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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노예가 된 당신 "제발, 잊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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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노예가 된 당신 "제발, 잊어줘!"

[프레시안 books]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의 <잊혀질 권리>

얼마 전 가수 서태지의 결혼이 화제가 되었을 때 일이다. 가장 큰 피해자는 '네티즌 수사대'란 우스개가 돌았다. 상대 여배우의 과거를 전혀 파헤치지 못해, 평소 유명인의 과거를 귀신같이 들추어내던 수사대의 명성(?)에 금이 갔기 때문이란 이유였다.

이처럼 누구나 뉴스의 소비자이자 생산자로 활동이 가능한 인터넷 시대에는 사생활이 보장받기 힘들다. 유명인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신상 털기'에 걸리면 지하철에서 휴대 전화로 찍은 동영상만 보고도 얼마 안 가 이름, 주소, 직장 등이 상세하게 인터넷에 올라온다.

뿐만 아니다. 이름난 언론인이 쓴 글에 대해 예전에 폈던 주장과 달라졌다는 비난조의 글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모두 자료-정보라고 해도 좋겠다-가 0과 1로 치환되어 거의 반영구적으로 보관되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모습이다. 이는 순기능과 역기능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에 당연히 사회적 의미를 분석하고 새로운 개념에 맞게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현재 옥스퍼드 대학 인터넷연구소 교수로 있는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는 이에 주목해 '잊혀질 권리(the right to be forgotten)'란 개념을 파고들었다. '잊혀질 권리'란 개인이 인터넷에 올린 글과 사진 등에 대해 본인이 삭제 등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프라이버시 보호권인 셈이다.

▲ <잊혀질 권리>(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 지음, 구본권 옮김, 지식의날개 펴냄). ⓒ지식의날개
<잊혀질 권리>(구본권 옮김, 지식의날개 펴냄)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 2장에선 완벽한 기억이 갖는 사회적 의미, 인류사에서 기억과 망각의 변화를 살폈다. 3, 4장에선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망각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인지를 다루고 5, 6장에서 대안과 처방을 모색한다. 전체적으로 의미심장하고 통찰력이 뛰어난 책이긴 하지만 목적에 따라 달리 읽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디지털 시대의 완벽한 기억이 가져온 파장과 의미를 이해하려면 4장 '망각을 잃어버린 세계'만 읽어도 충분하다. 여기서 기억과 망각이 개인 혹은 문명사회에서 어떤 변모를 거쳤는지 일별하려면 1, 2장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쇤베르거는 기억과 망각의 역사를 다루면서 망각이 일반적이었고 기억은 예외적 현상이었다고 지적한다. 물론 어디 가면 사냥감이 많은지, 곡물은 어떻게 키우는지 등의 정보가 생존에 필수적이긴 했지만 이를 보존하고 전달하는 데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학창 시절 시험공부를 위해 땀 흘리던 기억을 되살리면 쉽게 상상이 가는 이야기다.

그러기에 인간은 언어, 그림, 문자 등 기억 보조 장치를 이용했고 이것도 모자라 가외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림 역시 기억을 위한 장치로 시작되었다는 지적은 신선했다. 동굴 벽화 등을 생각하면 그럴 법한 해석이겠다.) 그래도 기억은 불완전했고, 찾는 데도 수고로웠으며, 오래 가지도 않았다.

이것이 변했다. 기억이 일반적이고 망각이 예외적인 시대로 바뀌었다. 디지털 메모리 덕분이다. 기억의 양과 검색, 보존 기간이 거의 무한대로 확장됐다. 예를 들어 책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의 장기 연구 프로젝트인 '마이라이프비트'에 참여한 고든 벨 이야기가 나온다. 70대인 그는 목 주변에 매단 담뱃갑만한 검은 상자를 이용해 거의 10년 동안 자신이 마주치는 정보 대부분을 컴퓨터에 저장하고 있다. 800쪽이 넘는 건강 기록, 12만 통 이상의 이메일, 자신이 만난 사람에 관한 10여만 장의 사진이 그 결과물이다. 말 그대로 일상의 완벽한 기억이 디지털 기술 덕에 가능해진 것이다.

이건 자발적 기억의 사례지만 구글, 야후 등 기업은 네티즌의 검색 기록 등을 모두 보관한단다. 필요하다면 당신이 언제, 무엇을 찾았고 그것을 어떻게 했는지 알아낼 수 있다. 데이터 마이닝을 이용하면 어디서 무엇을 살지 혹은 무슨 일을 할지도 예측 가능하다. 인터넷 서점 등에서 고객의 취향에 맞춰 정보를 보내는 것이 모두 이런 '완벽한 기억'의 산물이다.

