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과 노동건강연대는 이들 행사에 참석 차 내한한 테드 스미스(Ted Smith)와 웬링 투(Wenling Tu)를 만나 전자 산업 노동 환경 정의 문제의 핵심 이슈와 국제 동향을 들어보았다.
테드 스미스는 현재 '기술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국제 운동(ICRT, International Campaign for Responsible Technology)'의 코디네이터이며, '실리콘밸리 독성 물질 방지 연합(SVTC, Silicon Valley Toxic Coalition)'의 설립자다.
웬링 투는 타이완 국립정치대학 교수(공공행정학과)로서 현재 '지구공민기금회(CET, Citizen of the Earth in Taiwan)' 이사로 활동 중이며 '타이완환경행동네트워크(TEAN, Taiwan Environmental Action Network)'의 설립자 중 한 명이다. 이들은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Challenging the Chip : 세계 전자 산업의 노동권과 환경 정의>(메이데이 펴냄)의 공동 저자다.
인터뷰는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인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원이 진행했다. <프레시안>은 인터뷰를 테드 스미스, 웬링 투 순서로 두 차례에 나눠서 싣는다. <편집자>
▲ '기술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국제 운동(ICRT, International Campaign for Responsible Technology)'의 코디네이터 테드 스미스. ⓒ김명희 |
김명희 : 우선 한국에는 어떤 일로 오게 된 것인지 간략히 소개를 부탁한다.
스미스 : 반올림의 초청을 받아서 오게 되었고, 몇 가지 연대 활동에 참여할 예정이다. 일을 하다가, 특히 삼성을 비롯한 대규모 전자 회사들에서 일을 하다가 독성 화학 물질에 노출되어 그 영향을 받은 사람들과의 연대 말이다. 지난 수년간 한국에서 어떤 문제들이 벌어졌는지 알게 되었다.
한국인들은 그들의 문제가 한국만의 고유한 것이 아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들의 문제는 다른 국가들, 미국에서 다른 곳으로 확산되고 있는 문제들과 매우 비슷하다. 한국의 문제는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대규모이자 중요한 암 집단 발병 사례라 할 수 있다. 매우 중요한 상황이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세계 다른 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교훈을 얻었더라면 또한 막을 수 있었던 문제이기도 하다.
김명희 : 이런 문제가 다른 나라에서도 공통적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전통적인 제조업과 비교했을 때 건강과 환경 측면에서 전자 산업의 특별한 점은 무엇인가?
스미스 : 최소한 두 가지 면에서 다르다. 첫째, 이 산업은 스스로 '청정 산업'이라 부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이 안전한 산업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갖는다. 하지만 이 산업이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때의 '청정'은 단순히 칩(chip)이 먼지로부터 청정하다는 뜻이다.
김명희 : 사실 나도 이 사건을 알기 전에는 매우 깨끗하고 안전한 산업이라 생각했다. 우주복같이 생긴 작업복부터 그런 인상을 주었으니까.
스미스 : 노동자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를테면 노동자들한테 '솔벤트'를 쓰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우리는 '클리너'를 쓴다고 대답한다. 이러한 오해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이 산업이 화학 물질을 다루는 산업이라는 점이다. 생산품을 만들기 위해 수백, 수천 가지의 화학 물질을 사용한다. 내가 아는 한 이렇게 많고 다양한 화학 물질을 사용하는 산업도 별로 없다.
물론 작업장이든 주변 환경이든 노출 수준은 대개 매우 낮다. 정해진 인간 노출 기준에 비추어볼 때 말이다. 정부는 인간에게 해가 없는 수준에서 기준을 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확인한 것은 수많은 화학 물질들에 대해 기준치가 아예 없다는 사실이다. 또 기준이 있다고 해도 혼합 물질에 대한 기준은 없다. 복합 화학 물질 노출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따라서 기준이 존재한다고 해도 이것이 항상 유용한 것은 아니다.
