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이 뜬 밤, 밤길을 나선다. 요새는 저물녘이면 강구안을 산책하는 것이 일과다. 문화마당 주차장 부근 강구안 바닷가. 할머니 한 분이 징을 울리며 염불을 왼다.
"옴 아라남 아라다.
나무대자대비관세음
나무관자재보살마하살
신묘장구대다라니"
▲"비나이다 비나이다." 용왕님께 치성을 드리는 할머니 무당. ⓒ강제윤 |
바닥에는 촛불 두 개를 켜놓고 냄비에는 쌀밥을 한가득 퍼 담았다. 또 약과와 떡, 사과, 배 등의 과일과 명태포, 막걸리 석 잔이 제사 음식으로 차려졌다. 할머니는 강구안 바다를 향해 끊임없이 염불을 하고 주문을 왼다.
"대동조선 대한민국 경상남도 통영시
요왕대신님을 찾아와서 제를 지어 올려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동해바다 요왕대신
서해바다 요왕대신
남해바다 요왕대신
사천앞바다 요왕대신
통영앞바다 요왕대신"
태평동에 사는 무당 할머니가 '용왕제'를 지내시는 중이다. 사천에 사는 배씨 집안을 위해 용왕님께 제사를 올린다. 배씨 집안에서는 고깃배도 부리고 사업도 한다. 바다에서 안녕과 풍어, 사업 번창을 위해 용왕제를 지내는 것이다. 요왕대신은 용왕이다. 용왕님께 치성을 드리지만 더불어 부처님, 보살님들께도 함께 기원을 드린다. 무속 신앙에서는 용왕님이나 부처님이나 다들 영험한 신이시다.
"궂은 물은 씻어내고 새 물을 주옵소서
칠성 바람도 막아주고
배씨 가정에 소원성취 시켜주시고
배씨 자손들은 넘의 눈에 꽃이 되고 잎이 되고
요왕대신 요왕대신
이리 가도 도와주고 저리 가도 도와주고
언제든지 불쌍히 여겨 살려주고 도와주십시오
요왕대신 요왕대신 요왕대신
나무대자대비관세음 나무대자대비관세음 나무대자대비관세음
살려주소 살려주소."
▲용왕굿이 끝난 뒤 소지를 하는 무당 할머니. ⓒ강제윤 |
시인도 무당이다!
"남의 눈에 꽃이 되고 잎이 되고"
나그네는 주문의 이 구절이 참 좋다. 다른 이들에게 늘 예쁨 받고 사랑받게 해달라는 말씀을 이토록 시적으로 표현하다니! 하급 무당의 언어는 직설적이지만 고수들은 은유와 함축의 화법이 뛰어나다. 시보다 더 시적이다. 무당이 신의 말씀을 듣고 전달해 주는 것을 공수 내린다고 한다. 서양식으로 하면 신탁이다. 무당들이 신탁을 전하듯이 시인들 또한 저 깊은 곳 어디선가 들려오는 신비한 소리를 듣고 받아 적는다. 그것이 시다. 그러므로 시인 또한 무당이다.
경을 마치고 무당 할머니는 바다를 향해 무릎 꿇고 절을 한다. 진짜 중요한 큰 굿은 다음 날 통영시 도산면 당집에서 올릴 예정이다. 이날은 다음 날 제를 지내기 전에 용왕님께 미리 인사를 드리는 작은 굿이다. 다음 날 굿판에는 세 명의 무당이 함께하기로 되어 있다. 제를 마친 무당은 불을 붙여 소지를 태운다. 소원 성취해 달라는 간절한 기원을 담아 불꽃을 날린다. 무당은 소지를 다 태운 뒤에도 징을 치며 마지막 기원을 드린다.
"많이 많이 잡수시고 배씨 가정에 소원 성취해주소서.
대자대비관세음"
용왕제가 끝나고 무당 할머니는 음식들을 조금씩 잘라내 거래(고수레)를 한다. 배고픈 떠돌이 귀신, 걸신들에게 보시하는 음식이다. 과일들은 제를 지내던 자리에 가지런히 놓아두며 나그네에게도 하나 건넨다.
"깨끗해서 잡솨도 상관없어요. 여기 얹어 놓으면 가는 사람, 오는 사람 잡숴요."
제를 지낸 음식은 길 가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니 의례는 또 나눔의 의례다. 무당은 다음 날 큰 굿을 위해 서둘러 짐을 챙기고 자리를 뜬다. 서늘한 초승달이 강구안 바다 위에 비수처럼 꽂혀 있다.
