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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성추행 의대생'도 변호 받을 권리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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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고려대 성추행 의대생'도 변호 받을 권리는 있다!"

[인터뷰] <확신의 함정> 펴낸 금태섭 변호사

이 사람, 인생 행보가 남다르다.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재직 중이던 2006년, 한 언론에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이란 연재 칼럼을 게재했다가 검찰 내부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12년의 검사 생활을 접어야 했다. 이후 변호사로 변신해, 방송 진행자와 신문 칼럼 필자로도 활약하고 있다.

금태섭. 글 잘 쓰는 변호사로 이름난 그가 <디케의 눈>(궁리 펴냄) 이후 3년 만에 <확신의 함정>(한겨레출판 펴냄)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번 책에서 그는 소설, 드라마, 영화 속 주인공들이 처하는 딜레마를 추적해 사형, 성매매, 체벌 등 현실에서 논쟁 중인 여러 가지 사안을 놓고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나치 정권 시절 친위대에 복무했던 여인이 "재판장님 같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질 때,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이레 펴냄)) 우리는 법의 잣대로도 도덕이란 기준으로도 분명하게 대답할 수 없는 무력한 상황에 빠진다. <확신의 함정>엔 이런 상황에 고개를 돌리지 말고, 여러 관점에서 질문을 던져보자는 요구가 계속해 등장한다.

▲ <확신의 함정>(금태섭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한겨레출판
주간지 <한겨레21>에 연재한 20여 편의 칼럼을 묶은 이번 책의 가장 큰 메시지는, "우리는 누구나 틀릴 수 있다"는 것. 그는 서문에서 검사 시절 한 '딱한' 피의자의 보호 감호 청구를 취소했다가, 몇 달 후 자신이 '확신의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찔한 경험담을 전하면서 모든 사안엔 양면성이 있다는 사실, 내 완벽한 판단도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그는 "얄팍한 불가지론"을 내세우려 하지는 않는다. <디케의 눈>에서보다 훨씬 더 자신의 목소리를 확고하게 드러낸다. 분명 "답은 있다"고. 다만 서두른다고 그 답을 빨리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흥미롭게도 그가 법률가로서 무엇이 옳은가 어떤 것이 정의인가를 고민할 때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은 이론적인 해설이나 훈계조의 가르침이 아니라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였다.

그가 찾아 낸 소재들은 전편을 다섯 번이나 봤다는 '미드(미국 드라마)' <웨스트 윙>부터 '고전' 반열에 오른 아서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문광훈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까지, 장르와 시대를 넘나드는 수많은 이야기들이다. 이렇게 이야기에서 많은 영감을 캐내는 그에겐, 스스로 이야기를 창조하고 싶은 욕망도 있다고 한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위치한 '법무법인 지평지성' 사무실에서 금태섭 변호사와 삶과 글쓰기, 법과 사회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딜레마 속 정답, 찾기 어렵지만 없지는 않다!

프레시안 : <확신의 함정>은 <디케의 눈>에 이은 금태섭의 두 번째 책이다. 이번 책을 통해서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나.

금태섭 : 보수건 진보건 어떤 입장을 취하기 전에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법률가로서 늘 소수자나 약자의 견해를 좀 더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지금 우리 사회 분위기는 그렇지 못하다.

책에 나온 주장이 모두 내 주장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딜레마가 발생하는 상황을 놓고 (대립하는) 양측의 주장을 다 알려 주고, 이런 의문도 있을 수 있으며 양쪽 다 정답이거나 아닐 수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 예를 들어 체벌에 대해서 개인적으로는 몹시 화가 난다. 내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자랑거리가 아이를 한 번도 때리지 않았다는 건데 학교에서 맞고 왔다고 하면 정말 선생님과 마주보고 얘기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책에서는) 체벌 반대 입장을 취하되, 감정적으로 이쪽이 옳다 저쪽이 나쁘다 판단 내리기보다 가능한 여러 주장을 두루 조명하려 했다.

프레시안 : 읽으면서도 확실하게 어떤 입장에 손을 들어준다기보다, 가능한 의문을 모두 던져 가면서 답을 내리길 유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케의 눈> 역시 진실은 찾기 어려우며 누구나 틀릴 수 있다는 점을 얘기하고 있는데, 전작과 구별되는 <확신의 함정> 만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

▲ 금태섭 변호사. ⓒ프레시안(손문상)
금태섭 :
법학이라는 건 먼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사실'을 확장하고 거기에 대해 평가를 내리는 과정을 배우는 학문인데 법학 대학에서는 항상 평가 부분만을 가르친다. <디케의 눈>은 거기서 사실 자체를 확장시키는 일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얘기를 했던 거고, <확신의 함정>은 평가 부분도 포함하고 있다.

