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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의 '땀'을 둘러싼 호킹과의 한판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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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의 '땀'을 둘러싼 호킹과의 한판 승부!

[프레시안 books] 레너드 서스킨드의 <블랙홀 전쟁>

"진퇴양난에 빠져있다"는 의미로 쓰이는 "between Scylla and Charybdis(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에서)"라는 영어 숙어가 있다. 스킬라, 카리브디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바다의 괴물들이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귀환하다 바다를 방황할 때 시실리의 해협을 지나게 된다. 해협의 한쪽에는 여섯 개의 머리를 가지고 모든 생명체를 잡아먹는 스킬라가, 그리고 다른 한 쪽에는 지나가는 모든 것을 소용돌이로 빨아들이는 카리브디스라는 괴물이 있다. 당신이라면 어느 쪽으로 가겠는가?

물론 양쪽이 다 끔찍한 괴물이긴 하지만 간단한 산술로 답을 얻을 수 있다. 한쪽은 한 번에 여섯, 한쪽은 한꺼번에 모든 것을 잃게 되니 당연히 희생이 적은 쪽은 스킬라이다. 오디세우스 역시 같은 선택을 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전설의 괴물이 있다. 좀 제한적이긴 하지만 쇠붙이라면 모든 것을 다 먹어치우는 '불가사리'다. 고려 말쯤에 등장한 괴물이다.

그런데 좀 유치하지만, 이 전설들에 대해 '뒷담화'를 해보기로 하자. 카리브디스에 빨려 들어간 선원들과 배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혹은 불가사리가 먹어치운 쇠붙이는 완벽하게 소화가 되었을까? 일부분은 배설하지 않았을까? 아니라면 정확히 먹어치운 만큼의 부피, 혹은 질량만큼 불가사리는 커졌을까?

우주에도 카리브디스 같은 존재가 있다. 그것은 바로 블랙홀이다.

▲ <블랙홀 전쟁>(레너드 서스킨드 지음, 이종필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이 블랙홀은 전설이나 과학 소설(SF) 속의 존재가 아닌 실재하는 천체일 뿐만 아니라, 아주 작은 입자의 형태(흔히 미니 블랙홀이라고 불린다)로도 있을 수 있다고 믿어진다. 레너드 서스킨드의 <블랙홀 전쟁>(이종필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은 이 블랙홀에 관한 '뒷담화'이다. 하지만 결코 유치하지 않은, 오히려 현대 물리학의 첨단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슈에 관한 이야기이다.

블랙홀 전쟁의 면면을 이해하자면 두 가지의 큰 줄기를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블랙홀 자체에 관한 것이다. 블랙홀이란 무엇인가? 대부분이 알고 있는 바는 빛조차 포함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엄청난 중력을 지닌 괴물 같은 천체이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여기에 몇 가지를 더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첫째, 블랙홀을 기술할 수 있는 중력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의한 것이다. 사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그로테스크하다. 입자의 속도에는 한계가 있고 질량이 없는 빛조차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 그런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블랙홀에는 빛(광자)을 포함하여 입자가 빠져 나올 수 없는 한계선이 존재한다. 사건 지평선(event horizon)이라 불리는 것이 그것이다.

이 사건 지평선이 존재하는 강한 중력을 지닌 천체를 우리는 블랙홀이라 부른다. 여기에서 서스킨드의(엄밀히는 운루의 것이지만) 올챙이 비유는 빛을 발한다. (직접 읽고 확인해 보시길!)

두 번째 줄기는 미시 세계의 물리학인 양자 역학이다. 분자 혹은 원자의 수준에서, 인간이 추구하는 결정론적 세계관은 힘을 잃는다. 무엇이 어디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확실성은 사라지고 오로지 확률적으로만 기술할 수 있는 세계가 펼쳐진다. 예컨대 '전자가 여기에 있다'가 아니라 '여기에 있을 확률이 얼마다' 하는 식이다. 이렇게 확률을 기반으로 한 미시 세계의 물리학이 바로 양자 역학이다.

어떤 면에서는 상대성 이론보다 이 양자 역학이 더 그로테스크하다. 양자 역학으로 기술되는 세계에서는 입자가 두꺼운 벽을 순식간에 뚫고서도 출현할 수 있다. 파인만이 말했듯이 양자 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해'라는 것이 무엇인가? 무엇인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익숙해져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의 동의어이기도 하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신경망의 재배선'이다. 서스킨드의 이 표현은 참으로 그럴 듯하다. 결국 '신경망의 재배선'은 긴 세월을 거쳐 우리가 맨눈으로 경험하는 세계에 맞게 진화되어온 두뇌의 사고 체계를, 경험하지 못해 보았던 세계에 대한 사고 체계로 전환하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실천에 옮기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한눈에 보이는 스케일, 초원을 달리는 영양의 속도, 그리고 해가 뜨고 달이 뜨는 것과 같은 시간의 흐름 같은 것들에 익숙해졌던 인간은 눈으로 직접 볼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것들 혹은 은하나 우주 자체 같은 거대한 사물들, 창졸간에 벌어지는 빛의 이동이나 우주의 나이 같은 억겁의 긴 세월 앞에서는 당혹스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당혹스러움을 딛고 우리 우주를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블랙홀 전쟁은 발발했다.