아, 세 번째 특징을 추가해야겠다. 이 산업이 매우 빠르게 변한다는 것 말이다. 기술이 너무 빨리 변해서 노동자들을 보호할 전문가들도 그저 그러한 기술 변화를 뒤에서 쫓아가고만 있다. 새로운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결정은 대개 적정한 독성학적 평가 없이 이루어진다.
김명희 : 독성 물질에 의한 건강 피해가 분명하게 확인된 사례들이 있나?
스미스 : 우리는 문제들 사이에 유사점을 봐야 한다. 전자 산업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에 대해 충분히 과학적인 연구는 아직 없다. 기업들은 이러한 연구에 매우 비협조적이고, 따라서 자료가 매우 부족하다. 연구를 하는 경우에도 때로는 문제를 확인하기 어렵도록 설계되기도 한다. 기업 내부 자료의 존재는 확인하기 매우 어렵다.
따라서 우리는 비슷한 화학 물질들을 사용하는 다른 산업에서 유사성을 발견해내야 한다. 이를테면 화학, 자동차 산업 등인데, 그들 산업에 이루어진 연구 결과를 보면 매유 유의한 건강 유해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솔벤트와 관련된 건강 문제들은 여러 차례 확인된 바 있다.
김명희 : 연구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노동자 중 다수가 젊은 여성이라는 점일 것이다. 3~4년 정도 근무를 하고 회사를 떠나니 추적이 어렵고, 그러다 보니 과학적으로 원인적 연관성을 밝히기가 매우 어렵다.
스미스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한편,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가임기 여성이라는 점은 생식 독성의 영향을 밝히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시사한다. 이와 관련된 연구는 매우 적다. 미국에서 겨우 3건 정도? 이들은 유산에 대한 영향을 살펴보았는데 모두 유산율이 높아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기업들에게 출생 기형 문제를 연구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과거에 노출되었던 사람들의 자녀들에게서 심각한 출생 기형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연구가 절실하다.
김명희 : 이러한 문제들에서 국가별 차이나 비슷한 점은 무엇인가?
스미스 : 암 집단 발병의 경우, 아마도 최선의 연구는 IBM 사례를 연구한 리처드 클랩(Richard Clapp) 박사의 연구일 것이다. 이 연구는 IBM 기업 사망 자료를 분석했는데, 그동안 누구도 보지 못했던 자료였다. 그는 소송 과정에서 이 자료를 확보했고, 여기에는 IBM에서 근무한 3만여 명 노동자의 사망정보가 담겨 있었다.
이 자료에서 혈액암, 뇌암 같은 몇몇 암 사망률 증가가 확인되었다. 놀라운 것은 그 양상이 한국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스코틀랜드와 타이완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관찰된다. 스코틀랜드 직업안전보건청에서 시행한 연구에서 처음에는 암 발생 증가가 확인되었지만, 기업의 저항에 부딪혔고, 다시 분석한 결과에서는 연관성이 별로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도 여기와 비슷한 것이다.
타이완의 RCA 사례도 있다. RCA는 미국 기업 중 가장 초기에 아시아로 진출한 기업들 중 하나였다. 그들은 이미 1970년대에 타이완으로 진출했고, 매우 심각한 유산을 타이완에 남겼다. 수백 명이 암에 걸리고 미국에서와 같은 수질 오염이 발생했다. 하지만 기업은 계속해서 책임을 거부하고 있다.
김명희 : 정부나 기업, 노동 운동의 반응 측면에서는 어떤가?
스미스 : 한국은 운동이 잘 조직되어 있어서 무척 놀랐다. 미국에 비해 잘 조직된 노동 운동에 의해 더 힘을 받는 듯하다. 여기 사람들이 우리보다 두 배는 더 강력한 것 같다. (웃음)
하지만 전자 산업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산업이다. 정부는 기업이 언짢아하는 어떤 일도 하려 들지 않는다. 반도체 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고 있다.
김명희 : 아마도 한국에서 삼성의 위치는 미국의 IBM 보다 더 강력하지 않을까 싶다.
