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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또 비! 기상청 아닌 국회가 문제야!

[프레시안 books] 랜디 체르베니의 <날씨와 역사>

"일기예보에서 비올 확률이 80퍼센트라고 해서 휴가 취소했어요. 그런데 햇빛만 쨍쨍! 도대체 기상청은 뭐하는 곳인가요?"

비가 한 달째 추적추적 내리는 데다 본격적인 휴가철이 다가오니 인터넷 게시판에서 심심찮게 이런 글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일기예보가 틀릴 때마다 언론이 나서서 기상청을 욕해대고, 기상청은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이 해마다 반복된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사실 기상청이 그다지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자, 분노에 찬 저 게시판 글을 한 번 살펴보자. 일기예보에서 내일 비올 확률이 80퍼센트라고 했을 때, 그것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내일과 기상 조건이 비슷한 날 10일 중에서 8일은 비가 왔다는 의미다. 물론 비슷한 기상 조건에서도 비가 오지 않은 날은 2일이나 되었다(20퍼센트!).

저 일기예보를 놓고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말 그대로 '확률 게임'이다. 마치 주사위를 던졌을 때 '6'이 나올 확률이 고작 15퍼센트지만 재수 좋은 날은 연거푸 '6'이 나올 수 있는 것처럼, 열 번 중 두 번은 비가 안 올 수도 있다. 그러니 저 네티즌은 기상청을 탓할 게 아니라 자신의 재수 없음을 탓해야 마땅하다.

일기예보를 놓고 푸념하는 일이 부질없는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현재 기상청의 다음날 일기예보 정확도는 80퍼센트 정도다. 이 정확도는 이틀, 사흘이 지날수록 계속 떨어져 한 주일 후에는 50퍼센트 이하다. 이쯤이면 일기예보는 의미가 없어진다. 잘 알다시피 '모 아니면 도' 식의 예상은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일본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500억 원짜리 기상용 슈퍼컴퓨터도 있다는데 왜 이 모양일까? 이게 바로 현대 과학의 한계다. 날씨에 대한 지금의 지식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과학의 예측 능력으로는 불과 한주일 후의 서울 혹은 한반도의 날씨도 제대로 예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일기예보가 틀릴 때마다 기상청을 욕할 게 아니라, 현대 과학의 한계를 되새길 일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바로 한 주 앞 특정 지역의 날씨도 예측하지 못하는 지경이니 50년, 100년 후 지구 기후 전체의 변화를 예측하는 일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그럼, 더워지는 지구의 미래를 둘러싼 이 호들갑은 웬 말인가? 기후 변화의 불확실성을 염두에 둔다면 최근의 논란은 무의미한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 한 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 바로 랜디 체르베니의 <날씨와 역사>(김정은 옮김, 반디 펴냄)다. 사려 깊은 기후학자인 체르베니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로 눈을 돌린다. 그와 함께 역사 속 날씨에 얽힌 온갖 미스터리를 추적하다 보면 기후 변화의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해법의 실마리를 찾을지 모른다.

너무 더운 지구? 너무 추운 지구?

▲ <날씨와 역사>(랜디 체르베니 지음, 김정은 옮김, 반디 펴냄). ⓒ반디
지금은 더운 지구가 문제지만 몇 백 년 전만 해도 사정은 정반대였다. 유럽, 북아메리카를 놓고 보면 지난 500년간 특별히 추운 시기가 있었다. 1550년부터 1850년 사이의 이 기간을 흔히 '소빙하기'라고 부른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 태양 흑점의 활동이 사라져서, 이것과 지구 기온 사이의 관계가 주목을 받았다.

태양 흑점의 활동이 뜸하면 태양에서 방출되는 복사 에너지의 양이 줄어든다. 바로 이 때문에 지구 기온이 떨어져 소빙하기가 도래했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과 그 뒤에 나온 관련 연구를 염두에 두고, 일부에서는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이산화탄소와 같은 인간 활동의 결과로 발생한 온실 기체가 아니라 태양의 활동 변화라고 주장한다.

그럴 듯한 설명이다. 그렇다면, 지구는 더워질까, 추워질까? 안타깝게도 아무도 모른다. 지구의 기온은 최근 100년간 0.8도나 올랐다. 특히 지난 30~40년 동안 태양 활동이 줄었지만 기온이 0.4도나 오르는 추세를 잡지는 못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온실 기체를 지구 기온 상승의 주범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구 전체가 아니라 지역으로 눈을 돌리면 예측은 더 어려워진다. 유럽과 북아메리카가 추위에 고통을 받을 때, 지구의 기온이 지금보다 1.5도 정도 낮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 그 때 아시아는 어땠을까? 청나라(1644~1911년)가 지배하던 동아시아는 춥기는커녕 지금보다 비가 훨씬 더 많이 내리는 습한 환경이었다.

