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문제는 다른 데 있다. 2013년부터 교토 의정서 2차 연장 결정, 모든 국가들이 탄소 감축에 참여하는 더반 플랫폼 합의, 2020년까지 매년 1000억 달러의 녹색 기후 기금 실행 계획 수립. 포장지만 보면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위해 뭔가 대단한 성과를 낸 총회인양 칭찬받을 수 있겠다. 그러나 요란한 장식 속에는 '녹색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흑막이 있다. 그것의 시작은 녹색 기후 기금(GCF)이다.
18차 기후변화협약 총회 유치에 실패해 방향을 틀었는지 모르겠으나, 한국 정부가 녹색 기후 기금 사무국을 유치하겠다고 나섰다. 현재 스위스와 노르웨이와 함께 삼파전 양상이다. 녹색 기후 기금은 코펜하겐 총회에서 매년 1000억 달러를 조성해 개발도상국이 시급히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데 지원할 목적으로 합의됐다.
칸쿤 총회에서 첫 3년간 세계은행이 기금을 운영하기로 결정되었고, 더반 총회에서는 세부 사항들이 논의되었다. 이 녹색 기후 기금 사무국을 따내고자 한국은 착수 기금을 제공하겠다는 약속도 한 모양이다. 아무튼 내년에 스위스에 이어 2차 이사회가 한국에서 열린다. 그런데 칸쿤 때부터 녹색 기후 기금에 대해 적지 않은 우려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선진국이 기후 변화의 역사적 책임에 공감하여 기후 변화에 취약한 국가와 지역에 자금을 댄다는 취지는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기금 설계 위원회가 제안해 더반에서 통과된 기금 조성과 운영 원칙이 실제로 지켜질지 의문이다. 녹색 기후 기금은 투명하고 책임성 있는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하고, 공적 개발 원조(ODA) 등 기존 지원과는 별도로 새롭고 추가적이고 적절하고 예측 가능한 재정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공적, 민간 그리고 다른 대안적 재원으로 충당되어야 한다. 좋은 말은 다 가져다 붙여 놓은 것 같지만, 이미 비극의 씨앗이 싹트고 있다.
▲ 'Occupy COP17'의 퍼포먼스. 사람이냐 이윤이냐? 세계은행 등 국제 금융 기구들이 탄소 경제로 돈을 벌고 있다고 풍자하는 퍼포먼스.ⓒ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
녹색 기후 기금에 앞서 2010년~2012년 동안 선진국은 300억 달러를 마련해 긴급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선진국이 내놓겠다고 약속한 금액은 291억 달러이지만, '새롭고 추가적인' 기금은 20억 달러가 되지 않는다. 한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0년에 공적 개발 원조의 15퍼센트인 229억 달러를 기후 관련 사업에 지원했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긴급 지원만 보더라도 녹색 기후 기금이 제대로 조성될지 앞날을 장담하기 어렵다. 또한 공적 개발 원조의 절대치가 증가하지 않는다면, 기존 원조 사업은 점차 줄고 기후 사업이 늘어나 빈곤 퇴치나 지역 개발 등 국제 사회의 다른 목표를 달성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각국의 경제 위기 상황에서 이런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2년 동안 긴급 지원 사업으로 실제 분배된 금액은 21억 달러에 불과하다. 이러니 국제 사회 단체들이 투명성이 부족하고 너무 늦게 분배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이 계속된다면 녹색 기후 기금의 적절성과 예측성은 매주 낮은 수준에 그칠 것이 분명하다.
기후 변화 완화와 적응 사업이 균형을 이뤄야 하는데, 현재 적응(25퍼센트)보다 완화(62퍼센트)의 비중이 높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우선 적응 사업에 투자하여 현재 겪고 있는 기후 재앙에 대비하는 것이 급한데 정작 선진국에서 주도해야 할 감축 사업들에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13퍼센트를 차지하는 산림 전용 방지(REDD+)는 탄소 흡수의 불확실성이 높아 여전히 과학적 논쟁의 대상이다. 선진국이 열대 우림이 풍부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의 감축 책임을 개발도상국에게 전가하는 탄소 상쇄 프로그램으로도 악명이 높다.
아직 재원 마련 대책이 최종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사적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조치를 하나 둘씩 마련하는 것으로 봐선, 과연 선진국의 공적 출연금이 충분할지 그리고 국제 탄소세와 같은 대안적 방식이 받아들여질지, 긍정적으로 판단할 어떤 근거도 찾아볼 수 없다. 무상 원조가 100퍼센트가 되도 모자랄 판에 오죽했으면 기후 부채(climate debt) 정신에 위배되는 유상 원조(양허성 차관) 방식까지 채택했겠는가. 기후를 새로운 시장으로 삼아 이윤을 얻고자 하는 자본, 탄소를 제때 제 몫만큼 감축하지 않을 면죄부를 스스로 부여한 선진국의 합작품이기 때문이다.
굳이 연간 1,000억 달러가 기후 부채 해결에 부족하다는 점을 떠올릴 필요 없이, 녹색 기후 기금을 둘러싼 기후 총회의 맥락을 돌이켜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녹색 기후 기금에 '산림 전용 방지'뿐 아니라 기술 개발과 이전 분야에 탄소 포집 및 저장(CCS)도 포함됐다. 이는 교토의정서의 시장 기반 메커니즘 중 하나인 청정 개발 체제(CDM)에 탄소 포집 및 저장이 새롭게 포함된 결정과 함께 이뤄진 결과이다. 이미 예견되었기에 놀랄 만한 결정은 아니지만, 이는 교토 의정서를 약화시킨 채 탄소를 사냥할 수 있는 '녹색 경제'의 기반을 강화시킨 꼼수이다.
교토 의정서 2차 연장에 그나마 강한 의욕을 내비췄던 유럽연합이 선한 의도만을 가지고 있었을까. 유럽연합의 탄소 시장(EU-ETS)의 배출권 가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자체적으로 설정한 2020년까지 20퍼센트 감축 목표를 폐기하면 큰 낭패를 볼 것이 뻔하다. 그런 이유로 교토 의정서에 '새로운 시장 기반 메커니즘'을 도입하기 위해 강하게 주장했고, 카타르 총회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될 예정이다.
유럽연합의 제안에 볼리비아와 베네수엘라가 반대 입장을 표명했지만, 또 다른 방안도 등장했다.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는 자국이 표명한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혹은 양자 간에 자신의 입맛에 맞게 설계한 탄소 시장을 형성하여 감축을 쉽게 할 수 있는 방안을 요청한 상태이다. 현재의 유엔 기후 체제 밖에서 감축 기제를 찾아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녹색 경제 방식들은 교토 의정서 연장, 더반 플랫폼, 녹색 기후 기금과 함께 더반 총회가 오염자들 1퍼센트에 의한 그리고 1퍼센트를 위한 '더반 라운드'였음을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다. 교토 의정서가 약화되었다고 탄소 시장 메커니즘이 약화되는 것이 아니다. 당장 교토 의정서가 죽더라도 녹색 자본주의는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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