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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 또 클릭…당신을 발가벗기는 그들은?

[프레시안 books] 엘리 프레이저의 <생각 조종자들>

16세기 영국에서는 한 명의 학자가 600쪽이 넘는 책을 1년에 서너 권이나, 그것도 런던이 아닌 암스테르담에서 출간하는 일이 가능했다. 스마트폰과 이메일은커녕 EMS(국제특급우편)도 없던 시절이지만, 지금보다 빠르다면 빠른 속도다. 왜일까. 그만큼 책이 적었기 때문이 아닐까. 다른 '경쟁' 작업이 없으므로 결정도 일도 빨리 진행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16세기 학자라면 자기 분야뿐 아니라 다른 모든 책을 다 알 수 있었는데 반해, 오늘날엔 자기 분야에서 쏟아져 나오는 논문의 초록, 관련 기사를 확인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사실 책 쓰는 것처럼 거창한 일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어떤 스타킹을 사 입을까 하는 일상적인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서도, 우리는 효율적인 소통 수단에도 불구하고 과거보다 시간이 모자라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고마워요, 구글

구글 검색창에 '스타킹'을 쳐보자. 나오는 검색 결과는 2600만 개가 넘는다. 게다가 가장 상위에 뜨는 것은 의류 잡화 스타킹이 아니라 동명의 방송 프로그램 다시 보기 정보고, 그 밑으로 누군가의 성적 취향에 기댈 만한 사진들이 줄 잇는다. 이쯤 되면 컴퓨터를 끄고 동네 잡화점으로 달려가 직접 고르는 편이 시간상 효율적이다.

과거보다 오히려 결정에 이르는 속도가 느려지는 현상은,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의 운명이라 할 수 있다. 유사 이래 2003년까지 인류의 의사 전달 내용에 준하는 양의 데이터(약 50억 기가바이트)를, 우린 지금 단 이틀 만에 만들어내고 있다니까 말이다.

하지만 '혁신'을 강조하는 대형 인터넷 기업들에게, '운명'이란 언제나 정복 가능한 대상 아니었던가? 이제 구글과 같은 인터넷 거인들은 방문자가 필요 없다고 느낄 만한 정보를 걸러 주고 맞춤한 정보를 제안하는, '개별화된 필터'의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2009년 12월부터 구글은 당신이 어디를 통해 로그인하는지, 어떤 브라우저를 사용하는지, 전에 무엇을 검색했는지에 이르기까지 57개의 시그널을 이용해 당신이 누구며 어떤 성향인지를 추측하고 있다. 구글은 당신이 무엇을 클릭하는지 살핀 뒤 원하는 것을 예측해, 개별적인 검색 결과를 마치 거울처럼 보여준다.

가령 '스타킹'으로 검색했을 때 처음에는 엉뚱한 결과를 보여주었을지라도, 이후 어떤 클릭을 했는지 파악되면 다음 검색 땐 "레깅스도 찾으시는 것 같은데, 레깅스에 어울리는 쇼트 팬츠도 함께 보시는 건 어떨까요?"라고 말을 건네는 듯 쇼트 팬츠 관련 링크를 띄우는 식이다.

이런 진화의 예는 일상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구글을 기반으로 한 내 개인 메일 계정은 수십 통씩 쏟아지는 보도 자료는 밑으로 내려 보내고, 처음 온 주소일지라도 원고 청탁 관련 내용일 경우엔 위로 띄워준다. (정말 신통한 노릇이다.) 유튜브에서는 로그인을 안 한 상태에서도 전에 내가 관심 갖고 보았던 영상을 토대로 관련 음악가들을 추천해 주고, 트위터에서는 오른쪽 화면에 언제나 '나와 비슷한 사용자들'을 보여준다.

알아서 쓰레기를 판별해 주고, 다음 선택 사항을 친절하게 제시해 주는 검색 엔진과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를 어찌 '스마트'하지 않다 할 수 있을까. 고마울 정도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보면, 보이지 않는 검색창이 나를 너무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섬뜩해진다.

▲ <생각 조종자들>(엘리 프레이저 지음, 이현숙·이정태 옮김, 알키 펴냄). ⓒ알키
엘리 프레이저의 <생각 조종자들>(이현숙·이정태 옮김, 알키 펴냄)은 바로 그 점을 조명하는 책이다. 그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가 개인의 구석구석을 관찰하고 특정하게 틀 지워진 정보만 제공하고 있다면서, 그것이 우리의 생각 범위를 제한하기 시작했다고 경고한다.

