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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발암물질인가? 항암물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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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커피, 발암물질인가? 항암물질인가?

[안종주의 '위험사회'] 커피의 위험학

텔레비전에 나온 한 중년 남성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바싹 마른 그의 몰골에 "어쩌다 저렇게 됐을까?"하고 생각했다. 방송을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은 그가 하루에 커피 스무 잔을 마시고 그것도 모자라 커피에 밥까지 말아먹는 커피 중독자라는 것이다. 그의 모습은 커피 중독의 위험성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2011년 9월 19일 한국방송(KBS) 2TV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에 나온 이 남성은 키 173센티미터나 되는데도 몸무게는 48킬로그램밖에 되지 않았다. 심각한 저체중인 것이다. 마치 투병중인 말기 암 환자처럼 보였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너무 징그럽다" "이제 커피 못 마시겠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커피는 이제 대한민국에서 대세다. 커피 전문점이 최근 5년 새 여섯 배나 증가했다는 뉴스가 이를 방증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커피 전문점하면 '스타벅스' 정도만 떠올렸지만 어느새 도시 중심가는 물론이고 외곽에도 커피 전문점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다. 외국 브랜드 커피 전문 프랜차이즈 점도 그 이름을 일일이 외우기 힘들 정도로 많아지고 있다. 할리스, 톰 앤 톰스, 카페베네, 앤젤리너스커피, 파스꾸찌, 투썸플레이스. 커피빈 등. 커피 파는 곳도 과거 다방에서 커피 전문점, 다시 외국계 커피 프랜차이즈 점으로 점점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집에다 원두커피나 각종 커피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기기를 갖춰놓고 이런 곳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커피 맛을 즐기는 사람도 늘고 있다. 또 바리스타(커피전문가)라는 새로운 미래 유망 직업도 등장했다. 커피 전문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소재로 한 TV 연속극까지 등장했다.

이제 술, 담배처럼 커피가 사라진 사회는 상상하기 어렵게 됐다. 커피는 커피에 머무르지 않고 우유와 만나 우유커피가 되고 아이스크림과 만나 커피아이스크림이 된다. 이밖에도 커피사탕, 커피초콜릿 등 많은 다른 식품에 섞여 들어가고 있다.

졸릴 때 커피 한 잔 하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커피를 끓여 보온병에 넣어가는 등산객들이 많다. 마라톤 대회에 가보면 커피를 끓여 무료로 나눠 주는 자원봉사자들이 항상 보인다.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나도 한잔씩 마시고 뛰는 편이다. 손님 접대 때 과일과 함께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커피다. 식사 뒤 커피 한잔이 일상이 돼버린 직장인이 많다. 눈 뜨자마자 커피를 찾는 사람도 있다.

ⓒblog.daum.net/no8171

인간이 커피를 알게 된 것은 꽤 오래됐다. 6~7세기께 에티오피아에 칼디라는 목동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초원 지대에서 염소를 키웠는데 어느 날 염소들이 나무에 달린 빨간 열매를 많이 따먹고서는 흥분하여 마구 뛰어다니는 모습을 목격한다. 칼디도 호기심이 발동하여 이 열매를 따 먹었다.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이슬람 사원의 수도승에게 이런 사실을 말했다.

그 수도승도 이야기를 들은 뒤 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칼디처럼 열매를 먹어보았다. 참말이었다. 그 수도승은 다른 사원의 수도승에게도 이런 사실을 퍼트렸다. 그때부터 커피 열매는 '신비의 열매'가 되어 이슬람 제국에서 서서히 퍼져나갔다. 그리고 십자군 전쟁 때 유럽으로 다시 퍼져나갔다.

우리나라에서는 구한말 열강이 한반도 침략에 열을 올리던 시절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을 가게 되는 사건, 이른바 아관파천 때인 1895년 당시 러시아 공사 베베르한테서 커피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커피를 맛본 최초의 한국인인 셈이다. 그 뒤 황실에서는 종종 커피를 마셨으며 민간에서는 독일계 러시아 여성인 손탁이 정동에 손탁호텔을 연 뒤 그 1층에 정동구락부를 만들어 커피를 팔았다고 한다.

그 뒤 1920년대부터는 명동과 충무로, 종로 등에서는 커피점이 생겨났으며 지식인층이나 문학, 음악 등 예술을 하던 사람들이 커피를 즐겼다고 한다. 커피가 대중들이 즐겨 마시는 기호품이 된 것은 1945년 광복 후와 1950년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미군이 이 땅에 들어와 커피 문화를 널리 퍼뜨리면서부터다.