스미스 : 나도 사람들에게 그렇게 설명한다. IBM, 애플(Apple), HP, 인텔(Intel)을 모두 합쳐 한 회사로 만들면 아마 삼성과 가까울 거라고. 또 놀라운 것은 삼성과 애플이 유럽 지역에서 치열하게 싸운다는 점이다.
이 산업의 중요한 특징은 기밀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인텔의 이전 CEO가 쓴 책 <The Only the Paranoid Survive(편집증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이들 기업의 정신 세계를 잘 보여준다. "누구한테도 무엇에 대해서도 말하지 말라!"
그들은 서로 매우 경쟁적이다. AMD와 인텔은 기밀을 두고 서로를 고소하며 수십 년 동안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이것은 전쟁이다. 현재 애플과 삼성이 벌이는 싸움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그 수준은 한층 높다. 전 국가에 걸쳐 상품 판매를 못하게 하자는 거니까. 인텔과 AMD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이들의 무기는 남보다 한걸음 앞서 나가는 것이다.
매우 경쟁적이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서 신제품으로 시장을 선점하는 자가 이득을 모두 가져가는 구조이다. 차세대 칩이 거의 모든 이윤을 독식하고, 휴대 전화 신상품이 출시되면 6개월 내에 결판이 난다. 항상 앞서 나가기 위해 경쟁하고, 다른 한편으로 온갖 더러운 속임수를 다 쓴다. 서로에게 하는 것을 보면 노동자들에게 그런 더러운 속임수를 쓰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김명희 : 흔히 '소비자'는 중산층을 의미하고, 소비자 운동은 화장품 같은 소비 상품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당신이 활동하고 있는 단체들은 노동 운동과 환경 운동의 연합체적 성격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환경과 노동 운동의 연대가 가능했나?
스미스 : 이건 매우 결정적인 문제다. 우린 흩어지면 결코 이길 수 없다. 그들은 매우 강력하고 우리는 매우 약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단결이다.
김명희 : 그런데 양 운동 진영의 문화가 매우 다르지 않나?
스미스 : 다르다. 하지만 우리와 기업들 사이의 차이만큼 다른 것은 아니다. 차이는 옆에 접어두고 공통점이 더 많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당신 말에 동의한다. 환경 운동 그룹은 대개 중산층이다. 실리콘밸리독성물질연합을 시작할 때 나는 다소 순진했었다. 주변에 다수의 환경 운동 그룹들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들을 모조리 조직하려고 했었다. 실제로 우리는 대부분의 환경 운동 그룹, 노동 운동 그룹을 조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양쪽 우익 그룹은 함께 할 수 없었다. 우익 환경주의자들은 부자 동네에 살면서 자신들의 지역 사회만을 지키려고 했다. '나 먼저(me first)!'였던 셈이다. 마찬가지로 기업 내 우익 노동조합도 함께 할 수 없었다. 그들은 건물 임대 사업 같은 것을 하며 돈을 많이 벌었고, 임금 이외에는 아무 것도 관심이 없었다. 우리가 이 양쪽 그룹과는 함께 갈 수 없었지만, 그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그룹들을 조직했고 그게 우리가 한 일이다.
우리에게는 매우 현명한 노동 운동가들이 있었다. 당시 지하수 오염 문제가 매우 중요한 이슈였고, 모든 사람들이 이 때문에 걱정하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위험할 수 있었다. 노동 운동가들은 '우리는 일터에서 노출되고 집에 가서 또 노출된다'고 이중 노출 문제를 제기했다. 작업 현장과 주변 환경 둘 다 깨끗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로 이것이 연계를 만들어간 방법이다. 사실 우리는 매우 운이 좋았다. 당시 (1970년대) 미국 사회는 매우 진보적인 분위기였다.
김명희 : 당신은 원래 환경 운동가 아닌가? 어떻게 노동과 연계할 생각을 했나?