이런 사실은 기후 변화를 예측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미래의 지구가 더워질지, 추워질지를 예측하는 것도 어려운 일일 뿐만 아니라, 그렇게 더워진 (혹은 추워진) 지구의 각 지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정말로 모를 일이다. 지구의 기후는 "어떤 외부적인 변화에 하나의 단위처럼 반응하는 일이 대단히 드물기" 때문이다.

1만 년 일기예보가 불가능한 까닭은?

기왕 불확실성 얘기가 나왔으니 체르베니가 고백하는 또 다른 예도 살펴보자. 그는 몇 년 전 "어떤 사람들은 완전히 바보짓이라고 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궁극의 일기예보'라고 할 만한" 의뢰를 받았다. 그는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이 설치될 네바다 주 유카 산의 1만 년 동안의 날씨를 예측하는 과제를 맡았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속에는 플루토늄처럼 2만 년이 넘도록 방사성을 내뿜는 독성 물질이 가득 차 있다. 이 때문에 이 처리장은 1만 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외부와 완전히 격리되어야 한다. 당연히 처리장이 앞으로 어떤 날씨에 놓이게 될지는 중요한 문제다. '궁극의 일기예보'가 필요한 이유다.

체르베니는 태양을 도는 지구의 궤도 변화와 빙하기의 도래 사이의 관계를 따진 연구 결과를 보여주면서, 앞으로 1000년(!) 뒤에는 지구에 빙하기가 도래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는 이런 일기예보를 선뜻 내놓지 못한다. 마치 태양 활동과 지구 기후 사이의 관계가 그렇듯이 고려해야 할 또 다른 변수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는 지구의 기후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진 대양의 순환이다. 태평양, 대서양에는 더운 곳의 열을 추운 곳으로 이전하는 복잡한 순환 체계가 있다. 할리우드 영화 <투모로우>는 지구가 더워져 빙하가 녹은 찬물이 북대서양으로 흘러들어가면서 이 순환 체계가 망가질 때 나타날 참사를 그렸다.

이 순환 체계가 지구의 궤도 변화와 같은 외부 변화에 어떻게 반응하고, 그 결과 지구 곳곳의 날씨가 어떻게 변할지는 아주 불확실하기 때문에 100년, 1000년, 1만 년 후 특정 지역의 기후를 예측하는 일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체르베니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파국의 가능성'을 경계하라고 겁을 준다.

"티라노사우루스의 멸종(소행성 충돌이 원인), 소빙하기(태양 흑점 활동의 중단이 원인) (…)에 얽힌 미스터리들에서 지적했듯이, 지구의 기후는 예측할 수 없는 큰 변화에 의해 갑자기 바뀔 수 있다. 장기적인 기후 예측에서는 이런 사건들이 (소규모라도)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무게를 두어야만 한다."

기후 변화는 과학이 아닌 정치다!

체르베니의 바람처럼 "미래의 기후를 '예측'하는 능력은 향상되어 갈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그가 한 번 더 강조하듯이 "기후는 아주 먼 미래에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기후 변화를 둘러싼 불확실성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어차피 제대로 예측할 도리가 없으니 손 놓고 있는 게 최선일까?

대답은 반대다. 기후 변화에 대해서 과학이 얘기해줄 수 있는 것이 아주 제한적이기 때문에, 바로 그 순간부터 그것은 정치의 대상이 된다. 과학자가 내놓은 불확실하고 때로는 대립적인 견해를 놓고 시민들은 지금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고 선택해야 한다. 기후 변화가 무상 급식, 부자 증세와 같은 정치의 문제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현재 인류는 온실 기체를 줄일 제대로 된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100년 후쯤 '운'이 좋아서 지구 온난화가 초래할 기후 변화가 별 게 아닌 것으로 확인된다면, 최근의 갈등은 불확실한 과학이 초래한 한바탕 소동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인간이 배출한 온실 기체가 체르베니가 얘기한 파국을 낳는다면?

물론 그 때도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후회의 눈물을 흘릴 인류 따위는 남아 있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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