한데 쇤베르거는 '완전한 기억'이 축복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디지털 메모리의 확장으로 인간의 사유 작용이 위험해진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망각이 부분적으로 적절성에 기반을 두고 정보를 걸러내는 사유 과정이랄 수 있는데 디지털 메모리에 의해 촉발되는 기억은 인간의 추리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고, 포괄적인 디지털 메모리는 과거 사건들을 시간 순으로 적절하게 배열하는 인간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디지털 기억은 우리가 과거를 너무 많이 직면하게 해 제 때 결정하고 행동하는 학습 능력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다. 이를 테면 내비게이션을 사용한 뒤 길눈이 어두워졌다거나, 휴대 전화가 등장하면서 전화번호를 기억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도 그런 소소한 조짐이랄 수 있다.

그러면서 쇤베르거는 과거의 일을 세부적인 것까지 모두 기억하기에 여러 논문의 소재가 되었던 AJ라는 여성을 소개한다. 과거에만 빠져 사는 AJ는 망각은 귀찮은 결함이 아니라 수명을 늘려주는 장점이라며 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일반화하고, 개념화하며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고 말한다.

이 같은 망각의 미덕은 디지털 시대에 기억보다 비용이 높아지면서 기억에 밀려나고 있다는 것이 쇤베르거의 시각이다. 인화된 사진 중에서 보관할 것과 버릴 것을 골라내느니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모든 사진을 하드디스크에 그대로 보관하고, 인터넷에 올리는 것이 그런 경우다.

이 모두는 저장 장치의 비용이 턱없이 낮아졌고, 검색 또한 쉬워졌으며 인터넷을 기반으로 글로벌 네트워크가 형성되었기에 가능해진 것들이다. 문제는 이 기억 혹은 정보의 통제권이 개인의 손을 벗어났다는 점이다. 정부나 기업이 개인의 이력을 파악하고, 다른 이가 특정인의 과거를 뒤져내는 현상이 그것이다.

쇤베르거는 그 결과 제레미 벤담과 미셸 푸코가 이야기한 '원형 감옥'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고 주장한다. 보이지 않는 소수의 감시자가 다수를 통제하는 파놉티콘처럼 정보 기술이 총체적 감시 사회로 이끌고 개인 자유의 기반인 프라이버시가 침해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완벽한 기억'은 시간을 뛰어넘는데다가 전체 맥락을 벗어난 단편적 사실로 인해 공간적·시간적 원형 감옥을 만들 우려가 크고 결과적으로 사회적 권력 변동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와 관련해 교사 지망생인 스테이시 스나이더가 해적 모자를 쓰고 술을 마시는 자신의 사진을 '술 취한 해적'이란 이름으로 인터넷에 올렸다가 알려지는 바람에 '자질 부족'이란 이유로 임용되지 못한 사례를 들었다. 이런 일이 거듭될수록 자기검열이 판을 치게 되리라 전망한다.

물론 방대하고 접근 가능하며 반영구적인 디지털 메모리는 장점도 적지 않다. 정부 정책 수립이나 의사의 진단 등의 정확성과 효율성을 높인다. 회원들을 분류해 적절하게 행해진 마케팅은 사회적 비용을 줄여준다. 정보의 더 빠르고 광범한 파급은 혁신과 경제 성장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신이 무심코 한 말, 글, 행동이 타인의 손에 의해 부메랑처럼 돌아와 족쇄가 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며 때로는 끔찍한 일이 될 수도 있다.

디지털 시대의 환경 변화에 맞춰 조명한 '잊혀질 권리'는 의미 있다. 문명사를 훑으면서 기억과 망각의 관계를 살핀 대목은 신선한 면도 적지 않다. 문제는 뾰족한 해결책의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쇤베르거는 망각의 부활을 위해 개인 차원에선 디지털 금욕주의를, 제도적으로는 '정보 만료일' 시행을 제안한다.

디지털 금욕주의는 디지털 메모리가 정보에 새로운 목적을 부여한 사실을 비롯해 높아진 위험성과 정보 가치에 대해 배우고 "다른 사람들에게 정보를 노출하도록 강요하는 상호 작용에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지라"는 것이다. 일종의 자기 검열이기도 하면서 기술 진보에 반대하는 반기술 문명적 경고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정보 만료일 시행 역시 충분하지 않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정보가 삭제되도록 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과연 어떤 정보를 대상으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먼저 논의되어야 하고 이를 정보 서비스 기업에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정보 프라이버시 권리에 관한 논의의 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주목받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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