책의 원제이자 저자가 반복해서 문제시하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란 단어에 주목해보자. 필터 버블은 애플, 구글,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인터넷 거인들이 이른바 '맞춤 정보'를 제공하는 가운데 개별 사용자들은 점점 더 자신만의 울타리에 갇히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거대한 매스미디어가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을 '조종'하던 시대는 지났지만, 그 권력은 사라지지 않은 채 인터넷 거인들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나아가 저자는 이 권력이, '기술은 중립적'이라는 믿음과 소비자는 자기가 원하는 서비스를 선택할 뿐이라는 신화에 의해 사회적 책임에서 눈을 돌려 왔다고 강조한다.

페이스북의 버튼은 왜 '좋아요(Like)'인가?

프레이저는 필터 버블이 지배적인 사회를 여러 차원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먼저 개별화된 필터가 무작위적 아이디어와 발산적 사고를 제한한다는 점이다. "웹의 초기 시절, 온라인 지형은 지도가 없는 대륙과 같았"지만 지금은 "의도된 검색의 시대로 변했다." 나와의 '관련성'을 토대로 전해지는 정보들은, 맞닥뜨린 문제에 대해 나를 "인공적으로 만든 해답의 범위" 안으로 인도한다.

이 문제는 단순히 우연한 발상이 준다는 데 국한되지 않는다. 다른 의견이나 자극과 부딪치는 계기가 사라질수록, 관심이 없는 것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된다는 악순환에 봉착하기에 문제다. 정치적으로 진보 성향인 저자는 보수적인 이들의 의견이 듣고 싶어 페이스북에서 그들을 친구로 등록했지만, 어느 순간 그들의 링크가 자신의 뉴스 피드(News Feed)에 올라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여전히 진보적인 친구들을 더 자주 클릭하고 있다는 사실이 페이스북에 의해 계산되었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개별화 필터는 "사람들의 속성과 성향 이해→그 사람들에 가장 잘 맞는 콘텐츠와 서비스를 제공→콘텐츠와 서비스가 잘 맞도록 조정"하는 3단계를 거친다. 이는 사용자의 눈치를 본다는 말로 의인화될 수 있다. 이 '아첨꾼 모델'은 권위 있는 언론마저 독자 반응과 트래픽에 따라 메인 기사를 교체하도록 만들었다. <시애틀 타임스>에서 2005년 가장 많이 읽힌 기사는 '말과 섹스를 한 후 죽은 남자'의 이야기, 2007년 <로스엔젤래스 타임스>의 경우엔 '세계에서 가장 흉한 개' 이야기였다.

물론 "문 앞에 죽어 있는 쥐 한 마리가 아프리카의 죽어가는 사람보다 당신에게 더 관련 깊다"는 마크 저커버그라면, (그리고 이에 동의하는 '쿨'한 사람들이라면) 위와 같은 흥미성 기사가 많이 읽히는 환경이 별로 대수롭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저커버그가 창조한 페이스북에서 다른 이의 글이나 사진에 클릭하는 버튼의 문구가 '중요해요'가 아닌 '좋아요'라는 점과 맥을 같이 한다.

프레이저는 '좋아요'로 대표되는 필터 버블의 세계에서 제3세계의 자연재해나 정부의 예산 집행 등 좀 더 공공적인 이슈들은 모습을 감출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이슈의 위계라기보다 좀 더 '줌 아웃'된 그림을 봐야 할 필요성이다. 인터넷은 엄청나게 광활하지만, 필터를 받아들인 이상 24면짜리 신문만도 못한 좁은 세계가 될 수 있단 뜻이다. 가령 아무리 범죄 기사만 찾아 읽는다 하더라도, 신문을 넘기는 동안 우리는 그날의 중요한 머리기사가 뭔지는 알 수 있었다.

이런 현상 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이슈만이 아니라, '정치적 프로세스'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관심사가 아닌 것에도 눈길을 주는 게 참여 민주주의의 기본이지만, 현실은 그와 반대로 가고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최근 인터넷 환경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미디어학, 미래학, 인지 심리학까지 다양한 학문적 성과를 끌어오는 이 책은, 결국 '정치'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 경고는 저자의 경력에 비추어보았을 때 더욱 강력한 울림을 주게 된다. 서른을 갓 넘은 젊은 저자는 사실 인터넷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그 혜택을 가장 많이 경험한 인물이다. 경력 첫줄엔 "온라인 정치 시민 단체의 선구자이자 2008년 미 대선에서 오바마 당선에 일등공신 역할을 한 '무브온'의 이사장"이라 나온다.

