이런 상황은 현 체제를 유지시키는데 매우 유용하다.

갈수록 세분화되고 경쟁적이 되는 노동 시장에서 자본이 요구하는 노동자는 회사를 위해 24시간 일할 수 있는 인력이다. 여기서 '애 딸린 여성'은 하자 있는 노동자다. 가임기의 젊은 여성도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 전체 인구의 절반을 문제 집단으로 묶어 놓음으로써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건 역시 자본이다. 2008년 경제 위기에서 가장 먼저 해고된 집단은 '비정규직 여성'이었다.

또 더 이상 노동자로 직접 고용이 불가능한 아동은 또 다른 영역을 통해 새로운 돈벌이 수단이 됐다. 아이를 돌보는 일 자체가 거대한 산업이 됐다. 만 6세에서 5세, 4세, 3세로 취학 전 아동의 사교육 시장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한국의 현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돈이 아이를 키우는데 가장 중요한 요건이 된 일부 선진국의 상황은 그 사회의 산업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그 사회는 틀림없이 단순 노동력이 무한대로 요구되는 '굴뚝 산업'이 한계에 도달했을 것이다.

이처럼 수세기 동안 크게 달라졌지만, 별반 달라진 것은 없다고도 할 수 있는 여성의 상황은 자본의 필요에 따라 최적화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남성이 육아에 더 많이 기여하고, 국가가 복지를 통해 부담을 일부 줄여 주는 것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암울한 전망에 도달하게 된다. 더구나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유일한 체제 경쟁자였던 사회주의마저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스웨덴 등 북구의 복지 시스템은 주변 사회주의 국가들과 체제 경쟁 과정에서 뿌리내리게 된 측면도 있다.)

이런 근본적(radical)인 입장에서 보면, 신자유주의 첨병국 미국에서 일어나는 엄마 노동자들의 전쟁 같은 일상을 담은 책 <육아 전쟁>(샤론 러너 지음, 현혜진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은 조금 아쉽다. 여성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무게에 비해 이에 대한 해결책은 앙상해 보인다. 물론 육아를 둘러싼 여성 문제의 근원이 생물학적 차이에 있고, 그래서 도나 해러웨이가 주장했던 '사이보그'가 유일한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무엇이 충분히 보상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 '보상, 즉 주고받음의 방식' 등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과 합의가 바뀌어야 한다. 경제 시스템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는 지원책은 그야말로 지원책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 <육아 전쟁>(샤론 러너 지음, 현혜진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랜덤하우스코리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현실에서 이 책이 주는 시사점은 분명히 있다. 한국이 미국을 쫓아가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교훈을 준다.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통한 소위 '의료 서비스의 선진화'는 절대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점을 이 책을 보면서 거듭 느꼈다.

"널찍한 신식 세단을 두 대나 몰고 다니며 뉴욕의 부촌 롱아일랜드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살고 부부 소득이 총 10만 달러(1억 원)가 넘어 정기적으로 휴가도 다니고 원할 때마다 쇼핑도 하고 종종 누벨 퀴진으로 입맛을 충족시키던" 가트너 부부가 단적인 예다. 이들 부부의 삶은 심장에 구멍이 난 미숙아 베다니를 낳으면서 완전히 바뀌었다.

베다니가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이들 부부는 집을 처분해야 했다. 아이를 낳은 뒤 남편은 주간 근무를 하고, 부인은 밤 11시에 출근해 오전 7시에 퇴근하는 야간 근무를 하면서 병원비를 갚으려 허덕였다.

이런 지속 불가능한 생활을 몇 달간 하다가 부인은 결국 회사를 그만 뒀다. 미국식 의료 시스템에서는 회사를 그만 둘 경우 의료 보험 혜택이 끊겨 병원비가 급증하는 '이중 부담'이 불가피하다. 가트너 부부는 아이를 낳은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극빈층으로 전락했다.

이 안타까운 사연 말미에 저자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고 썼다. "미국에서 신생아의 출생은 빈곤 주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는 것. 한국에서도 '베이비 푸어'라는 신조어가 최근 들어 언론지면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저자는 육아 문제에 있어 미국은 "후진국"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의 법정 산후 휴가는 최대 12주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를 보장받는 노동자들은 극소수다. "모든 민간 부문 근로자들 중 8퍼센트만이 유급 휴가를 받았다"고 한다. "프랑스와 스페인 두 나라는 한 부부당 약 6년의 휴가를 제공한다. 독일.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역시 2~3년 동안 부모의 고용을 보장하면서 출산 후 42~47주의 유급 휴가를 준다. 스웨덴은 자녀가 한 살 반이 될 때까지 집에 계속 있다가 복직할 수 있다."

유럽 국가들만 미국보다 나은 게 아니다.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볼리비아에서는 여성들에게 3개월의 유급 출산 휴가를 보장한다. 1인당 국민 소득이 미국의 4분의 1밖에 안 되는 칠레에서도, 여성이 아이를 낳은 지 1년까지 법으로 고용이 보장된다."

저자는 오바마 정부에 대한 기대로 책을 맺었다. '의료 보험 체계의 정비'만으로도 이전 정부와 비교해 일하는 엄마들에게 매우 우호적인 정부라는 평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오바마 정부의 이제까지 성과가 "변화의 웅성거림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봤지만.

앞서 얘기한 경제 시스템의 근본적 변화는 정치의 변화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정치가 이 거대한 변화의 첫 단추라는 점은 인정한다. 한국도 2012년 총선과 대선이라는 중대한 선거를 앞두고 있다. 한국은 "후진국 미국"의 시스템을 굳이 쫓아가지 않더라도, 유교적 가부장제에 근거한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후진적 육아'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은가.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