스미스 :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지만 나는 원래 노동 운동에서 먼저 시작했다. 원래 노동 변호사였다.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았지만. (웃음) 노동 운동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이러한 연계 운동이 가능했다.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까지 반전 운동의 기운 속에서 성장한 나 같은 세대는 스스로를 활동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전자 산업의 경우 외부의 노동 운동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산업 내부에는 대개 노동조합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노력은 있었다. 좌파 노동조합 중 하나인 '전기노조 (UE, United Electrical)'가 1950년대부터 존재했고 실리콘밸리에서 노동조합을 조직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거의 모두 불법 행위를 이유로 해고되었다. 5~10년이 지난 후 그들의 활동이 합법적이었음이 법정에서 확인되었지만 이미 되돌릴 수는 없었다. 다른 공장, 다른 기업에 속한 노동자들의 지지가 중요하다.
김명희 : 당신이 속해있는 또 다른 단체인 '산타클라라 노동안전보건연합(Santa Clara Coalition for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SCCOSH)'은 미국 전역의 COSH들 중 하나라고 알고 있다. 이러한 COSH는 미국의 고유한 조직 방식이라 할 수 있나?
스미스 :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 안전 보건과 관련해 세 가지 커다란 네트워크가 존재한다. 미국의 COSH, 아시아의 산업재해 노동자 단체인 ANROAV(Asian Network for the Rights Of Occupational Accident Victims), 유럽의 European Work Hazard Network가 그것이다. 이들은 때로 함께 일한다.
김명희 : SCCOSH의 역사를 간단히 소개해주길 바란다.
스미스 : 해줄 이야기는 많다. 내 부인 아만다 허즈(Amanda Hawes)가 초기 설립 멤버 중 한 명이기도 했으니까. 1970년대에, 이들은 전자 산업에 눈을 돌렸던 최초의 COSH 그룹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이 산업이 화학 물질을 다루는 산업임을 알고 있었고, 지미 카터 대통령 집권 시 연방 직업안전보건청 기금을 받아 자체 연구를 진행하고 일련의 소책자들을 발행했다.
또 전자 산업 노동자를 위한 핫라인을 개설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내부에서도 노동자들을 조직하려는 움직임이 아직 있었다. 그들은 화장실에 자료를 비치해서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했고, 일하다 아픈 노동자들이 이를 보고 핫라인으로 연락해서 의학적 도움과 법적 자문을 받도록 도왔다. 이런 노동자들이 네트워크로 조직되기 시작해서 한국처럼 '산재 노동자 연합'을 만들고 수년 동안 매우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그들이 1970년대에 했던 일들 중 하나는 발암 물질로 알려진 유기용제 TCE를 현장에서 확인한 것이다. 이어 TCE 사용 금지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문제를 캘리포니아 주 직업안전보건청(Cal-OSHA)에 들고 갔는데, 금지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허용 기준을 100ppm에서 25ppm으로 낮출 수는 있었다. 또 다른 일은 일부 의사들과 협력하여 TCE 인체 잔류 수준을 측정한 것이다. 노동자 몸에 TCE가 남아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이는 매우 놀라운 발견이었고, 사람들이 이걸 알게 되면서 매우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게 되었다. 또 지역 신문에 3~4회에 걸쳐 표지 기사로 이 문제들을 게재하기도 했다. 하지만 뉴스가 나갔을 때 많은 사람들은 노동자들이 불쌍하다고만 생각했을 뿐 그게 자신의 일은 아니라고 여겼다. 나중에 화학 물질이 식수에서도 발견되자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이것이 나의 문제, 우리 아이들의 문제임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누군가 다른 이의 문제일 경우 나쁘다고 생각은 하지만 아무도 나서서 그 일을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이건 불행한 일이지만 사실이다. 모든 이가 바쁘고 각자 자신의 일을 몰두하기 마련이다. 변화를 위해 정치적으로 적극성을 보이려면 인간적 관계를 가진 누군가의 직접적인 문제가 되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반올림이 여기서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을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모은 것이다.