서문에 "분명 답은 있다"고 쓴 것처럼, 확실히 정의에 가까운 항(項)은 있다고 생각한다. 진실은 결코 알 수 없다는 말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사형 제도에 대해선 아주 강력한 폐지론자다. 또 성매매 문제에 있어선 아주 강한 반대론자다. 이렇게 각 사안에 대해 갖는 입장이 뚜렷하다. 다만 나도 틀릴 수 있으니 다른 얘기도 다 들어주겠다, 그러니 이쪽 얘기도 들어주어야 하지 않겠나, 이런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프레시안 : 방금 대답한 것처럼 이 책에서 가장 뚜렷한 입장이 드러나는 사안 중 하나가 성매매다. 이를 다룬 꼭지 제목부터가 '성매매 특별법을 위한 변론'이다. 성매매는 범죄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런데 최근 영등포 성매매 여성들이 시위에 나서기도 하는 등 당사자들이 성매매를 하나의 노동, 즉 '성 노동'으로 인정하고 제도 안에서 권리를 지켜주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역시 변함이 없나.

금태섭 : 성매매를 합법화해야 성매매 여성들의 복지를 개선하기 쉬워진다는 것, 처벌한다고 해서 근절하기 어렵다는 것은 알지만 그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매매 특별법 폐지에 단호히 반대한다. 성을 사고 팔아도 된다는 논리라면 극단적으로 말해 삼성전자에서 휴대폰을 팔 때 경품으로 여성의 가슴을 한 번 만질 수 있게 하는 것도 허용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건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세상에 '자발적인' 성매매란 있을 수 없다. 지금 같은 사회에선 애초부터 그런(성매매에 뛰어들지 말지)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있고, 나락에 떨어지면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다. 성매매를 허용한다고 하면 결국 저소득층이 하게 되는 것 아닌가. 그게 오히려 계층을 고착화시키는 거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막아주는 게 있어야 하지 않나. 마치 도둑질이나 살인을 해선 안 된다고 하는 것처럼 이건 해선 안 된다고 국가가 선언해 주는 게 중요하다.

성매매 특별법의 처벌 대상은 성을 산 남성들인 거고, 현 성매매 종사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그분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는 다른 측면에서 해나갈 수 있는 거다. 그리고 성매매 특별법으로 집중 단속한다고 해서 법을 피해가는 변태적 업소가 더욱 많이 생겼다고 하지만, 합법화시키거나 공창 제도를 도입한다고 그게 상쇄될까? 더 많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법조인들이여, '통속 소설'에서 배워라!"

프레시안 : 이 책의 특징은 다양한 소설과 영화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의 법정 소설이 많이 나온다. 장르 소설 마니아라는 느낌을 주는데, 평소 독서 취향은?

금태섭 : 심하게 편중되어 있다. 거의 소설만 읽는다. 나는 아는 게 별로 없는데, 평소에도 철학, 사회과학, 인문학 책을 따로 보고 공부해서 쓰시는 분들을 보면 참 부럽다. 그래도 '이야기' 속에서 교훈이랄지 메시지 같은 것들이 많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그런 여러 이야기들과 현실 사안의 접점을 찾아내어 굉장히 매끄럽게 잘 썼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갖다 쓴 것들이 실제 현실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사례들인가?

금태섭 : 오히려 실제 상황이 소설보다 훨씬 더 소설 같을 때가 많다. 다만 실제 사건들은 쓸 수 없는 부분이 많고, 사실 관계도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소설은 그렇지 않은데다가 극적 장치도 갖춰져 있으니 갖다 쓰기 편하다.

예전에 사법 파동(1971년) 주역이었던 고(故) 이범렬 변호사라는, 글을 아주 잘 쓰는 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판사들한테 이런 얘기를 했다. 괜히 어려운 거 읽지 말고 통속 소설 좀 읽으라고. 그래야 사람에 대해 많이 알게 되고, 재판도 잘 할 수 있다고.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소설 읽다 보면 인간에 대해 몰랐던 걸 많이 알게 된다.

