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그림이 보이지 않는 동굴'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그림이 보이지 않는 동굴'

김민웅의 세상읽기 <128>

구석기 시대의 동굴벽화가 이따금 발견될 때마다 우리는 그 그림 속에서 원시공동체의 기원을 목격하게 됩니다. 사냥과 관련된 수렵도나 거기 등장하는 여러 종류의 동물들은 단지 자연환경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이들의 생존과 관련된 회화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냥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안정된 생존방식인 농사를 선택하기까지 동물의 포획은 이들 모두의 일상을 결정짓는 과제였다고 하겠습니다.

농사를 통해 식량을 비축하는 능력을 얻는 과정은 오랜 시간을 요했습니다. 어떤 곡물이 어떤 기후와 땅에서 언제 어떻게 자라나는지에 대한 지식이 체계화되는 경험의 축적이 없고서는 농사는 불가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자연의 순환법칙을 깨우치고 이에 맞추어 삶을 계획하는 방식은 수렵을 위주로 했던 것과 비교할 때 일대 혁명적인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에 비하면, 농사 이전의 공동체에게 절박했던 것은 그 날의 운이 트여 사냥감이 잡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그날은 꼼짝없이 굶어야 했음은 물론입니다. 구석기 시대의 최대의 관심은 그런 연유로 해서 이들의 생명 에너지가 되는 동물의 포획이나 사냥에 있을 수밖에 없었고, 보다 능력이 높은 집단은 동물들을 가축으로 만들고 이를 최대한 소유하는 것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한 생활상은 자연스럽게 이들의 문화에 그대로 반영되기 마련입니다. 구석기 시대 동굴벽화가 그 증거가 됩니다. 그런데 이 그림을 그렸던 사람들은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알타미라 동굴의 소 그림을 봐도 그렇지만 이들 그림은 당대의 현실에서 매우 전문적인 수준에 도달해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만한 작업을 집중적으로 감당해나갈 만큼의 생활기반이 공동체적으로 확보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냥 취미로 그린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예술의 사회사(The Social History of Art)>를 저술한 아놀드 하우저는 이들 구석기 시대의 화가들이 단순히 전문적 예술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사제 역할까지 했다고 추론하고 있습니다. 예술의 형태가 사회적 요구와 생활의 기대를 담고 있다는 차원에서 그의 지적은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농경사회에 풍성한 결실을 기원하는 제사가 존재했던 것처럼, 구석기 시대 동굴의 그림은 수렵생활의 풍요를 바란 흔적이거나 또는 그 공동체의 위력을 과시한 것이라는 설명이 됩니다.

이들 화가들은 말하자면 구석기 시대 공동체의 안위를 비는 사제적 역할을 통해 그 공동체의 결속을 다져나간 정신적 지도자의 위상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에 더하여 이들의 그림은 사냥을 위한 마술적 효력도 가지고 있다는 기대를 모았다고 상상합니다. 이 그림들은 그 그림의 대상물들의 혼을 그림 그리는 자가 그 손에 장악할 수 있는 힘이 있음을 보여주는 물적 증거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자살율이 OECD 국가에서 가장 높다는 것은, 그만큼 이 사회가 장래에 대한 희망과 꿈을 주지 못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매일 나가서 사냥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현실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동굴에서는 그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 그림을 보고 의욕을 다지고 희망을 갖고 서로 결속하고 힘을 합치는 그런 그림을 그리는 사제가 없는 탓인지 말입니다. 일을 맡긴 자들은 그저 폐품 같은 낙서만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센타'(오후 4-6시/FM 104.5, www.ebs.co.kr)의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에 연재하는 것입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