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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분 나쁜, 고통스런 추리 소설!

[프레시안 books] 렌조 미키히코의 <백광>

그동안 렌조 미키히코는 미지의 작가였다.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 단편집 <빨간 고양이>에 수록된 '돌아오는 강의 정사' 한 편만으로 고혹적이며 서정적인 추리 소설이 가능함을 일별할 수 있었을 뿐, 그의 정체는 오랫동안 궁금증의 대상이었다.

2011년, 갑자기 렌조 미키히코의 작품들이 연달아 번역되기 시작했다. 1월에 <미녀>, 3월에 <회귀천 정사>, 6월에 <저녁싸리 정사>, 8월에 <백광>. 순서대로 읽어왔던 독자라면 1980년대에 쓰인 앞의 세 작품과 2002년작 <백광> 사이의 공통점과 간극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됐을 것이다.

<백광>부터 돌이켜본다. 20대 초반, 어린 아내와 딸을 남겨두고 전쟁터로 끌려 나갔던 게이조는 일장기가 나부끼는 소란스런 플랫폼에서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이 아이는 당신 딸이 아니야." 아내는 미소를 지었다. 남태평양의 어느 섬에서 전투를 치르던 게이조는 딸 또래의 어린 소녀를 죽였다(라고 기억한다).

이제 70대 노인이 된 그는 자꾸만 그 시절로 돌아가 스스로의 영혼을 갉아먹는다. 며느리 사토코는 어린 시절부터 정반대였던 여동생 유키코가 어린 딸 나오코를 걸핏하면 자기에게 맡기는 것에 내심 분노한다. 유키코의 남편 다케히코로부터, 결혼 직후부터 유키코가 불륜을 저질러왔으며 지금도 어린 대학생을 만나고 있다는 고백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 날, 하얀 태양 빛이 쨍쨍하게 대기를 채우던 여름날, 사토코는 딸 가요를 데리고 잠시 치과에 다녀온다. 약 1시간 30분 뒤 집에 돌아온 사토코는 정원 능소화나무 밑에 파묻힌 나오코의 시체를 발견한다.

"원색에 가까운 오렌지색 꽃은 덩굴 줄기 줄기마다 떼로 엉겨서 번잡스러울 만큼 농밀하게 피어 있었습니다. (…) (꽃이) 마치 무더위 때문에 진땀을 흘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 말라버린 잡초가 섞인 흙 속에서 삐죽 튀어나온 허연 것이 어린아이의 움켜쥔 작은 손이라는 것을 금세 알았(습니다)."

▲ <백광>(렌조 미키히코 지음, 양윤옥 옮김, 폴라북스 펴냄). ⓒ폴라북스

이제 시아버지, 며느리, 남편, 딸, 여동생, 매제 그리고 여동생의 불륜 상대에 이르기까지 총 일곱 명의 사람들이 차례로 "그 날 내가 나오코를 죽였습니다"라는 고백을 시작한다. 모두가 네 살짜리 나오코의 죽음을 원하고 있었고, 그날의 살인 사건을 방조했으며 때로 기회 제공까지 했음이 조금씩 드러난다.

일본 철학자 나카무라 유지로의 <정념론>을 들은 적이 있다. 전후 일본 세대로부터 계몽적 합리주의보다는 과거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비합리적인 파토스, 상상계와 현실계를 끊임없이 혼동하는 태도 등의 새로운 정념의 동향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회귀천 정사>와 <저녁싸리 정사>, 속칭 '화장(花裝)' 시리즈라 불리는 두 권의 책에선 "어디까지나 주인공은 꽃"이다. 등나무 꽃, 하얀 도라지꽃, 오동나무 꽃, 꽃창포, 연꽃, 동백꽃, 싸리꽃, 국화에 이르기까지 살인 사건의 트릭, 복선, 죽음의 메시지, 혹은 흉기, 유서 등으로 사용된 각각의 꽃들은 인간의 맹목적인 정념의 세계를 투명하게 받아들이며 살인 사건 한복판에서 반짝거린다.

진흙탕 같은 범죄 주변에 피어난 꽃의 아름다움과 연약한 덧없음은 더한층 도드라진다. 그에 걸맞게 살인 계획과 트릭조차 더없이 섬세하게 직조되어 마침내는 독자마저 범인의 일그러진 정념 속으로 정신없이 끌려들어가고 만다. 1948년생인 렌조 미키히코는 자신이 태어나기 이전의 세계, 역사서 안에서만 존재하는 세계,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전후로 일본인이 현실로부터 도망쳐 들어갔던 상상의 세계를 꽃의 힘을 빌려 더할 나위 아름답게 묘사했다.