실제로 재판을 하다보면 그 똑똑하다는 판사들이 어떤 부분-특히 성(性)과 관계된 성범죄나 이혼 문제-에 대해 굉장히 고리타분한 생각을 갖고 있거나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설마 순결을 이런 곳에서 버렸겠어" 이럴 때 "소설 좀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웃음)

프레시안 : 책날개 저자 프로필에 "소설가가 꿈이다"라고 썼는데, 이 꿈은 2007년 검사를 그만두기 전에도 갖고 있었던 건가.

ⓒ프레시안(손문상)
금태섭 :
구체적으론 없었다. 나중에 나이 들면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사법시험 거쳐 검사가 될 때는 당연히 여기에 뼈를 묻으리라는 생각이었다. '한 10년 하고 변호사 되어야지' 이런 계획은 이 직업을 우습게 아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도 판사를 하다 변호사를 하신 법조인이었는데,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법대에 가겠다고 했더니 "머리 나쁜 애들이 문과 갔다가 직업도 못 가질 수 있으니 이과를 가라"고 하셨던 분이셨다. (웃음) 나중에 사법연수원 마치고 또 한 번 "뭘 하고 싶냐"고 물으시기에 "검사가 됐으니 검찰총장 하고 장관까지 해야지요. 이왕이면 젊은 나이에 해야 그 다음에도 뭘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랬더니 막 웃으시더라. (웃음) 자긴 판사 생활 초기에 평생 시골에서 판사만 해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검사 되지도 않은 놈이 검찰총장 얘기한다고. (웃음) 그 이후로는 그런 거창한 접근은 안 했다. 그래도 뼈는 묻을 생각이었다.

그랬는데 결국 검찰에서 나오게 됐고, 두 번째 직업을 갖게 되니까 지금까지 못 했던 이런 거 저런 거 다 좋아 보이더라. 워낙 글 쓰는 걸 좋아하고, 이야기를 좋아한다. 갑자기 시한부 삶을 선고받는다 하더라도 무슨 얘기를 해서 주변 사람들을 웃길 수 있을까 고민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러니 자연히 '소설가' 생각도 나게 되더라.

프레시안 : 얘기를 들어보니 2007년에 검사직을 그만 두고 나서 인생에 새로운 계획들이 생겼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나?

금태섭 : 검사 생활도 즐거웠지만 그만둔 결정에 후회는 전혀 없다. 신문 연재를 하기 전부터 향후 어떻게 될 것인지 가능성을 나름대로 숙고했었다. 당시 나는 (서울중앙지검에) 그대로 남는 것이 가장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위에서 굉장히 미워하면서, 그래서 눈에 안 띄게 괴롭히면서도 쫓아내지는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전혀 다른 반응이 왔고 그래서 나도 조금 실망했다.

지금은 변호사 일도 변호사 일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되어서 아주 즐겁다. 긍정적이라거나 부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고, 그냥 아주 재밌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늘 '내일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날들의 연속이지만, 대체로 즐거운 일이었던 것 같다.

프레시안 : '이야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이야기'가 많은 변호사이기도 하단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어떤 작가의 '이야기'를 좋아하나?

금태섭 : 마이클 크라이튼을 굉장히 좋아한다. 대학 다닐 때 존 그리샴과 크라이튼의 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크라이튼 쪽이 훨씬 짜임새가 있다. 문장 하나하나,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공부와 조사를 정말 열심히 하는 것 같다.

평가할 입장은 안 되지만, 우리나라 장르 소설 작가들에게 죄송한 얘기를 한 마디 하자면, 치밀한 조사가 부족한 편이다. '피고'라는 말을 잘못 쓰는 경우마저 있더라. 형사 재판 받을 땐 '피고'가 아니라 '피고인'이 맞다. "피고를 징역 3년에 처한다" 이건 틀린 말이다. 피고는 민사 소송에서 원고와 피고 할 때 쓰는 말이다.

프레시안 : 그럼 나중에 만약 소설을 쓴다면, 마이클 크라이튼 같은 과학 장르 소설에 도전할 계획인가?

금태섭 : 아니, 순수 문학을 써서 노벨문학상을 노려야지…. (일동 웃음)

프레시안 : 만약 소설을 쓴다면 사형 제도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푸른숲 펴냄)처럼, 사회적으로 어떤 문제를 던져주어야 한다는 책임의식이 생기지 않을까. 법조인으로서….

