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이 행성에서 매해 도축되는 식육 동물의 수는 소, 돼지, 닭부터 양, 칠면조까지 대형 포유류와 가금류를 망라해 580억 마리에 달한다. 인간과 인간 아닌 종의 엇갈린 운명은 가축들이 마취도 없이 거세를 당하고, A4 한 장만한 닭장에서 평생을 보내다 의식이 있는 채로 끓는 물속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그 참혹함의 정점을 찍는다.
여기 그런 지옥도의 한가운데를 운 좋게 피한 동물들의 생추어리(안식처)가 있다. 대기업의 도축장 담벼락에 다른 양의 시체들과 함께 버려져 있던 생후 6개월짜리 새끼 양, 돼지를 너무 많이 싣고 주행하던 운반차에서 떨어져 고속도로 위에 나뒹굴었던 새끼 돼지, 사람과 재산을 구조하는 손길로부터 버림받은 카트리나 이후의 닭들이 이 농장에서는 이름을 얻게 된다. 방문객의 신발 끈을 풀기 좋아하며 공으로 서로를 때리며 놀곤 하는, 생애와 개성을 가진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저자 진 바우어는 1977년에 대학을 졸업하면서 싱크대와 침대가 딸린 중고 밴을 구입한다. 거기에 대형 축산업 공장에서 '버린' 병든 새끼 양을 싣고 오면서 자신도 모르게 '생추어리 농장'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회고했듯이, 이 차는 수많은 학대받은 동물들을 구조하며 동물 복지 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 <생추어리 농장>(진 바우어 지음, 허형은 옮김, 책세상 펴냄).. ⓒ책세상 |
바우어를 움직인 것은 공장식 축산업의 대안이 되는 체계적인 마스터플랜이나 육식주의에 대한 혐오가 아닌, '양을 거기 내버려두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이후 그는 소, 돼지, 닭, 거위 등 미국에서 사육되는 다양한 농장 동물을 구조하였고, 목초지가 있는 생추어리 농장에서 살게 하며 수천의 버려진 생명을 돌보았다.
현재 생추어리 농장은 북미 최대 규모의 가축 구조 및 보호 네트워크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으며, 병들어 일어나지 못하는 다우너 소를 축산 업체에서 매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동물 복지를 성문화시키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미국의 축산업이 대기업화된 정도는 한국보다 훨씬 심해서, 연간 9500만 마리를 소비하는 국가의 육우 가공 업체 중 단 네 곳이 전체 시장의 80퍼센트를 점유하고 있을 정도이다. 당연히 시스템을 고수하려는 압력은 더욱 컸고, 공장식 축사의 실태를 고발하려는 이들의 움직임은 꾸준히 '광신적인 동물보호론자'의 재산권 침해로 간주되었다. 바우어는 다우너 소를 억지로 질질 끌어 운반하는 현장을 비디오로 촬영하다가 가축 수용장 지배인에게 소몰이 막대로 맞은 적도 있다고 증언한다.
축산업계의 냉대와 계속되는 소송, 농장의 경제적인 문제와 끊임없이 생겨나는 인도적 대우의 한계 설정에 대한 고민에도 불구하고 바우어는 계속해서 싸웠다. 그 결과 2011년 현재 미국에서는 고개도 돌릴 수 없는 크레이트에 송아지를 가둬 키우는 것이 불법이며, 맥도날드를 비롯한 거대 기업이 육류와 유제품에 관련해 동물 복지를 고려하는 제품을 생산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이다.
동물 복지에 관한 책은 관련 분야의 불모지와도 같은 한국에서도 이미 여러 권 출판되었다. 대부분이 미국에서 쓰인 책이며, 공장식 축산업의 비정과 잔인함에 대한 소상한 서술이 포함된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것들의 이면을 보고, 그 비극에 스스로 책임이 있음을 깨닫는 것은 고통스럽고 불편한 일이다. 우리 역시 거대한 육식주의, 대자본의 쳇바퀴 위에 놓인 피해자라 해도 그 충격은 여전하다.
그러나 이 책 <생추어리 농장>(허형은 옮김, 책세상 펴냄)이 난공불락의 고리를 비집고 들어가 꺼내 온 살아 움직이는 송아지를 보는 순간 부조리는 간명하게, 복잡한 윤리적 설명이 필요 없는 날것으로 다가온다. 구조된 동물은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으며, 마음에 들어 함께 다니는 단짝이 있고, 학대받던 시절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그렇게 제 몫을 살아가는 동물들이 지면 너머 당신의 눈을 쳐다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 때 다른 길을 갔었더라면' 하고 돌아보는 순간을 갖게 된다. 그 선택에 따라 얼마나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었을지에 놀라기도 한다.
그러나 이 동물에게는 단 두 가지의 길만이 있다. 스스로의 몸을 지탱할 수조차 없이 살이 찐 비육용 동물로 수개월을 보낸 후 1분에 십수 마리를 죽여야 하는 도축장의 라인에서 피를 뒤집어쓰고 화가 난 채로 자신을 기다리는 노동자에 의해 숨통이 끊어지는 길과, 생추어리 농장의 직원에게 기적적인 행운으로 구조되어 해와 달을 두 눈으로 보고 밟을 흙이 있는 농장에서 주어진 수명대로 삶을 마치는 길. 무심한 운명이 갈라놓은 두 개의 길을 추적하노라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을 만나게 된다. "우리가 먹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방금 배식대에서 받아온 따끈한 더블 쿼터버거가 그런 드라마틱한 운명의 갈림길을 단 한 순간이라도 상기시켜줄 수 있다면, 고기가 아닌 어떤 동물이었을 그 음식에 대해 떠올려볼 준비가 되었다면, 이제 이 책을 읽을 차례이다. 과연 고기를 먹는 것은 인간의 권리인지, 인간은 정말 생물학적으로 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도록 설계되었는지, 축적된 과학과 기술 없이도 인간이 먹이사슬의 최강자인지, 따라서 죽일 수 있는 것을 모두 먹는 것이 '자연스러운지'에 대한 진실은 여전히 공방 중이며, 앞으로도 확실한 답을 얻기 힘들 것이다.
생추어리 농장의 진 바우어는 사람들이 항상 이렇게 묻는다고 말한다.
"이 동물을 구하면 다른 동물들도 구할 수 있나? 구해서 그 동물을 도축했을 시에 발생하는 이윤의 몇 배나 되는 돈을 들여 치료를 해 줄 것인가? 치료한 동물을 살게 할 장소는 마땅한가? 안락사는 완벽히 공정하게 결정되는가? 그 다음은? 그 다음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동의한 인간다움은 고통을 줄이는 데서 시작된다. 그 끝이 어딘지는 아무도 가보지 못했다. 나아가다 보면 새로운 질문이 나타나고, 질문의 답은 암흑 속에서 나타날 것이다. 인류가 절망과 고통 속에서 맴돌면서도 조금씩 더 밝은 곳을 향해 나아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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