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이나 인왕산에 올라 서울 시내를 둘러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서울이 이토록 넓다니 하고 새삼 수도 서울의 규모에 놀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아득히 이어진 벌집 같은 아파트와 바벨탑처럼 솟아오른 수십 층의 고층 빌딩은 보면 볼수록 인간의 놀라운 개발과 건설 능력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사실 4대문 안에 한정되어 있던 조선 시대 서울과 지금의 서울은 전혀 다른 도시이다. 조선의 정조가 날마다 일기를 써서 남긴 <일성록>을 보면, 1787년 조선의 인구는 735만8005명이었고, 한양 인구는 남자 10만251명, 여자 9만9917명을 합해서 20만168명이었다. 그런데 2010년 서울의 인구는 자그마치 1000만 명이 넘는다. 300년 만에 무려 50배나 증가한 것이다.
근대 도시는 에너지와 자원의 블랙홀이자 거대한 착취의 응축물들이다. 도시인들이 먹고 입고 쓰고 버리는 의식주 소비 물자의 양 또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2009년 기준으로 서울에서는 하루에 247명이 태어나고 106명이 목숨을 잃는다. 하루에 1606명이 서울로 이사 오고 1750명이 떠난다. 서울 시내에서 이사하는 사람만 하루에 3526명이나 된다. 인구밀도는 1제곱킬로미터당 자그마치 1만7289명이나 된다. 자동차는 총 2955만 대가 굴러다닌다. 서울 시내 평균 차량 속도는 25.4킬로미터이고 평균 하루에 1.6명이 교통사고로 죽는다.
서울에서는 하루에 1만1447톤의 생활 폐기물을 만들어 낸다. 1년이면 무려 420만 톤이나 된다. 하루에 12.3만 배럴의 기름을 태우고, 도시가스는 1320.6만 세제곱미터를 소비하며 전기는 하루에 12만3245메가와트시를 사용한다. 서울 시민들이 하루에 먹는 쌀은 약 2300톤(약 2만9000가마)이다. 하루에 쇠고기 약 1000마리와 돼지고기 약 1만 마리를 먹는다. 그리고 서울의 1년간 물 사용량은 약 11억 톤으로 팔당댐 담수량 2억4400만 톤의 4.5배이다.
이런 서울이 얼마나 지속 가능할까. 당연히 불가능하다. 에너지와 식량 문제가 조금만 불거져도 거대 도시는 곧바로 휘청거리고 만다. 흉물로 변한 평양의 고층 아파트처럼 서울의 고층 건물과 아파트들은 그렇게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도시의 역사, 자본주의와 국가주의의 역사
근대 산업화 이전 동서양을 막론하고 도시의 인구와 규모는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그야말로 보잘 것 없이 작았다. 도시라고 해봐야 장이 열리고 행정 기관이 있는 몇 백 명, 몇 천 명의 소규모 도시에 지나지 않았다. 몇 만 명이 넘는 도시는 손을 꼽을 정도였다.
중세 유럽의 피렌체나 베네치아, 밀라노, 제노바 같은 이탈리아 도시들은 인구가 10만 명 수준이었는데, 이는 당시 유럽에서는 가장 큰 도시들이었다. 14세기 프랑스 파리 인구는 10만 명 정도였고 1377년의 기록에 의하면 런던의 인구는 4만5000~5만 명이었다. 1600년에 신성로마제국의 판도 안에 있던 인구 2만 명 이상의 도시는 16개에 불과했다.
이에 견주어 14세기 전반 이집트의 카이로는 중국의 항저우와 함께 세계 최대의 도시로 그 인구도 약 50만 명에 달했다. 17세기 난징의 인구는 100만 명, 베이징도 60만 명을 넘은 것으로 추산한다. 17세기 인도의 아그라, 델리, 라홀 같은 무굴 제국의 주요 도시도 50만 명에 육박했다. 이외에도 앙코르와트, 카이로, 콘스탄티노플, 에도 등 비유럽 지역의 주요 도시들에는 한 때 100만 명에 가까운 인구가 살기도 했다. 요컨대 인구와 규모 면에서 조선의 한양은 서구 도시에 견주어도 결코 작은 도시가 아니었던 것이다.
거대 도시는 명백히 산업혁명과 함께 도래한 서구 자본주의 산업화의 결과이자 근대 국민 국가 체제의 완성품이다. 사실 1500년께만 하더라도 국경선을 긋고 법률에 따라 다스리던 국가들의 면적은 지구 육지 전체의 20퍼센트 이하였다. 그러나 19세기가 되자 남극 대륙을 제외한 모든 육지는 국가의 영토로 점령당하고 말았다. 이 국가의 팽창은 서구 자본주의의 팽창과 정확히 일치한다.
