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일본이 세계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대회의 결승에 오른 것은 이번이 네 번째입니다. '그렇게 많이?' 하는 생각을 가지실 수도 있겠지만 작년 9월에 트리디나드 토바코에서 개최된 17세 이하 여자 축구 대회에서 우리나라가 결승에서 일본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을 때 "우리나라는 FIFA가 주관하는 대회에서 처음 결승에 올랐지만 벌써 세 번째로 결승에 오른 일본은 한국을 이기고 우승을 차지할 것을 기대했다"는 내용이 소개되었습니다.
이번 대회를 포함하여 일본이 네 번이나 FIFA가 주관하는 대회에서 결승에 오른 과정을 돌이켜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결승 진출은 1999년 세계 청소년 축구 대회
1980년대에 우리나라보다 뒤늦게 프로 리그를 결승하기 전까지 일본 남자 축구는 우리나라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일본의 전설 가마모도가 활약하던 1960년대 말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말입니다. 문제는 가마모도가 이끄는 일본 대표 팀이 1968년에 멕시코시티에서 개최된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멕시코에 5대 3으로 이긴 것까지는 좋았으나 스웨덴에 12대 0으로 패하면서 올림픽 역사상 최다 스코어 차이 기록을 세운 후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자동 출전권을 얻기까지 번번이 예선에서 고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1968년 올림픽 전이나 후에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축구를 더 잘 한 적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다는 사실은 부러움이 대상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올림픽 동메달을 제외하면 역사적으로 우리보다 나을 것이 전혀 없던 일본은 우리보다 10년 늦은 1993년에 J 리그를 출범시키면서 무섭게 우리를 뒤쫓아 왔습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예선에서 도하의 기적이 아니었더라면 J 리그 출범 2년 만에 국제적으로 우리나라보다 높은 수준을 인정받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1980년대까지는 우리와는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1990년대에 우리나라를 따라잡은 후 지금까지 숙적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국가 대표 팀의 실력이 일취월장하면서 청소년 대표 팀의 실력도 아시아 정상권에 접근했고, 호시탐탐 세계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일본 청소년 대표 팀이 세계 무대에서 우뚝 선 것은 1999년에 나이지리아에서 개최된 20세 이하 대표 팀 월드컵에서 결승에 오른 것입니다.
예선에서 미국에 이겼으나 카메룬에 패하면서 미국, 카메룬과 세 팀이 2승 1패 동률을 이루었으나 골득실 차에 의해 조 1위로 예선을 통과한 일본은 16강전에서 포르투갈에 승부차기 승을 거두었고, 8강전에서는 멕시코에 2대 0, 준결승에서는 우루과이에 3대 1로 승리를 거두며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이동국과 김은중 투 톱을 앞세우고 설기현, 김용대 등이 활약한 한국 대표 팀도 1983년 멕시코 대회 4강을 재현하리라는 기대를 받을 만큼 출중한 전력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지역 예선에서 일본을 2대 1로 두 차례나 이겼으며, 특히 결승전 1대 1 동점 상황에서 예선에서 결승골을 넣은 이동국이 반 바퀴를 돌아서면서 다시 한 번 결승골을 넣는 장면은 두고두고 기억될 만한 골이었습니다.
우리나라 팀은 예선에서 그 대회 3위에 오른 말리를 꺾으면서도 탈락했지만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우리에게 진 일본은 FIFA 주관 대회에서 처음으로 결승까지 오르는 선전을 했으니 1981년 대회에서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우리에게 패한 카타르가 결승에 오르는 동안 우리나라는 이탈리아를 초토화시키고도 예선이 끝나자마자 보따리를 싸야 했던 역사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승에서는 출중한 경기력을 보여 준 스페인이 일본을 4대 0으로 격파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20세 이하 세계 청소년 축구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이 대회에서 두 골을 넣으며 우승을 맛본 사비는 2008년 유럽 챔피언을 겨루는 대회와 2010년 월드컵에서 스페인이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에 영광과 환희를 함께 했습니다.
일본이 브라질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뒀다?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월드컵 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된 것은 1996년 5월 31일의 일입니다. 이때까지 월드컵 개최국으로 결정된 나라 중 월드컵에 참가한 적이 없는 나라는 일본이 유일했습니다. 월드컵 개최국으로 결정된 일본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을 통과함으로써 체면치레를 했고, 월드컵에 참가한 적 없는 나라 중 두 번째로 월드컵 개최국으로 선정된 나라는 2022년 개최국인 카타르입니다.
대륙을 대표하는 국가들이 참여하여 경기를 치르는 컨페더레이션컵은 1992년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개최된 킹파드컵이 전신입니다. 1995년에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회 대회가 개최된 후 FIFA는 컨페더레이션컵 대회를 직접 주관하기로 하고 1997년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첫 대회를 개최했습니다. 그 후로 2년에 한 번씩 대회를 개최했으나 2005년부터는 이듬해에 월드컵을 개최하는 국가가 컨페더레이션컵 대회를 개최하는 걸로 결정되었습니다.