금태섭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처럼 직선적인 방법은 아니더라도, 반드시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방향으로 쓰고 싶다. 물론 나중에 글 실력이 늘고 난 뒤의 일이겠지만. 한 쪽의 주장을 보여주기보다 복합적으로 펼쳐 보여주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가령 제드 러벤펠드라는 교수 겸 작가가 있는데 <살인의 해석>(박현주 옮김, 비채 펴냄), <죽음 본능>(박현주 옮김, 현대문학 펴냄)이란 책을 썼다. 전자는 1910~20년대 프로이트와 융의 미국 방문을 배경으로, 후자는 1920년대 월스트리트에서 실제로 일어난 폭탄 테러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미스터리 소설이다. 굉장히 뛰어나게 시대상을 묘사하는데, 바로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프레시안(손문상)

검찰, 이제 할 일만 하자

프레시안 : 소설이나 영화로 만들어지는 소재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이다. 여러 사건을 직접 다뤘기 때문에 소재가 무궁무진할 것 같은데.

금태섭 : 그렇긴 한데 사건을 구성하는 사실에 제대로 접근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우리나라 장르 소설에 대해 작가들만 마냥 비난하기 어려운 게, 시장이 작기도 하거니와 소재에 접근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가끔 중요한 사건의 판결 이후 분석 멘트를 해달라고 기자에게 전화가 오는데, 그럴 때마다 늘 기자한테 그 판결문을 구해달라고 요청을 해야 한다. 판결문이 다 비공개다. 검찰이 주장하는 의견서, 변호인이 주장하는 의견서 이런 것도 아무도 못 본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최근 법조계 최대 이슈는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가 아닐까 한다. 굉장히 시끄러웠는데 어떻게 지켜봤나.

금태섭 : 검찰, 경찰 양쪽에 다 문제가 있다고 본다. 먼저 경찰. 경찰은 검찰과 경찰이 경쟁해야만 서로 견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사실 우리나라 경찰 같은 조직이 어디 있나. 미국 뉴욕에서 범죄 사건이 나면 뉴욕 시경(NYPD), 연방수사국(FBI), 자치 경찰 등이 간여한다. 이렇게 쪼개져 있어야 (경찰이) 힘 있는 기관이 될 염려가 없는데 한국은 15만 경찰이 조현오 경찰청장 한마디에 쫙 움직이잖나.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수사 지휘에서 물러나는 건 오히려 (검·경 간의) 견제를 풀어주는 것 아닌가.

한편, 우리 검찰은, 또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강력한 집단이기 때문에… 정말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프레시안 : 관련 법 개정을 포함한 '개혁'을 치욕으로 여기는 검찰의 습성은 자주 불거져 온 얘기다. 솔직히 검찰에 몸담고 있을 때, 검찰 권력 과잉이라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느꼈나.

금태섭 : 과거에도 그랬고 사직했을 때, 그리고 지금도 같다. 본인들이 스스로 개혁하지 못하면 외부에 의해 개혁 '당할' 것이고 그건 검찰뿐만이 아니라 사회 자체에도 불행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관련 사건이 있을 때마다 검찰 내부와 얘기를 나눠 보면 참 안타깝다. 자기 생각 밖에 못 하는 이들이 많다. 수사를 하는 주체로서 수사 받는 사람들의 입장, 경찰의 입장, 법원의 입장 이런 외부의 입장을 생각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게 가장 문제다. 어느 때엔 검찰 기관은 왜 이리 비정치적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차라리 머리를 좀 더 써서 정치적으로 어떻게 뚫고 나갈지를 고민했으면 좋겠다.

나는 기본적으로 검찰이 우리 사회에 많은 역할을 해왔고 긍정적인 면도 많다고 생각하며, 그 기능이 충분히 인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제 힘을 부려선 안 되며, 그럴 만한 시절도 지났다고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검찰의 권한이 약해져야 맞다. 지방에서 근무할 땐 지방 공직 사회가 상당히 부패해 있고 토호들이 주민들을 괴롭히는 경우가 많아서, 과거엔 거기서 검찰이 분명 질서를 잡아주는 데 일조한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생각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는 거다. 검찰 본연의 의무인 수사를 하고 기소된 사건에 대해 형벌을 정하는 데에서 그쳐야지, 무슨 어디를 안정시킨다거나, 이런 건 아니잖나. '광우병 편'으로 제작진이 기소되고 한창 시끄러웠을 때, 미국산 쇠고기가 유해한지 아닌지를 검찰이 따지는 모양새가 됐는데 참 후진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프레시안(손문상)

法, 대중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

프레시안 : 지난 5년 가까이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다. 혹시 변론을 맡으면서 변호사 개인의 윤리와 부딪친 적은 없었나? '인간 금태섭'과 '변호사 금태섭' 사이의 딜레마라고 할까.