18세기 중후반부터 지금까지 약 200년 동안의 산업화 기간에 유럽과 미국 등 서구의 도시 인구는 전체의 10퍼센트에서 70~80퍼센트로 늘었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도시 인구는 농촌 인구의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이른바 제3세계 국가들이 경제 개발 계획과 함께 산업화 전략을 선택하기 시작하면서 도시 인구는 그야말로 폭발한다. 서구를 중심으로 한 1차 도시화 기간에 견주어 이 2차 도시화는 그 규모와 속도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오늘날 거대 도시의 규모와 인구는 외계인들이 와서 보면 고개를 갸웃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도시가 400개가 넘고, 1000만 명이 넘는 도시만 해도 전 세계에 26곳이나 된다. 석유가 만들어낸 이 인공 도시들은 단전이나 가스 공급 차단, 송유관 파열 등으로 에너지 공급이 중단되는 즉시 거대한 생지옥으로 변하고 만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1955년에 실시된 인구 국세 조사 결과는 서울 인구는 150만 명을 약간 넘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1988년 하반기에 1000만 명을 넘어 선 이후 오늘날까지 서울의 인구 규모는 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30년 만에 무려 850만 명의 인구가 서울로 몰려들었다는 얘기이다. 서울 인근까지 포함한 수도권 인구는 2400만 명이 넘어 전체 인구의 무려 50퍼센트를 넘는다.
1960년 인구 센서스 당시 전국 도시 인구 총수는 약 926만 명으로 전 인구의 37퍼센트 수준이었다. 그런데 1970년 도시 인구 총수는 1578만 명에 이르러 전국 인구(3088만 명)의 51퍼센트가 되었고, 지금은 80퍼센트를 넘는다.
모든 사람들이, 특히 농촌을 떠난 청년들이 도시로, 서울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도시의 눈으로 세상을 보도록 교육받았고 또 교육받은 대로 근대화의 일꾼으로 발탁되어 죽을힘을 다해 일했다. 그렇게 농민들은 개발과 성장의 노동자, 한강의 기적을 만드는 데 동원된 '국민'으로 변신했다.
아직도 강한 인본주의의 전통은 인구론에 대한 일부의 지구 생태론 논의를 반휴머니즘으로 비난한다. 지구 생태계는 현재의 68억 인구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으며 과잉 인구가 문제가 아니라 식량의 불평등한 배분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간단히 말하면 지금 68억 인구는 그냥 지나친 과잉 인구가 아니라 단기간의 석유 에너지 착취의 결과로서 나타난 약탈 과잉 인구이다. 인구 문제는 인본주의나 진보주의나 맬서스주의를 떠나 근본의 시각을 가지고 다시 성찰해야 하는 과제이다.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어 나가는 인민들과 시장들
이런 거대한 에너지-식량 위기의 해일이 밀려오는 것이 눈에 보이고 있는데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시장은 너무나 한가하다. 오히려 서울시 1년 예산인 21조 원의 약 0.35퍼센트에 불과한 695억 원의 무상 급식 비용 때문에 주민 투표를 강행한다고 난리를 피우고 있는 중이다.
흥청망청 5400억 원을 낭비하고서도 거의 모조리 부실 공사가 되어 버린 한강 '걸레상스' 사업, 2274억 원에서 무려 4200억 원까지 늘어난 동대문 디자인 파크 플라자 사업, 1800억 원의 남산 르네상스 사업, 870억 원의 디자인 서울 사업, 잦은 설계 변경으로 애초 354억 원에서 무려 110억 원이 늘어나 465억 원의 세금이 투입된 광화문 광장 등 이른바 '5세훈'의 혈세 낭비는 열거하기 힘들 정도이다.
한국의 거의 모든 시장들이 이런 토목 공사를 끝없이 벌이는 이유는 너무도 명백하다. 거액의 리베이트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2006~2010년까지 민선 4기 시·군·구 기초 단체장 230명 가운데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중 101명(43.9퍼센트)이 각종 비리로 기소됐다.
▲ <꾸리찌바 에필로그>(박용남 지음, 서해문집 펴냄). ⓒ서해문집 |
지속 불가능한 대도시의 몰락을 준비하고자 깨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일종의 매뉴얼 역할을 할 것이다.
"차 없는 도시를 향한 실험 : 프라이브르크", "창조적 도시의 교과서 꾸리찌바", "꾸리찌바 그후 10년", "저탄소 사회로 가는 지름길, 자전거", "두바이 신드롬이 남긴 것", "나눔과 보살핌의 공동체 실험 한밭레츠", "사랑의 경제와 지역 화폐 운동", "딜레마에 빠진 그라민은행 모델", '세계의 모범 도시들에서 얻은 교훈", "식량 거버넌스와 도시" 등등 책에 담고 있는 주제들은 하나같이 도시인들이 맞닥뜨려야만 하는 문제들이다. 쉽게 말해서 도시에서 굶어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꼼꼼하게 알려주는 안내서라고 할 수 있다.
박용남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가 막힌 5세훈의 디자인 서울인지 '디폴트 서울'인지 하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도시 설계와는 근본에서부터 다른 차원에서, 밑에서부터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도시 사람들의 분투기를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전국의 도시에서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만들고자 밑에서부터 서로 소통하고 노력하면서 도시를 바꾸는 사람들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런 도시 인민들의 새로운 길에 박용남의 책은 가이드북으로서 다양한 상상력을 제공해준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장과 공무원들이여! 제발 감옥 가기 전에 이 여름휴가 때 이 책 챙겨들고 한 번 곰곰이 생각에 잠겨보시기를….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