옛날부터 '신비의 열매'로 불렸던 커피는 그런 별명에 걸맞은, 매우 놀라운 의학적 효과를 지니고 있다. 알츠하이머나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보고도 있고 담석증의 위험도 줄여준다는 보고도 있다. 인지 능력을 높여주고 파킨슨병의 위험도 낮춘다고 한다. 항당뇨와 진통 효과가 있으며 심장 및 간 보호와 일부 암 발생 억제 효과도 지니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커피는 천연 항산화제이다. 변비 예방 효과도 보이고 치아 우식을 예방해주기도 하며 통풍 위험도 낮춘다고 하니 그야말로 신비의 열매라는 것이 결코 과장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최근 미국 하버드 대학 보건대학원의 알베르토 아스체리오 박사 연구팀이 커피를 하루에 네 잔 이상 마시는 여성이 커피를 마시지 않는 여성보다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20퍼센트 낮았다는 연구 결과를 얻어냈다. 연구팀은 우울증을 겪지 않은 평균 63세 여성 5만 명을 대상으로 이전 14년간 커피 섭취 습관을 조사해 섭취량에 따라 분류하고, 이후 10년간을 더 분석했다. 연구 결과 커피를 마셨을 때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낮았다.

카페인 함유 청량음료나 초콜릿을 비롯한 카페인 섭취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연구팀은 커피가 어떻게 우울증 예방 효과를 내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카페인에 반응하는 뇌 감각 기관이 우울증과 파킨슨병에 중요한 대뇌와 다른 중추 부위를 연결하는 뇌저신경절에 집중돼 있었다고 밝혔다.

현대 과학자들이 밝혀낸 커피의 효능을 좀 더 찬찬히 살펴보면 먼저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단기 기억을 증진시킨다는 사실이다. 정기적으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단순 반응 시간, 선택 반응 시간, 부수적인 언어 기억, 시공간 추론과 같은 영역에서 테스트를 한 결과 모든 테스트에서 정기적으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잘 수행했다. 시험 점수는 정기적으로 마신 커피 양에 비례했다. 특히 노인들에게서 그 효과가 가장 좋았다.

또 하루에 커피 3~5잔 정도를 마시는 집단은 커피를 전혀 마시지 않거나 조금 마시는 하루 0~2잔 섭취 집단에 견줘 나이가 들어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이 적다는 몇몇 보고가 있다. 지난 2009년에는 커피를 3~5잔정도 마시는 집단은 알츠하이머 외에도 치매에 걸릴 위험도 줄여준다는 보고도 있었다.

미국 하버드 대학 보건대학원이 수행한 2개의 연구 결과 커피 섭취는 담석증과 담낭(쓸개)질환 발생의 위험을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카페인을 제거한 커피에서는 이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에 3.5잔 이상 커피를 마시는 집단은 전혀 마시지 않는 집단에 견줘 나이가 들어 파킨슨병에 걸릴 위험이 현저히 낮아졌다.

커피는 진통제, 특히 편두통과 두통 처방의 효능을 증가시킨다. 커피 섭취는 인슐린 비의존형인 2형 당뇨병 발병 위험을 최고 절반까지 낮추는데, 마시는 커피의 양에 비례해 그 위험이 낮아진다. 커피는 간경변의 발생을 낮출 수 있다. 이 때문에 커피는 간경변이 있는 환자에서 주로 발생하는 원발성 간암인 간세포암의 위험을 낮추어주게 된다.

커피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망 원인 1위인 암 발생 억제에도 효능이 있다. 난소암과는 관련이 없지만 구강암과 인두암, 후두암 발생 위험을 낮추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한 건강 연구에서 폐경 여성에서만 유방암의 위험을 약간 낮추는 것으로 드러났다.

2008년 발표된 한 대규모 전향적 코호트 연구에 따르면 커피는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 위험을 약간 낮춘다. 2009년 일본에서 이루어진 한 연구에서는 40~79세의 약 7만7000명을 대상으로 카페인이 든 커피 소비와 심혈관 질환 사망 위험 간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결과 위험을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커피는 장 연동 운동을 촉진하는 역할을 해서 때론 변비 예방 효과를 지닌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하지만 커피는 위 운동을 지나치게 느슨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일반적인 믿음과는 반대로 적당히 마시기만 하면 커피의 카페인은 이뇨제로 작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커피 섭취가 탈수나 수분-전해질 불균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현재까지의 증거로는 카페인 음료가 순수한 물과 같이 인체가 필요로 하는 수분을 보충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커피는 현대인들이 많이 관심을 가지는 항암물질인 메틸피리디늄을 포함하고 있다. 이 화합물은 다른 식품에서는 많은 양이 들어있지 않다. 메틸피리디늄은 날 커피콩에는 전혀 들어있지 않고 볶는 과정에서 날 커피콩에 흔한 알칼로이드의 일종인 트리고넬린에서 만들어진다. 이 물질은 카페인 커피와 카페인 제거 커피, 인스턴트커피 모두에서 존재한다. 에스프레소 추출 방법이 원두커피 방법보다 더 높은 항산화 작용 물질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커피에 들어있는 탄닌 성분은 많은 식품들이 초래하는 치아 우식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커피는 40세 이상 남성의 통풍 위험을 낮춘다. 4만5000명이 넘는 대규모 집단을 대상으로 12년간 연구한 결과 마시는 커피 양에 비례해 통풍 발생 위험이 줄어들었다.

▲ 잘 익은 커피 열매. ⓒwikipedia.org

커피의 이런 장점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너도나도 앞다퉈 즐겨 마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설탕, 인공 감미료, 향료, 알코올 등 우리 주변의 많은 기호품처럼 커피가 좋은 성질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약이 독의 모습을 함께 지니고 있듯이 인간이 선과 악의 양면을 지니고 있듯이 커피도 나쁜 성질이 있다.

