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books'는 지난 4일 공식 트위터 계정을 개설하며, 후마니타스에서 '보급 한정판'으로 새롭게 펴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부 지도위원의 책, <소금꽃나무> 10권을 독자들에게 선물하는 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프레시안 books' 공식 계정(☞바로 가기)을 통해서 <소금꽃나무> 서평을 모집했고, 그 가운데 한 분의 글을 프레시안 books 제50호에 싣기로 했습니다. 많은 분이 약속을 지켜주셨고, 그 소중한 글 가운데 한 편을 골라 싣습니다. 대학생 조윤호(@jobonzwa) 씨의 글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글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
연대하자, 그리고 흔들어 대자!
'희망 버스'를 준비한 송경동 시인은 김진숙과 노동자들 이야기를 하기까지 3개월을 망설였다고 한다. 글로 쓰기에는 너무나도 비극적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나 역시 김진숙과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소금꽃나무>를 끝까지 읽어나가는데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다음 쪽을 넘기는 것을 매번 망설여야 했다. 이 이야기는, 글로 쓰기에 너무나도 비극적인 이야기였음은 물론, 쓰인 글을 읽기에도 너무나 비극적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 때문이든,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 세력 때문이든, 희망 버스 때문이든 김진숙의 투쟁은 세상에 많이 알려졌다. 그러나 세상에 알려지기 전부터 김진숙은 늘 세상을 향해 투쟁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조선소의 여성 용접사 김진숙. 그녀는 "일당이 좀 세서" 용접 노동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열심히 일하다 보면, 남들처럼 가족들도 부양하고, 내 가족도 꾸리면서 남부럽지 않게, 남들처럼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가 직면하게 된 노동자의 현실은 너무나 참혹했다. 김진숙이 다니던 공장은, 용접 슬래그에 얼굴이 움푹 패고 눈알에 용접 불꽃을 맞아도 아프다 소리 못하던 공장이었다. 쥐똥이 섞여 나오는 도시락을 공업 용수에 말아 먹어야 하던 공장이었다. 한여름 감전 사고로 혈관이 다 터져 죽어도 산업재해가 뭔지 몰랐던 공장이었다. 비 오는 날 미끄러져 뇌수가 라면발처럼 산산이 흩어져 죽어도, "노동자가 옷을 너무 두껍게 입어서 몸이 둔해져서 죽었다"고 기록되던, 그래서 그 죽음에 슬퍼하던 자는 라면 봉지만 봐도 토악질을 해야 하던, 그런 공장이었다. 돈 벌어서 대학 가는 게 소원이던 노동자가 대학에 원서를 내겠다고 하면 "그런다고 네 인생에 꽃이 필 거 같냐"고 조롱받고, 그 조롱에 눈물로 원서를 갈기갈기 찢어야 했던 그런 공장이었다.
▲ <소금꽃나무>(김진숙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후마니타스 |
더 참혹한 사실은, 이 이야기가 과거의 '힘들었던 한 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군부의, 독재 권력의 뒤를 이어 새롭게 들어선 자본 권력은 여전히 끔찍한 노동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월급 몇 만원을 올려달라는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으면서 사주들은 몇 백억 원의 배당금을 받아 챙기는 이들이, 노동자는 무자비하게 정리 해고하면서 자신들은 황제처럼 영원히 군림하는 이들이, 경영상의 위기에 노동자만 책임지고 자신들은 책임지지 않는 이들이 이 나라 자본이다.
'민주 정부'라 불리는 정치권력은 또 어떠한가. 살기 위해 거리로 나온 노동자들에게 곤봉과 몽둥이는 물론, 손배가압류라는 '자본의 무기'까지 휘두르는 이들이 이 나라 정치권력이다. 김진숙을 만나러 가는 학생과 노동자 시민의 앞을 가로막고, 회사를 보호해 달라는 자본의 요청을 너무나 충실하게 이행하는 이들이 이 나라 정치권력이다. 조남호를 청문회에 세우지도 못하는 이들이, 자본의 눈치를 보며 청문회에 참여하지도 못하는 이들이 이 나라 정치권력이다. 노동자와의 연대하는 이들을 훼방 세력, 외부 세력이라 치부하고 강경 대응하면서, 자신들은 너무나도 자본가와 잘 연대하는 이들이 이 나라 정치권력이다.
