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당국자는 12일 기자들과 만나 정부가 먼저 '급'을 변화시키는 수정제의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현재로서는 오늘로 예정된 당국회담이 무산된 것이고, 북한의 입장 변화가 있으면 대화할 수 있다"며 북한이 지난 11일 정부가 제안한 대표단 명단에 문제삼지 않으면 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에서 열린 남북당국회담 무산 대책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
두 달 이상 조업이 중단된 개성공단 문제를 따로 빼서 실무당국자 수준에 맞춰 대화할 방안을 검토한 것은 없냐는 질문에 이 당국자는 "현재로서는 없다. 핵심적 의제 세 가지(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이산가족 상봉)와 현안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당국 회담 하자는 것, 그리고 양측이 각각 제시한 대표단으로 하자는 입장에 변화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부의 수정 제안이 없는 것과 관련해 지난 4월 11일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회담 제의를 한 것은 원부자재와 완제품 반출 문제였고, 이 부분에 대해 정부가 초점을 맞춰야 하는 방안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이어졌다. 12일 오전에 류 장관과 통일부 간부들이 모여 현 상황에 대한 평가회의를 했다고 하는데, 원점으로 돌아가 실무접촉으로 회담의 '급'을 논의하는 등의 방안이 없냐는 질문에 이 당국자는 "남북 장관급회담 제의했고 이걸로 남북 간 현안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에 변함없다"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정부가 북한의 입장 변화가 없다면 수정회담 제의도, 실무접촉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지난 두 달이 넘도록 조업이 중단된 개성공단이 금강산관광과 같은 폐쇄 수순을 밟을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회담의 '급' 문제만을 놓고 북한과 줄다리기를 했던 정부가 회담이 무산된 이후 이를 수습할 전략이 없음을 그대로 노출시킨 대목이다.
'급' 문제 제기한 정부, 앞으로 회담은 어떻게 하려고?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형식이 내용을 결정한다"는 청와대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통일부의 상대는 북한의 통일전선부임을 수차례 강조했다. 이 당국자는 "통일부 장관의 상대는 통전부장이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있는 사람이 나오라는 것"이라며 통전부장이 회담에 나오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는 강지영 조평통 서기국장이 통일부 장관과 급이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평통 서기국은 조평통 위원장과 부위원장의 활동을 행정적으로 도와주기 위한 것"이라며 "이것을 우리의 조직과 비교하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있고 사무처가 있는데 서기국장은 여기서 사무처장 정도의 권한과 역할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과연 통일부 장관의 상대로 걸맞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자 "그럼 민주평통 사무처장 급의 북한 인사가 우리 통일부 차관과 대화하는 것은 급이 맞는 것이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대해 이 당국자는 "조평통 서기국 국장의 위상과 역할의 이해를 돕기 위해 민주평통을 말씀 드린 것이다. 조평통 서기국장이 민주평통 사무처장이라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급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국가체제가 다른 양국이 서로 합의해서 일대 일로 상대를 정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게다가 남한의 통일부와 북한의 통전부는 우리의 외교부와 북한의 외무성처럼 조직의 성격과 목표가 정확히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는 동의하지 않는데 우리만 일방적으로 통일부 장관과 통전부장을 같은 급으로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이렇게 일방적으로 '급'을 따지고, 이에 맞지 않으면 북한과 회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 남북대화의 주무부처인 통일부가 앞으로 북한과 대화가 가능하겠느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현재 정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이른바 '급'을 맞추려면 통일부의 상대 조직을 북한의 어느 기구로 할 것인지 양측이 동의가 되어야 하고, 그 중에 누가 장관급인지 차관급인지까지도 합의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양측은 이를 놓고 여전히 대립 중 인데다가, 현 정부의 입장에 따르면 설사 이 대치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대화를 한다고 해도 그 대화 역시 '급'이 맞아야 한다. 결국 정부가 남북 간 대화에 있어 스스로 운신 폭을 좁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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