금태섭 : 그건 교과서에도 나와 있는 얘긴데, 자기가 변론하는 이의 유죄가 확실한 것으로 보이거나 의뢰인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더라도 당연히 변론은 끝까지 해야 한다.

가령 최근 지탄을 받고 있는 고려대 성추행 범에 대해서 (개인적으로는) 왜 그들을 출교시키지 않는지 답답하지만 변호사로서는 변론을 맡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변론을 맡게 될 변호사가 나쁜 사람이라고 보지 않는다. (의뢰인과 변론인을) 동일시하는 것 가체가 잘못된 거다.

물론 가까운 사람이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거나, 개인적인 아주 강력한 감정이 있는 경우라면 변호를 회피하는 걸 이해할 수 있다. 그럴 땐 사임을 해야 한다. 변호사는 항상 최후까지 자기가 맡은 그 사람의 편이여야 하고, 그럴 수 있어야 훌륭한 변호사라 할 수 있다.

프레시안 : 그동안 많은 매체에 글을 쓰면서 필자로 이름을 알렸다. 공직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을 대리하는 일에 종사하면서, 일 때문에 글 쓸 때 자기검열을 하는 경우는 없었나?

금태섭 : 변호사와 의뢰인은 법적으로도 배신하면 안 되는 관계이기 때문에, 가끔 어떤 문제에 대해 발언할 수 없는 경우가 있긴 있다. 가끔은 개인적인 (친분) 관계 때문에 특정인에 대해 말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럴 땐 못 한다고 확실히 얘기한다. 또 이건 우리 법조계 (분위기) 문제이기도 한데, 법조인이 사회적 발언을 많이 하면 의뢰인들이 안 좋아한다. 항의까진 아니어도 그와 비슷한 걸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어쩌겠나.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살아야지. (웃음)

프레시안 : 얼마 전 주변에서 '과학 대중서'를 둘러싼 토론을 목격했다. 과학자들이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쓰는 책의 목적이 '과학 지식을 쉽게 알려주는' 데 있느냐, '과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도와줘 더 나아가 현대 과학에 대한 비판적 안목을 기르는' 데 있느냐는 얘기다. 같은 얘기를 법학자나 법조인이 쓰는 대중 교양서에도 적용해 볼 수 있을 듯하다.

금태섭은 '법'을 소재로 대중교양서를 쓴다. 이때 어떤 접근법을 취한다고 할 수 있는가?

금태섭 : 구체적 법리를 설명해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사실 <엘레건트 유니버스>(박병철 옮김, 승산 펴냄)의 브라이언 그린 같은 작가만 봐도, 수학이 안 나오기 때문에 물리학 책은 결코 아니지만 '대중 과학서'라고 해도 굉장히 어렵다. 그래도 그런 걸 보면, 사는 데 아무 상관없는 우주 이야기인 것 같아도 생각의 지평이 넓어질 때가 있다.

우리가 물리학을 알지 못하더라도, 평행 우주론과 같은 물리학의 결과물들을 놓고 거기서 진행되는 논의를 보면서 현실에서 벌어지는 문제에 대해 다시 고민할 수 있는 것처럼, 법학도 마찬가지다. 살아가면서 어떤 방식이 더 공평한가, 어느 쪽의 손해가 더 큰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데 거기서 생각의 방향이나 논의 과정에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또 소수자와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법의 관점을 드러낼 수 있다. 법학을 가르치거나 법조계에 종사하면서 대중서를 쓰는 사람들의 임무는 이런 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프레시안 : 변호사가 말이나 글, 설득과 논리 등으로는 제일 강한 직종임에도 불구하고 앞에 나와서 글을 쓰는 분들이 적다는 생각이 든다.

금태섭 : 많이 하시면 좋을 것 같다. 대학 다닐 때, 같은 문과 중에서도 법대생들만 전혀 다른 책을 읽고 있었다. 그래서 판사, 검사, 변호사 가운데 바깥세상에 대해 잘 모르거나 외부와 소통이 잘 안 되는 분들도 많다.