일본이 FIFA 주관 대회에서 두 번째로 결승에 오른 것은 2001년 컨페더레이션컵 대회에서입니다. 다음해에 우리나라와 공동으로 월드컵을 개최하기로 되어 있었으므로 컨페더레이션컵 대회도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개최를 했습니다. 참가국은 월드컵 개최국이면서 아시아대표로 출전한 한국과 일본, 남미 대표 브라질, 북중미 대표 캐나다, 유럽 대표 프랑스, 오세아니아 대표 호주, 아프리카 대표 카메룬과 1999년에 열린 전 대회 우승국 멕시코였습니다.
개막 경기에서 프랑스에 5대 0으로 패한 한국 대표 팀은 이틀 후 멕시코를 맞이하여 황선홍과 유상철이 득점을 하면서 2대 1 승리를 거두었고,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는 황선홍의 결승골로 호주를 1대 0으로 격파하며 2승 1패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1998년 자국에서 개최된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 2000년 유럽 챔피언 대회에서도 우승을 이어가며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프랑스가 예선 두 번째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졸전 끝에 호주에 1대 0으로 패하면서 우리나라는 프랑스, 호주와 2승 1패 동률을 이루었고, 결국 골득실 차에 의해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캐나다와 카메룬을 각각 3대 0, 2대 0으로 물리치고 브라질과는 0대 0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캐나다와의 경기에서도 득점 없이 비긴 브라질을 조 2위로 끌어내리고 조 1위를 예선을 통과했습니다. 예선이 끝난 후 프랑스의 로저 레메로 감독은 최선을 다하지 않고 호주에게 져서 한국 축구 팬들에게 미안하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최선의 멤버와는 아무 관계없이 자국 출신 선수 위주로 급조한 팀을 파견한 브라질은 예선을 2위로 통과한 후 준결승에서 프랑스에게 2대 1로 패하고, 3, 4위전에서 호주에게도 1대 0으로 패하며 4위에 머물렀습니다. 예선에서 브라질보다 좋은 성적으로 1위에 오른 일본은 준결승에서 나카타의 결승골로 호주를 1대 0으로 꺾고, 다시 한 번 FIFA 주관 대회에서 결승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결승에서는 프랑스에게 1대 0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막 한국 대표 팀 감독에 임명된 히딩크가 그 후 체코에 5대 0으로 또 패하면서 오대영이라는 별명을 가진 것과 비교하여 프랑스 출신의 트루시에 감독은 그로부터 2002년 월드컵이 끝나는 날까지 전폭적인 일본 팬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세 번째 결승의 상대는 바로 한국
두 번의 실패를 맛본 일본이 세 번째로 FIFA가 주관하는 세계 대회의 결승에 오른 것은 2010년에 트리디나드 토바코에서 개최된 17세 이하 여자 축구 월드컵 대회입니다. 2002년에 캐나다에서 19세 이하 여자 월드컵 축구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FIFA는 17세 이하 대회도 개최하기로 방침을 정했습니다. 2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19세 이하 여자 축구 월드컵 대회는 2006년에 20세 이하 대회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17세 이하 여자 축구 월드컵 대회는 2008년에 뉴질랜드에서 첫 대회가 열렸습니다.
아시아 대표로 한국, 북한, 일본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세 팀은 모두 예선을 통과하는 호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8강전에서 각각 미국에 4대 2, 영국에 2대 2 무승부 후 승부차기에서 패배하면서 탈락했지만 북한은 8강전에서 덴마크를 4대 0으로 이겼고, 준결승에서는 영국에 2대 1, 결승에서는 미국에 2대 1 승리를 거두며 우승을 차지한 바 있습니다.
처음 여자 축구가 시작될 때만 해도 북한, 일본, 중국 등 주변 나라들에 비해 걸음마 수준이었던 한국 여자 축구는 늦은 출발을 빠른 성장으로 보충하며 서서히 발동을 걸어 갔습니다. 2010년 7월에 독일에서 개최된 20세 이하 여자 축구 월드컵에서는 여덟 골을 터뜨린 지소연을 앞세운 우리나라가 3위라는 쾌거를 달성함으로써 남녀 통틀어 대한민국 역사상 FIFA 주관 대회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두기도 한 바 있습니다. 우승은 결승에서 나이지리아를 2대 0으로 물리친 주최국 독일이 차지했습니다.
몇 세 이하 대표 팀인가에 관계없이 청소년이든 국가 대표 팀이든 1990년대 이후 아시아권에서는 꾸준히 정상권의 실력을 발휘하며 우리나라보다 한 수 위의 전력을 자랑하던 일본 여자 팀은 1년 전 아시아 지역 예선 준결승에서 우리나라에 1대 0으로 패하긴 했지만 전통적인 강국으로써의 위엄을 자랑하며 대회에 나섰습니다.
