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라도 일이 잘못되는 날엔 '학교 노예'(테레스 브레슬린)에서처럼 노예 노동을 해야 하거나 본국 버마로의 송환을 각오해야만 한다. 해서 난민 캠프의 많은 성인 남성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술과 마약에 취해 평생을 산다. 그래서였다. '아빠가 춤만 추지 않았다면'(패트리샤 맥코믹)을 읽다 눈시울을 붉힌 건.
정치적 박해를 피하기 위해 고향을 등지고 국경을 넘어야했던 이야기에 흠뻑 몰입했던 탓도 있었지만, '자유의 땅'에서 아침을 맞은 아빠의 춤이 슬퍼보였던 건 존과 그 가족들의 희망 없는 현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존에게 "모든 사람은 박해를 피하여 타국에서 피난처를 구하고 비호를 향유할 권리가 있다"는 세계 인권 선언 14조는 거짓말에 불과하다.
스스로를 인권 선진국이라 칭하며, 인권을 더 많이 내세우는 나라일수록 더욱 엄격히 자국으로의 난민 유입을 통제한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인권을 부르짖고 선언 14조를 현실화할 것을 요구한다. 인권은 '타고난 것'이 아닌 '쟁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언은 차별 없이 존엄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하는 인류의 열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존을 떠올릴 수 있었던 건 <넌 자유롭니?>(김민석 옮김, 탐 펴냄)란 책 때문이었다. 1961년 설립된 이래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인권 단체 국제앰네스티가 열다섯 명의 유명 청소년 문학 작가와 함께 세계 인권 선언을 소재로 만든 이 책에는 '아빠가 춤만 추지 않았다면', '학교 노예' 등 총 열네 편의 작품들이 수록돼있다.
▲ <넌 자유롭니?>(이오인 콜퍼 외 지음, 김민석 옮김, 탐 펴냄). ⓒ탐 |
하지만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인권을 '제대로' 다룬다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의 서평을 부탁받았을 때만 해도 나는 이 책을 진심으로 권유하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기존에 나온 아동, 청소년 대상 인권 책을 생각하며 "착하고 따뜻한" 이야기들의 따분함과 부정의함에 대해 논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열네 편의 이야기들은 배려와 감성에 의존하지 않았다. 청소년 대상의 인권 교육하면 으레 연상되는 장애, 인종, 성, 청소년 인권 등의 소재를 다루지도 않았다. 책은 청소년들에겐 좀 더 낯선 양심적 참전 거부자(한국 현실에서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로 읽힐 수 있을 게다), 국가의 국민 감시 및 통제, 재난에 대한 국가의 '이상한 대처', 제도권 학교 교육, 보이스카우트의 '생얼'과 이중적인 법의 잣대 등 어른들이 청소년들에게 보여주기 싫은 불편한 현실, 불쾌한 실체를 다룬다.
그리고 묻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과연 제대로 된 것일까?" 그 속에서 "넌 자유롭니?"
'클라우스 포겔과 악동 클럽'(데이비드 알몬드)의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든 편견을 무의식중에 내면화한다. 양심적 참전 거부자 유스터스 씨를 동네에서 몰아내기 위해 아이들은 그의 집 울타리에 불을 지르고, 집에 돌멩이를 던진다. 한때의 장난이라고 하기엔 과도하고 치기라고 하기엔 편견이 뿌리 깊게 자리 잡힌 행동이다.
'정말이에요'(사라 무시)의 프렘프는 훌륭한 보이스카우트가 되고 싶은 가나 소년이다. 그는 잼버리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영국을 방문했다가 왕실 보석을 훔치려했다는 이유로 기소된다. 작가는 프렘프의 행위와 가나를 비롯해 수많은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죽이고 그들의 보석을 훔쳤던 파월(그는 보이스카우트의 창시자이면서 동시에 영국의 영웅이다)의 행위를 비교하면서 영국인들이 가진 사고와 법적 이중성을 풍자한다.
'낱말을 석방하라'(마거릿 마이)의 다니엘은 빈민가와 그 사람들에 대한 아빠의 생각 때문에 몰래 친구를 만나야 한다. 다양한 이야기들은 자유 국가에 살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편견과 생각에서 넌 자유롭니?"