김명희 : 실리콘밸리독성물질연합(SVTC)은 이와 전혀 다른 조직인가? 밀접한 관련이 있나?
스미스 : SVTC는 커뮤니티에 좀 더 초점을 두고 있다. 이는 SCCOSH의 프로젝트의 성과물이다. 지하수 오염이 발견된 이후 조직된 것이다. 지역 사회에 기반을 둔 노력과 작업장에 토대를 둔 노력이 동시에 나란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부인이 SCCOSH 설립자 중 한 명이고 나는 SVTC 설립자 중 한 명이다.
김명희 : 집안에서 항상 토론이 끊이질 않겠다.
스미스 : 그렇다! (웃음)
김명희 : 그렇다면 당신의 명함에 찍힌 '기술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국제 운동(ICRT)'은 어떤 단체인가?
스미스 : 기업들이 실리콘밸리를 떠나기 시작할 무렵 ICRT가 만들어졌다. 원래는 '국제'가 빠진 그냥 CRT였다. 실리콘밸리를 떠난 기업들은 처음에 텍사스, 애리조나, 뉴멕시코 같은 미국의 서남부로 이동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이미 활동하던 이들을 확인하고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정보 교환을 하면서 우리의 경험을 공유했다. 이 네트워크가 CRT였다. 그런데 이후 이 산업이 국제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1980년대에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European Work Hazard 회의에서 국제적인 문제들이 확인되었고, 그에 따라 국제 조직으로 전환했다.
김명희 : 당신의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것은 전자 생산품의 전체 생명 주기를 모두 다루는 세 가지 지속성 원칙이었다. 사전 예방의 원칙, 환경 정의, 기업 책임 확장 제도 말이다. 앞의 두 가지는 이미 많이 알려진 것이지만, 세 번째 개념은 나에게 낯선 개념이었다. 이에 대해 설명해주면 좋겠다.
스미스 : 이건 유럽, 원래 스웨덴에서 시작된 개념이다. 생산품 전략이자 환경 전략이라 할 수 있는데, 전자 기업이 책임을 '외주화'하는 것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되었다. 기업들이 책임을 외부화, 즉 비용을 외부화하는데 맞서 이를 다시 '내부화'시키자는 정책 이니셔티브라 할 수 있다. 그들이 비용을 외부화하는 방식 중 하나는 이 유독 생산품을 다른 데 파는 것이다. 그리고 손을 씻어버리면 된다. 그건 더 이상 우리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그것은 한 기업이 아닌 우리 '사회'의 문제가 된다. 폐기물 관리는 전형적으로 정부의 책임이고, 이는 곧 납세자의 책임이라는 이야기다. 전자 산업이 매우 빠르게 변화하면서 생산품들은 인류 역사상 그 어떤 때보다 빠르게 바뀌고, 따라서 쓰레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기업들은 책임을 회피함으로써 엄청난 돈을 절감한다.
만일 그들이 책임을 받아들이게 만들 수 있다면, 이는 전체 인구 집단 차원에서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된다. 또 그렇게 될 경우 그들은 생산품을 재활용하기 쉽도록 재설계를 고려할 것이다. 생산품을 덜 유독하게 만들 것이다. 유해 물질 관리 요구 조건들을 준수하면서 전자 쓰레기를 관리하려면 비용이 엄청날 테니까.
물론 이러한 전략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명확히 판단하기란 아직 이르다. 현재 많은 논쟁이 있다. 아직 시작일 뿐이고 약간의 성공이 엿보이기는 한다. 일부 회사들은 예를 들어 플라스틱 사용을 차차 줄여가고 있다. 그 이유는 최종 단계에서 그것들이 엄청난 문제를 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전자 폐기물에서 금속을 분리해내고자 케이블과 플라스틱을 태우게 되는데, 이 때 발생하는 할로겐 물질들은 매우 유독하다.