거북선이 정박하던 강구안
통영에서는 중앙시장 앞 거북선들이 정박해 있는 호수 같은 바다를 강구안이라 부른다. 섬이나 해변 지방에서는 바닷물을 갱(강)물이라 부르고 바닷가를 흔히 갱(강)변이라 부르는 데서 강구안이라는 이름이 생긴 듯하다. 강의 입구 안쪽 바다란 의미지 싶다. 통영 강구안의 지형은 영덕의 강구와 너무도 흡사하다. 그래서 이름도 같은 강구일까.
삼도수군통제영 시절 강구안 바다는 통제영의 기함인 천자 제1호 좌선, 통영 거북선 등 통제영 8전선(戰船)이 늘 정박하던 항구였다. 강구안에서는 봄가을이면 수군들의 군사 점호와 해안 훈련이 있었다. 그래서 강구안 부근 뱃머리 일대는 병선마당이라 했었다. 병선, 전선이 정박하는 곳이라 병선마당이었다. 이후에는 윤선머리, 쌈판, 뱃머리라고도 불렀다.
병선마당의 수항루(受降樓)에서는 통제영의 별무사(別武士)가 왜군 장수로 변장한 가왜장을 결박하여 무릎 꿇리고 항복을 받는 의식을 행하기도 했다. 병선마당은 일제강점기 초에 강구안 일부가 매립되어 수산물 시장이 들어서고 부산-여수 간 여객선이 운항하기 시작하면서 여객선의 중간 기항지가 됐다. 그 여객선을 화륜선이라 했다. 일제강점기에 병선마당은 화륜선이 정박하던 곳이라 윤선머리 혹은 뱃머리라 한 것이다.
부산에서 출발해 여수로 가는 배나 반대로 여수에서 출발해 부산으로 가는 배의 중간 기항지가 통영이었고 그 여객선 부두가 강구안에 생겼다. 도로 교통이 발달하기 전에는 육지와 육지를 움직이는데도 육로보다 해로를 통하는 것이 지름길이었다. 여객선은 부두에 직접 접안하지 못하고 강구안 바다에 떠 있고 작은 배가 손님과 물건을 실어 날랐다.
여객 터미널 주변에는 충무김밥 장수나 멍게, 소라 등 해산물을 파는 좌판, 볼락구이나 '꼼장어'(먹장어), 장어구이 등을 파는 선술집들이 많았다. 짜장면과 가락국수를 섞어서 파는 통영만의 독특한 음식 '우짜'가 시작된 곳도 강구안이었다. 유람선 터미널도 이곳에 있었다. 한 시절 통영의 중심지였던 셈이다. 하지만 여객 터미널과 유람선 터미널이 이전해 가면서 건물들이 철거되고 또 일부는 매립되면서 대신 넓은 광장이 생겼다. 그것이 문화마당이다.
▲거북선이 정박 중인 강구안 바다. ⓒ강제윤 |
통영의 아크로폴리스 문화마당
문화마당은 5000제곱미터 넓이의 도심 광장이다. 1997년 9월 25일 개장했다. 한산대첩 기념 축제, 통영 예술제를 비롯한 각종 공연과 수많은 문화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또 간단하게 뛸 수 있는 농구 골대도 있다. 박경리 선생이나 전혁림 화백의 장례식도 여기서 열렸다. 서울 광화문 광장보다 훨씬 더 열린 광장이고 문화적인 광장이다.
노인들도 매일 이곳에 모여서 장기를 두며 놀기도 하고 논쟁도 벌인다. 밤이면 산책을 나온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쉼터가 된다. 문화마당 앞 강구안 바다에는 거북선들과 전함인 판옥선이 정박해 있다. 한 척은 한강에 있던 것을 서해 물길을 따라 가져온 것이고 몇 척은 통영에서 건조한 것이다. 늘 호수처럼 잔잔한 강구안 바다를 보면 마음도 편안해진다. 간혹 외로움이 밀려올 때면 문화마당을 어슬렁거린다. 그러면 외로움을 반쯤은 달랠 수 있기도 하다. 풍어굿은 끝나고 오늘도 나그네는 초승달이 비치는 문화마당 광장을 하릴없이 배회한다. 통영 바다 위에서는 "초승달도 눈부시다."
□ 강제윤 시인이 포토에세이 <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이다>(호미 펴냄)를 출간했습니다. ☞ 자세한 내용 보기 □ 7월 <섬학교> 안내 : '홍길동의 율도국' 위도와 채석강, 내소사, 매창 기행 일시 및 장소 : 7월 6일(토)∼7일(일), 서해 절경 위도 위도는 한때 핵폐기장 유치 논란으로 떠들썩했던 섬이지만 실상은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의 모티브가 됐던 섬으로 먼저 알려졌습니다. 영광굴비의 명성 또한 위도 앞바다에서 잡은 황금 조기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조기 파시 때면 수천 척의 어선이 몰려와 흥청거렸던 조기의 섬입니다. ☞ 자세한 내용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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