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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파리 여성, 진짜 정체는 '매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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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파리 여성, 진짜 정체는 '매춘부'!

[도시 주인 선언·21] 여성이여, 도시의 경계를 가로지르라!

보편적 인간의 관점이 인간 전체를 포괄해 왔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보편적 관점을 표방했던 서양의 많은 이론은 때로는 명시적으로, 때로는 암묵적으로 여성을 보편적 인간의 관점에서 제외시키곤 했기 때문이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을 "완전하지 못한 존재"로 규정하였으며 중세 교부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좀 더 노골적으로 여성을 "부족한 남자"로 묘사했다. 근대 철학자 헤겔에게도 여성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예외적인 존재이거나 애매하기 그지없는 공동체의 "아이러니"일 뿐이었다.

19세기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에게도 이것은 마찬가지였다. 그의 심리 분석의 중심에는 '페니스'가 있었으며 그의 사상에서 여성은 페니스를 결핍하고 있는 존재로 묘사될 뿐이었다. 이렇듯 많은 사상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있었다.

여성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도시의 권리를 배분하고 도시 공간을 분할하는 원리로도 작용했다. 가장 민주적이었다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 공동체, 폴리스에서도 이것은 예외가 아니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폴리스에서 여성은 노예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시민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여성들은 도시 공간에 거주했지만 폴리스의 공적인 삶과 관련된 업무나 대화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폴리스의 공간은 시민으로서의 남성을 중심으로 구획되어 있었다. 폴리스의 중심에는 남성 시민의 활동 공간인 아고라 광장과 정부 청사, 사원, 학교, 극장, 도서관 등이 배치되어 있었으며 여성과 가족의 공간은 폴리스의 주변에 위치하고 있었다. 즉, 여성들은 전적으로 도시의 공적공간으로부터 배제되어 있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여성에 대한 이러한 이해가 여전히 서양의 근대 도시 공간에도 깊숙이 스며들어 있었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근대 초기에 여성들은 참정권만 부여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도시의 공적 공간을 제대로 활보할 수도 없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장옷을 걸쳐야만 겨우 거리로 나갈 수 있었던 조선 시대 양반집 규수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공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이러한 풍습은 결국 그녀가 그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근대에 이르러서도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은 밖으로 돌면 안 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조신한 여성은 가정에 있는 여성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이 동양에서만 혹은 전근대 사회에서만 볼 수 있던 것이라는 착각은 버리자. 서양의 근대 도시에서도 여성은 도시의 공적 공간을 활보할 수 없었다. 다자키 히데아키에 따르면, 당시 파리를 수놓았던 화려한 치장의 귀부인은 사실상 귀부인이 아니라 성 노동자들이었다. 근대 도시에서 특히 부르주아 여성은 철저히 사적인 영역 안으로 활동 범위가 제한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사교장과 같은 실내 공간에는 등장하였지만 거리나 공적인 담론의 자리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 <Le Moulin de la Galette>(오귀스트 르누아르 그림, 1876년). ⓒmusee-orsay.fr

그렇다면 왜 여성은 도시의 공적인 영역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없었던 것인가? 왜 서양의 도시 정치는 여성을 공적인 영역에서 제외시켰던 것인가?

한 마디로 여성은 공적인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보편적 인간"으로 인정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서양에서 인간은 곧 이성적이라고 간주되었던 남성이었으며 여성은 "성적인 존재"일 뿐이었다.

"인간"을 나타내는 서양의 언어를 살펴보아도 이는 잘 드러난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정확히 지적했듯이 프랑스어의 "homme"는 인간 전체를 의미하면서 동시에 남성을 의미했다. 따라서 남성은 굳이 자신을 남성으로 선언할 필요가 없었다. 반면에 여성은 인간이라는 보편 개념과는 어떤 다른 특수한 것, 즉 성(性)적인 존재였다. 여성들은 아이를 낳아 기르는 육체, 감정적인 존재로만 이해되었다.

서양의 도시는 성적인 존재로 규정된 여성들에게 공적인 영역에서의 활동을 허용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인간/성이라는 이분법적인 존재 구분은 공/사 영역이라는 이분법적인 공간 구획의 원리를 낳게 되고 이와 함께 인간으로서의 남성에게는 공적인 영역이, 성적인 존재로서의 여성에게는 사적인 영역에 배치되었다는 것이다.

남성과 달리 여성에게는 성적인 존재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기 때문에 여성의 활동 범위는 철저히 가정이라는 사적인 영역으로 제한되었다. 따라서 이들은 오랫동안 공적인 영역에서의 담론의 권리, 자유 및 평등권의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온전한 시민이 될 수 없었다.

물론 근대 서양의 도시 공간에서 여성들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었다. 여기에는 모성 찬양이라는 이데올로기적 대체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여성들은 시민으로 존중받지는 못했지만, 가정이라는 사적인 영역 안에서, 즉 도시의 주변에서 아이를 낳아 시민으로 길러내는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한, 시민의 어머니로 존중되었다. 여성은 가정에 머무는 한, 도시의 주인은 아니었지만 주인을 길러내는 어머니로 찬양되었다.

그러나 사적인 영역에 머물지 않는 여성은 불결하거나 제거되어야 할 대상으로 가차 없이 도시 공간에서 추방되었다. 오스망의 파리 재개발 사업이 펼쳐지던 때 생계를 위해 거리로 나가 장사를 했던 여성, 시장에서 자신의 성을 팔아야만 했던 매춘 여성은 모두 정화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공적인 도시 공간에서 성적인 존재를 드러냄으로써 공/사의 공간구획을 흩뜨리는 불결한 존재였으며 따라서 비난되고 배제되었다.

아쉽게도 이러한 성적 이분법에 근거한 공간 구획은 현대 도시에도 흔적을 남기고 있다. 여성들의 취업률이 증가하고 공적 공간에서의 여성 활동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정은 여전히 여성의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일터는 여전히 자녀 양육과 관련 없다고 여겨지는 남성 노동자를 중심으로 구상되고 있다. 밤길은 여성에게 여전히 두려움을 주는 공간이며 정치적 참여의 공간인 도시의 광장은 남성의 관심과 이해를 반영하는 낯선 언어들로 채워져 있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우리는 현대 도시의 사회적 조건이 공/사의 경계를 급속히 흐트러뜨리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 도시에서 성적 이분법에 근거한 공/사의 경계가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성이 더 이상 사적이고 성적인 존재로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와 함께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사적이고 성적인 활동 자체가 공적인 영역의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만 이루어졌던 사적인 혹은 성적인 활동은 이제 공적 영역에서의 노동으로 변화하고 있다. 사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던 양육과 돌봄의 노동은 사회복지사, 베이비시터, 가사도우미 등의 형태로 사회화되었으며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던 성적인 서비스 역시 시장의 상품으로 대거 등장하게 되었다.

여성의 취업률 또한 급속하게 증가하였다. 대도시 산업의 주류를 이루는 서비스업에서 여성의 약진은 돋보인다. 소비자 서비스업에서뿐 아니라 생산자 서비스업에서도 여성의 취업률은 눈에 띄게 증가하였다. 여성은 이제 더 이상 가정이라는 사적인 영역에만 배치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으며 사적이고 성적인 활동은 이제 공적인 영역의 문제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새로운 도시 공간의 정치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이제 여성들은 도시의 주인이 되기 위해 공/사의 경계를 가로지를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도시의 여성들이여! 공/사의 경계를 가로지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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