기업으로서는 나중에 건강 피해에 대한 엄청난 금전적 책임을 질 수도 있다. 그래서 그들은 점차 유독 물질 사용을 줄여가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노동자들에게 정말로 도움이 되는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왜냐하면 작업장에서 주요 문제는 할로겐이 아니라 많은 유기용제들이기 때문이다. 상품의 최종단계에 대한 고려가 정말로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이 문제를 앞으로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김명희 : 한국에서 기업 책임이라고 하면 가난한 어린이를 돕는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스미스 : 맞다. 사실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인데 말이다. 이따금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하면 한 쪽에서 큰 문제를 저지르고 다른 곳에서 좋은 일을 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김명희 : 마지막으로, 한국의 노동자나 소비자, 시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스미스 : 우리는 소비자가 우리 운동에 함께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는 처음에 사람들이 화장품 문제에 집중하자고 했을 때 매우 당혹스러웠다. 그런 물건이 도대체 누구한테 필요하다고! (웃음)
김명희 : 무슨 소리냐, 한국에서 그런 말하면 큰일 난다. (웃음)
스미스 : 나도 안다. 이렇게 말한다고 사람들이 날 추방할지도 모르겠다. (웃음) 실제로 나는 많은 시간 동안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과 함께 할 수 있을지 고민해왔다. 왜냐하면 기업들은 언제나 소비자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말하지 않나. 우리가 소비자로 하여금 기업에게 "당신들이 계속해서 노동자를 죽인다면 우리는 당신들의 물건을 사지 않겠어"라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만든다면, 이는 매우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인터넷에서 <전자 산업 이야기(story of electronics)>를 본적 있나? (☞바로 보기) 이는 사람들, 소비자들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한다면 그들이 자신의 구매력을 좋은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소비자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대규모 기관 구매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보건의료 산업에서 노동자를 죽이지 않고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상품만 구매하도록 만드는데 함께 노력하고 있다. 보건의료 산업은 원래 이 문제에 매우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무해성 원칙(do no harm)'이라는 윤리를 따르지 않나. 이러한 원칙에 따라 처음에는 병원에서 수은 체온계 사용이 중단되었고, 나중에는 이제는 수액용기의 PVC 성분이 사라졌다. 현재는 전자 제품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만일 삼성이 계속해서 노동자를 죽인다면 컴퓨터든 휴대 전화든 기관에서 그것을 구매하지 말라고 촉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소비자들이 매우 변덕스럽고 때로는 그들의 주의를 끌기가 매우 어렵다는 일부 회의적 시각에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확신을 갖고 있다. 특히 젊은이들에 대해. 일부 회사들이 분명 다른 데보다 더 낫게 만들어 그들끼리 그러한 경쟁이 가능해야 하는데, 문제는 현재 잘하는 기업들이 없다는 것이다.
김명희 : 사람들은 흔히 시장에 출시되기 전에 재료나 화학 물질들이 안전성 검사를 모두 거친다고 생각한다.
스미스 : 무슨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지 사람들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을 쉽고 간단하게 만드는 것이다. 제시 잭슨이 '그것을 간단하게 만들어라(make it plain)'이라고 지적했던 것과 같다. 소비자들이 모르는 것은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활동가들의 문제이며 그들이 알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한국 활동가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는 소비자들을 단지 중산층이라고 떠나가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에겐 그들이 필요하다.
김명희 : 노동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나?
스미스 : 투쟁을 지속해야 한다는 말밖에 뭘 더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랫동안 힘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이 계속 아프고 죽어가고, 낙담하게 되고…. 어떤 투쟁에서 분명하게 승리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사람들을 낙담하게 만든다.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미국에서 우리는 세대를 거쳐 이 활동을 이어왔고 이제 거의 30년이 되어 간다. 그러나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내가 바라는 것은 젊은이들이 투쟁에 참여하고 이를 이어가는 것이다. 투쟁이 아시아 전역에서 성장하고 있는 걸 알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마더 존스가 이야기했다. '죽은 자를 위해 추모하고 산 자를 위해 악착같이 싸우라(mourn for the dead and fight like hell for the living).' 이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