볶은 커피에는 1000가지가 넘는 화학 물질이 있다고 보고됐으며 이 가운데 19종은 설치류에서 발암물질로 확인됐다. 하지만 설치류에서 발암성을 지녔다고 해서 이 물질들이 모두 인간에게서도 발암성을 지녔다고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국제암연구소는 어쨌든 커피를 발암 가능 물질, 즉 그룹 2B로 분류해놓고 있다. 2011년 5월 이 그룹에 포함시킨 휴대폰 전자파와 같은 수준이다.

커피는 먼저 위장관의 표면에 손상을 줘 위염과 위궤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만약 위염이나 대장염, 궤양 등을 지닌 사람은 커피를 삼가라.

대부분의 커피 애호가들은 흔히 '커피 신경과민'에 시달리는데 이는 너무 많은 커피를 마실 경우 생기는 신경 증상이다.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실 경우와 커피 금단 증상으로 불안과 홍조가 유발될 수 있다. 또 어떤 경우에는 불면증을 유발할 수 있다.

2007년 미국 베일러 대학 의과 대학 연구팀은 커피콩에만 발견되는 카페스톨과 카웨올이라는 디터펜 분자가 사람에서 나쁜 콜레스테롤로 알려진 저밀도지질단백질(LDL)의 농도를 높인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를 근거로 연구진은 커피가 콜레스테롤을 높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종이 커피 필터는 지질성 화합물과 결합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어 커피에서 발견되는 카페스톨과 카웨올은 필터를 통해 제거된다. 원두 방법은 종이 필터를 사용하지 않고 프레스포트 따위를 사용하기 때문에 최종 원두 제품에서는 카페스톨과 카웨올을 제거하지 못한다.

카페인은 이전에는 고혈압의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신 연구에서 그 연관성을 찾지 못했다. 15만5000명에 달하는 여성 간호사를 대상으로 12년간 연구한 결과 많은 양의 커피 섭취가 혈압을 위험할 정도로 높이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신부는 커피를 주의해야 한다. 카페인 분자는 매우 작아 태반 막을 통과해 태아의 혈류에 쉽게 녹아 들어가기 때문이다. 성인과 달리 태아의 장기 조직과 시스템은 완전히 발달되지 않은 상태여서 카페인을 충분히 대사해 이를 배출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많은 커피를 임신 중 마신 1만8478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해 2003년 네덜란드에서 이루어진 한 연구에서 커피는 조산의 위험을 매우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출생 후 1년 이내 사망하는 영아 사망률 위험은 증가시키지 않았다.

이 보고서는 "하루에 4~7잔 정도의 역치가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하루 8잔 이상 마시는 커피 애호가 임신부는 전혀 마시지 않는 임신부에 견줘 220퍼센트나 조산 위험이 높아졌다. 이 연구는 재연되지는 않았지만 이를 계기로 의사들은 임신 중 과다한 커피 섭취를 하지 말 것을 임신부들에게 권고하고 있다.

커피는 또 임산부와 유아에서 철분 결핍 빈혈증을 유발할 수 있다. 커피는 보충 철분의 흡수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커피의 이러한 유해성은 카페인이 인체에 있는 아데노신이라고 불리는 화합물질의 작용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아데노신은 신경신호에 관여하는 화합물로 조절자 구실을 한다. 이 물질은 다른 인체 시스템에서 각기 다른 방법으로 영향을 주는데 각 경우에 아데노신은 활동을 활성화하는 것이 아니라 낮추는 구실을 한다. 아데노신은 어떤 특정 세포의 표면에 있는 특정 수용체에 붙어 이를 잠가버린다.

카페인은 아데노신과 똑같은 수용체에 결합하는데 만약 이 수용체를 카페인이 먼저 점령해버리면 아데노신은 여기에 내려 앉아 조절효과를 발휘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이들 세포의 활동은 조절될 수 없다. 즉 세포 활성을 낮출 수 없다. 이것이 커피가 촉진제로 인식되는 이유인 것이다.

카페인이 인체에 끼치는 영향은 보통 정도이다. 카페인이 모든 수용체에서 아데노신 분자를 경쟁에서 늘 이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카페인은 3~6시간 안에 신속히 대사되어 몸에서 제거된다.

커피의 편익성과 유해성을 두루 살펴본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는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커피는 적당히 마시면 좋다. 하지만 과하면 해롭다. 특히 임신부와 특정 질환을 가진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그 환자가 크게 늘고 있는 역류성 식도염 환자에게 의사는 커피를 되도록 피하라고 권고한다.

커피가 어디 어디에 좋다고 해서 많이 마시면 오히려 몸에 해롭다. 커피는 항암성과 발암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리고 카페인은 사람에 따라 민감성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하루에 6~7잔을 마셔도 잠을 잘 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 정도의 커피를 마시면 잠을 자지 못해 곤란을 겪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커피를 적당히 즐기면 건강에도 좋지만 지나치게 즐기면 건강을 해치고 중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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