현대물인 <백광>에도 '화장' 시리즈만큼이나 인상적인 꽃이 등장한다. 어린 소녀의 죽음을 둘러싸고 등장인물들은 오랜 세월 꾹꾹 눌러왔던 어두운 내면을 전부 쏟아내듯 지껄인다. 이 소설에서 말이 없는 건 딱 두 가지다. 죽은 소녀, 그리고 소녀의 시체 위로 솟아난 능소화나무.

잎사귀를 가릴 만큼 흐드러지게, 태양 빛을 뚫어내듯 혹은 그것을 전부 빨아들이듯 요란하고 화려하게 피어난 그 주홍색 꽃은 어딘지 모르게 사람을 덮치는 식인화를 연상시킨다. 사람들은 나오코의 죽음을 애써 외면하고 싶어 하지만, 정원 한구석에서 비명을 지르듯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능소화나무 때문에 나오코를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했다는 죄책감과 불쾌감에 시달리게 된다.

'화장' 시리즈와 달리, 여기서 꽃은 죽음의 참혹함을 어루만지거나 아름답게 치장하거나 혹은 인간의 정조를 미묘하게 바꿔놓지 않는다. 오히려 실제로 행해진 죄를, 마음속으로만 수십 번 범했던 죄를 일깨우고 과장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메멘토 모리'를 웅변하는 바니타스적 사물. 아마 이 능소화는 소설 사상 가장 끔찍하게 묘사된 꽃일 것이다.

"능소화나무는 여름 한창 때 이전과 이후에 한차례씩 피거든. 올해는 두 번째 꽃이 다른 해보다 일찍 피었어. 게다가 다른 해보다 훨씬 많아. (…) 류스케는 저 꽃을 보고 공양 꽃이라고 했어. 나무가 나오코의 죽음을 애도하며 꽃 공양을 해준 거라고. 근데 나는 그 반대로 생각해. 나무가 나오코의 목숨을 빨아들여 양분으로 삼은 거야. 내가 저 꽃을 싫어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걸까? 여름 한 철에 두 번씩이나 꽃철을 누리다니, 너무 욕심이 많아. 저 혼자만 유난히 화려하게 피어있는 것도 염치없어 보이고…."

<백광>에서 가장 이상한 지점은 죽은 소녀 나오코다. 모두가 나오코의 죽음에 대해 한 마디씩 거드는데, 정작 그날 범인의 얼굴을 보고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목 졸렸던 소녀의 목소리는 철저하게 제거돼있다. 나오코는 거울이고 구멍이고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어둠이다.

모두가 자신들의 욕망을 소녀에게 투사하고, 상대방에 대한 증오와 불신을 당사자가 아닌 나오코 앞으로 밀어놓는다. 그러고 나서 나오코가 정말 죽어버리자, 그 아이를 내가 죽였다면서 앞 다퉈 고백한다. 모두가 그녀를 죽였다고 하지만 그 말은 진실인 동시에 거짓말이다.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내려는 책임 희석과 전가의 미묘한 불균형이 죽은 소녀의 주변에서 삐걱거리며 독자의 눈을 어지럽힌다.

나오코의 백지화는 너무나 완벽하게 실현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렌조 미키히코가 이를 의도적으로 설정한 게 아닌가 싶어진다. 이를테면 제2차 세계 대전, 다시 말해 일본의 패전 이후 마루야마 마사오와 가토 슈이치 등이 지적했던 '모두의 책임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태도가 당연시 여겨진 일본인의 정신 구조'가 <백광>에서 역으로 반영되어 있는 게 아닐까.

마지막 장에 이르면 심지어 진범이 환상 속에서 "죽여도 괜찮아. 그렇게 하고 싶다면 (…) 힘들지? 얼굴이 힘들어 보여"라는 나오코의 위로와 격려를 받으며 살인을 저질렀다는 고백이 등장한다. 렌조 미키히코는 죽음과 친숙한 듯 보이지만 죽음의 실체에 책임 있는 현실 세계로부터는 자꾸만 달아나려 했던, 혹은 타인의 죽음을 바라는 마음조차 애달프고 서정적으로 묘사할 수 있던 그 기이한 정념의 세계를 스스로 돌이켜보며 의식적으로 정반대의 선택을 한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아마 <백광>을 읽는 당시에는 그 문체의 처연한 부드러움 때문에 의식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책을 덮고 돌이켜보면, 이 책은 당신이 읽은 추리 소설 중 가장 기분 나쁘거나 고통스러운 경험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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