역사가 일천한 성인 대표 팀은 비록 힘들겠지만 축구계에서는 청소년 팀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이미 2009년도에 개최된 아시아 지역 예선 준결승에서는 일본을, 결승에서는 북한마저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한 우리나라 17세 이하 팀도 국민들의 관심 대상은 아니었지만 축구계의 기대를 안고 장도에 올랐습니다.
예선에서 북한은 나이지리아에, 일본은 스페인에, 우리나라는 독일에게 각각 패하면서 2승 1패 조 2위로 예선을 통과했습니다. 준결승에서는 한국이 나이지리아를 6대 5로, 일본은 아일랜드를 2대 1로, 북한은 독일을 1대 0으로 물리치며 모두 준결승에 진출했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준결승에서 각각 스페인과 북한을 맞이하여 2대 1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게는 첫 번째 FIFA가 주관하는 대회에서 결승에 오른 것이며, 일본으로서는 세 번째 일이었습니다.
몇 달 전만 해도 여자 축구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던 한국의 국민들은 두 달 전 20세 이하 대표 팀의 경기를 통해 한국에는 남자 축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자 축구도 있음을 알게 되었고, 시차가 맞지 않는 악조건속에서도 잠을 설쳐 가며 우리나라를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결승 경기는 대단한 명승부였습니다. 우리가 선취골을 뽑자 일본이 만회골과 역전골을 뽑았고, 전반전이 끝나기 직전 우리나라가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는 두 번째 골을 획득했습니다. 후반전에 일본은 먼저 3대 2로 앞서는 골을 얻었으나 우리나라가 3대 3 동점골을 획득함으로써 결국 연장전 끝에 승부차기로 승부를 가리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여섯 명중 한 명이 실패한 한국이 두 명이 실패한 일본을 5대 4로 누르고 FIFA 주관 대회 역사상 첫 번째 결승 진출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은근히 우승을 기대하던 일본 팬들은 아쉬움을 곱씹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3전 4기 끝에 우승을 차지한 일본 축구
▲ 일본 여자 축구 대표 팀이 17일(현지 시각) 독일 프랑크푸르트 코메르츠방크 아레나에서 열린 2011 여자 월드컵 결승전에서 미국을 승부차기 끝에 3-1(2-2)로 누르고 아시아 국가 첫 여자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일본팀 주장 사와 호마레가 우승컵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AP=뉴시스 |
여자 축구 월드컵은 1991년에 첫 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그 후로 2007년까지 4년에 한 번씩 다섯 차례 대회가 열리는 동안 4강에 든 팀은 브라질을 제외하면 모두 유럽 팀이었습니다. 2003년 미국과 2007년 중국에서 개최된 대회에서 두 번 연속 우승을 차지한 독일 팀은 자국에서 개최된 올해 대회에서 3연패를 목표로 했습니다. 예선을 3전 전승으로 통과한 독일이 예선에서 영국에 패하여 2위로 올라온 일본을 만났을 때 일본의 승리를 점치는 이들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은 해냈습니다. 독일과의 8강전에서 연장전까지 치르는 혈전 끝에 연장 후반에 터진 결승골에 힘입어 1대 0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여섯 번의 월드컵에서 아시아 팀으로는 처음으로 준결승에 진출했으며, 여세를 몰아 준결승에서 스웨덴을 3대 1로 물리쳤고, 앞선 다섯 대회에서 우승 2회, 3위 3회를 차지한 전통의 강호 미국도 프랑스를 3대 1로 물리치고 결승에 올랐습니다.
결승에서는 미국이 한발씩 앞서갔습니다. 후반 24분에 선제골을 뽑자 9분을 남기고 일본이 동점골을 얻었습니다. 연장 전반이 끝나기 직전 미국이 다시 앞서가는 골을 넣었을 때만 해도 승자는 미국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끝나기 3분 전에 다시 동점골을 기록하며 승부차기를 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일본이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세 번의 실패 끝에 네 번 만에 우승을 이룬 일본 여자 축구 대표 팀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 고국의 동포를 생각하며 기운을 냈다니 뜨거운 박수를 받아도 부족한 점이 전혀 없을 것입니다.
청소년 축구와 달리 성인 축구에서는 아직 아시아 정상이라 보기 힘든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 북한, 호주에 월드컵 출전권을 내 준 채 텔레비전으로 경기를 지켜봐야했지만 작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무렵, 한국에는 미래를 기약하게 하는 어린 여자 축구 선수들이 자라고 있음을 보여 준 선수들이 성인 무대에서 맹활약하게 될 때는 우리나라도 세계 정상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 봅니다. 팬들의 관심과 성원은 물론 투자가 필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테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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