전쟁의 발단은 스티븐 호킹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에 의하면 블랙홀은 더 이상 검지 않다. 위에서 이야기한 두 가지의 도구(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를 절묘하게 사용하면 블랙홀은 모든 것을 빨아들일 뿐만 아니라, 입자들을 내뱉기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면서 블랙홀의 질량은 조금씩 줄어든다. 결과적으로 블랙홀은 '증발'하는 듯이 보인다.

여기에서 비유를 사용해 보기로 하자. (서스킨드의 말처럼 수학 없이 물리학을 설명하는 데는 비유가 더없이 유용하지만 비유는 비유일 뿐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말이다.) 카리브디스의 소용돌이에는 선박, 선원 그리고 선박에 실려진 모든 화물 등등이 남김없이 빠져들어 갈 것이다. 예외는 없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소용돌이 근처에서 무엇인가가 표류해 올라온다, 마치 소용돌이가 무엇인가를 내보내는 듯이. 호킹은 카리브디스가 땀을 흘리는 것이고 땀을 흘리면서 그는 점점 작아진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자,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해 볼 때, 이 땀의 근원은 그가 빨아들인 것들로부터 왔을 것이다. 이 땀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그가 무엇을 집어 삼켰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호킹이 주장하기를, 이 땀으로부터는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선원들의 살이나 피 혹은 그들의 DNA도 정체를 알 수 있는 어떠한 화물의 잔해도 그 땀으로부터는 알 수 없다. 그것은 그냥 땀일 뿐이다. 즉, 블랙홀은 갖가지 종류의 입자를 흡수하지만 그로부터 나오는 입자로부터는 그것이 어떤 입자를 빨아들였는가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구체적으로 입자를 추적하여 정보를 추출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원리적으로는 들어간 입자의 모든 정보가 어디엔가는 남아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호킹의 생각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즉, 정보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장을 믿었다.

서스킨드의 반격은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이 책은 그가 반격에 성공하기까지의 오디세이아다. 그는 정보가 살아남았을 것이고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적어도 '그의 생각에' 전쟁은 그의 승리로 끝났다. 이 책의 후반부는 약간 어렵다. 사실은 책 자체가 전반적으로 어려운 내용이고 뒷부분이 좀 더 어렵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따옴표를 친 '그의 생각에'란 부분 때문이다.

그의 주요한 전략은 '끈(string) 이론'-엄밀하게는 막(膜) 이론이다. M 이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의 여러 테크닉을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끈 이론은 대다수의 물리학자가 옳은 이론이라고는 믿고 있기는 하나 아직까지 실험적으로 검증된 바가 없다. 게다가 이론이 말하는 바는 거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도 같은 기묘한 세계의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다.

이 우주는 아주 작은 크기의 끈, 혹은 막으로 구성되어 있고 더군다나 이들이 실재하는 공간은 10차원 혹은 11차원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일군의 물리학자는 그저 끈 이론이 실재하는 세계가 아닌 이론의 산물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런고로 끈 이론을 인정하지 않는 학자에게 그가 승리했다는 주장은 난센스일 수밖에 없다.

더불어 전자나 쿼크(quark) 같은 점입자를 기본으로 하는 현대 입자 물리학도 일반인이 이해하기에는 상당히 어려운데 끈이라면 그것을 다루는 수학, 물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려워진다. 서스킨드는 자신의 주장을 이 책에 펼쳐야 했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끈 이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그것이 책을 다소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서스킨드의 필력은 훌륭하다. 어떤 곳에는 그의 시니컬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가끔 이해하기에는 버거운 내용들도 있지만 당대의 석학들의 두뇌 게임을 살펴보는 것은 흥미진진하다.

미국 프로 골프(PGA)를 관람하는데 골프의 세세한 테크닉을 몸소 익힐 필요는 없다. 그저 플레이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기막힌 플레이를 구사하기까지 가졌던 피와 땀이 어린 땀을 이해하면 그것 자체로 그 경기의 관람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전쟁이란, 당사자에게는 고난이지만 그 자체로 흥미진진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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