책은 생각에만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학교 노예'는 학교 가기를 싫어하는 라이언이 노예 노동에 시달리던 난민 아이들을 구출하는 이야기다. 해서 이 작품은 아동 노예 노동이란 주제로 읽을 수도 있지만 제목 '학교 노예'가 말해주듯 '학교'에 매인 아이들을 주제로 읽을 수도 있다. 이른바 북반구의 아이들은 노예 노동에 시달리는 난민과 같은 신체적 노예 상태는 아니지만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정규 교육이란 구조에 매인 정신적 노예 상태이기 때문이다.
'허리케인이 지난 뒤'(리타 윌리엄스 가르시아)는 미국의 뉴올리언스 시민들이 경험해야 했던 재난에 대한 국가의 대처를 폭로한다. 물을 찾아 헤매는 국민들을 약탈자로 간주하는 정부는 이들에게 총부리를 겨누며 위협한다. "돌아가지 않으면 발포한다." "사방에 생수이지만 한 방울도 마실 수가 없"는 이들은 바로 "자유의 땅에서 미국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의심을 품는 사람들을 향해 권력은 말한다. "법을 준수하는 시민은 두려워할게 없습니다", "한 두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는 건 대수롭지 않은 희생에 불과합니다." ('양방향 도로를 찾아서'(맬로리 블랙맨)). 책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사회 구조와 체계가 우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 못하고 말한다. 이는 관용이나 따뜻함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의 구조와 체계에 도전할 때만이 넘어설 수 있는 문제들이다.
책은 문제의 실마리로 인권을 제시한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하고 이후 아이와 함께 거리로 내몰린 파드마에게 필요한 것은 가족의 환대와 돌봄만이 아니다. '머리를 눕히는 곳이 집이야'(자밀라 가빈)가 인용한 조항은 "모든 사람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 보장 제도에 관한 권리를 가진다"는 선언 22조다. 개인의 존엄성과 자유로운 발전을 위해 사회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실현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군에 의해 형을 잃은 뒤 말과 성장을 잃어버린 팔레스타인 소년 사이드는 이스라엘을 향해 연을 날린다. "연은 우정의 씨앗 같은 거예요 (…) 우정이 자라면 평화가 찾아오고 그러면 서로를 죽이는 일이 생기지 않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나팔은 필요 없어요'(마이클 모퍼고)는 수백 개의 연이 하늘로 떠오르는 장관을 연출하며 끝나지만 아직 평화가 정착되지 못한 땅에 필요한 것은 우정과 웃음 이외에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사회적 및 국제적 질서에 대한 권리다(선언 28조).
물론 각 작품들을 작품 끝머리에 나오는 선언 조항과 꼭 연관 지어 읽을 필요는 없다. 조항은 작가가 부여하는 길잡이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클라우스 포겔과 악동 클럽'은 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를 천명한 선언 18조와도 아주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크리스토퍼'(이오인 콜퍼)는 노동권을 명시한 23조와 24조, '머리를 눕히는 곳이 집이야'는 성년의 자유로운 결혼을 권리로 명시한 16조와 매우 긴밀한 관련을 갖는다. 이는 인권의 모든 권리 조항이 모두 상호 긴밀하게 연관돼있다는 인권의 상호 연관성에 기인한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각 작품에 걸맞은 한국적 상황들에 대한 설명의 부재다. 작품 하나하나가 보편성을 갖지만 지금 여기 우리의 맥락에서 읽는다면 더욱 풍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여전히 감옥에 가야하는 현실과 해군 기지 건설에 맞서 공권력과 힘겹게 싸우고 있는 강정 마을 주민들, 청소년을 자살로 내모는 교육 체계, 인권적으로 문제 많은 인사들이 국가인권위원회 요직을 차지한 상황 등은 작품을 이야기가 아닌 현실로 불러올 것이다. 또 진행형인 부정의에 눈 뜨게 해줄 것이다.
허나 이 아쉬움은 책을 읽는 방법을 통해 보완되고 더욱 풍부해질 수 있을 것이다. 본래 인권 교육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고 배우고 공감하는데 있다. 인권은 다양한 생명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책을 손에 들려주는 것에 멈추지 말고 함께 읽고 대화하고 공감했으면 한다. 또한 우리의 자유와 평등을 가로막는 사상과 권력에 맞서기 바란다.
그러기에 이 책은 청소년들보단 먼저 어른들의 손에 먼저 들려있어야 한다. 다행히 책은 어른들이 읽기에도 손색이 없는 이야기의 세계를 보장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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