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대통령의 지지율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민주정치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일반적으로 대통령의 지지도는 '필연적 하락의 법칙'이라 해서 집권 후기로 갈수록 떨어지는 법이다. 그래서 종종,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 할 일만 열심히 하다 보면 역사가 평가해 줄 것이라며 위안을 삼는 지도자들도 있다. 그러나 민주사회의 국정운영이라는 것이, 지도자가 홀로 묵묵히 앞서가면 줄줄이 뒤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몇 사람의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국정은 시스템으로 움직여지기 때문에 그 시스템을 강하게 추동할 수 있는 정치적 정당성(legitimacy)을 필요로 한다. 그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자원이 대통령의 지지도이다. 특히 개혁지향적인 대통령일수록 지지도는 중요하다. 개혁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기득권 세력과 이익집단의 반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지지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14일 치러진 대만 총통 선거에서 승리를 확정지은 마잉주(馬英九) 현직 총통이 두 팔을 들어 자축하고 있다. 마 총통은 취임 이후 지지율이 곤두박질 쳐 한 때 20%대에 머무르기도 했다. ⓒ로이터=뉴시스 |
마잉주 총통의 지지율 변화
마잉주 총통의 지지율 변화는 지난 5년간 세 단계로 나눠볼 수 있다. 2008년 취임 직후 1년간은 소위 '허니문' 기간이었다. 초기 1년간 마잉주 정부의 국정 만족도는 나쁘지 않았다. 취임하자마자 중국대륙과의 관계개선을 기치로 내걸고 경제회복을 꾀했다. 양안 관계 개선에 반대하는 대만인조차 중국에 기대어 대만 경제를 회복시키는 것에는 내심 기대감을 갖던 터였다. 그러나 취임 2주년과 3주년을 맞이하며 난관에 봉착한다. 국정운영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지지자들보다 반대자들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8년 총통선거에서 220만 표 이상(총 투표자수 약 1,300만)의 큰 표차를 기록하며 총통에 취임했던 그였지만, 연임을 위한 2012년 선거에서는 막판까지 접전을 벌이다가 80만 표 정도의 차이 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그러나 가장 급격한 지지율 하락은 재선되자마자 일어났다. 2012년 5월 연임을 위한 취임식이 열릴 때, 그의 지지도는 20%를 가까스로 넘었고 불만족도는 50%를 상회했다. 특이한 현상이다. 불만족도가 50%를 넘은 그가 어떻게 3개월 전 선거에서 승리를 거뒀단 말인가.
지지율 급락은 마 총통이 2012년 1월 재선에 성공한 직후 발생했다. 그의 발언부터가 문제였다. "이제는 더 이상 재선에 대한 부담감이 없으니 앞으로는 국민들에게 환영 받지 못하더라도, 대만의 미래를 위해 하지 않으면 안 될 일들을 밀고 나가겠다." 총통에 재선된 정치인의 과도한 자신감에서 나온 발언으로 들린다. 개혁의 첫 단추로 그는 유가와 전기요금을 인상하고, 조세정의를 위해 '증권거래소득세(證所稅)'를 징수하겠다고 선언했다. 연금제도 개혁도 추진했다. 그의 일련의 개혁정책은 즉시 반발에 부딪혔고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문제는 지지율을 희생하며 추진한 정책들이 예상치 못한 역효과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보도에 의하면, 지난 1년여간 증권거래소득세는 한 푼도 거둬들이지 못했다. 증권거래소득세를 거두겠다고 선언하자 주식시장이 요동치면서 투자자들이 대부분 손실을 입어, 거둬들일 수 있는 소득세가 증발해 버린 것이다. 게다가 거래가 위축되면서 기존의 '증권거래세(證交稅)' 수입이 감소하는 바람에 정부의 재정손실만 커져버렸다. 감찰원의 보고에 따르면, 2012년 2월 증권거래소득세가 발의되고 입법될 때까지의 5개월간 대만 주식시장에서는 시가총액 2.2조 위안(한화 8조원 상당)이 증발해 버렸고, 증권거래세 수입은 1년 여간 600억 위안(한화 2조 4천억 원 상당) 정도의 재정손실이 생겼다고 한다.
지지율 무시하다가 발목 잡혀버린 개혁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고 역사적 지위를 얻을만한 개혁을 추진하겠다던 그였으나, 급락한 지지율에 개혁의 발목을 잡혀 버렸다. 마잉주 총통의 지지율 문제에 대해 대만 정치평론가들의 분석은 이렇다. 우선 마 총통의 성격적 특성을 꼬집는다. 마잉주 총통은 대만 최고 명문인 건국고와 대만대 법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은 대만 최고의 엘리트이다. 정계에 들어선 이후 줄곧 청렴하고 자기관리에 철저한 모습을 보여왔지만, 비공식적 자리에서는 소수의 사람들과만 교류하고, 소규모 그룹에서의 작업을 선호하며 외부와의 소통이 부족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의 이런 개인적 특성은 정책결정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는 데 장애가 되기도 한다.
인사스타일도 그렇다. 다양한 영역의 인사들을 등용하기보다 학자 출신의 합리적이고 성실한 사람들을 선호한다. 이러한 그룹들은 정책을 분석하고 대안을 찾는 면에서는 능하지만 민첩하게 위기상황을 헤쳐나가고 정책을 추진하는 데는 약점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마 총통과 그의 각료들에 대한 일반의 평가는 추진력이 부족하고 변화의 상황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가장 뼈아픈 비판은, 마잉주 총통이 자신의 리더십을 행정적 분야에만 국한시키고 정책결정 과정에서 당을 소외시키며 시민사회와 소통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마 총통은 24시간 일한다는 얘기가 들릴 정도로 일에 대한 집념이 강하고 청렴한 원칙주의자이지만, 국정은 협업이다. 과거처럼 관료체제나 전문가들의 전문성에만 의존한 위계적이고 일방적인 국정운영은 더 이상 효과를 볼 수 없다. 사회가 점점 복잡해질수록 다양한 계층의 이익이 충돌하게 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부가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정부의 결정이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 정당성이 승자들뿐 아니라 패자들에게 정부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사회일수록 국정운영 과정에 참여, 개방, 공유라는 거버넌스적 가치가 중요해졌다. 대만과 한국은 동아시아의 민주주의를 대표한다. 두 민주사회에서 국정에 대한 만족도와 대통령 지지도의 해법은 결국, 얼마나 적극적으로 거버넌스적 국정운영을 실천해 가느냐에 달려 있다. 정당 및 시민사회와 긴밀하게 소통하며 민심과 교감(interaction)하는 국정모델이 세워져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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