그래서 '1970년에 죽은 전태일의 유서와, 세기를 건너뛴 2003년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두산중공업 배달호의 유서와, 지역을 건너뛴 한진중공업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민주당사에서 농성하던 조수원과, 크레인 위에서 농성하던 김주익이 죽는 방식이 같은' 나라. 이 나라는 여전히 노동자들에게 가혹하다.
이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김진숙은 말했다. 노동조합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회사 가는 일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고, 늘 눈치를 보던 회사 관리자들에게 거꾸로 '걸리기만 해 봐라' 할 만큼 자신감이 붙어 당당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노동조합은 인간의 자존감을 깨닫게 한 '선생'이었다고 말이다. 도시락 거부 투쟁을 통해 김진숙과 동지들은 회사에 식당을 만들어냈고, 파업 투쟁을 통해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들을 복직시켰다. 노동조합이란 연대의 이름이다. 노동자 개개인은 자본 앞에 너무나 무력한 존재지만, 그들이 연대한 집단으로서의 노동자는 자본과 맞설 수 있을 만큼 강하다.
김진숙이 승리하여 크레인 아래로 걸어 내려올 수 있는 방법 또한 김진숙이 잊지 않았던 그 방법, 연대뿐이다. 자본과 정치권력, 그리고 기성 언론들은 김진숙과 노동자들을 살리기 위한 연대인 희망 버스를 '절망' 버스, '훼방' 버스라고 표현한다. 그렇다. 우리의 연대는 절망과 훼방을 동반해야 한다. 우리의 연대는 자본의 축적과 부의 독점을 위해 노동자들을 가차 없이 짓밟아온 저 자본과 이를 방조하거나 이들의 수하가 되어버린 정치권력에게 "더 이상 당신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절망을 안겨 주어야 한다. 그들의 지배에 '훼방'을 놓아야 한다. 그리고 승리하여, 노동자와 착취 받는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어야 한다. 우리의 연대가 추구해야 할 희망은 저 권력자들에게 절망을 안겨주고, 그들의 지배를 훼방 놓는 것에서 시작한다.
김진숙은 노동자들을 소금꽃나무에 비유했다. 아침 조회 시간에 쭉 줄 서 있으면 아저씨들 등짝에 하나 같이 소금꽃이 피어 있고 그렇게 서 있는 그들이 소금꽃나무 같다고 했다. 그게 참 서러웠다고 한다. 그 나무들은 황금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들이다. 그러나 그 나무들은 정작 단 한 개의 황금도 차지할 수 없는, 그런 나무들이 노동자들이다.
우리는 연대를 통해 김진숙을 살려내고, 소금꽃나무들에게 황금을 되돌려주는 길로 한 걸음 도약해야 한다. 김진숙의 꿈은 김진숙만의 꿈이 아니다. 40년 전의 어느 날 전태일이 근로기준법과 자신을 함께 불태우며 꿈꾸었던 그 꿈, 박창수가 감히 이루려 했다 죽고 말았던 그 꿈, 김주익과 곽재규가 죽음으로써 이루려고 했던 그 꿈, 배달호와 김동윤이 몸에 불을 붙여 이루려고 했던 그 꿈, 조수원이 민주당사에서 농성하며 꿈꾸었던 그 꿈이다. 노동자도 사람이다! 노동자의 노동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라! 노동자가 기업의 주인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연대하자!
부패한 관료들이, 타락한 정치인들이, 이윤에 눈이 먼 자본가들이 세상에 온갖 쓰레기들을 배출할 때 그 쓰레기를 묵묵히 치우던 이들. 그들이 노동자들이며, 소금꽃나무들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꽃은 없다고 했다. 이제 이 책을 읽고 눈물 흘린 우리 모두가 흔들려야 할 차례다. 그리고 그들을 흔들었던 이 현실을 흔들어야 할 차례다.
ⓒ노동과 세계(이명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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