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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이주'의 산증인=신도시 출퇴근하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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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이주'의 산증인=신도시 출퇴근하는 당신!

[도시 주인 선언·10] 도시에 대한 권리의 시작은 우리집!

얼마 전 포이동 266번지 판자촌에 큰 화재가 났다. 96가구 중 75가구의 집을 앗아간 화재, 그러나 비닐하우스 촌에는 드문 일이 아니다. 타워팰리스와 가까운 자리, 도시 안에서 삶의 풍경은 이리도 다를 수 있다. 서울 시내 대부분의 비닐하우스 촌은 강남, 서초, 송파구에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을 '선도'하는 지역이다. 이런 지역의 비닐하우스 촌 또는 판자촌을 사람들은 쉽게 상상하지 못한다.

포이동 266번지는 양재천 가까이 자리 잡은 판자촌이다. 개발 제한 구역이나 체비지에 '무허가 건축물'을 지어 거주한다는 점이 통칭 비닐하우스 촌이라고 불리는 마을들의 공통점이다. 전기나 수도가 집집마다 들어가지 않고, 화장실도 공동으로 사용한다. 무엇보다도, 화재에 취약한 비닐, 샌드위치 패널, 판자 등을 이용해 지어진, 최저 주거 기준 이하의 집들이다. 그 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

▲ 위에서 내려다본 포이동. 멀리 타워팰리스가 보인다. ⓒ프레시안(최형락)

강제 이주로 만들어진 비닐하우스 촌

이 동네는 1981년 만들어졌다. 1979년 박정희 정권은 '자활근로대'를 만들어 사람들을 강제 수용했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이후 이 사람들은 여러 지역으로 나뉘어 배치됐고, 포이동은 당시 45명의 사람들이 이주했다고 한다. 물론 집은 없었다. 비닐하우스에 여러 명이 공동으로 살다가 판잣집들을 지었다.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상계동에서 대규모 강제 퇴거가 이루어질 때, 포이동은 출입을 통제 당했다. 낮에는 외출도 하지 못하도록 경찰이 감시했다. 이것이 포이동 강제 이주의 역사다.

그러나 강제 이주는 포이동만의 역사가 아니다. 1971년의 광주대단지 투쟁 역시 강제 이주에서 시작되었다. 급격한 도시화 과정에서 지어진 판자촌들은 정부의 도시 개발 계획에서 '없애야 할 것'일 뿐이었다. 서울시는 무허가 판잣집들을 정리하면서 경기도 광주군으로 사람들을 보냈다. 서울시는 신도시를 개발하겠다며 광주의 땅을 비싼 가격으로 사람들에게 팔았다.

그러나 주거지로 이용할 수 있기 위한 기본적인 기반 시설과 인프라를 만들지는 않은 채, 사람들에게 당장 집을 짓지 않으면 토지 불하를 취소하겠다고 했다. 안정적인 주거를 마련할 수 있을 거라는 약속을 믿고 광주로 이주했던 주민들은 분노했다. 서울시와 경기도에 수차례 진정을 하고 시위를 하며 항의했지만 서울시는 꿈쩍하지 않았고, 결국 주민들은 돌을 던지고 파출소를 파괴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서울시가 토지 불하 가격 조정, 구호 양곡 방출 등을 약속한 후 주민들은 해산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

지금은 많이 사라진 서울시의 '달동네' 대부분도 철거민들의 집단 이주에서 시작되었다.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판자촌에 살다가 철거당한 주민들이 서울시의 토지 불하 정책에 따라 이주한 것이다. 물론 기반 시설이 하나도 없는 맨땅에 철거민들이 동네를 만들고 일구었다. 2000년대에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기도 했던 난곡 역시 그런 동네 중 하나다.

1968년 대방동 철거민들의 집단 이주를 시작으로, 용산, 이촌, 창신동 등에서 사람들이 밀려나와 대규모 정착촌이 되었다. 비닐하우스 촌은 토지 불하 정책에 따른 이주가 아니라 주민들이 제각각 살 길을 찾아 땅을 찾던 와중에 만들어진 동네라는 점이 조금 다를 뿐, 개발로 밀려난 사람들의 동네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난곡이 그러했듯, 대부분의 '달동네'는 다시금 개발 대상 구역이 되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각종 개발 사업으로 달동네들은 사라졌다. 무슨 무슨 단지, 라는 아파트 브랜드만 남았다. 그 많던 동네는 어디로 갔을까. 비닐하우스 촌은 개발 제한 구역이거나 용도가 달라 남아 있을 뿐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어디에선가 살고 있다. 끊임없는 개발로, 예전처럼 모여 살지 못하고 있을 뿐, 끊임없이 이주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강제 이주가 아닐까?

도시는 평등하지 않다. 구마다 지하철역의 개수가 다르고 노선 버스의 수도 다르다. 병원과 학교의 수, 그리고 질도 다르다. 이런 도시의 불평등 위에서, 살고 싶은 동네에 사는 사람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주거권은 살 만한 집에 살 권리다. 그것은 물리적 주거 환경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안정적인 점유가 보장되어야 하고 살기에 적절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집과 동네라는 공간을 바탕으로 맺어지는 관계와 문화도 주거권의 중요한 요소다. 즉, 우리는 살고 싶은 동네에 살 수 있어야 한다. 주거권이 도시에 대한 권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이유다.

살고 있는 동네를 살고 싶은 동네로 만들 권리

주거는 흔히 사적인 공간으로 여겨지고, 도시는 공적인 공간으로 다루어진다. 그러나 주거는 도시 안에서 사람, 자연, 노동과 끊임없이 만나는 한 장소이고, 도시는 그런 관계를 통해서만 도시가 된다. 주거권의 요소 중 '위치'는 특히나 도시에 대한 권리와 관련이 높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을 구할 때 동네를 먼저 정하고 알아보는 것이 바로 그걸 증명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살아가고 싶은가. 그리고 살고 싶은 동네에 살 수 있는 역량을 도시는 키워주고 있는가.

살고 싶은 동네에 사는 것은, 살고 싶은 동네로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거주 이전의 자유와는 다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를 살고 싶은 동네로 만들어갈 권리다. 그것이 도시에 대한 권리의 다른 이름이다. 도시의 불평등을 그대로 둔 채,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열악한 주거지로 끊임없이 밀려나가도록, 재산이 많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새로이 개발되는 주거지로 향해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도시에 대한 권리는 이렇게 바로 우리들의 집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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