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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종말? '지구 서바이벌 가이드'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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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종말? '지구 서바이벌 가이드'가 필요해!

[親Book] <녹색평론> 창간호

어떤 시작

사람들은 20년 동안 끈질기게 한 가지 일에 매달리는 것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명진 스님은 어떤 쥐새끼 같은 사람의 말을 흉내 내 "내가 <민족21>이라는 잡지를 해봐서 아는데, 엄청난 사건"이라고 말했다. 발행인은 "기적 같은 일"이었노라고 소회를 밝혔다. 1991년 11월 창간된 격월간 잡지 <녹색평론> 얘기다.

<녹색평론>은 파국을 예감하는 예민한 감수성에서 시작한 예언과 실천의 목소리였다. 자기 자신과 가족, 나아가 다른 사람들까지 스스로 죽이고 있으면서도 그 살인 행위를 인식하지 못하는 자살의 산업 문명 시스템을 두고 아무도 제대로 그 실상을 보려 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절박한 문제 제기였다. 벌건 대낮에 등불을 들고 간곡하게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던 소통의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그런 소통과 절박함의 목소리를 20년 동안 이어왔어도 여전히 <녹색평론>은 한국 사회에서 소수의 목소리다. 이른바 보수 주류 거대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들도 외면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소수의 몇 개 언론만 <녹색평론> 20년의 소식과 의미를 일반 시민들에게 알려주었다.

<한겨레>는 아예 한 줄의 기사도 쓰지 않았다. 이 신문이 표방하는 진보라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 국가주의에 매몰되어 있고,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한 시각이 얼마나 편협한 우물 안 개구리에 갇혀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세상이 붕괴되면 새로운 사상이 싹을 틔운다

<녹색평론>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1991년은 세상이 바뀌는 전환기였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를 신호탄으로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1991년 구 소련은 역사의 유물로 사라져 버렸다. 동서 냉전 체제 또한 미국 주도의 단일 세계 지배 체제로 확 바뀌었다. 정의와 평등과 평화의 신천지라고 여겼던 사회주의가 무너지자 수많은 젊은이들이 혼돈과 방황으로 비틀거렸다.

새로운 세상은 먼저 새로운 생각과 사상으로부터 시작된다. 1987년 6월 항쟁은 일반 시민에게 함께 어깨 걸고 싸우면 아무리 철벽같은 군사 독재 정권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이후 대한민국이라는 근대 국가에서 처음으로 시민 주체의 새로운 사회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989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산업 문명을 죽임의 문명으로 선언하고 새로운 살림의 문명, 생명 운동을 제창하는 '한살림 선언'이 발표되었다.

1988년 올림픽 개최의 열기와 함께 바야흐로 단군 이래 최대의 풍요가 한국인의 안방을 소비재 상품으로 넘쳐흐르게 만들기 시작하던 때였다. 집집마다 자가용 한 대씩 굴리고, 해외 여행이 급증하던 때였다.

이런 시대 배경 속에서 1991년 <녹색평론>이 창간되었다. <녹색평론>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성장과 개발의 산업주의 사고방식을 밑바닥에서부터 철저히 부정하는 전혀 새로운 각성과 저항의 비명소리였다.

그 비명소리는 그러나 고음으로 목이 터져라 처절하게 악을 쓰고 외치던 민주화 운동의 구호가 아니었다. 자신과 세계를 꿰뚫고 성찰하면서 낮고 굵은 저음의 목소리로, 그러나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과 세계에 던지는 공명과 울림의 비명소리였다.

강하게 뒤통수를 때렸던 창간호의 목소리들

▲ <녹색평론>(창간호, 녹색평론사 펴냄). ⓒ녹색평론사
152쪽밖에 되지 않는 얇은 <녹색평론> 창간호를 읽으면서 전율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어떻게 대지와 물과 신선한 공기를 사고팔 수 있느냐고 워싱턴의 대추장에게 묻는 시애틀 추장의 '우리는 결국 모두 형제들이다'라는 연설문은 읽는 사람들의 온 영혼을 뒤흔들어 놓았다. 종을 때리는 통나무가 아메리카 대평원에서 날아와 뒤통수를 종처럼 세게 타종하는 것만 같았다.

우리와 우리 자식들이 살아남아 사람다운 삶을 누릴 수 있기 위해서는 결국 하늘과 땅의 이치를 따르는 농업 중심의 경제 생활을 복구해야 하고, 겸손에서 기쁨을 느끼면서 협동의 공동체를 만들고 상부상조의 사회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발행인의 창간사는 우리가 왜 사회 운동을 하는 것인지 그 초기의 문제의식을 강하게 다시 일깨워주었다. 진리는 심오한 이론도 복잡한 것도 아니었다. 우애와 평등의 세상은 그리 먼 데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산업 문명 자체에 대한 근본의 의문과 거부가 필요한 것이었다.