그러나 저자에게 인터넷은 커다란 대안의 세계였지만, 이제 인터넷이란 무기를 장악한 사람들이 대중의 생각까지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설마, 텔레비전이 그랬다면 모를까!

그런데 구글의 계획을 들어보면, 이것도 꼭 망상만은 아니다. 구글 부사장 마리사 메이어는 가까운 미래에 검색 기능이 쓸모없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에릭 슈미트는 "내가 거리를 걸어갈 때 나는 스마트폰이 쉬지 않고 계속 '넌 알고 있니?' 하고 검색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말인 즉슨, 당신이 검색을 하기 전에 이미 휴대폰은 당신이 무언가를 검색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사악해지지 말자'

독자들은 누군지도 모르는 기업의 큰 손들이 나를 완전히 다 파악하고 있단 사실에 새삼 놀라거나, 그 엄청난 정보를 토대로 이런 저런 광고 장사를 하고 있단 사실에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구글을 끄거나 페이스북을 탈퇴할까?

얼마 전 네이트/싸이월드 해킹 사건으로 3500만 명에 이르는 가입자의 개인 정보가 대거 유출됐다. 2000년대 초중반엔 누구나 애용하던 서비스였지만, 이 일이 일어나자 많은 이들이 미련 없이 탈퇴를 선택했다. 그 결정은 기본적으로 개인 정보 유출에 대한 반발감에서 나왔겠지만, 그 서비스가 이미 '한 물 갔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모두들 인사 대신 '일촌 신청'을 했던 몇 년 전이었다면, 집단 보이콧은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다.

애플과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을 경계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명실상부한 '업계 표준'인 데 있다. 다시 말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그건 그네들 서비스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매력적이기에 선택했고, 그 선택이 거대한 권력을 이양하게 된 구조는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한 책임을 사용자에게 돌리는 사고방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우리 방식이 싫다면, 당신이 이용을 중단하면 되지 않겠어?'

실제 인터넷 관련 기업인이나 엔지니어들이 대부분 이런 태도를 갖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역시 '매수자 위험 부담 원칙' 즉 페이스북의 사용을 원하지 않으면 할 필요가 없다는 자세로 대응한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혼란스러운 이념 논쟁이나 미완성의 가치보다는 효율과 디자인에 관심이 있"다. 기술은 중립적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은 궁극적으로 "권력을 먹고 선택을 확장하기 원하는 힘"이다. 또 그 권력의 토대는 사용자들이 그것을 선택함으로써 나왔다. 수억 명이 구글과 페이스북에서 클릭을 하기 때문에 구글과 페이스북은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권력 이양의 메커니즘, 의회 민주주의의 방식과 어쩐지 비슷한 구석이 있지 않은가? 이제 시민들에겐 또 하나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권력이 생긴 것이다.

구글의 유명한 표어 중 하나가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라 한다. '사악'은 도덕적 판단이 들어간 단어다. 이미 그들은 도덕 판단과 사악해질 수 있는 권력 모두를 갖고 있다. 구글의 한 엔지니어는 "정말로 나쁜 짓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죠. 그러나 우리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할 수 있겠죠!"라고 말했다. 나쁘지 않은 권력, 보이지 않는 권력을 감시하는 일은 절대악에 맞서는 것보다 예민한 감각과 세심한 주의를 요구한다.

사실 이 책은 국내 인터넷 환경이 아직 그리 '스마트'한 단계에 이르진 않은 상황이기에 '조종자들'이란 제목처럼 다소 호들갑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기술이 주는 혜택과 그것의 부정적 영향'이라는 현대인이 쥔 양면의 동전을 다시 매만져보게 한다. 그 동전은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펼치는 장이라 여겨졌던 인터넷 역시 똑같은 지배 양식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경고이며, 혜택을 누리는 순간에도 '좋아요'가 아니라 '중요해요'를 기억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아, 책을 덮는 순간 오래된 에피그램이 하나 머릿속에 떠오른다.

"Quis custodiet ipsos custodes?(감시자를 누가 감시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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