그런데 법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분야라 여러 난점이 발생한다. 내 경우 신문 칼럼을 쓸 때 '독자'를 상정하는 데 굉장히 어려움을 겪었다. (검사) 그만두고 나서 글 쓸 땐 독자로 검사를 염두에 두고 쓰게 되더라. 너무 쉬운 얘기를 썼다가 우습게 보이지 않을까 걱정하는 거다. 연습이 좀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법률가들도 결국 대중과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과거엔 배심 재판 제도를 도입하는 것에 반대했는데, 지금은 적극 찬성한다. 예전에는 방청객들이 법정에서 무슨 재판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파악하지 못했다. 중요한 얘기는 서류로만 오가고, 판사나 변호사들은 자기들끼리만 아는 언어를 나누고 그랬다. 그런데 배심 재판을 하면 결정권을 지닌 일반인 배심원들이 이해할 수 있게 상황을 얘기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실제 재판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일반인들이 알아듣게 설명해주는 과정이, 법학을 변혁이라 할 만큼 발전시킬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회 변혁? 정치는 수단으로 오고, 법은 뒤따라가야"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사회 문제 전반에 관심이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최근 가장 '열 받는' 사건이 있다면?

금태섭 : 너무 많다. 특히 한진중공업 해고 사태. 제일 화가 난 건 노동조합 지회 측과 사측이 협상 타결했을 때였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봤더니 다음 날 조남호가 국회 청문회에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 않나. 그 압박 때문에 전날 회사 임원들이 총동원 되어서 합의를 이끌어 낸 것 같다. 누구는 190일 넘게 크레인 위에 있는데 그건 보지도 않고 자기네 회장이 국회에서 망신 당할까봐 전전긍긍했을 걸 생각하면 정말 열 받는다.

프레시안 : 법무부 장관 인사에 대해서 어떻게 보나. 현직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인 권재진이 내정되어서 말이 많다.

금태섭 : 민정수석 비서관이 법무부 장관을 맡게 되는 건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법무부 장관은 정무직이고 우리나라 헌법상 장관은 대통령 비서니까, 잘 아는 사람을 쓰고 싶은 것도 당연하다고 본다. 그건 과거 노무현 정부 때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 비서관이 법무부 장관으로 거론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지금 정부의 법치를 바라보는 관점에 원칙이라곤 찾아볼 수 없으며 반대 편 '입'들을 닫아버리려고 하니까 과연 선거 관리가 공정하게 될까, 그런 점이 걱정되긴 한다.

프레시안 : 혹시 정치에 욕심이 있나? 금태섭이라면 언질도 많이 받아봤을 것 같은데….

금태섭 : 없다. 검찰에서 나왔을 때도 당에서 오라는 얘기 없냐고 (주변 사람들이) 물어보던데, 전혀! 얘기 없었다. (웃음)

이 나이가 되고 보니,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보단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다. 정치에 뜻이 있다는 건 사회에 대해 뭔가를 하고 싶다는 건데, 나는 정치 안 하고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검사 사직할 당시에 어디에 공천이라도 받았으면 초선 국회의원이 됐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과 지금 방송도 하고 글도 쓰는 생활 가운데, 이쪽이 더 나은 것 같다. 비록 힘은 약하지만.

정치하는 것 자체가 (내게) 나쁘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치를 하고 싶다'가 아니라, '정치를 통해 세상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는 비전이 먼저 와야 맞는 거라고 생각한다. (사회를 바꾸는) 수단으로서 정치가 와야 한다는 거다. 현재로선 내가 꿈꾸는 세상을 내놓고 표로 동의를 구하기엔 턱도 없이 부족한 것 같다. 그리고 검사 생활 12년 하면서 국가와 사회에 나름 봉사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웃음) 그럼 됐지 않았나 생각한다.

프레시안 : 어떤 법을 두고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반대파의 수사 중 하나가 '한국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법망을 만들어 놔야 현실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굳이 말하자면 한 나라의 법이 현실을 '반영'해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보는지, 법이 현실을 낫게 바꿀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보는지?

금태섭 : 사회가 변화되고 법이 따라가는 것이지 법이 사회를 진보시키거나 발전시킬 수는 없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의 문제는 어떤 변화가 생기면 법이 그걸 뒷받침하기 위해 따라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뭔가를 늘 규제하려 든다는 점이다. 가령 인터넷이란 환경이 만들어졌다. 그럼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새로운 통신 환경을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해줄까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사이버 모욕죄'처럼, '안 되는 것'으로만 접근하려 한다는 얘기다. 결국 사회의 변화를 뒷받침하고, 올바른 방향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법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손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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