웬델 베리의 '나는 왜 컴퓨터를 안 살 것인가'는 지금 다시 읽어 보아도 새로운 충격이다. 2003년까지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았던 사람 가운데 어떤 사람에게 베리는 아주 그럴 듯한 구실과 철학을 제공해 주었다. 지금은 거의 모든 글쓰기와 정보 수집,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컴퓨터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아마도 여전히 어느 순간 베리의 실천을 추종하는 날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라오스 인민들의 자립 경제와 자치 생활을 전해주는 '자연 경제와 마을 민주주의'는 유물사관과 민중 사학에 대해 근본의 회의를 하게끔 만들었다. 근대 이전 사회를 억압과 착취의 고통스런 세상으로 보는 것은 또 다른 왜곡일 수 있었던 것이다. 천규석의 '한살림 운동의 실천과 사상'은 오히려 지금 다시 절실하게 필요한 글이었다.

<녹색평론>은 실패했다

창간호의 글들은 지금 출판해도 여전히 유효한 글들이다. 이 말은 <녹색평론>의 절박한 소통 노력이 실패했다는 말과 같다. 그렇다. <녹색평론>은 수많은 문제 제기를 했지만 현실의 인민들은 그저 좋은 얘기군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여전히 발걸음은 성장과 개발의 길로 나아갔다. 1991년에 견주어 세상은 더욱더 엄청나게 좁아지고 또 엄청나게 높아졌다.

통계청이 운영하는 통계 포털 사이트와 각종 관련 기관 통계를 이용하여 1990년과 2010년의 20년 동안 무엇이 달라졌는지 몇 가지만 살펴보자.

1990년 남한 총인구와 가구는 4340만 명, 1135만 가구였다. 그런데 2010년 총인구는 4858만 명, 1757만 가구로 518만 명, 622만 가구가 늘었다. 가구당 3.8명에서 20년 사이에 2.8명으로 핵가족화가 그만큼 더 진전되었다는 얘기다. 2만 명에 지나지 않던 외국인은 59만 명으로 늘어났다. 농민과 농가 수는 1990년 666만 명, 178만 가구에서 306만 명, 118만 가구로 줄었다. 새삼스런 지적도 아니지만 농업은 사실상 멸종 직전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인구는 1.1배 늘어나는 데 그친 데 반해 한국 인민의 물 쓰듯 하는 소비 생활은 그야말로 미쳤다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다.

전기의 총발전량은 10만7670기가와트시에서 47만4660기가와트시로 4배 이상 늘어났다. 북한 핵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자국의 인민을 겨냥한 죽음의 자살 핵폭탄인 핵발전소는 아홉 기에서 스물한 기로 늘어났다. 자동차는 340만 대에서 1794만 대로 무려 다섯 배 이상 늘었고 당연히 도로 또한 5만6710킬로미터에서 10만5570킬로미터로 두 배나 늘어났다.

그리고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시멘트 포장 도로가 농지와 임야를 불가사리처럼 열심히 불철주야 갉아먹고 있는 중이다. 이런 자동차를 달리게 하고 또 석유 문명의 원동력이기도 한 원유 도입량은 3억800만 배럴(64.6억 달러)에서 8억7200만 배럴(686.8억 달러)로 물량은 약 세 배, 금액은 열 배 이상 늘었다.

1989년 해외 여행이 자유화되기 이전에는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 자체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웠다. 1984년 해외로 여행을 떠난 사람은 3000명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1989년 40만 명을 넘어서 해외 여행객 수는 2010년에는 무려 1248만 명에 달한다. 물론 당연히 1990년에는 인터넷이 없었다.

<녹색평론>은 살아남은 자의 책상에 꽂혀 있을 것이다

20년 동안 120호를 한 번도 빼먹지 않고 발간한 이 격월간 잡지의 노력과 분투는 그러나 결코 성공과 실패로 판가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녹색평론>의 절박한 소통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 <녹색평론>(121호, 녹색평론사 펴냄). ⓒ녹색평론사
전 세계에 독자 모임이 있는 잡지는 아마도 <녹색평론>이 유일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녹색평론>을 읽으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수많은 사람들이 <녹색평론> 책을 덮고 가슴 깊은 곳에 묻혀 있었던 땅과 자유와 이 세상에 대한 감수성을 다시 끄집어 내 복원할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경쟁과 전쟁의 이데올로기 색안경을 쓰레기통에 내팽개쳤다. 그리고 협동과 평화, 우애와 환대의 이웃 공동체를 복원하면서 삶을 다시 활기차게 만들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석유 정점과 금융 위기에서부터 시작되는 산업 문명의 몰락은 쓰나미처럼 소리 없이 우리 코앞으로 몰려오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살던 세상은 머지않아 삼풍백화점처럼 붕괴되고 말 것이다. 그런 붕괴와 몰락의 시기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살아남은 자의 책상에서 <녹색평론>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말을 들으면 이게 무슨 터무니없이 소리인가 코 웃음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당장 <녹색평론>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정기 구독을 신청해보라.

그리고 <녹색평론>의 지난 호들을 아무거나 구해서 읽어보라. 그러면 아마도 당신은 우리가 지금 어떤 끔찍한 위기 앞에 봉착하고 있는지 몸을 부르르 떨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당장 당신의 아들딸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결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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