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정에 대해서 얼마나 아시죠?"
순간 당황했다. 엉겁결에 싱거운 대답을 하고 말았다. "전화 건 분은 엔지니어시겠네요?" 남자는 엔지니어고 여자는 오퍼레이터니까. 그러자 저쪽에서 못 미더운 듯 한마디를 덧붙였다.
"저는 반도체 공정에서 쓰는 물질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요."
몇 마디 말을 더 주고받았지만 그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에도 이런 식의 '찔러보는' 연락들이 종종 온다는 사실은 그때야 알았다.
새삼 놀라웠다. 반도체 산업을 비롯한 전자산업에 종사했다가 희귀병에 걸렸다는 노동자 150여 명을 발굴하기까지 반올림이 여태껏 얼마나 많은 제보를 받아왔을지 생각하니 그랬다. 여전히 목소리를 내지 않고 숨죽인 제보자가 얼마나 많을까?
끝나지 않은 '삼성 반도체 백혈병' 문제
▲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희정 지음, 아카이브 펴냄). ⓒ아카이브 |
반올림에 제보한 150여 명 중 산재를 신청한 사람은 16명. 그마저 모두 승인받지 못했다. 소송까지 간 사람은 더 적다. 현재 서울행정법원에 계류 중인 '삼성 직업병' 관련 소송은 3건(피해자 4명)이다. 지난 6월 노동자와 유가족 5명 중 2명이 1심에서 승소한 사례가 있지만 끝이 아니다. 근로복지공단이 판결에 불복해 삼성을 앞세워 항소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딸 고(故) 황유미(23) 씨를 지난 2007년 백혈병으로 먼저 보낸 아버지 황상기 씨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백혈병 치료하는 데 2년, 소송 결과가 나오기까지 4년. 하지만 1심에서 이겨도 상급심으로 넘어갈 테니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열아홉 살 때 도시로 온 그녀는 지금…
삼성 반도체 직업병 문제는 황상기 씨를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2003년, 수많은 열아홉 살 딸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삼성 반도체 공장에 입사했다. 이유는 다양했다. 공부에 흥미가 없어서, 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벌려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유미 씨도 그 중 하나였다. 아버지 황상기 씨는 택시운전기사였다. 그들은 삼성에 들어간 게 자랑스러웠다. 유미 씨는 "재래식 화장실을 쓰는 고향 집에서 회사가 내준 아파트형 기숙사로 짐을 옮기며 자신이 출세했다고 믿었다."
열아홉 살 유미 씨는 소박한 일상도 꿈꿨다.
"가수 '신화'의 소식도 궁금했고, 내년 봄에 친구랑 쌍꺼풀 수술 상담도 받으러 가기로 했다. 집에 가져갈 할머니 선물도 다이어리에 적었다."
그러던 유미 씨는 스물세 살에 숨을 거뒀다. 유미 씨만이 아니었다. 이제는 20대 후반에서 30대가 된 이들 중 몇몇은 얇은 방석을 깔고 방바닥에 앉다가도 혈관이 터지고(재생 불량성 빈혈), 혼자 힘으로는 앉지도 서지도 못했으며(뇌종양), 팔다리가 마비되고 시력 장애 판정을 받았다(다발성 경화증).
부모들은 그동안 자식이 '초일류 기업 삼성'에서 화장실에 갈 시간도,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독한 화학 약품을 다루며 일했다는 사실에 뒤늦게 눈시울을 붉힌다. 황상기 씨가 유미 씨를 놓을 수 없는 이유도 바로 그런 미안함 때문이다.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공장에서는 노동자의 안전보다 반도체의 질과 양이 더 중시됐다. 생산량을 늘리려고 노동자들은 할 수 없이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작업하고, 작동 중인 장비를 열어 가스냄새를 맡았다고 했다.
'왜 그때 위험하다는 생각을 못했느냐'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이렇게 답한다.
"내가 쓰던 유기용제가 락스 같은 것인 줄 알았어요." "삼성은 좋은 회사이니까, 당연히 그런 위험한 거 안 쓰겠지 생각했어요."
희귀병에 걸린 노동자와 유가족은 반올림을 만나고, 또 다른 유가족을 만나면서 자신의 질병이 '직업병'이라고 확신했다. 하나둘 제보자가 늘었다. 이들의 바람은 단 하나, 자신의 병이 산업재해로 처리되는 것.
하지만 초일류 기업 삼성이 '또 하나의 가족에게 그럴 리 없다'는 생각은 산재 처리 대신 퇴직을 권유받으면서 순식간에 깨졌다. 그리고 기계 값보다 못한 그들의 죽음은 은폐됐다. 그렇게 그들은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이 됐다.
"너희가 이러는 동안 이건희는 계속 사람을 죽여!"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다가 희귀질환 및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가 100명이 넘어요. 그것도 그나마 죽었으니 이슈가 됐죠. 여사원의 유산, 불임, 기형아 출산은 너무 작은 사안이라 알려지지도 않아요."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던 남편을 백혈병으로 잃은 정애정 씨가 한 말이다. 정 씨는 생리를 안 하거나, 이름 모를 피부병에 걸리거나, 유산을 하거나, 기형아를 낳는 게 '너무 작은 사안'이라고 말했다. 황상기 씨도 동감을 표시한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제보 못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제보 안 된 사람들이 더 있어요."
노동자와 유가족은 지금까지 밝혀진 반도체에 관련된 진실은 '극히 일부'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반도체의 그늘에 대해 더 얘기하자고 말한다. 희정은 이렇게 경고한다.
"우리가 겪은 일은 10년 전 미국 IBM 노동자들이 겪은 일이며, 중국이나 제3세계 노동자들이 10년 후에 겪게 될 일이다."
정부 산하 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이 삼성에 직접 소송 참여를 요청한 사실이 드러나자, 황상기 씨는 근로복지공단 직원에게 이렇게 외쳤다.
"내 딸만 산재 인정이 안 된 거면 나는 여기서 나가도 돼. 하지만 너희가 이러고 있는 동안 이건희는 계속 사람을 죽여!"
그로부터 7개월 뒤 황상기 씨는 삼성이 고용한 변호사를 상대로 승소했다. 그리고 한 달 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다가 뇌종양에 걸린 한혜경(33) 씨의 변론 기일이 되자, 삼성 측 변호사의 수는 4명에서 9명으로 늘어났다.
그렇다. '삼성 반도체 백혈병'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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